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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321화 (32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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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

두개로 갈라지는 프리아가의 모습이 눈 앞에 있었다. 시야가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던 챠이는 그것으로 눈을 감았다.

챠이는 자신의 본분을 다 했다. 왕의 명령을 지킬 수 있었다. 더이상의 여한은 없었다. 앞으로도 왕과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챠이는 그걸로 족했다.

[정말로 만족하나?]

물음. 이미 몸은 스러져서 자아의 세계로 빠져드는 챠이의 정신을 각성시키는 물음이었다. 낯익은 목소리지만, 이미 의미 없는 목소리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챠이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대답하지 못 한다는 것만큼은 진실이었다.

[너의 왕은 널 구하기 위해 그녀를 보냈는데, 넌 너의 사명만을 다했으니 편히 잠들겠단 말이냐?]

번뜩.

챠이의 눈이 뜨였다. 죽음으로 끌려들어가던 챠이가 순식간에 이승으로 정신을 끌어올렸다. 남아 있는 힘이란 힘은 모조리 짜내서 쓰러지려는 몸을 버텨냈다.

어째서 자신은 포기하려 했을까? 왕에게 배운 것은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그 한마디가 아니었던가?

웃기지마라. 이곳에서 무너지면 안된다. 단심검주의 충의는 이곳에서 무너지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 반드시 왕의 곁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래, 그거면 돼.]

목소리가 사라져간다. 그저 목소리니까 다음 말이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챠이는 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의문을 느낄 틈 따위는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쥐어 짜서 영생을 수복하는 것에 전념했다.

"챠이!!"

아까와는 다른 목소리에 검게 변했던 챠이의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두개로 갈라진 프리아가의 시신을 앞두고 육중한 검은 갑옷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무겁기 짝이 없어 보이는데도 굉장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배신자였으며 챠이를 구하기 위해 돌아온 흑기사단의 제 1단주인 운이, 챠이를 구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자신을 부축하여 눕히는 운의 손에서 녹색이 섞인 백색광의 입자가 흩어져 나왔다. 챠이의 몸을 두르는 빛의 장막이 이 전장의 모습을 더욱 초현실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굉장한 마력량이다. 단순한 마력량이라면 아마 자신에 비견갈 정도였다.

그렇게 생각하던 챠이는 눈 앞의 여자가 '운'이 아니라 '로이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도 저 마력의 근원은 자신과 비슷한 영생의 덕이라는 걸 눈치챘다.

"운....인가."

"아아, 나야. 죽지마."

뚝, 뚝.

어느샌가 누워 있는 자신의 위로 운의 눈물이 조금씩 떨어졌다. 따뜻하게 볼을 적시는 그 감각이 기분 좋아서, 챠이는 잠시 눈을 감았다. 눈 앞에 불쾌한 감각을 가진 검은 마력이 일렁거리는 환상을 보았다.

검은, 흑색의 마력. 출처불명의 강력한 힘이다. 그것이 없었다면 프리아가를 베어넘길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런데도 챠이는 그 힘에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힘이 아니었기 때문에, 같은 속편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좀 더 본질적인 불쾌감, 챠이의 존재를 부정할만큼 '거대하고 반발적인 힘'이었다.

'그러고보면 검이 잠시나마 왕의 힘과 같은 것이...'

굉장한 반발이었다. 알 수 없는 검은 마력과, 복희도가 가지고 있는 마력이 반발하면서 왕이 가지고 있는 광진과 같은 효과를 냈다.

단 한순간이기는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빠르고, 패도적인 위력을 보였다.

스윽.

오른손에 쥐어진 복희도를 보았다. 챠이의 예상대로 칼은 이미 박살난지 오래였다.

칼날은 반토막이 났고, 손잡이도 이미 뿌리까지 불타서 본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변해버렸다. 그 보검의 위용은 이미 색이 바래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왕의 힘이 만드는 결과와 흡사했다.

'폐하는....아닐텐데.'

왕의 힘은 '황금빛의 번개'다. 그야말로 왕을 상징하는 두가지가 묶여서 탄생한 것이란 말이다. 그런 것에 저런 칙칙한 검정은 없다. 근래에 들어서 가장 옆에서 보필했다고 자부하는 챠이가 본 적조차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 목소리. 분명......

"챠이?"

"아, 음. 왜 부르지?"

"몸은 괜찮노? 안 아프겠제?"

"...글쎄."

챠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운의 도움을 받기는 했으나 챠이는 그것에 대해서 아직도 껄끄러움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운을 베지 못 했다, 그 현실이 얼마나 자신을 아프게 했는지 운은 모를 것이다.

한 때 왕이라면 운을 단호하게 베었을 것이기에 그런 말을 했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건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챠이에게는 있다. 하지만 챠이는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것이 챠이에게 있어서 충의의 증명, 다른 것에 한눈 팔지 않고 왕만을 보고 살겠다는 의지가 되었을테니까.

"난.... 네가 싫다. 너만, 너만 없었다면 좋았을 것을...."

챠이의 독백과도 같은 한탄에 운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챠이의 이마를 쓸었다. 무언가가 자신의 이마를 타고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기억이다. 아주 시커먼 공간에 감금되어 있는 운의 기억.

방주의 힘으로 식사와 수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상태가 된 운은 아무것도 만나지 못 하고, 만날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라 체념하는 그녀에게 눈 앞의 어둠이 찢겨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후광을 받으며 당당히 걸어오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현재 운인 것처럼 그 광경을 바라보는 챠이에게는 감격적인 장면이었다.

왕이, 요가 걸어오고 있었다.

"운. 깨어있어?"

"...요...야? 얼마나 지났어?"

"한 일년정도."

왕의 대답에 운은 고개를 푹 숙였다. 절망도 뭣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 것에 불과한 행동.

거의 감각이 깎여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챠이가 싸우러 갔어."

운이 잠시동안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만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탓에 다시 시체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왕이 덧붙였다.

"프리아가를 상대하러."

"....!? 안돼, 막아! 프리아가는....."

운은 알고 있었다. 프리아가의 강함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비현실로 점철된 마수들이지만 프리아가는 독보적인 면이 있었다.

"난 막지 않아. 네가... 해."

"내, 가?"

왕은 말 없이 그녀에게 칼 하나를 내밀었다.

인면룡 형태의 손잡이가 두드러지는 멋진 칼이다. 복희의 힘으로 만들어진 보도인 복희도가 그의 손에 있었다.

운은 복희도를 잡았다. 왕의 손에서 운의 손으로 넘어간 복희도가 기묘한 힘을 일으키면서 운을 결박하는 마력을 전부 흩어놓았다. 자유를 되찾은 운이 왕에게 검을 겨눴다.

"지금이라면 죽일 수 있어."

"하지 않을테니 괜찮아."

"어째서?"

운의 물음에 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뒤돌아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운이 아무리 불러도 왕은 대답하지 않고 자신이 가야할 곳으로 사라졌다.

선택은 자신의 몫,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보이지 않는 말을 남기는 왕의 등을 따라 운이 쫓아나간다.

그걸로, 기억은 종료되었다.

알 수 없다면 알 수 없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기둥은 세울 수 있었다. 그렇게 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런가. 내가 이긴 것도, 살아남은 것도 네 덕분이란 이야기냐....?"

"그런 걸 말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챠이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운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있는 챠이는 그 부드러움에 상반된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

감정은 죽였다고 선언했다. 그런만큼, 운이 저런 얼굴을 하고 있어도 챠이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 했다. 아니, 못 해야 한다. 그런데 어째서 운이 저런 얼굴을 하는 것은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애정이라고 해도, 그리 큰 것은 아니었다.

사신검주나 여왕이 왕에게 보이는 호의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챠이는 그만큼이나 자신의 연심이 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왕이 여왕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쳐 빙룡성으로 왔다. 그런 그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버리려고 한 여왕을 보았다. 그만한 사랑에 도달할 정도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저기, 챠이. 지금에 와서 말해도 믿지 않겠지만...."

운이 말을 멈췄다. 헛바람을 들이키는 운이 겨우 겨우 입을 열었다.

"너에게 다가갔던 건 절대로... 그, 명령 때문이 아니야."

챠이는 운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 덕분에 몸은 꽤 회복된 상태로, 프리아가 같은 녀석과는 싸울 수 없겠지만 잔챙이를 줄이는 정도는 할 수 있을정도는 되었다.

팍, 팍.

가볍게 뛰어올라 몸 상태를 관찰하던 챠이는 오른손에 있던 복희도의 잔해를 땅에다 버려 버리고 자신의 애병인 충의의 적색을 들어올렸다. 한번 프리아가에게 부러지고 또 부러졌던 검이지만 이것이 없다면 챠이도 없었다.

"챠이..?"

"난 모른다. 아무것도."

난데없이 꺼낸 말에 운이 침묵한다. 거북한 침묵속에서 챠이만이 묵묵히 검을 손질하면서 슬쩍 운을 곁눈질할 뿐이었다.

"내가 너의 앞에서 날 찔렀던 그 때, 왕은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솔직히... 지금도 그 말뜻은 잘 모르겠어. 하지만 알고 있는 건, 왕이 하는 일을 맹목적으로 따르란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챠이는 앞으로 나아가며 덧붙였다.

"그 때가 올 때까지 대답은 보류다."

"...풋."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가는 챠이를 뒤따르면서 운은 기분 좋게 웃었다.

1년 동안 갇혀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의외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잃어버렸던 감정을 되찾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챠이 우르카&해 운 vs 프리아가전(戰).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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