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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
"쓸어버려."
그것이, 호지가 이 전투의 시작을 알린 말. 아수라왕은 그저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그렇지만, 그래도, 당연하다는 듯이.
아수라왕의 아수라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며 돌격했다. 아니, 돌격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전진을 시작했다.
촤아아아아아악!!!
호지가 이끄는 만마(萬魔)와 아수라왕이 이끄는 만마가 충돌하면서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각자의 개인기가 출중한 호지의 도깨비 군단과는 다르게 아수라들은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존재라고 생각될 정도로 유기적이었다.
세포 하나하나가 붙어서 움직이는 듯한, 밧줄을 이루고 있는 모든 실들이 춤추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
전장에서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저런 연대뿐일 것이다.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보는 것만 같은 위대함마저 느껴진다.
그것이 곧 삶, 운명. 아수라들에게는 그저 싸우는 것 밖에 없다. 죽음이란 것도 허용되지 않고, 살아남는 것 또한 허락되지 않는다. 살의가 담겼지만, 분노는 담기지 않았다. 의지는 있되 감정은 실리지 않는다.
본의 아니게 영원을 투쟁과 함께 하게된 그들만의 생존은, 그것만으로도 아름다움이라 칭하기 부족함이 없었다.
"역시나, 로군. 차이가 난다."
숫자. 물량으로는 확실히 아수라의 군대가 우위에 있었다. 전투에 관한 노하우, 동료와의 연대 또한 윗줄에 있다.
그 누구도 찾지 못 하는 곳에 숨어살던 도깨비들과는 연륜이 달랐다. 밀려도 이상할 이유 따위는 어디에도 붙어있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깨비들은 전혀 밀리지 않고 있었다.
근본적인 힘의 차이다.
기술, 연대, 연륜.
그 모든 것을 찍어누르는 압도적인 힘의 차이인 것이다. 지금은 호각을 이루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밀릴 것은 자명한 이치. 불사의 이능이 발동하는 한 육탄공세로 밀어붙이면 되겠지만 그 또한 익숙해지면 소용없게 될 가능성이 컸다.
"왕끼리 결판을 내지 않으면 안되겠지. 허나......"
단순한 소모전은, 아수라들의 장기다. 하지만, 아수라왕은 '두려웠다'. 자신보다 강한 적을 만난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던 아수라왕이, 공포를 느꼈다.
도깨비들의 무리에서 불타오르는 거구의 괴물에게.
이 싸움이 시작하기 전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그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아니, '있었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다.
도리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텅빈 것만 같은 존재, 껍질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무지에서 나오는 공포, 아수라왕에게 있어서 가온이라 불리는 불꽃의 괴물은 불사나 불패보다도 두려운 존재였다.
"넋놓고 있지마."
전장에서 울려퍼지는 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담담해서 아수라왕의 반응은 조금, 늦어버렸다.
뻐어억!!!
뼈가 부서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소리가 아수라왕의 손등에서 터져나온다. 완벽한 기습이었을텐데도 아수라왕은 완벽하게 머리를 방어하고 있었다.
"쳇, 그냥 죽어."
밀려나는 아수라왕의 위로 빛나는 세개의 창날 같은 것이 보였다. 태양을 창의 형태로 깎아낸 것이 있다면 저런 것일까 싶은 빛이 터져나오면서, 거리를 재는 동작도 없이 떨어져내렸다.
파바박.
아수라왕의 몸체가 흔들린다. 그것이 한순간, 안개처럼 변하고 순식간에 아수라왕이 모습을 감췄다.
마치 안개에 잡아먹힌 것처럼.
호지가 당황할 틈도 없이, 바닥에 몸을 내려꽂혔다.
"으, 가칵...!?"
빠르다기 보단, 뒤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나쁜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며 호지는 자리를 벗어났다.
고속이동과는 다른, 순간이동.
텔레포트다.
"짜증나게....!"
화르륵!
타오르는 거대한 화염의 손이, 바닥에서 튀어나왔다. 손바닥의 길이만해도 20미터는 넘을 것 같은 거대한 크기, 아수라왕은 움직이던 것을 멈추고 수많은 손을 앞으로 모았다.
저 크기와 질량을, 대적할 셈이다.
"얕보지마아앗!!!"
콰아아아아아아앙!!!!!
외침과 함께 떨어져내린 손, 아수라왕과 함께 지면을 태운다. 누가봐도 살아남기에는 힘든 광경이다. 하지만 호지는 이렇게 쉽사리, 간단하게 아수라왕이 죽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만이고, 멍청한 생각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요연이, 사실상 졌다고 한 승부를 아수라왕이 치뤘다. 호지의 몇몇 일격으로 죽어서 문드러진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피잉!
깨어져 나간 검날의 조각, 철편이 호지의 면전 앞으로 날아들었다. 반사적으로 틀어버린 고개, 하지만 볼에 철편의 흔적이 남는다.
불타오르는 대지의 사이에서 보이는 아수라왕의 손, 수십에 달하는 철편들이 쥐어져 있었다. 아까의 탄환 같은 공격도 저것에 의한 것.
탄지(彈指). 손가락으로 튕겨낸다는 간단한 기술이지만 아수라왕이 쏘아낸 철편은 그야말로 저격총이나 다름없다.
급소에 맞으면, 분명히 절명한다.
피비비비비비비빙!!!
겨누는 시간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이 연발하는 철편의 세례, 호지가 금삼비녀로 불꽃의 벽을 끌어올렸다.
녹아내리는 철편, 하지만 몇몇개가 불꽃의 벽을 뚫고 호지의 몸 곳곳을 헤집어놓았다.
"이이이이!!!"
호지가 불꽃의 벽을 그대로 지나치며 돌격한다. 자신이 만들어낸 불꽃의 벽을 몸에 휘감는 특공을 감행한 것이다. 하지만 아수라왕이 있어야 할 장소에는, 아수라왕이 서 있었던 것을 증명하는 발자국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전투의 그 첫번째."
콰아앙!!
손바닥이 호지의 등에 작렬한다. 폭약을 한가득 묶어놓고 때린 것인지, 손바닥이 폭발하며 호지를 바닥안으로 쳐박았다.
"자신의 시야를 가리지 말 것."
부우우!!
호지가 아수라왕의 말을 끊어놓는 것처럼 금삼비녀를 휘두르지만, 그 자리에 아수라왕은 없었다. 벌써, 뒤에 있었다.
"전투의 그 둘째."
뻐버버버벅!!
수를 가늠할 수 없는 주먹의 난타, 그 많은 손들을 장기로 하는 공격이다. 빠르게 쳐내보는 호지지만 그 공격을 모조리 걷어낼 수 있을만큼의 기술이나 힘이 호지에게 남아있을 턱이 없었다. 공격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호지가 50미터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
"감각은 항상 열어둬라."
기다리고 있다는 것처럼 호지가 날아가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다. 호지가 반사적으로 손에 마력을 집중시켜 쳐내려고 하지만, 아수라왕의 일격은 그 손짓을 짓뭉개버리고 배에 꽂혀버렸다.
"어, 째서......?"
자신이 약한 것이 아니었다. 확실히 경험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 차이를 메꿀만한 힘이 있다고, 호지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메꾸기는 커녕 확실하게 압도 당하고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다친다면, 고치면 된다. 아픈 것은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사라지기 마련. 승패에 대한 것도 언젠가는 무감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신경 쓰지마라, 고 그녀의 아버지는 말했다. '아수라왕에게 이길 수 없다'는 단서를 붙이며.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하고 호지는 생각했다. 그래도, 무언가가 이상하다고도 호지는 생각한다.
질 이유는 경험 외에는 없다고 말하는 분위기였는데,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상대를 하면 안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가, 마음을 바꿨다.
싸우기로.
"쉽사리, 무너질 것 같으냐아아아앗!!!"
호지의 금삼비녀가 휘둘러졌다. 폭풍을 두르고 휘두르는 것만 같은 기세가 지팡이에 실린다. 패도적인 기운이 요동치면서 땅거죽을 벗겨내며 아수라왕을 쇄도해갔다.
허나, 닿지 않는다. 아수라왕은 벌써 멀찍이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호지도 지금까지 맞기만 해 온 것은 아니었다.
"호오...!?"
투콰아아아아아아아앙!!!!!
돌연 터져나가는 폭염에 섞여, 아수라왕이 말과 함께 묻혀버린다. 금삼비녀의 공격범위 안을 제외한 전방위를 터뜨리는 일격.
아무리 빨라도, 아무리 강해도 피할 수는 없다.
잡을 수 없다면, 쓸데없이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 상대방이 어디있을지 모른다면, 있을만한 곳을 모조리 다 터뜨리면 그만인 거다.
위력은 낮았으나, 맞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공격을 받은 탓에 당황하고 있는 아수라왕을 향해 호지가 특공을 걸었다.
양손이 인두처럼 시뻘겋게 타오르고, 섬광 같이 아수라왕의 머리를 노린다. 수없이 교환되는 손들의 교차, 순식간에 세자릿 수에 달하는 공격이다.
아수라왕이 처음으로 맞승부에서 물러났다.
"빈틈이다앗!"
허공에 던져둔 금삼비녀를 야구 하듯이 휘둘러 아수라왕의 배를 후려쳤다. 북을 찢어버리는 기세로 두드린다면 이런 소리일까, 둔중한 소리와 함께 아수라왕이 하늘 높이 튕겨져 나간다. 호지가 따라 날아오르고 거대한 화염의 손을 만들어냈다.
대지를 태우던 그 손만큼은 아니지만 질량은 같다. 같은 질량이라면 부피가 작은 쪽이 더욱 관통력있다.
콰아아아아앗!!!!
불꽃의 주먹이 아수라왕을 바닥으로 내려꽂았다. 엄청난 흙먼지에 가려진 아수라왕에게 호지는 몇개의 마력탄을 더 꽂아넣은 다음에야 뒤로 물러서 전열을 정비했다.
상당한 에너지를 집중시켰다. 같은 속성의 공격이라 조금 약화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질량을 무시할 수는 없다.
"강하군. 과연, 여왕의 이름을 칭할정도는 되나."
하지만 아수라왕은 불길 속에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일어나 자신의 위엄을 자랑한다. 아무런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팔, 다리 할 것 없이 그의 몸 전체는 많은 상처로 덕지덕지 기워놓은 상태였다. 호지 또한 그것은 마찬가지이나, 현재 승세를 잡은 호지에게 더욱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아수라왕은 조금도 꿇리는 기색이 없다.
"허나, 이쪽은 아직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화악, 하고 아수라왕의 존재감이 부풀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