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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편 -능파vs 요연, 호지, 슈-
슈는 요를 밀치듯이 능파를 쫓았다. 방주의 백업 탓인지 탑 안에서 달리는 능파의 속도는 슈와 거의 비등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모습을 놓칠 수준은 아닌지라 어떻게든 능파를 쫓아가며 마력탄을 수 없이 쏟아냈다.
평소의 능파라면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위력이지만 방주의 백업이 있다. 쉽사리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어째선지 모조리 피해내고 있었다.
"으으으으!!!!"
열 받았다. 정말로 흔치 않은 일이지만, 슈는 굉장히 열 받았다. 설마 그 순간에 그런 방식으로 공격해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한순간이지만 능파를 좋은 아이라고 생각했던 슈는 요연과 호지와 같은 마음이 되었다.
일단 잡아서, 따끔하게 벌을 준다. 그리고 호지와 요연에게 넘긴다. 간단하지만 이것만큼 좋은 벌은 없을 것이다.
요연이 권태로운 모습을 하기는 했지만 그건 참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잡을 방법이 없어서 였다. 아마 기회를 준다면 누구보다도 빠르게 능파를 잡으려 열을 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능파가 돌연 멈춰섰다. 슈를 마주 보면서 선 것이, 도망칠 생각은 없어보였다. 슈도 쫓던 것을 멈추고 돌격태세를 취했다.
상대는 다름 아닌 능파이니, 멈춰선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을 따돌릴만한 방법을 찾았을 가능성도 있었다.
"능파아아아....!"
"어라, 화났어요? 하지만...."
철컥, 철컥, 철컥!
수백에 달하는 포대가 세워진다. 천장은 물론이고 벽, 바닥. 포대가 없는 곳이 없다. 그 포구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슈다.
포대의 흉흉함에, 슈는 저도 모르게 양손을 들어 항복의 대표적인 행동을 했다. 하지만 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능파니까.
능파가 웃었다. 아름다운 미소이건만 그녀가 웃을 때마다 주변의 공기가 더욱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한걸음, 한걸음 뒤로 물러선다. 하지만 포대의 범위는 이 복도의 전역, 피할 장소는 없었다. 나가려해도 능파의 방주 장악 때문에 종유동을 열 수도 없다.
"후후. 도망 못 칠 거에요?"
퍼버버버버벙!
수백의 포좌가 불을 뿜었다. 포연 속에서 시커멓게 타버린 슈가 바닥으로 쓰러져버렸다.
잠시 후, 슈가 요연과 호지가 있는 방에서 화이트보드를 쳤다.
타앙!
요연이 쳤던 곳의 크레이터에 손이 작렬하자 슈는 아픈 손을 잡고 폴짝폴짝 뛰었다. 호호 자신의 손을 불던 슈가 다시 화이트보드를 친다.
팡.
사람은 성장하는 동물이던가, 가볍게 친 슈는 아프지 않은 자신의 손을 보며 안도했다. 그리고 시선을 들어 호지와 요연을 보았다. 이제는 어찌되던 상관없다는 권태의 화신이 되어 과일이나 까먹으며 신선놀음을 하고 있었다.
"얘들아, 능파의 약점 찾아보지 않을래?"
"바보 아냐?"
"바보로군요."
행동에 비해 부드러운 제안. 하지만 날아오는 대답은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요연과 호지가 안을 꺼냈을 때보다 많아진 '바보'에 훌쩍, 하고 슈가 울먹인다. 그 모습에 요연이 슬쩍 혀를 차고 바로 앉는다.
귤껍질을 접시에 내려놓고 귤 한조각을 슈의 입에 비수를 날리는 것처럼 집어넣었다. 간단한 행동으로 슈의 울먹임을 멈춘 요연이 제안에 반론을 제기했다.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방법이 없습니다."
방법이 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들이 한번씩이라도 화이트보드에 약점찾기의 안을 꺼냈을리가 없다.
능파는 '약점이 없다'. 있을지도 모르지만, 능파의 장점은 그 약점을 완벽하게 가리고 있었다. 머리가 비상하기 짝이 없는 능파가 쉽사리 약점을 드러낼리가 없다. 솔직한 요연의 마음은, 그 약점이 없다는 것에 치중해 있었다.
"그래도 찾다보면 한둘쯤은...."
"있었지만, 그마저도 지금은 통하지 않을테죠. 지금 왔다면 봤을 것 아닙니까. 방주의 백업. 솔직히, 이 탑 안에서 그녀를 막을만한 무력을 가진 사람은 적을겁니다."
능파의 유일한 약점...이랄까, 대중적인 약점은 바로 무력(武力)이 약하다는 것이었다. 실재 능파의 힘으로는 백명이 되어 슈나 요연에게 덤빈다고 해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무력은 지금만큼은 약점이 아니었다.
방주의 힘. 그것에 대한 이해는 슈가 더 높았다. 방주의 거대한 힘을 어째선지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장난이나 치고 다닌다. 문제는, 알고 있으면서도 대응책이 하나도 없다는 것. 무력으로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능파쪽에서도 죽일 생각은 없는 것 같으니 옷차림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는 선에서 끝났지만, 열 받는 것은 열 받는 것이다.
의지박약의 노인이나 다름 없게 변해버린 그녀를 보며 슈가 발만 동동 구르자 요연이 덧붙였다.
"우리가 정말로 죽일각오로 덤빈다면 가능도 하겠지만, 그럴 일은 없겠죠. 당신도 그럴 생각까지는 없잖습니까?"
"그, 그렇지만...."
현실적인 말을 디밀자 슈도 할 말이 없어졌다. 더이상의 말은 무의미 한 것을 깨닫자 슈는 어떻게 하면 능파를 골려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나오지 않는다. 모든 의문의 답을 요에게만 떠 넘겨 왔던 슈가 그런 것을 알리가 만무했다. 게자가 슈정도의 인간이 만드는 계략을 능파가 눈치채지 못할 것 같지는 않다.
"으으으으!!"
도저히 수가 없다. 요연과 호지만 도와준다면 힘으로라도 밀고 갈 수 있는데 이래선....
콰아아앙!!
돌연 몰아치는 열염(熱炎)의 폭풍. 신선놀음을 만끽하던 요연과 호지가 누워있던 소파가 타면서 사라지자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슈조차 갑작스러운 일격이었기 때문에 얼굴에 검댕이가 많이 묻어버렸다.
[키득 키득.]
단하나의 전자음이 폭음이 사라진 방에 울린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모르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새까맣게 타버린 사과를 들고 있는 호지의 손이 사과를 우그러트린다. 아까의 폭염 때문인지 수분이 나오지 않고 모래처럼 스러져가는 사과를 보고 호지의 눈이 기광을 토했다. 분노의 의지가 담긴 눈동자는 이미 한계치를 넘어서 있었다.
요연도 다르지 않았다. 분노를 감추려는 것처럼 눈을 감고 있었기에 분노가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어느샌가 사신검의 검갑이 요연의 몸에 둘러져 있었다.
"슈, 사과하겠습니다."
"으응?"
무기를 들고 살기를 뻗치고 있는 요연의 갑작스런 사과라 슈는 제대로 반응하지 못 했다. 능파를 향한 분노가 피크에 달한 상태라 제대로 듣지 못 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요연은 주작검을 뽑아 허공을 한번 베었다. 방 안에 산재한 염기가 만도의 형태를 취한 검으로 빨려들면서 사라져간다.
검자체가 가진 염기와 밖의 염기가 섞여서 강렬한 힘으로 변모하고, 이내 열화와 같은 분노와 맞닿아 무기로서 최고의 형태를 가진 주작검에 필살의 무력이 실린다.
방주가 적이라면 방주라도 부순다. 부수고 부숴서 능파녀석에게 한방 먹여주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오갈데 없는 분노를 어떻게 처리할 수가 없다.
주작검이 위에서 아래로 정확한 직선을 그리면서 내려왔다. 집중된 괴력은 방주의 힘으로 만들어진 바닥에 검흔을 남긴다. 위력은 확실했다.
"바보는 저였습니다. 능파의 저런 장난, 방주의 힘 때문이겠지요. 먼저 기선을 잡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럼...."
"예에. 참가하죠. 하지만, 약점 찾기 따위가 아닙니다."
주작검을 빙글빙글 돌리다 벽을 후려쳤다.
콰과광!
검이 남기는 상흔. 이미 검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패여있는 모습은 망치로 검술을 펼친 것만 같다.
검끝에 필살의 의지가 담기고, 날카로움의 속에 무거움이 담긴다. 방주의 공격을 무시하고 나아간다면 분명히 베어낼 수 있을 것이다.
"능파가 울 때까지 두들겨 패줘야겠습니다."
"아아, 동감."
바나나모습의 검댕이를 들고 있던 호지가 쓰게 웃는다. 손을 쥐자 들고 있던 검댕이가 가루가 되어 흩어져간다.
호지의 모습이 바뀌었다. 인간의 모습이 아닌 붉은 피부를 자랑하는 도깨비의 모습, 드라이버정도 크기의 뿔 두개가 이마에 돋아서 더욱 위협적인 모습을 조성했다.
"능파.... 딸이라고 봐줬더니만 이제 참을 수 없어."
여왕의 가면, 감투를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게 머리에 반쯤 걸쳤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고정하고 있던 금삼비녀를 뽑아 지팡이의 형태로 현현시킨다.
전투준비다. 적들을 상대할 때나 보이던 모습을 드러낸 호지의 눈에는 이미 딸에게 지켜야 할 도리 같은 것은 남아있지 않았다. 남아있는 것은 불타오르는 분노뿐.
슈는 직감했다. 아무리 능파라지만 이번에는 처벌을 피할 수 없다고.
[쿡쿡. 드디어 세명이 되었네요.]
스피커도 없는데 전자음이 들려왔다. 방주의 조작, 사사로운 것이지만 놀랄만한 것이었다.
능파의 홀로그램이 방문 앞에 나타나 있었다. 열이 받을대로 받은 호지의 주먹이 그것을 강타하지만, 결국 허상이다. 호지의 손은 문에 자국을 남기는 것으로 그쳤다.
[재밌는 장난질에 참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이곳의 옥상에 있을거랍니다. 그곳에서 엄마와 요연, 슈를 기다리고 있을거에요.]
오락프로의 사회자처럼 이야기를 시작하던 능파는 순순히 자신이 있는 장소를 불었다. 그곳에 있다고, 쫓아오라고 말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도달한다면 엄마들의 승리, 오지 못 하면 저의 승리. 무승부는 없답니다. 부디 절 보실 수 있기를.]
능파가 먼저 도전장을 디밀었다. 아니, 초대장이다. 덤비라고 말하는 것이다.
슈는 요연과 호지를 돌아보았다. 이마에 힘줄이 솟아서 이미 터져버리기 직전이었다. 게다가 덧붙이자면 슈 또한 그랬다.
분노하는 여성들을 적으로 돌린 능파의 뒷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