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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
나무줄기는 바다에서는 볼 수 없는, 마치 대나무처 같았다. 다만, 대나무와 다른 점이라면 식물의 생기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기운이 넘실 거리고 있다는 것과 특이한 백죽(白竹)이라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리토는 당황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소요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그대로 끌려내려갔다. 의아하게 생각하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섬 같은 크기의 그림자가 전함의 아래에 묵직하니 둥지를 틀고 있었다.
세계에 단 하나남은 귀수산, 아쥴 레이키아다. 아마도 소요가 쓸데없이 농땡이를 부린다고 생각한 것 때문에 끌어들인 것 같았다.
리토는 안도하면서도 조금 아쉬움을 느끼며 선내로 들어갔다. 얼마 안 있어 전투가 벌어질텐데 배울 여유는 없을 것이다. 설혹 배우더라도 그것을 활용하기는 커녕 쓸데없이 방향만 많아져 사용하기가 난해할 가능성이 더 컸다.
한편, 바다로 끌려간 소요는 아쥴의 등껍질 위에 붙어있는 눈처럼 하얗기만 한 대나무에 붙들려 누워 있었다.
"쓸데없이 행동하지마라, 소요."
"아쥴님. 그저 작은 선행 아니오. 이미 준비를 할만큼은 했고, 이제 남은 것이라곤 너무 묶여있는 긴장을 조금 풀어내는 것이오."
소요가 백죽들을 풀어내며 그렇게 말하자 아쥴이 꼬리를 길쭉하게 늘여 소요의 머리를 툭 쳤다. 그 거대하기 짝이 없는 아쥴의 꼬리다보니 마치 건물이 눈 앞을 왔다갔다 하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더불어, 그 크기에 비례하는 데미지가 소요의 뇌리를 스쳤다.
그 비대한 꼬리를 어떻게 휘둘렀는지 몸에 후유증을 남기지 않는 타격에 소요는 감탄하면서, 뒤이어 말하는 아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쓸데없는 제안을 하면, 정신이 팔리게 된다. 설사 긴장하고 있더라도 이들은 프로야. '불사'가 상대만 아니라면 긴장에 발을 묶일 이유는 없어."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불사인 거요...."
소요의 독백에 아쥴은 침묵했다. 크기로만은 그 누구에도 밀리지 않는 초대형 마수인 아쥴이, 아무런 대답도 내줄 수가 없었다.
불사의 강함은 모른다. 단편적으로 TV에 나온 적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 마력량의 실질적인 양도 알 수가 없고. 다만, 알 수 있는 실례는 분명히 단 하나가 있다.
불패다. 불패 고소야라면 불사의 힘을 측적하는 척도가 된다. 그리고 힘을 비교해보았을 때 나오는 답은 무(無). 어떠한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하려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내놓는다면 쓸데없이 정신이 팔리게 될 것 같아, 할 수가 없다. 군인으로서 전쟁터가 무섭다며 등을 보이고 도망치게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란 소리다.
"어찌되었든, 좋소. 난 먼저 지정좌석으로 가 보이지."
유유히 사라져가는 소요에게서 아쥴은 눈을 돌렸다. 수중용으로 개발된 놈들인지 아가미가 달려 있는 레플리카들의 모습은 역시 기이한 구석이 있었다. 아쥴은 그것들을 보고 나서야 겨우, 마음이 안정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저것이, 적. 불사와는 다르다. 상대해야 할 녀석만 상대하면 그만이라는 것을 잠시 깜빡했다. 깨닫고 나니 조금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쥴이 몸을 부르르 떨면서 주변의 어류들을 쫓아냈다. 해류의 흐름을 조작하기 위한 우사가 늘씬한 창신을 자랑하며 그녀의 입에 물려 있었다.
그 시각, 방주의 위에 있는 군지.
수천만명에 달하는 영혼의 병사들이 대열을 갖추어 앞으로 다가올 적을 대비한다. 전쟁에 프로들로서, 무적이라 칭송받았던 군세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었다.
검, 창, 활 같은 고대의 무기부터 총, 대포 같은 현대의 무기까지. 시대를 가리지 않는 소환이 방주의 위에 내려져 있었다.
그 현계를 행한 유운이 단상 위에 섰다. 다른 어떠한 이유도 아닌, 그들의 왕이기에 그곳에서 자신들의 부하들을 내려다 보았다. 하나 하나가 굉장한 기백을 발휘하는 것이 믿음직스럽기 짝이 없었다.
거대한 홀로그램이 크게 유운의 모습을 비췄다. 방주의 위만이 아니라 바다에서도 볼 수 있을정도로 커다란 영상이 적을 위협하려는 것처럼 크게 외쳤다.
"우리가 누구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쿵! 쿵! 쿵!
폭우처럼 발을 구르는 병사들이 자신들의 혼을, 긍지를 담아 힘껏 공기중으로 뱉어냈다.
"무적! 무적! 무적!"
단합된 외침.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군기가 일인(一人)의 기백으로 일체화 되어 간다. 하나로 묶여진 병사들의 유대가 방주를 넘어서는 거대함을 가진 힘으로 변화한다. 그 힘이 만들어내는 파동에 홀로그램이 일그러지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한결 같이 무적을 외치는 그들의 얼굴에 무서움은 없었다. 있는 것은 투쟁심과 파괴욕구. 그들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어보였다.
"그렇다, 우리는 무적이다! 머나먼 옛날,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시절에 우리는 단 한번의 패주도 경험하지 않았고, 단 한번의 실패 또한 겪지 않았다! 완전무결, 절대최강! 무적의 이름에 어울리는 결과였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과거의 영광 아래에서 병사들이 포효한다. 무적이며 동시에 최강이라 칭송 받았던 영광을 몸에 뒤집어 쓴 그들에게 거칠 것은 없었다.
유운이 돌연 목소리를 낮게 바꿨다. 있는 힘껏 고양된 분위기가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하지만, 우리들의 그런 영광에 먹칠을 한 대상이 있다. 바로 불사이다!"
불사. 그녀에게 무적최강을 자랑하던 낙원의 국가의 병력이, 단 하루만에 초토화 되었다. 강력하기 짝이 없었던 그 군세가, 일검에 적군을 몰살시키고 손짓 한번에 산을 무너뜨린다던 검제와 마종이 있었음에도 무너졌다.
그것은 치욕. 일생일대의 대실패였다. 무적이란 그 이름에 먹칠도 보통 먹칠을 한 것이 아니다. 그 당사자들은 웃어넘겼지만, 과연 속마저 그런 패배주의에 물들어 있을까? 그럴리가 없다. 그들은 패배의 치욕에 피눈물을 흘리고, 뼈를 깎는 수련을 해왔다.
죽음? 그래도 괜찮았다. 그것을 상대하기 위해 죽어서조차 잠들지 못 했고 구천을 떠돌며 그 방법을 갈구해왔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분명히 그랬다. 그렇기에, 그 영웅 뇌공이 한발 먼저 처리해 버렸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분을 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회가 돌아왔다. 그 절망을, 치욕을, 분노를 몇배로 되갚아줄 기회가 돌아온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절대 놓칠 수 없는 것. 그야말로 왕의 은혜가 있었기에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길 수 없다? 그런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그저 싸워서 승리를 쟁취하는 것뿐.
'불패'의 존재는 이미 잊어버린지 오래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불사를 향한 적개심. 그리고 무한히 솟아오르는 무력.
"우리들의 숙적을 두고 가만히 있을텐가!"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그렇다면 보여라, 우리의 웅심을! 우리의 절망을, 놈에게 되돌려주는 거다!"
"필승! 필승! 필승!"
유운의 거대한 모습이 사라진다. 한껏 고무된 기분에 취한 병사들의 모습이 더욱 더 악귀와 같이 변해간다.
사실, 유운은 그 당시의 굴욕 같은 것은 알지 못 했다.
그 때에 태어난 것도 아니었고, 그 시절을 살아갔던 사람들도 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불사와 다시 겨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영왕인 그에게 간청했다.
"'복수의 기회'를 달라."
하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그것을 허락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허락하고 말았다.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의 슬픔을, 분노를 너무나 여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운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사용하기로 불사와 대적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필요한 조치였다.
"소화, 힘을 개방해 줘."
"응. 알았어."
단상에서 내려온 유운이 소화에게 말했다. 소화는 가볍게 대답하고, 청동의 사자탈을 뒤집어쓰며 검을 바닥에 찍었다. 작은 지진 같은 충격이 대지를 잠시 뒤흔들었다.
유운이 소화가 잡고 있는 검을 잡았다. 둘이 취하는 그 형태는, 마치 경건한 사제와도 같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신성한 느낌이 물씬 흘러나왔다.
거검(巨劍)을 중심으로 빛의 파문이 일었다. 파문은 대기를 타고 점점 커져, 이내 방주를 뒤덮는 크기로 변해갔다. 넓직하게 퍼져가는 빛무리가 포근하게 병사들과 공간을 감싸안았다.
이 기술에는, 이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은 있다고, 유운은 생각했다.
발할라. 전투에서 죽은 용사들이 최후에 향한다는 무력의 집합소다. 그 '발할라'의 진실은 현실에 덧씌워서 죽더라도 그 자리에서 초고속으로 '소생'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유운이 행하는 발할라의 정체다.
죽더라도 멈출 수 없는 그들을 위해 만든, 죽음을 뛰어넘는 의지. 그것은 영왕의 군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에서 대기하는 인간들도 무한히 소생하게 될 것이다.
"자, 보여다오. 너희들의 힘을..... 나에게!"
유운의 준비가 끝남과 동시에, 방주의 어느 마을에 있는 시계가 결전의 시각에 바늘을 걸쳐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