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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
숨을 고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방주의 시스템을 이용하면 천릿길도 한 걸음이었지만 그 한걸음을 내딛는 것도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분명히 안전빵인 광진 일식을 쓴 건데도 내부는 완전히 진탕이 되어 있었다.
나에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이런데서 주저앉기에는 이르다. 그런데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쉬익.
눈 앞의 쇠문이 옆으로 빨려들어갔다. 여러가지 기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공간의 안에서, 능파가 뛰쳐나왔다.
"할아버지...!?"
내 상세를 살피며 능파가 회복마법을 걸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내가 스스로에게 걸었던 회복 마법과는 격이 다른 마법이 펼쳐지며 몸이 빠르게 낫기 시작했다. 고통도 희미하게나마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몸이 갑자기 편해진 탓인지, 능파가 눈 앞에 멀쩡히 있는 탓인지는 몰라도 꽤 편해졌다. 덕분에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암즈포트, 월 마더(wall mather:어머니의 벽).
대(代) 불사용 병기. 주포의 위력은 불사 혹은 불패의 일격과 동급. 부포가 약 6000문에 무인기동병기를 약 4만정도 보유하고 있는 방주의 최종병기 중 하나다. 실재로는 암즈포트가 하나 더 있었지만 가동할만한 힘이, 지금은 남아 있지 않았다.
"능파...냐. 암즈포트, 제대로 쓰고 있구나."
"그런 것보다, 어째서 이렇게 됬어요?"
"싸우다가 그랬지."
능파가 묻고자 하는 말에서 빗나가게 말을 했다. 능파는 잠시 미간을 일그러뜨렸지만 말 없이 한숨만을 내쉬었다.
말을 일부러 감췄다는 건 능파도 알고 있을 것이다. 많이 가라앉았다고는 하나 통증이 섞인 상태로 완벽한 거짓말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상대는 능파였다. 쓸데없는 것을 꼬치꼬치 캐묻거나 하는 아이는 아니다.
능파는 자신이 있던 의자로 돌아가 암즈포트 월 마더의 기동에 전념했다. 하지만, 이내 손을 놓아버렸다.
더이상 할 것이 없는 것이다. 암즈포트가 분명히 강력한 병기인 것은 맞지만 그 압도적인 크기와 그 위력 때문에 금세 과부하를 일으켰다. 게다가 부포에 있는 것은 거의 자동적으로 주변의 레플리카들을 섬멸해가고 있다. 쓸데없는 조작을 넣을 필요는 없었다.
불사를 상대한다는 무기를 쓴다는 것에 패널티가 없을 턱이 없었다.
"능파. 전황은 어때?"
"..안좋아요."
허를 찌르는 것처럼 낮게 말하는 부정이었다. 예상 외의 대답이면서도 예상대로인 반응에 한숨이 나왔다.
길리안을 박살내고, 관제탑에 돌아갔을 때 전황은 최고로 좋다고 말했다. 팔대간부는 전원 즉참 당했고 옴팔로스 군단도 컬러나이츠와 두명의 배신 옴팔로스의 때문에 무너뜨렸다고 했다. 방주 밖의 무덤도 무너졌다고 했으니 확실히 호조는 호조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이 싸움에서 승리에 가장 필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금력? 병력? 무력? 화력?
아니다. 확실히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전쟁에는 그것들이 중요했다. 하지만 이번 전투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불사와 불패의 승패여부'다.
설혹 상대측의 레플리카와 중역들을 모조리 다 박살내도, 불사가 살아있는 시점에서 우리측은 전멸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재 누님과 인간형 불사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남은 것은 구체형의 불사뿐. 승패는 불보듯 뻔한 일이다.
"유운들은?"
"의외로 선전하고 있어요. 몇 만년동안이나 이를 갈아왔다더니 실력은 꽤 되더라구요. 솔직히 못 미더웠는데 말이죠."
"그래...? 그렇다면, 누님이 나올 때까지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지."
"....할아버지.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능파가 말하는 바를 알고 있었기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현실이라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엄청난 빛과 함께 누님과 불사가 사라졌다. 투명화도, 어디론가로 날아간 것도 아니다. 숨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문자 그대로 '사라졌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누님과 불사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빛, 굉음.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빅뱅. 세계의 힘이 담겨 있는 둘이니만큼 세계창조의 힘을 발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 넓은 세계일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지만, 가능하다면 그거다.
그것까지라면 괜찮다. 그 어느곳이라 해도 누님이 밀릴 것 같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빅뱅이 일어났다면 그만큼의 힘이 소모되어야 한다. 그 힘은, 당연하지만 누님과 불사가 가지고 있는 세계의 핵의 파편.
진다. 그 힘이 없으면 누님은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 반해 불사는 본디 괴물, 그것도 지상을 지배했다 하는 절세의 괴물이다.
승산 따위는, 이미 업슨 것이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능파야. 이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지?"
"그 둘의 승패여부지요."
"맞아. 내가 너에게 가르친 지략의 마음가짐은?"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라... 였죠."
"이번만큼은, 그 불문율을 깨야 해."
분명히 나와 능파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누님의 패배, 즉 죽음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이 승부는 그대로 끝장이라는 것이다.
불사를 이길 전력이, 우리에게는 없다. 방주의 핵을 누군가에게 때려박는다는 가정도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일만한 잠재능력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설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불사가 살아나면 유운들이 상대하고 있는 불사와 결합, 유운들은 전멸한다. 그나마 시간을 벌어두는 것이 가능한 최고 전력도 날아가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우리의 패배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논리적으론... 이길 수 없는 상대인걸요."
"바보구나 능파는. 논리? 그래선 안되지."
"...?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능파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들부들한 머릿결이 손가락에 얽혀서 감촉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기적이, 논리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일리가 없지 않니."
"후후. 그것도 그렇네요. 하지만, 더이상 어쩔건가요? 우리에게는 패가 없어요. 지금 이 월 마더의 주포도 끝났구요."
사실상 불사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주포의 탄환은 세발. 내 기억이 맞다면 열발 이상을 쐈으니, 달았어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캐터펄트를 열어줘."
월 마더의 주포는 분명히 위력적이지만, 전략적으로는 수많은 무인기동병기를 움직일 수 있단 것이다. 그런 것들을 사출할 캐터펄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캐터펄트? 뭔가 출격시킬 거라도 있나요?"
"내가 간다."
".....거부해요. 죽으러 가는 것이나 다름 없어요."
"난, 죽지 않아. 단언해."
논리적 증거와, 비논리적 증거가 함께 한다.
내가 죽을 이유는 없었다.
"뭔가요 그 헛소리는? 들어나보죠."
"그라드가 남긴.... 아니, 기레와 그라드가 남긴 트윈홀이 있어. 그걸 완전히 흡수하고 광진 육식의 개방한다면... 몸이 망가지는 건 피할 수 없겠지만 살아남는 것은 가능해."
대신 활동할 수 있는 건 뇌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있다면 그 정도는 나중에 의수, 의족... 의체로 대체하면 그만이다. 능파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비논리적인 건?"
"난 죽지 않아."
그렇게 대답했다.
다른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그 한마디가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이며 최고의 말이었다.
"죽으면.... 안되요. 평생, 원망할거에요. 죽어서도... 따라다닐테니까."
능파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끌어안는 것뿐이라는 것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능파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월 마더의 위까지 올라오고 난 월 마더의 주포가 캐터펄트처럼 바뀌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곳에 오르니 근처에 있는 마력의 입자가 마치 호위병처럼 날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능파가 보여주는 최후의 안배다.
"능파야. 내가 말했지? 성장하지 않는다고."
[...그러셨죠.]
"광진을... 진인으로 만드는 기술이라고도 말했을거야."
[그랬죠.]
"보여주마. 내가, 누구인지를."
숨을 크게 들이켰다. 전신을 둘러싼 마력이 체내로 흘러들어왔다. 외부 마력과 내부 마력이 섞여서 기묘한 통증을 유발했다. 그 자극들이 이윽고 내 전신에 흩어져 있는 마(魔)의 인자를 일깨우기 시작했다.
우득, 우드드득!!
골격이 변한다. 피부도 쇳덩이로 변하고 얼굴에는 이미 강철과 청동, 구리로 된 것만 같은 금속질의 피부로 바뀌기 시작했다.
키는 약 2미터 50정도로 커졌고, 전신은 이미 금속이나 다름 없었다. 머리는 마치 소처럼 두개의 뿔이 나 있어 굉장한 위압감을 발했다.
전생에서까지 이어받아온, '천왕의 이름'. 먼 옛날에, 죽었어야 했지만 여러가지가 겹쳐져 살아남았던 한 남자의 이름이다. 절대로 좋은 결말을 맞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득한 옛날의 이야기.
'치우천왕'
이루고자 했으나, 이루지 못 했던 과거를 엮어, 앞으로 나아갈뿐!
"광진 육식(六式), 혈문신 전형(全形). 천번(天飜)!"
하늘을 뒤집는다.
하늘이 내린 운명이라면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의지, 그것이 나의 전력이다.
"누가 막을 쏘냐, 나의 의지를! 설혹 세계의 조각이라 하여도, 불사가 온다고 해도! 날 막을 수는 없다!"
바닥을 짚었다. 캐터펄트가 불사를 향한 사출까지의 카운트 다운을 일으키고 있었다. 일으켜지는 마력이 기묘한 파공성을 퍼뜨리며 날 준비시킨다.
"간다...!"
불사에게로,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