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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330화 (33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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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

키이이이이잉!!!

피아노선을 울리는 충격파가 대지를 휩쓸었다. 거암(巨巖)의 야수가 대지와 흡사한 질감을 강조하듯 몇걸음 걷지만, 이내 조각나 스러지고 만다.

대지의 마수, 베헤모스가 쓰러지고 있었다. 그를 상대하고 있던 기계의 여인, 앤트로아가 강철 같은 피부를 강조하기라도 하듯 무표정하게 피아노선을 회수했다. 명검을 뛰어넘는 절삭력의 와이어가 그녀의 손목에 감겨들었다.

"육왕, 과연 굉장한 남자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쇠와 돌로 만들어진 팔찌를 흔드는 앤트로아다. 한국이 가진 최대의 병장기 중 하나인 '철암장군'이다. 왕을 받드는 세 신하와 더불어 광물을 다루는 그 힘은 베헤모스를 묶어두기에 충분했다.

아무리 '2 대 1의 승부'였다지만 베헤모스를 상대로 상처하나 입지 않는 압승이라면 다르다. 위험한 순간은 분명히 있었는데도, 작전에 의해 피해를 완전히 무효화 할 수 있었다.

지략의 천재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키키키키킷, 내가 있으니까야. 어디서 싸우지도 않은 녀석에게 공을 넘겨?"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리바이어던이 방정맞게 웃었다. 베헤모스에게 물의 창을 연달아 꽂아넣는 그 모습에는 호쾌함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앤트로아는 그곳에서 시선을 거뒀다. 어차피 친한 것도 아니었고, 저렇게 경박한 남자는 취향이 아니기도 했다.

그런 생각으로 주위를 돌아보게 된 앤트로아는 예상외의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전투는 점점 더 호조를 띄고 있었다. 이상할정도로 치우회가 압도하고 있다. 이유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지도자의 부재다. 수족이 아무리 좋아도 머리가 없으면 무의미하듯, 그들의 기능이 크게 줄어버린 것이다.

무엇보다도, 상대측의 최대 전력인 불사가 없다. 있기는 하지만 영왕의 군세가 그것을 완전히 상대해내기 때문에 다른 것은 의미가 없었다.

"흐응. 무슨 생각을 하냐, 기계처녀."

"불응,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 합니다."

슬쩍 인상을 찌푸리는 리바이어던, 재차 말을 걸었다.

"너무 까칠한데. 이래뵈도 같은 전장을 걸어온 전우 아니냐, 응?"

"부정, 그건 말도 안되는 생각입니다."

"....너, 나 싫냐?"

"긍정."

"거기서 끝내지마!"

무기물에게 차였다는 현실이 리바이어던을 짜증나게 했다. 합동작전을 펼쳤다는 것에 불쾌함을 느끼는 무사(武士)인 것 같지는 않은데 꽤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흠?"

"....아군, 무언가?"

리바이어던이 돌연 고개를 갸웃하자 앤트로아가 물었다. 마음에 안드는 것이라곤 해도 공과 사는 구별할 줄 알았다.

묘한데서 기계다운 점에 감탄하던 리바이어던이 상황을 설명했다.

"몇몇 강한 힘이 느껴지는 게 있어서 말이지. 팔대간부 수준은 아닌데 말야? 뭔가 이상하다구. 모르겠어?"

"가해(可解), 느끼고 있습니다. 상당한 격전지..... 컬러나이츠가 상대하고 있으니, 상대할 필요는 무용(無用)."

"...그녀석들만으로 될 것 같지는 않은데."

리바이어던이 느끼는 적의 강함은, 상당했다. 팔대간부에 미치지 못 한다고는 하나 그 아랫줄의 실력은 되었다.

무관심하다 싶을정도로 싸울 생각을 않는 앤트로아에게 눈총을 보내던 리바이어던은 고개를 저었다. 가볍게 뜀박질하며 싸움이 일어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싸우기 싫다면 별 수 없다. 강요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자신이 가는 수 밖에 더 있는가.

파아아앙!!

폭풍을 일으키는 다리다. 해룡의 모습을 버리고 방주 위에 있는 리바이어던 답지 않은 속도였다. 그렇게 리바이어던이 다가가고 있는 전장에서는, 리바이어던의 생각대로 상당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쩡, 키이이이잉!!! 카각, 터엉!

푸른 륜(輪)의 광영이 이글거리면서 고속으로 회전했다. 전기톱을 보는 것만 같은 위압감을 들게 하는 위력이, 륜의 날에서 펼쳐진다.

"이익..!"

쩌, 정!!

하여의 오기가 어린 일격이지만 튕겨나갔다. 머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각법에 몸을 크게 띄웠다.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는 참격과 같은 타격, 목이 일순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 정말! 너무 세잖아!"

붉은 색의 용 가면을 쓴 적포의 골렘, 옴팔로스 중 하여에게 배당된 적이었다. 개조형 옴팔로스로서, 의지가 없는 골렘에 유명한 무인의 영혼까지 때려박은 존재다.

전투에 대한 기술, 경험 무엇하나 하여가 따라잡지 못할 강함이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크기가 전부 인간정도라 강령된 영혼도 인간인 점이다. 인간이었을 때와 지금의 갭으로 제대로 힘을 쓰지 못 하고 있었다.

"으랴랴랴랴!"

륜의 영역이 닿는 모든 곳에 푸른 실선이 그어진다. 일반적인 참선과는 다른 모습의 참선이 적을 휘감았다.

"통하지 않는다."

치이이익....

속도를 내서 부숴버리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통하지 않을 모양이었다. 무기물 주제에 잔상처 같은 것은 금세 무시해버리고 있었다.

상처가 회복되어 가는 골렘이 입을 열었다.

"높은 무위,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하여. 소하여."

거인이나 쓸 법한 낡은 대검을 휘두르던 골렘은 대답했다.

"난 베오울프. 그다지 이름 있는 자는 아니다."

"....죄송하지만 꽤나 유명하거든요."

유명하다뿐인가. 영화로도 나왔다. 그것도 근래이니, 뭐하는 인간인지는 몰라도 이름정도는 모를 사람이 없다.

"그런가? 뭐,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

역사상으로 소실된 것이 분명할 '거인의 검'이 허공을 찢어발긴다. 한손으로 50인력 이상을 감당해낸다는 괴력을 적절하게 조절하며 몸을 푼다. 돌리는 속도를 서서히 늦춰가면서 천천히 내렸다. 검 끝에 겨누어지는 경홍이다.

곧 있을 전투가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게 남아 있는 건 그저 무인으로서의 욕망뿐이다. 생전의 웅심은 남아있지 않아. 난 그저 찌꺼기에 불과하지."

콰아아앗!!!

엄청난 기파다. 눈 앞에 서 있는 괴물의,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의 무위가 눈에 드러나려 하고 있었다.

하여는 베오울프에게서 때 아닌 공포를 느끼고 말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느끼고 있는 감정 또한 가지고 있었다.

호승심이다. 상대가 자신보다 강한 것을 알았다. 허나 도망칠 수 없고, 자신을 대신해야 할 사람 또한 없다. 그렇다면 승부 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런 빼도 박도 못할 상황에서 공포를 갖는 바보짓을, 하여는 모른다.

"하핫 전설적인 영웅이 상대라니, 영광이야."

"이쪽이야말로 미래를 여는 자들과 싸울 수 있다는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

하여가 륜을 내렸다. 더이상 힘을 감출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다.

위이이이이이잉!!!

륜이 푸른 광영을 내비쳤다. 전장의 어둠조차 쫓아버릴 푸른 빛이 서서히 강해지면서 하여의 륜이 크기를 부풀렸다.

손바닥보다 겨우 한치정도 더 길던 륜이 거의 2미터정도로 커졌다. 불꽃과도 같은 광영을 흩뿌리는 모습에 베오울프도 감탄을 감추지 못 한다.

대(大)에는 대(大).

정면승부다. 하여에게 측면을 노리거나 할 주변머리는 없다. 그럴만한 치사함 또한, 그녀에게는 없다.

그러니, 정면으로 받아낸다. 상대방의 강약은 그녀가 신경 쓸 것이 아니다.

"하앗!!"

하여의 기합과 동시에 거인의 검과 하여의 쌍륜이 교차한다. 한 시대의 영웅이 꺼낸 일격과 영웅이 되어가는 여아의 쌍격이 맞부딫히고, 서로의 몸이 거칠게 뒤로 튕겨나갔다.

인간의 몸으로는 받아내는 것이 불가능한 충격량이다. 겨우 한번의 충돌로 손이 터져나간 하여가 쓰게 웃으면서 뒤로 물러났다.

"이거 참.... 헌데, 무슨 짓이야? 당신은.... 데미지가 없잖아?"

그럼에도 물러났다. 똑같은 데미지를 입기라도 한 것처럼.

베오울프는 웃었다. 아니, 웃었다고 생각되는 분위기를 표출하며 검을 빙글빙글 휘둘렀다.

"확실히. 아까 전의 참격에서, 난 널 죽일 수 있었다. 이렇게 받아낸 지금도 데미지는 없어. 하지만, 그건 안될 일이지."

먼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베오울프다. 그곳에 있는 것은 분명 무덤, 카타스트로피의 최종병기가 있는 곳이었다.

애정도 감동도 없는 눈길이었다. 저렇게나 무감각한 눈을, 하여는 본 적이 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단 하나 알 수 있는 건 베오울프가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여가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머나먼 삶을 영혼으로 보낸 자만이 알 수 있는 감정, 생을 향한 갈망. 하지만 일반적인 갈망과는 다른, 그저 염원.

영왕의 군세에서 느낄 수 있던 것과 흡사하다.

"내가 아니면 곤란해. 그렇지 않나? 내가 이곳에 서서, 내가 널 베어버리지 않으면, 내가 너와 싸우지 않으면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지?"

거인의 검이 베오울프의 앞에 세워진다.

일격필살, 그것을 노린다.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응책은 맞서는 것뿐, 정면으로 받아내 무너뜨려야 한다.

"내가 나이기 위하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지."

"난 어려서 그런 건 잘 몰라. 요처럼 뛰어난 말재간도 없어. 하지만...."

륜이 크기를 줄인다. 하지만 힘이 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힘의 응축.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을 이 싸움에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한 최후의 기예였다.

하여가 가진 모든 힘이 한 곳에 집중되고 푸른 빛의 광영이 나비의 형태로 개화한다.

"행동만큼은 여고생이라구."

"멋지군, 여고생이란 단어."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서로에게 짓쳐드는 두사람이었다. 소리도, 빛도, 공간도 모조리 죽어버린 세계에서 두사람만의 전투가 시작된다.

한번, 두번, 세번, 네번, 다섯번, 여섯번, 일곱번..... 숫자를 짐작키 힘든 공격이 서로를 휩쓸어간다. 누구 하나 밀리지 않고, 물러섬이 없다. 어느쪽이 망가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베오울프와 연루는 웃었다.

이이잉!!

색과 소리가 되돌아온다. 그것과 동시에 베오울프의 검이, 연루의 쌍륜과 부딫혔다. 세기의 패력이 거인의 검에 섞이고, 불꽃 같은 푸른 빛은 륜과 함께 회전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인세를 초월한 것 같다. 그리고 그 광경은 한순간, 이내 번쩍임과 함께 끝나버리고 말았다.

"아.... 크, 커허....!"

하여의 청접륜이 부서져나갔다. 자체수복능력 정도는 청접륜도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부서져버렸으면 시간이 걸린다.

무엇보다도, 가슴을 대각선으로 그어버린 커다란 참선은 더이상 하여가 전투를 계속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모조리, 끝나버린 것이다.

"키이이이...."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다가오는 레플리카들이 보였다. 베오울프와 같이 있을 때만해도 다가오지 않았는데 끝난 걸 보고 다가온 모양이었다.

최후를 직감하며 눈을 감으려는 그 때,

촤아아아악!

레플리카들이 돌연 동강나며 스러져가기 시작했다. 막강한 검력이 만들어내는 분해의 마력은 가짜들이 견뎌낼만한 것이 아니었다.

"베오...울프?"

"흠. 전사에게는 승패만이 존재하지. 생사는 존재하지 않아. 설마 여기서 죽고 싶었던 건 아니겠지?"

하여는 왠지 모를 느낌에 대답을 감추고 고개만을 끄덕였다. 말을 하기 힘들다면 힘들었지만, 절대로 상처 때문이 아니었다.

베오울프는 하여를 부축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일이다. 회복하면 도와주마."

"아, 예, 감사해요."

갑자기 이렇게 된 게 어쩐 일인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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