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8 / 0340 ----------------------------------------------
최종편!
얼굴이라고 하기에는, 솔직히 무리가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아니, 그 이전에 애초부터 생명체라고 하기에 무리가 있는 형태를 하고 있었다. 지구상의 어떠한 생명체도 빛나는 구체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 이해 불능의 물체는 루카의 기억에 없다. 단 한번도 본 적 없다고 폭염과 초연 속에 스러져간 동료들을 걸고 장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카는 저것에게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빛의 구체가 내뿜는 거대한 에너지량 때문에 무언가를 느낀 것이 아니라, 뭔가 본질적인 것. 무언가 아련하게 감수성을 자극하는 옛날의 인연이 느껴졌다.
본능에 호소하는 빛의 구체가, 바닥에 내려섰다. 저것이 불사가 아닐까 싶었던 에너지의 양도 상당히 줄어들어, 운천과 같은 수준이 되었다.
모습 또한, 운천이 되었다.
"재밌는 장난질이군."
"너에게 있어서 최대의 장난은 '나의 생존'일텐데?"
웃는 빛과 운천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루카만이 답답해서 소리쳤다.
"뭐가 어떻게 된겁니까 문주! 도대체 저건...."
루카의 외침에 먼저 반응한 것은 '빛'이었다. 따뜻한 빛을 내뿜는 것과 달리, 웃음소리는 음산하기가 짝이 없었다.
"이거 속편한 녀석인데? 정말로 모르겠냐? 날 보고도?"
"알 수 있을리가.... 없지 않습니까."
감정은 분명히 익숙함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처음 보는 사람이 가진 공통점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 특별함을 느낄 것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빛의 반응을 보면 알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허나 모르겠다. 짐작도 가지 않았다.
최대한 머리를 굴리는 루카지만, 알 수 없었다. 생각하는 것이 무의미 하다고 판단한 루카는 그저 앞으로 있을 전투를 대비했다.
분명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싸움을 거는거냐?"
"감이 말합니다. 당신은 위험하다고."
"미안하지만, 날 죽인 건 너다."
그렇게 말하는 빛은 모습을 바꾸었다. 그 모습은, 루카가 그리움과 죄악감을 동시에 갖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사막에서 자신의 손으로 명을 끊었던 남자, 고든이 그곳에 있었다.
죽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죽었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죽은 사람이 되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루카는 모르지 않았다.
눈 앞에 있는 녀석은 가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어째선지 루카는 저 거짓의 고든에게서 진실된 고든의 냄새를 느꼈다.
몸짓, 어투.
그 모든 것이 고든임을 증명한다.
"장난은 그만해라."
혼란스러운 루카의 뇌리를 파고든 것은 다름 아닌 운천이었다. 평소보다도 짙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얼굴에 기쁨은 없다.
있는 것은 그저 살의. 불구대천의 대적을 만난 것과 같은 얼굴이었다.
루카는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 때의 운천을 알고 있다.
"너도 저런 가짜 얼굴에 속지마라. 너보다도 고든을 잘 알고 있을 놈이, 단 한명 있지 않나."
있다. 하지만 그 자는 이미 죽어버린지 오래, 루카 스스로 마지막을 장식해주었다. 그 자가 살아있을리가 없다.
"질긴 건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거든."
그렇게 말하며 웃는 그 모습은, 분명히 그 자의 것. 루카는 그 자의 이름을, 이름이 아닌 칭호를 입에 담았다.
"유해의...뱀!"
"맞다, 그것이 나의 이름이자 칭호!"
기뻐하는 뱀이다. 그제서야 루카는 이해할 수 있었다.
운천이 묘하게 지리를 잘 안다고 싶었던 것도, 되도록이면 말로 저녀석에 대해 입을 올리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도.
자신의 동료들이 살해당했다. 자신의 고향이 망가졌다. 자신의 정신조차 유린당했다.
모든 것이.... 인간을 초월하게 되었다. 전혀 기쁠리가 없는 상황을 운천은 겪게 되었다. 단 한 괴물로 인해.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운천이 만족할리도 없었고 믿을리도 없었다.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서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정도로 죽었다면 뱀이 아니다. 800년의 세월이 아깝지 않다고 해도 될정도가 아니면 지금까지 살아있는 의미가 없다.
작게 웃었다.
"그 때는 쓸데없이 방심해서 말이지, 솔직히 질렸던 걸지도 몰라."
팔백년 간의 원한이다. 잊혀지고 묻혀버리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하물며 본디 단명하는 인간의 원한이니만큼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필사적이지 못 했다. 너무나도 쉽사리 당해버렸다.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어도, 세월의 풍파에 깎여나간 감정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들었어. 그러니, 여기서 모든 것의 결착을 짓는다."
검을 뽑는다. 왕에게 허락되었고, 운천에게 내려진 검이 신검의 경기를 뿜는다. 그 무엇도 베어내지 못할 것이 없는 위력에 뱀이 휘파람을 불었다.
뱀은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본모습이었다면 졌을지도 모른다. 아니, 졌을 것이다. 본인은 그것을 아주 잘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질 수 없었다. 의지라던가, 하는 그런 것 이전의 문제인 것이다.
근본적인 힘의 차이. 기술과 경험으로는 메울 수 없는 차이다.
무덤은 방주의 복사판. 그것의 동력 또한 복제품이다. 에너지를 무한히 생성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동방삭의 축적을 따라 어떻게든 흉내낼 수 있었다.
그 무한대의 힘을, 무덤에서 빼내 이곳에 현신시킨다면. 동방삭을 웃도는 그 힘이 이곳에 나타난다면.
운천은 이길 수 없다. 시간벌이가 겨우일 것이 뻔한 일이다.
"재밌겠는데. 어디 한번 보여주시지. 무(武)의 종가, 싸움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일가의 가주님."
"비꼬지마라. 네놈이 뭐라하건...."
제천검(濟天劍)이 활기를 띈다. 황금빛으로 물드는 마력이 번갯불처럼 튀어올랐다. 운천과 싸워오면서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기예, 뱀의 안색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때 루카는 다른 의미로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황금빛의 마력은 운천에게 없었다. 사용하면 나올지도 모르지만 지금껏 쓰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뱀과의 재회를 위해 만든 기술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운천은 단 한번도 시험을 안 한적이 없었다. 그것도 이렇게 중요한 싸움에 필요한 기예를, 쓰지 않을리가 없다.
무엇보다도 번개처럼 튀는 저 형태. 루카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그'를 만났을 때 보았던 것. 그의 독문무공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기예다.
광진. 육왕이라 불리는 남자의 비술이며 그의 모든 힘의 근원이다. 그것이 없다면 그의 다른 기술은 존재치 않는다고 할정도의 비술.
쓸 수 없을 터이다.
"넌 이곳에서 죽는다."
그렇게 말하는 운천의 전신을 강대한 뇌전이 휘감았다. 불규칙적으로 흘러가는 번개가 점점 안정되며 검날에 모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베이는 것만 같은 섬뜩함이 느껴졌다.
운천이 저것을 쓸 수 있을리가 없다.
뱀의 모습이 거울에 비춘 것처럼 운천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무기도, 모습도, 질량도 모두 흡사하게 바뀐 것이다.
그림자나 다름 없는 제천검을 들어올린다.
운천이, 광진을 발동할 수 있을리가 없다.
"역시 재밌어, 네놈은. 항상 자신감에 넘친다구, 쓸데없이!"
뱀의 검이 순식간에 운천의 머리 위로 떨어져내렸다. 강풍을 휘감는 검격, 운천의 참격이 간단하리만치 튕겨냈다.
인간을 초월한 운천에게, 광진의 은혜는 허락되지 않는다. 몇가지 조건을 충족한다고 해도, 될리가 없다.
그런데 어째서?
"오늘에야말로 인연을 끊는다!"
투콰아앙!!
검들이 맞부딫히며 만들어내는 폭음이 땅거죽을 뒤집었다. 검이 만들어내는 충격파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위력이 주변을 휩쓸었다. DS의 안에 있는 루카마저도 느낄 수 없는 힘의 격돌이 넓다고만 생각되는 이 공간이 좁다하고 퍼진다.
운천은 댓가를, 지불했다. 제천검의 보조로 광진을 쓰는 것만이 아니다.
순식간에 검격이 다섯번이나 교환된다. 힘으로는 분명히 우위인데도, 점점 뱀이 밀리기 시작했다. 다리를 노리는 검격을 황급히 쳐내지만, 다시금 목을 노리는 검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빠르다는 핑계를 댈 것이 아니다. 속도는 번개의 오라의 영향으로 겨우 따라잡는 수준이었다. 밀릴 이유는 없다....고, 뱀은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속도. 그것을 잡을 수 있다면 운천은 그걸로 족했다. 위력은 조금 부족해도 된다. 제대로 먹였을 때 상대방의 숨통을 한번으로 장사지낼 수 있다면 충분하다.
기술. 무의 종가, 무의 현신. 무만 따진다면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 하는 현실을 그 몸으로 직접 표현하면 된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재밌는 기술을 쓰는 구나, 운처어언!!"
"왕의 힘이다. 당연하지."
콰아앙!!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마력의 폭발이다. 검술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피부로 느끼던 뱀이 결국 자신의 특기로 나왔다.
수백에 달하는 마력의 끈이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다가 그대로 운천을 향해 내려쳐갔다.
광진을 댓가로 죽음을 얻어 뱀을 죽이려 했다.
"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