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생의 육아일기-293화 (29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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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공(刀工)

울창한 숲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는 푸른 계곡에, 난 도달해 있었다. 풍량도, 조용한 물소리도 주변 환경에 부합하여 청량하다는 감각으로 변해갔다.

평화라는 단어를 시각화 한다면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불편하겠지만 이런 곳에서 살아도 문제는 없다. 아니, 방주의 위도 반쯤은 그런 곳이기도 하니 꼭 불편하다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팔을 하늘을 향해 쭈욱 뻗었다. 몸은 평소와 같지만 나라 밖에 있던 연유로 생겨난 향수탓일까, 어쩐지 찌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으으으! 간만인 걸. 가끔씩은 지상도 좋을 것 같네."

"어머, 방주의 위도 감각은 지상과 크게 다를 바 없다구요?"

자신의 체격에 여덟배는 될 것 같은 거대한 노란 가방을 등에 맨 능파가 돌과 돌 사이를 폴짝거리며 웃었다. 뭘 담았는지 모를 가방이 능파가 걸을 때마다 따닥하는 소리를 낸다. 매우 단단하고 육중한 물건을 담은 것 같다.

여기로 오기 전에 능파가 뭔가를 챙겨온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저렇게 커다란 것인지는 상상도 못 했다. 들어준다고 해도 필요 없다면서 웃을뿐이고.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지만 왠지 묻기가 힘들었다.

능파가 뛰어올랐다. 사진과 사인이라는 참사검 시리즈를 다루기 시작해서인지 능숙한 몸놀림이다. 체조선수라고 해도 믿을만한 움직임으로 내 어깨를 밟았다. 엄청난 무게가 엄습할 것이라 생각하며 몸을 움츠렸는데, 의외로 느껴지는 무게는 없었다.

부유의 술이다. 간단한 마법이라 나도 쓸 수 있는 그런 마법. 하지만 영창도 없이 자연스레 발동한 것을 보면 용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능파가 내 어깨를 밟은 체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산의 토지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희미하게 일렁이는 것이 보인다.

운사에 잡히는 이 감각,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세히 찾아보니 아까 보았던 곳과 조금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곳이 있었다.

신기루다. 신기루가 이곳에 일어날리는 없는데다가 저렇게 선명하지도 않다. 아마, 인위적인 것. 일반인들의 무분별한 진입을 막기 위한 것이다.

"저곳에 있는건가?"

"예. 크게 사람을 반기는 분은 아니지만.... 이게 있으니까 괜찮겠죠."

등에 맨 가방을 강조하는 것처럼 가방끈을 잡아당긴다. 부싯돌을 부딪히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지금 당장이라도 가방이 불타버릴 것만 같았다.

지적해야 하는 걸까. 왠지 말하면 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신기루가 현현해 있는 곳의 바로 앞까지 가자 능파가 어깨에서 내려왔다. 소리도 없이 내려왔으면서 바닥에 발자국을 남긴다. 신기루의 안에 손을 집어넣은 능파, 그대로 확 옆으로 휘둘렀다. 공간을 찢어버리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신기루를 만들고 있던 마력의 벽이 일그러지더니 순식간에 부서져 내렸다.

".....그래도 돼?"

"괜찮아요. 저번에도 그랬으니까."

능파와 나에게는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격차가 있다고 생각했다.

강제로 공간을 뜯은 탓일까. 아니, 일까가 아니라 확실히 그 때문에 늙수그레한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손에 붉게 달아오른 철집게로 쇳조각을 집고 있었다. 상상 속의 대장장이와 너무나도 흡사한 모습에 저것이 능파와 내가 찾은 남자라고 짐작했다.

"아, 간만이네요 도공(刀工)."

"끄응. 또 너냐. 내 필생의 역작들을 뜯어갔으면 됬지, 또 뭐가 불만인거야. 사진과 사인으로는 불만인거냐?"

사진과 사인의 출처를 물었을 때 '도공에게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하며 '웃는 것'을 보았기에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뜯은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능파의 웃음이 짙어진다. 나는 물론이고 도공이라고 불리는 할아버지도 크게 흠칫했다. 저 웃음에 공포를 느낀 것에 나와 그는 큰 동질감을 느꼈다.

"불만은 없어요. 그것들은 꽤나 쓸만했거든요. 부숴먹...."

"뭐어!?"

"...을 뻔 했다구요."

검을 만든 사람으로서 검은 자식과도 같은 것인데 저렇게 말하다니, 능파도 참 못 됬다. 능파를 등 뒤로 밀어보이며 슬쩍 고개 숙였다.

"죄송합니다. 능파가 이런 아이라."

"아니, 뭐. 크게 신경 쓰지는 않으니까. 손녀라도 만난 셈치고 있어. 근데... 넌 그 아이의 오빠인건가?"

손녀를 언급하는 도공이다. 솔직하게 말했다.

"할아버지 됩니다."

"...."

아무래도 만난지 몇분만에 굉장히 심각한 오해를 뇌리에 심어준 것 같았다. 벌어진 입으로 나와 능파를 살펴보는 그의 눈빛에는 당혹감이 어려 있었다.

"몇살입니까?"

거북한 존대다. 아무리봐도 그쪽이 나보다 몇배나 나이가 많아보이기에 이쪽도 존대로서 응수해주었다.

"열여덟살입니다. 만으로는.... 열일곱이네요. 생일도 지났고."

할아버지가 입을 벌린다. 파리가 입에 반쯤 걸친상태로 빙글빙글 돌지만 다물지 못 했다. 능파도 그 옆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평소에 하는 장난 같지는 않고 무언가에 놀란 것 같았다.

능파가 놀랄만한 말을, 내가 했던가. 혹시 내 나이를 몰랐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혹시 생일 때문인가. 그거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호지가 오기 전부터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나는 생일이라고 해서 딱히 축하받은 기억은 없었으니까.

우리 집의 인간들(혈연) 중에서 생일을 따지는 단 한사람도 없었다. 유일하게 누님만이 척보기에도 이상한 것들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와서 나에게 건네주기는 했지만 끔찍한 외견(지금 생각해도 뭔지 모르겠다)이라 대부분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하나는 친구들에게 장난치기 위한 도구로 써먹었던 적 밖에 없었다.

생일선물이라면 생일선물이지만, 크게 마음에 와닿지 않는 물건들이었다. 게다가 어머니와 아빠는 생일이란 것에 무감각했다.

어머니는 그런 것 생각할 틈이 있으면 남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늘리라고 종용했고 아버지는 남들이 자신의 집에 오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게다가 태어났으면 부모님에게 감사나 해라, 라는 충격적인(?) 말을 듣곤 앞으론 생일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내가 주민등록 번호를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면 생일조차 기억하지 못 했을 것이다.

도공이 벌렸던 입을 닫았다. 벌레(파리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가 타이밍좋게 빠져나가고 도공이 물었다.

"에, 조숙하구나."

"그렇다면 그렇지만 절대로 도공 어르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딸도, 손녀도 전부 앞에 '양'이라는 단어를 붙여야 하니까요."

만약에 그렇지 않았다면 난 진짜 인세에 더 없을 패륜아가 되지 않겠는가. 딸에다가 손녀라니. 실재라면 나이차도 만만치 않았을텐데. 아니, 나이차는 지금도 굉장히 많지만 외견은 일단 비슷하니까.

도공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그렇군. 어쨌든 세워놓는 건 안좋으니 따라오게."

집게를 든 손을 앞세우며 휘적휘적 나아갔다. 신기루는 어느틈엔가 되살아나 재 기능을 갖추고 있는 점이 놀라웠다.

세상에 기인이사는 많다, 그 단어를 뼈저리게 느꼈다.

도공이 살고 있는 듯한 건물은 두개로 나누어져 있었다. 현대에서는 민속촌에서 밖에 볼 수 없는 짚으로 된 지붕의 초가집과 우리나라가 근대화 될 무렵에 많이 보였던, 지금도 지방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는 철로 된 지붕의 별체(아마도다. 설마 저렇게 다 드러난 곳에서 숙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두가지다.

집게를 들고 나온 곳 별체쪽으로 들어가는 도공을 따라 들어갔다. 듬성듬성 있는 칸막이 때문에 좁아보였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의외로 넓었다.

모루와 노. 그리고 알 수 없는 물건들이 갖가지 있었다. 대장장이와 관련된 물건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는 커텐이 쳐져 있다. 안쪽에는 공간이 더 있는 듯 했다.

촤악.

도공이 커텐을 젖혔다. 안은 무기고 였는지 수십 수백가지의 무기가 그곳에 있었다. 검, 창에서부터 도대체 어디에서 쓰는지 의아한 형태의 무기까지. 종류만은 수백 이상이지만 당연하달까, 총만은 없었다.

"총이... 없네요."

"당연하지! 죗값 회피의 병기 같은 것은 이곳에 들여놓지 않는다. 총 같은 건 미친짓이야."

과도한 비방. 문득 궁금해졌지만 물어보면 실례가 될 것 같았다. 저정도의 반응이라면 분명히 슬픈 과거가 섞여있기 마련. 물어보는 우(愚)를 범하지는 않았다.

능파가 가방을 근처 벽에 기대어 놓고는 입을 열었다.

"어째서 총 같은 건 미친짓이죠?"

이 아이가 이런 아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던 건 분명히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능파를 끌어안아 내 가슴에 얼굴을 묻게 했다. 당황한 것 같은 능파지만 순식간에 자기 페이스를 찾고 허리를 더듬는다. 아저씨 같은 몸놀림이라 오히려 이쪽이 당황했다. 도공은 그런 우리를 보더니 불결한 것을 보는 듯한 눈을 한다.

"죄송합니다."

"아니, 젊으면 그런 걸 할 수도 있는거지."

도공은 나이치고 퓨어하고 클린한 삶을 살아온 것 같았다.

그는 잠시 아득한 눈을 하더니 집게를 모루의 위에 내려놓았다. 쇠가 식으면 곤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운사는 그곳의 열기가 정지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굉장하다, 순수하게 그렇게 느꼈다.

"잠시 옛날 이야기를 해볼까."

도공은 근처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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