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생의 육아일기-298화 (298/340)

0298 / 0340 ----------------------------------------------

출연

재앙은 사망플래그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 때문에 매일 같이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지금 다른 문제가 터진다면 머리가 터질 것이다. 하지만 내 예상은 너무나도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새로운 문제는 생겼지만, 내 몸은 인간의 몸은 그렇게 여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멀쩡하기만 했다.

꿈이라도 꾸는 것이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요즘 따라 꿈을 꿔본 적이 없는데 그 반동이 이렇게 리얼한 환상이 되어 돌아온 것일 게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주춤거리면서 눈을 감았다. 공허한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은 그저 칠흑의 어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아까까지 눈 앞에 펼쳐졌던 모습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으니까. 현실이라면, 난 그냥 혀를 깨물었을지도 모른다.

아아, 다행이다. 내 꿈은 그저 칠흑일 뿐이라서.

"그런 현실도피도 재밌군요. 하지만 빨리 눈을 떠주시지 않겠습니까? 이래뵈도 우리는 '출연진'이니까요."

"...알아, 임마."

현재 나를 포함한 유운, 소누. 그리고 우리를 보좌하는 몇몇(당연하달까, 소화는 없다)은 작위적인 공간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주변에는 촬영을 위한 전선들과 장치들이 널려있고, 몇몇 사람들이 그것을 준비한다.

뉴스라도 찍는 것이 아닐까 싶은 광경, 그것이 정답이다. 뉴스의 어떤 부분에 나올 것이라는데, 사실상은 최종전에 대한 견해를 묻는 것이라고, 유운이 말했다. 내 예상도 딱 그것과 부합하니 틀리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촬영당하는 것을 모르는 것과 안다는 것은 달랐다. 유다 전 때도, 불사와의 가벼운 싸움 때도. 찍히기는 했으나 그것은 지난 일이었다. 별 수 없는 일이라고, 가볍게 넘어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알게되니 긴장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전통 교주님인 소누는 여전한 얼굴이고, 억단위의 인간(랄까, 유령)에게 둘러쌓인 유운에게 이런 일은 별 것 아닌듯 평온한 얼굴이다.

하, 하고 숨을 뱉어냈다. 별 수 없는 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이번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은 하여의 아버님과 누님이 내통했던 것. 거부할 수 없다.

"그런데, 자리가 하나 남는군요."

"... 불패언니의 자리가 아니었나요?"

"그러고보면 당신에게는 말하지 않았죠."

유운이 탄식했다. 무슨 소린가 하던 나는 주변에 있는 공석의 자리를 보고 알아챘다.

리더격인 우리는 전부 합쳐서 셋이다. 마수들도 포함하면 더 많겠지만, 그들은 이런 것에 관심이 없으니 예외였다. 그런고로 셋. 하지만 실질적인 리더는 '넷'이었다.

그 네명은 모두 예언에 등장하는 '리더'다.

육왕, 영왕, 성녀, 여왕.

이걸로 넷이다. 하지만 그 네명 중 한명인 여왕은 심각하게 자기 줏대가 없었다. 미안하지만 내 딸아이기도 한 호지에게, 그런 것이 있을리가 없잖은가.

결과는 물론이고 과정조차 항상 나에게 맡겨왔다. 리더로서의 자질은 심각하게 의심해볼 필요가 있었고, 무엇보다고 내 무릎에 앉아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이런 아이에게 지금 있을 인터뷰 같은 것에 참여시키는 것은 너무하겠지.

"저, 잠시만."

스테프로 보이는 사람이 유운과 대화를 나누고, 조명의 빛이 거세졌다.

촬영이 시작되었다.

여러가지 질문이 오갔다. 사적인 질문 같은 가벼운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최종전에 대한 자신의 생각 같은 질문이 왔다.

"포부...입니까. 글쎄요, 평소에 하던 것처럼 한다. 그 외에는 없겠죠. 하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최대한..... 살아남아야 겠죠."

유운을 향한 질문이 끝나자 그 옆 자리에 있는 소누에게로 질문이 날아왔다. 현직 교주인 그녀에게 향하는 사적인 질문들은 그 이름 값 때문인지 크게 묻지 않았다. 사회자는 우리들에 대한 소누의 간략한 평가를 물었다.

"리더격분들만인가요.... 저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 없겠죠? 제 오른쪽의 영왕은 강한 분이고, 우리 나라의 삼가 중 한분입니다. 강하다는 것은 부정할 필요 없을 거에요."

그렇게 말하며 유운의 설명을 끝 마쳤다. 삼가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는 듯, 사회가 가볍게 넘어갔다.

소누의 말이 계속 되었다.

"왼쪽의 육왕은, 개인적으로 굉장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순간, 뇌가 송두리째로 갈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수를 상대하는 일인의 감각을 맛보며 소누가 하는 망언을 계속 경청했다.

"전 이런 타고난 힘을 가지고 있었고, 영왕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하지만 육왕은 아무것도 가지고 않은, 제로에서 시작했죠. 일반인에서 시작한 그가 이만큼이나 와서 세계의 승패를 좌우하는 인물이 되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나는 알았다. 속마음도, 겉도 전부 나를 칭찬하는 말임을 깨닫고 있음에도 분노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해선 안되는 분노를 겁화로 일으키며 눈을 감았다. 눈을 떴다간 생방송인 이 방송을 망가뜨릴만큼의 살의가 퍼져나갈 가능성이 있었다.

순수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소누다. 스텝과 사회의 시선이 내게로 닿았다. 이제 곧 나에게 질문을 하려는지 사회가 말을 정리한다. 긴장감만으로 조여오던 분위기와는 색다른 것이, 무의식 중인 공포에 땀이 흘러내렸다.

"평가가 굉장한데요. 그러므로 육왕? 최종전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말투가 참 짜증난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름 인지도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내 신경을 자극했다.

애꿎은 사회자의 머리통에 핵미사일을 쑤셔넣고 싶은 감정을 억누르며 성실하게 대답했다. 최대한 방송에 어울리는, 꾸민 미소를 입가에 올렸다.

"글쎄요. 일단 가볍게 수치로 환상하자면 7 대 3일까요."

"굉장히 높군요? 이건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표현해도 좋을까요?"

"그 말에서 몇가지 수정해야 할텐데, 제가 해도 될까요?"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한다. 물음표를 띄워보이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굉장히 '낮습니다'. 이건 '패배를 무시하기 위한 자만심'이라고 표현해야 겠죠."

사회자의 말을 완전히 뒤집었다. 웃는 낯의 사회자가 굳으면서 움직임이 달라졌다. 가벼웠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며 육중함을 나타냈다.

승률이 낮다. 지금 내 말은 틀린 것이 하나 없었다. 유운도, 어쩌면 소누조차 이해하고 있을지 몰랐다.

숫자는 이쪽이 밀렸다. 질을 따지자면 이곳이 위지만, 적들의 숫자는 우리의 숫자와 질로 눌러버릴 수가 있었다. 진정으로 위험한 것은 팔대간부와 불사다.

몰랐지만, 나름의 조사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팔대간부의 힘은 보통 녀석들로는 상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이쪽의 배스트 멤버가 덤벼도 2 대 1이 아니면 필승을 장담하지 못 한다. 그 때에는 방주의 백업도 사용하지 못 하니 위험도는 높았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승률을 따지자면 6 대 4로 우리가 유리했다. 진짜 문제는 '신대의 괴물'이다.

불사. 그녀의 힘은, 불패를 넘어선다. 장담컨데, 일 대 일의 일기토를 뜬다면 누님의 필패일 것이다. 승률은 영(0)이나 다름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불패는 불사보다 약하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싸우려면 불사와의 싸움에서 누님이 이겨야 한다. 내 나름의 대응책 덕분에 그나마 삼할의 승률이 올랐지만, 크게 기대는 안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회자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노련한 말솜씨로 분위기를 회복(생각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뭐라 그랬는지는 듣지 못 했다)하자 사회자가 질문의 핀트를 바꾸었다.

"그럼, 잠깐 영웅분들의 사생활을 알아보겠습니다. 예상외로 대부분이 젊으니까... '애인'에 대해서가 좋겠죠?"

잠시 지금 찍는 것이 뉴스가 맞는지 돌이켜보았다.

처음으로 지적받은 유운이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아무리봐도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지만 목소리는 아쉬움이란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애인이라... 데리고 오고 싶었지만 워낙 부끄러움을 타는 아기 고양..."

빠악!

등산용 신발이 영왕의 관자놀이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의자 위에서 그대로 기절해버린 유운을 내버려두고 사회자의 질문이 소누를 향했다.

"전가요? 전...."

말은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의자 뒤에 앉아있는 우를 향해 그저 웃어보이기만 했다. 행동으로 최선의 대답을 해보인 그녀에게서 나에게 시선이 돌아왔다.

"육왕은?"

"글쎄요.....억.

순간 숨이 막혔다. 살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감각이 호지의 손을 통해 내 목을 조여왔다.

"아빠. 나....지?"

딸에게 목숨을 위협 받는 느낌은 이것이 처음이다. 그런 생각을 느끼고 있을 때 용 상태의 능파가 꼬리를 휘둘러 호지의 손을 쳐냈다. 채찍 같은 움직임에 귀여운 비명을 지르는 호지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쿡쿡. 협박은 안된다구요? 진심은.... 이쪽을 향해 있으니까."

애정이 바뀌어 살의로 화한다. 용의 모습이지만 분위기는 닭살커플이나 만들법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보통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슬쩍, 능파와 나의 사이로 푸른검신이 끼어들었다. 청룡의 의지가 자신보다 아랫줄의 용인 능파를 떨쳐냈다.

"당신도 작작하는 것이 좋을겁니다.

"요여어어언!!"

방해한 요연에게 달려드는 능파, 요연과 함께 세트장 밖으로 사라졌다. 뒤에서 슈만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 앞으로 TV 같은 정보매체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