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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340화 (34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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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

내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다. 물론, 살아있는 인간인 이상 그런 싸움이 끝났다고 해서 내가 죽는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내 인생에서 언급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지막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우리들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기왕에 살아남은 목숨이었다. 유다가 괴로움을 참고 죽음에서 되돌아나와 망가뜨린 운명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목숨이 있다면, 아마 우리의 것일테지.

연인과 함께 스러졌어야 할 유운도.

부하를 살리고 불살라졌어야 할 운천도.

불사의 마지막 공격을 미쳐 받아내지 못해 죽었어야 할 누님도.

불사와 함께 명을 달리 했어야 할 나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과 미래를 받았다. 그 누구나 원하지만 그 누구도 얻지 못 했던 새로운 삶을 우린 받은 것이다.

'유다에게는 항상 감사하고 있다. 우리는 그로 인해 바뀌었다.'

유운은 지금껏 절제해왔던 자신을 펼칠 수 있었다. 사랑하더라도 자신이 가진 미래가 없었기에 포기해왔던 그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지금 껏 내딛지 못 했던 그 한발자국을.

유운은 내딛을 수 있게 되었다.

운천은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지만 내면은 확실히 바뀌어 있었다. 나는 잘 몰랐지만 운천의 부하이자 동료인 루카는 운천이 부드러워졌다고 말했다.

전에는 작전 때마다 거의 혼자서 날뛰었다고 했지만 지금은 동료들과 함께 나설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로 인해 상당히 피곤해 보인 루카였지만 기쁜 기색은 있었다.

운명이란 이름 하에 굽혀진 운천의 의지가.

죽지 않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에, 부하들을 사지로 몰고 싶지 않기에 전장에 섰던 그도.

결국은 변해버린 것이다.

누님의 경우에는, 솔직히 겉이나 안이나 변한 것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누님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나는 단언할 수 있었다.

누님은 변했다. 무엇이 변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어보아도 대답은 해주지 않고 웃으니 나로서는 뭐라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누님과 불사는 대화를 나누었고, 그로 인해서 누님 또한 변했다는 것이다.

무적의 존재로서 이 세계의 정점에 선 사람.

그렇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변할 수 없으며 정체되어 있는 자.

그럼에도 누님은 변하고 말았다.

모두들, 죽음을 넘어섰기 때문에.

그 한가지의 이유가 모두를 바꾸어 놓았다.

'그럼에도 난 변하지 않았다.'

이 또한 단언할 수 있었다.

나는 변하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니, 나만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모두들은 한결 같이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생존을 믿었던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과 같을리 없다."

그 말은 말도 안된다고, 난 생각했다.

나는 그저 믿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도피했을 뿐이었다. 그저.... 최대한 발버둥치면서 살고 싶은 내일을 상상했을 뿐이었다.

유운도.

운천도.

누님도.

그것이 달랐다고 말했다.

남들만이 알 수 있는 것이 있는걸까. 난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안달나서 알 필요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끝이라고 적어놓고 너무 내 이야기만을 적은 것 같으니 다른 녀석들도 이야기를 해야겠지.

유운은 방주와 한반도를 오가면서 여러가지로 정계에 힘을 쓰는 모양이었다. 수많은 유령을 가지고 단신으로 세계를 상대할 수 있다는 괴물이 나섰으니 정치란 것이 의미는 없겠지만, 그는 그 나름대로 이곳을 위해 힘 쓰고 있었다.

소누는 유운의 반대되는 포지션을 맡았다. 유운이 밖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를 처리한다면 소누는 방주 안에 유입되는 인간과 마수들에게 일어나는 분쟁 같은 것을 조금씩 처리해가며 인망을 얻었다. 교주 노릇을 하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소누는 웃으며 말했다.

운천 아저씨와 하군 아저씨(신가의 가주님이다. 나와는 별로 인연이 없어서 쓸 일이 별로 없었지만)는 유운이나 소누가 하는 일에 대한 직접적인 실행부대가 되었다. 무력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직접 나섰다. 사실 방주의 군대라고 해도 무방했다.

선생님과 소유는 한반도에 내려가 학교를 계속하고 계신다. 솔직히 얼굴이 많이 팔려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세계자체가 혼란기인 터라 그렇게 심하지도 않다고 전에 편지를 부쳤다.

하여와 경홍, 소화. 그리고 린. 그녀들은 퇴역 여고생 답게 검정고시를 위해 공부를 할까 고민을 하는 듯 싶었지만 방주 위에서 살아가며 운천이나 유운들의 일을 도우며 살아가기로 결정한 듯 했다. 게다가 힘도 있기 때문에 마수들과 인간들의 가벼운 분쟁들은 그녀들이 알아서 처리하며 살고 있었다.

나의 친우인 우는 단련에 들어갔다. 그 때의 전쟁은 자신에게 있어서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던 모양이었다. 나오면 어떻게 할거냐고 물으니 '소누의 호위로 있겠다'고 말했다. 소누의 본래 호위인 치지 누님은 평소처럼 소누의 호위다.

호지는 현재 도깨비 군단의 편재를 가온과 함께 하는 모양이었다. 도깨비 군단의 대부분은 분명히 호지를 뒤따르고 있지만 워낙 자유분방한 일족들이라 꽤 골머리를 썩는 듯 했다.

요연은 평소처럼 검의 연습을 하거나 하여들처럼 방주 내에서 경찰 같은 위치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잘 하지 않고 내 옆에서 호위를 하는게 그녀의 주 일상이었다.

슈는 방주의 연구에 들어갔다. 원래 태생부터가 마법사이기도 하고 방주란 것의 기능이 완전히 해명된 것도 아니어서 연구자로서는 놓칠 수 없는 먹잇감인 것 같았다.

전투도중에 아군으로 편입된 두명의 옴팔로스는 현재 관제탑에서 조정중이었다. 어차피 일회용이라는 생각이었는지 얼굴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능파와 함께 계획을 짜고 있다. 이번의 전쟁은 끝났지만, 앞으로 우리가 겪을 전쟁은 아니었지만 미래에는 전쟁이 일어날거다.

아마도, 이번 이상의 피해가 속출할 것이다. 이번의 불사나 케이슨을 위시한 카타스트로피는 온건한 자들이었다. 미래를 열기 위해 우리들과 일 대 일 승부를 벌였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미래의 적은 다르다.

뼛조각에 베어있는 오만함으로 지구상의 생명체에 군림하려 할 것이다. 그들은 강하고, 잔악하며 영리하다.

불사나 누님만큼의 강함은 없다. 하지만 이 세상은 힘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난 알고 있다.

절대 무너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국가도 반란에 의해 초토화된다. 강한 힘이 아니어도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것이 순리이듯.

머나먼 미래의 위협에 방주와 지구는 쓰러질지도 모른다.

"할아버지. 이거라도 좀 마시고 하세요."

"응? 아아. 잘 마실께."

책을 덮고 능파가 가져온 커피를 빙글거리다가 입 안으로 흘려넣었다. 내 입맛에 맞춘 뜨거움과 달달함이 세포 속으로 녹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방주에 있는 나의 집, 그곳에 있는 나의 방에서 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매일 밤 뭘 그렇게 쓰시는건가요?"

능파가 내가 덮은 책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린 나이답게 작은 체구가 귀여운 모습으로 흔들리자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보니 능파에게는 말하지 않았었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다는 의미가 강하겠지만 능파로서는 조금 불안할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다른 사람들의 어프로치가 강해지고 있었으니까.

나는 슬쩍 책표지에서 손을 땠다. 아직은 카타스트로피에 대해서도, 치우회에 대해서도 몰랐던 시절에 적어넣었던 문구가 빛났다. 능파가 아직 태어나기 전에 썼던 것이라 모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알고 있는 듯, 눈을 빛내며 들어올렸다.

"이거... '육아일기'네요. 어머니를 키우면서 쓰게 된 거였죠?"

"응. 의외로 아이답지 않아서 금방 그만뒀지만."

이걸 사고, 만들었을 때는 솔직히 막막했었다.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을리가 없고 그렇다고 도깨비의 생태를 알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잠시 학교를 다녀온 사이에 혼자서 일을 다 해버리거나 하는 바람에 걱정은 사라졌다. 그리고 걱정이 사라진 자리를 약간의 섭섭함이 채웠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지금에서야 난 육아일기를 들었다.

버리기가 아쉬웠기도 했겠지만 내 파란만장한 인생은 호지를 만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내가 이곳에 있을 수 있는 이야기나 다름 없다.

그렇기에 육아일기다.

내 이야기를 적는다면 이 책 밖에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흐음~ 일종의 소설.....인가요. 잘 썼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못 쓰지는 않았네요. 솔직히 의외에요."

"하하, 하긴. 안 어울리나?"

"안 어울린다기보다는 할아버지는 문체가 할아버지 답지 않달까요. 묘하게 익살스런 부분을 강조해 두셨고."

소소한 일상부분을 가리켜 보이며 말하는 능파에게 심장부근을 툭툭 쳐보였다.

"그런 건 심장에 안좋다구. 그런 부분을 강조하지 않았다면 볼 때마다 기억날거야."

"후후, 할아버지 다운 이유에요. 그런데 이걸로 끝인가요?"

"...뭐가?"

"이 소설의 내용."

"아아. 물론 거기서 끝이지."

카타스트로피와의 전쟁은 끝이났다.

육아일기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은 이미 그곳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육아일기지만요."

"멋대로 마음 속을 읽지말라니까."

난처하게 웃으며 육아일기를 받았다. 책상 위에 내려놓은 나는 슬며시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죽지 않았다.

본디 결말도 쓰지 못할 이야기였다.

하지만 난 이곳에 있었다.

우리라는 이름의 모두가 살아남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그 앞길이 아무리 참혹한 폐허가 남아 있더라도, 나아갈 것이다.

그것 밖에 하지 못 하니까.

우리는 뒤를 보지 못 하기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등을 맡겨오니까.

앞으로도... 우리는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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