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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317화 (317/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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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

전장이 물결친다. 수를 짐작할 수 없는 군세와 포격, 적들의 울렁임으로 전장은 때 아닌 지각변동을 겪고 있었다.

강력한 힘도, 이곳에서는 소용 없었다. 개세무적의 전력이라도 이곳에서는 티끌이나 다름 없었다. 설혹 불패나 불사라 하더라도 이곳에서는 소용 없으리라.

챠이는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생각도 이내 부정하고 말았다.

"그런 것만은 아닐지도....."

방주의 중심에서, 자신의 왕보다도 연약한 백룡의 포효는 아군의 사기를 복돋웠다. 단 한 사람의 의지는 전역으로 퍼져나가 모든 것을 환호시켰다. 백능파라 불리는 이름의 어리고 작은 용의 목소리는, 모두의 마음에 닿았다.

그것은 단순히 무력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 치우회의 정원 중에서 최약의 무력을 가지고 있다. 왕의 곁에 항상 붙어있는 챠이가, 왕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경계를 기울이지 않았을리가 없다.

무력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하다.

사람.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절대로 물질적인 것이 아닌,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선언이 그녀의 입에서 나왔다.

"그 때..... 어째서 폐하가 날 때렸는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운을 잊겠다는 맹세를 담아, 한 때나마 애정이라는 감정을 느낀 자신에 대한 절망을 담아, 챠이는 자신을 찔렀다.

충의를 상징하는 적색의 검. 단심검으로 자신을 찌름으로서, 자신은 오롯이 폐하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되기로 결심했다. 지금도 그 의지는 남아있고,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왕은 그 의지를 부정했다. 아니, 그 의지가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부정했다.

이유는 여전히 모른다. 왕 또한 생각하라 했기에 계속 생각했다. 하지만 챠이는 우민했던 탓인지, 높고도 높은 곳에 있는 왕의 뜻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왠지 닿을락말락한 곳에 그 답이 있는 것 같았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느낌이었다.

"폐하..... 언젠가 당신의 뜻을 입밖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촤아앗!

적색의 대검이 우측의 허공을 베어낸다. 적이 없는 황야, 공간이 엄청난 기파에 의해 갈라지며 울부짖는다.

사막을 오롯하게 왕을 찾아다닌 검사가, 300년 동안 묵혀두었던 충의를 검 안에 실었다. 지금까지 잊혀졌던 충의의 신하가 방주의 대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을 위하여."

붉은 금속제 가면을 머리에 덮었다. 기묘한 마력의 파동이 전신의 혈류에 섞여 들어갔다. 태아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편히 잘 수 있는 것과 같은, 그런 감각이 느껴진다.

힘이 끓어올랐다. 잊어버렸던 과거의 영광이 담긴 가면의 힘이 챠이와 함께 했다.

"적들을 그저 베어낼 뿐!"

챠이가 도약한다. 수백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단 몇번의 발디딤으로 지나쳤다. 바람조차 따라오지 못할 속도로 챠이의 몸이 빠르게 변하면서 영왕의 군세들의 사이를 돌파한다.

콰아앙....

앞에서 돌연 엄청난 폭음과 함께 병사 몇명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꽤나 거리가 있는데도 상당한 냉기가 느껴지는 일격이었다.

챠이는 섬뜩하게 웃었다. 자신의 대적자가 보이는 위용을 눈 앞에 두고도 전혀 꿀리는 기색이 없었다.

감탄했다. 챠이는 놀랄만큼 감탄했다. 대적자라고 정해주었다고는 하나 진짜로 전장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다.

전장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반전들이 상당히 많이 일어나는 장소, 생각대로 흘러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조금 빨리 행동을 시작했던 챠이였는데.

"후, 후하하하하하하하!"

챠이의 광소가 냉기를 이끌어오는 인우(人牛)의 거병(巨兵) 프리아가의 존재감을 지운다. 챠이의 충성심이 불어일으키는 무력과, 프리아가의 냉기가 서로 충돌하면서 물리적인 바람의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왕은 굉장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왕은 하늘에 닿아있는 지략을 가지고 있었다. 그저 그것만으로도, 챠이는 웃을 수 있었다.

눈 앞의 존재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눈 앞의 존재가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지만.

두렵지 않았다. 왕이 직접 이곳으로 보낸 것이다. 실행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에는 의미가 없었다. 자신은, 그저 베어넘기면 되는 것이다. 왕의 명령이라면 자신은 그저 분부대로 행하면 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호오. 내 상대는 여태껏 우리를 괴롭혀 왔던 챠이인가."

프리아가의 목소리에 챠이가 뒷골목을 주먹패처럼 껄렁껄렁한 반응을 보이며 프리아가의 앞에 나섰다. 거대한 상대방의 몸집에 위축되지 않는 챠이의 모습은 영웅적인 면모가 있었다.

사아악.

군대가 갈라졌다. 프리아가의 주변을 애워싸고 공격하던 그들은 몸을 물리면서 프리아가를 뒤따르는 레플리카들에게 전력을 집중했다.

전장에서는 자로서, 본능적으로 이것에는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은 탓이다.

챠이는 마침 일 대 일 구도가 완성되어 가는 상황에 기뻐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까와 같은 표정이지만, 희미하게 전신의 체온이 달아올라 있는 것으로 그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곧 분노로 물들었다.

"너희를 괴롭혀? 개소리 하지마라. 네놈들이 왕을 목표로 살지만 않았다면 난 얌전히 있었을거다. 너희를 도왔을지도 모르지."

챠이에게 있어서 왕은 곧 신과도 같은 존재. 왕이란 곧 챠이의 신이며, 전세계를 지배해도 마땅한 존재이다. 그런 자신의 지주가 위협을 받는데 챠이가 가만히 있을리가 없다.

챠이가 자신의 활동무대로 삼았던 사막에서 왕과의 충격적인 만남을 겪고, 챠이는 왕을 반드시 지키기로 결심했다.

왕이 부러웠다. 누군가를 위해서 죽음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멋져보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챠이는 왕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챠이에게 있어서 왕은 그런 존재였다.

소중한 존재를 위협하는 적이라면, 부서버리는 것이 인지상정. 챠이의 붉은 코트가 바람에 나부끼면서 붉은 칼날 무늬를 드러냈다. 옷을 만들 때 만들어진 장식이 아니라, 마력이 요동치면서 생기는 마력의 파형이었다.

그것은, 만검(萬劍)의 상징. 모든 검에게 사랑받는 만검지련자(萬劍之戀者)만이 가질 수 있는 무의 상징과도 같은 힘의 증명이 챠이와 함께 한다.

"내가 바로 챠이 우르카. 왕과 함께 하는 최고의 행동파, 단심검주다. 네놈은 누구냐."

모르기 때문에 묻는 것이 아니었다.

일종의 예(禮). 전장에서는 볼 수 없을 무도의 예다.

자신의 이름과 직책을 말하며, 상대방의 이름을 묻는다. 챠이만의 예이며 누구라도 인정할 수 있는 예법이었다.

꿍!

냉기로 만들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드는 프리아가의 철구가 바닥에 꽂힌다. 한순간이나마 병장기에서 손을 놓고 양팔을 움직이며 예를 취했다.

상대방을 믿고 있지 않다면, 할 수 없는 행위다. 그 둘에게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서로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난 프리아가. 카타스트로피의 팔대간부 중 4위의 서열을 가지고 있다. 외주 케이슨의 전(前) 부관이기도 하다."

케이슨의 부관. 왕의 가신이라는 점에선 챠이와도 비슷했다.

챠이가 웃었다.

"과연.... 나와 칼부림을 벌일 직위는 된다는 건가."

"물론이다. 이쪽도, 그쪽도 부족함은 없지."

부족할리가 없다. 차고도 넘치는 것이 프리아가의 힘이다. 그 무력은, 솔직히 말해서 챠이만으로는 뛰어넘지 못 한다.

허나, 그것은 단순한 덧셈뺄셈으로 나온 계산뿐. 약 300년의 시간동안 빠짐없이 전투를 계속해온 챠이에게는 경험이라는 악세사리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건 프리아가가 상상도 못할 양의 지식이며 신체로는 파악할 수 없는 전투력이다.

동률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맞상대할만한 실력은 되었다.

부우우웅!!!!

"이 나의 힘을 받아낼 수 있기를 빌겠다."

철구를 들어올리고, 허공으로 나지막히 휘두른다. 냉기가 섞인 강력한 폭풍이 챠이를 위협하듯 눈 앞에서 몰아쳤다.

하지만 그런 것에 겁먹을 챠이였다면 이곳에 서 있지도 않았으리라.

그걸 프리아가도 알고 있다. 이건 '너를 부숴서 죽여버리겠다'는 단순한 선언에 지나지 않았다. 이건 그저 마음을 다잡기 위한 것. 전장에 나서기 앞서 마음을 고르는, 일종의 의식인 것이다.

붉은 색의 대검 같은 모습을 취하고 있는 챠이의 단심검이 두개로 나누어지며 두개의 장도(長刀)의 모습이 되었다.

검의 형태에 집착하는 것은 챠이에게 맞지 않는다.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이쪽도 힘으로 상대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다.

"개소리마라. 너야말로 내 모습을 놓쳤다간....목이 떨어질거다."

적색의 쌍도가 돌연 모습을 감췄다.

촤좌좌좌좍!

바닥에 만들어지는 수백개의 검상, 자신의 무력을 증명하는 것으로서 위협한다. 프리아가와는 다른 것 같으면서도 흡사한 방법.

되돌려줬다. 자신은 무슨일이 있어도 꿀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호오. 그렇다면 이제 말은 필요 없겠지."

"그럴테지."

프리아가의 말을 챠이가 받는다. 달아올랐던 전장의 기백이 단숨에 사라졌다.

투콰아아아아아앙!!!!

두명의 신형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울린 폭음이 공기를 진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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