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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295화 (29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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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三人)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만한 사람은 모른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그 가장에 근접하게 된 인물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그야말로 경천동지, 파천황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괴사건으로 인해 세상은 밤과 낮의 경계가 뒤집힌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때아닌 격변을 일으키고, 변해갔다. 그 변혁의 중심에 선 남자들이, 세계제일의 유명세를 논할 자격이 있었다.

바로 나, 육왕 고요와 영왕 유운. 우리 둘에 대해서 어떻게 알려져 있는지 난 잘 모르지만(이랄까, 내가 무서워서 알아보지를 않았다) 세간의 사람들은 우리들이, 정확히는 내가 하는 고민에 대해서 무엇을 뽑을까? 분명히 최종전에 있을 불사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주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달랐다. 내 고민은 조금 현실적인 것이었다.

여자관계가 매우 문란하다는 것. 간단히 말하자면 그것이다. 그것도 서서히 익숙해졌다면 모를까 갑자기 생겨났기 때문에 더욱 처치가 곤란했다.

옛날부터 내가 여자에게 인기가 있었느냐 하면, 절대로 아니다. 어느 순간에 갑자기 늘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부터. 그래, 그 때부터 갑자기 늘어났다.

"이것이 바로..... 나의 페로몬 각성!?"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방주의 중심에 있는 탑. 그곳의 옥상에서 허공을 향해 외치고 있자니 누군가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빗살무늬가 들어간 하얀 코트가 바람에 나부낀다. 천처럼 펄럭이는 코트지만 암석과도 같은 중량감을 주는 코트의 안에는 입을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백색의 철갑이 둘러져 있었다.

철벽을 자랑하는 치우회의 방패, 백색아성. 하지만 그 이름보다는 나에게 더욱 익숙한 이름은 따로 있다.

"우냐. 남자의 사색을 방해하다니."

장난스럽게 말하자 우가 웃으며 내 옆에 앉아 하늘을 보았다. 단둘이 만나는 것은 간만이라서 그런 걸까, 약간이지만 거북함이 느껴졌다.

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상하지? 우리가.... 세계를 지킨다니."

우는 그렇게 말했지만 전혀 아니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세계를 지킨다. 치우회의 인물들 중에서 진심으로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사람은 없다. 보장할 수 있었다. 치우회라는 조직의 일원들도 결국은 하나의 존재로서, 자기 하나 지키기도 힘든 여린 존재라는 것이다.

나와 유운, 운천 아저씨는 살기 위하여. 슈, 요연, 호지, 능파는 나를 살리기 위해.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로 사람들은 싸우고 있지만 거창한 이유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내 옆에 앉아있던 우가 무릎을 끌어안았다.

"지금까지는 말야..... 몰랐어. 이렇게 위험한 싸움일 줄은. 아니, 난 너무 쉽게 살아온 것 같아. 너는 항상 죽음의 문턱을, 소누는 태어났을 때부터 그런 가문이니까. 하지만... 난 어느쪽도 아니야."

생각해보면 우는 싸울 이유가 없었다. 하여도 마찬가지로, 이유가 없다. 예언상 소누 산하에 있는 사람들은 이유가 극히 희박한 사람들뿐.

아마, 유다와 시바의 죽음 그리고 운의 배반. 그 두가지 일 때문이리라.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 전쟁에 임했다고 해도, 별 수 없다.

"도망치고 싶어?"

이미 대답은 알고 있는 물음이었다.

"...아니.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친구도 있으니까. 그러지는 않아. 하지만 나 같은 녀석이 싸워도 되나 싶어서."

"싸워도 돼."

즉답. 너무나도 빠른 대답에 당황한 것인지 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황할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깨끗한 얼굴로 그런 반응이니 왠지 감회가 새로웠다.

"남을 생각할 필요는 없어. 인간이라면, 이기적인 면모로 밀고 들어가면 되는거야. 게다가 네가 아니면 안되는 일이 많으니까."

우는 웃었다. 잠시 분위기가 풀린 것 같아서 내 고민을 한번 털어놓기로 했다.

나는 그에게 있어서 좋은 상담원이기도 했지만, 나게게 있어서 우는 좋은 상담원이기도 했다.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는 남의 부탁을 쉽게 거부하는 녀석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냥 묻기에는 조금 쪽팔리는 질문이라 잠시 우물거린 다음, 질문을 입에 담았다.

"우, 넌 소누랑 어떠냐?"

질문이 너무 완곡해진 걸까, 생각했지만 우의 얼굴이 기괴막측하게 변해 있었기 때문에 정정하지는 않기로 했다.

부끄러워 한다, 그 말을 얼굴로 만든다면 저런 것이리라. 처음 소누와 우가 사귀고 있다는 것(펜팔이라니, 이런 플라토닉한 것들)을 들었을 때도 저런 표정이었던 것 같지만 그 때는 흉터가 있어서 알아볼 수 없었는데 흉터라는 가면이 사라지니 퍽 재밌다.

얘가 여자애 였다면 인기가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쯤에 우는 시선을 하늘로 던지면서 말했다.

"그, 별 것 없어. 평소랑 똑같지 뭐..... 소누가 (전략, 중략, 하략) 한 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쉽게 다가가면 안된달까..."

...이건 중증이다. 사랑을 한다면 저렇게 되는걸까, 우 답다면 우 답지만 미래에 공처가가 되는 건 시간문제 같았다.

혹시나해서 우에게 물어보았다.

"소누는 화장실을 가면 뭘 할 것 같아?"

"하아? 그 아이가 화장실을 갈리가 없잖아."

중증이 아니라 이미 말기다. 이미 마음의 병 수준이었다. 여자 때문에 패가망신한다는 것의 증명을 눈 앞에서 보자니 눈물이 나오는 것 같았다.

문득, 뇌리에 능파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꼭 남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현실이 전신에 오한을 들게 했다.

잠시지만 내가 질문을 멈춘 탓인지 우가 질문해왔다.

"그런데 넌 어쩌려고? 나야 소누뿐이지만, 넌 슈에 호지에....많잖아?"

"그게 고민이란다. 우야."

그녀들에게는 전쟁이 끝나면 어떻게든 답을 내놓는다고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대답이 미뤄질 수록 상처가 커진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순위가 계속해서 뒤바뀌니 도저히 뭐라 답을 내줄 수가 없었다.

억지로 내놓는다면, 그건 또 그것데로 그녀들에게 폐가 될테니, 진퇴양난이라고 해도 무방한 일. 골치가 아프다.

"전부 다 끌어안는 것도 괜찮을겁니다."

명안이다. 이렇게까지 완벽한 대답은 이 세상에 더 없을.....

"장난하냐. 언제 등 뒤에서 칼침 맞을 줄 알고. 게다가 나는 유명인이라고? 그 딴 짓을 했다간 악플로 살해된 영웅이 될지도 몰라."

"훗. 하지만, 나쁜 계획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차피 세상은 변합니다. 법이 그렇게 바뀌는 건 안좋습니다만, 살아남는다면 당신은 영웅. 삼천궁녀를 두더라도 뒤에서만 손가락질을 받을 뿐 크게 타격받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어느샌가 나타난 유운에게 날카롭게 대답했다.

만약에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악플도 악플이지만 법이 문제다. 처첩을 두는 것은 법이 허락하지 않는다. 순식간에 인간말종으로 사회에서 쫓겨날 것이다.

"등신아. 뒤에서 손가락질 받는 게 가장 무섭거든."

한꺼번에 끌어안는다는 결과를 도출한다면, 유운의 말대로 난 별로 피해 볼 것이 없었다. 아무리 그들이 잘났어도 내게 법적제재를 가해오지는 못할테고 무력제재 또한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악플과도 같은 악평이었다.

나야 어차피 방주에서 살테니 크게 상관은 없다. 평가야 인터넷을 하지 않으면 그만. 본의 아니게 쓸 일이 있다고 해도 방주의 힘이라면 걸러내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누님의 폭주였다.

내가 무시해도, 누님은 안다. 그 막강한 무력이라면 하루아침에 세계를 날려버리는 일도 가능하고 제어할 수조차 없다.

내 평가의 폭락은 지구의 수명인 것이다.

아~~ 무서워라.

"너는 어떤데? 소화랑은 잘되고 있어?"

너무 끔찍한 결과만 나오기에 화제를 돌렸다. 유운은 내 오른편에 앉는가 싶더니 그대로 드러 누우며 말했다.

"글쎄요. 여전히 귀여운 아이라. 가끔씩 기습 키스를 하면...."

그렇게 말하며 옷깃을 살짝 내렸다. 야수에게 물어뜯힌 것 같은 상처가 새빨갛게 그곳에 남아 있었다.

"이렇게 되서 말이죠."

"순수하게 네 탓이잖냐."

"하지만 그런 적극적인 돌격을 좋아할지도 모릅니다. 여심은 모른다고들 하지만, 결국 개별적인 차이는 있기 마련이니까요."

"흐음."

유운의 말을 들으니 그럴 듯하게 들린다. 역시 연애로서는 우리 셋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는 남자 다웠다.

적극적인 돌격. 해본적은 꽤 있지만 상대가 요연이나 슈들에게 편중되어 있어서 거의 장난치는데 외엔 써본적이 없었다. 호지에게는 통할지가 의문이고, 능파는 의외로 부끄러움을 잘타니 잘 통할 것이다.

해볼까, 하는 고민이 머리를 메웠다. 하지만 금세 다른 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에 고민이 불어났다.

"그냥 모조리 당신의 여자로 만드는 것이 최선의 정책일지도 모른다구요? 한 여자를 선택하면 다른 여자들은 인당수에 몸을 담가버릴지도 모르니까."

"...그 말이 매우 혹한다는 것이 슬프다."

"어라, 혹하는 건가요? 할아버지도 참."

등골에 얼려놓은 칼을 디미는 것과 같은 목소리다. 전장의 공포를 되살아나게 하는 감각, 무섭기 짝이 없었다. 순식간에 피부가 도려내질 것만 같은 공포가 전신을 엄습한다. 인간의 원초적인 생존본능을 일으키는 냉기.

죽는다. 그 단어를 뼈저리게 느꼈다.

"자, 저랑 단둘이서 길게 이야기나 할까요?"

능파에게 목덜미를 잡힌체 탑 안으로 끌려갔다. 멀리서 손을 흔드는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말 없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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