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200)

회귀한 기레기가 겁나 잘한다

-박이건

# 1장 나는 기자다.

오전 8시.

출근길 1호선은 분주하다.

나는 바다 위를 떠다니는 해초처럼 열차가 움직이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렸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서 있는데 하필 앞에 여자가 나타났다.

20살이나 됐을까? 앳된 얼굴에 키는 150㎝ 정도로 작아 보이는 여대생.

본능적으로 매너손을 취했다.

괜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다.

만원인 지하철에서 치한으로 오해받는 것보다 수치스러운 일이 있을까.

그녀는 그러든지 말든지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고 스마트폰에 몰입했다.

발 디딜 틈 없이 인파로 가득 찬 전철 안.

바로 앞, 키 작은 여성의 스마트폰은 마치 TV처럼 내 눈에 생중계되었다.

딱히 보려던 생각은 없었으나 그녀는 페이스북으로 내가 어제 쓴 기사를 읽고 있었다.

<데프리카TV 대통령 BJ 모비딕, 여친 폭행 논란 속 애정 행각>

빠른 속도로 기사를 읽은 그녀는 ‘화나요’를 누르더니 댓글을 남겼다.

<……이걸 왜 봄??? 나참;;;;>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심히 공감했다.

그러게, 그걸 왜 볼까.

‘아무튼 고맙습니다, 키 작은 손님. 덕분에 당신 친구들도 제 기사를 보겠네요.’

나는 기자다.

그것도 페이스북 구독자만 천만 명이 넘는 매체의 기자.

특히 10대와 20대에게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이들 세대에서 가장 즐겨 보는 매체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언론사.

이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고 공유를 할수록 내가 쓴 기사는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SNS 알고리즘이 그랬으니까.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SNS가 등장하면서 미디어 환경은 극적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더는 종이 신문을 보지 않았고, 언론사나 기자의 이름도 기억하지 않았다.

대신 얼마나 자극적인지.

그리고 SNS에 얼마나 많이 공유되느냐가 기사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이렇게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서 SNS를 기반으로 하는 언론이 속속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일명 ‘소셜 언론’.

SNS상에서 일어나는 소스들을 선별한 뒤 알기 쉽게 가공하여 뉴스로 발행하는 매체다.

바로 내가 속해 있는 ‘오프라인’이 소셜 언론의 선두에 있었다.

이제 출범한 지 10년밖에 되지 않은 오프라인은 매출 규모도 컸지만, 기자 수도 30여 명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10년 전엔 나 포함 세 명밖에 없었는데.’

지금도 메이저 언론사라 할 순 없지만, 세간에 오프라인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었다.

* * *

“물러가라! 물러가라!”

대체 저 사람들은 질리지도 않나.

사무실 앞에선 매일 1인 시위가 펼쳐졌다.

재미있는 건 날마다 시위자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오늘은 40대쯤으로 보이는 아저씨 한 명이 피켓을 들고 목청껏 소리치고 있었다.

피켓에는 ‘오프라인 OUT! 기생 언론 사라져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왜 저러는 걸까 싶었지만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10대와 20대의 폭발적인 지지와 함께 오프라인은 또 다른 항목에서도 1위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한국인이 가장 불신하는 매체 1위.

사람들은 오프라인을 ‘기생 언론’이라 불렀다.

다른 언론사나 커뮤니티 등에서 정보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언론.

다른 언론사가 만들어 놓은 기사를 베껴서 기사를 만들어 내는 언론.

1인 시위 앞을 지나는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출근부터 힘이 빠진다.

“부사장님,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부사장님.”

한 명이 나를 보고 인사하자 금세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사무실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사무실 끝에 위치한 자리로 발을 옮겼다.

웃고는 있었지만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다.

부사장이라곤 하지만 겨우 36살이다.

또래의 여러 사람에게 인사받는 건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다른 자리보다 유독 높은 파티션에는 ‘오프라인 부사장 & 편집 국장 우세진’이라는 간판이 선명했다.

털썩.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마우스를 움직여 Never의 인기 검색어를 살폈다.

능숙하게 기사를 쓰고는 송고 버튼을 눌렀다.

띠링~

검색에서 송고까지 단 2분 만에 작성된 기사는 순식간에 많이 본 기사에 올랐다.

본문보다 긴 중요 키워드란에는 각종 해시태그가 걸려 포털 뉴스 노출에 유리했다.

중요한 기사였냐고?

아니.

어제의 폭행 논란에 이어 BJ 모비딕이 여친과 화해했다는 내용이었다.

모비딕의 트위터에서 따와서 내가 직접 쓴 기사는 한 줄에 불과했다.

내가 썼지만 뭐 이런 기사가 많이 본 기사에 오르는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덕분에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지만.

똑똑.

한참 다른 언론사 기사를 베끼고 있는데 누군가가 파티션 벽을 두드렸다.

대호였다.

5년 차인 대호는 10년 차인 나 다음으로 오프라인에 오래 다닌 녀석이었다.

“무슨 일인데?”

“오전 보고 드리려고요.”

“말해 봐.”

나는 대호를 쳐다보지도 않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혜미랑 진희가 아직 1개밖에 못 썼고요…….”

“뭐? 1개?!”

“네. 대신 저랑 진영이가 4개 써서…….”

“됐고! 야 지금 몇 시냐!”

대호가 흘깃 시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11시 반입니다…….”

“그래, 이제 점심까지 30분밖에 안 남았어. 그런데 아직 2개도 못 썼다고? 그래가지고 오늘 5개 다 쓸 수 있겠어?!”

내가 쏘아붙이자 사무실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넓은 공간에는 따딱따딱 키보드 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하아……. 오늘은 내가 대신 쓸 테니까 오후부터 잘하라고 그래.”

“네…….”

대호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오프라인에는 기사 할당제라는 게 있었다.

오전엔 최소 2개, 적어도 당일 5개의 기사를 써야 했다.

그래야 퇴근을 할 수 있었다.

잘 쓰는 친구들은 하루에 10개도 거뜬했지만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거나, 기사 베껴 쓰기를 뜻하는 언론계 은어인 ‘우라까이’를 잘 못 하는 친구들은 힘겨워했다.

오프라인 평균 근속 연수가 채 1년이 되지 않는 이유였다.

* * *

오프라인 사무실이 위치한 종로의 한 허름한 술집.

노란 백열등 아래 지글지글 익은 스팸과 계란 프라이가 식욕을 당겼다.

나는 뜨뜻한 스팸 한 조각과 함께 폭탄주 한 잔을 그대로 입에 털었다.

“크으……. 야 이대호, 말해 봐! 우리가 기자냐!”

“에이 부사장님 또 왜 그러세요~ 우리가 기자지 그럼 누가 기자예요.”

“쳇. 배알도 없는 녀석. 우리같이 우라까이만 하는 놈들이 무슨 기자냐. 도둑놈이지.”

“헤헤, 그래도 10대랑 20대한테는 우리가 최고 언론사잖아요.”

“어이구 순진한 놈. 걔들도 불신 매체 1위에 우리 오프라인을 찍는데, 최고 언론사는 무슨.”

“뭐 요즘 같은 시대에 SNS에서 많이 보면 장땡이죠, 뭐.”

“휴…….”

대호는 빠르게 폭탄주를 제조해 내 자리에 놓았고, 나는 그걸 그대로 들이켰다.

‘장땡은 장땡이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이야.’

내가 말없이 술만 마시자 이대호는 내 눈치를 살살 살피며 물었다.

“그런데 부사장님. 그 새로 오신 분들 있잖아요.”

“영업 팀?”

“네, 영업 팀이요. 그분들은 어디서 오신 거예요?”

“뭐라더라. 고려 일보랑 센터 일보, 서아 일보 영업 팀일걸.”

“헉! 진짜요? 와 완전 메이저에서 오셨네. 그런 분들이 여긴 왜 오셨을까요.”

“왜 오긴 왜 와. 사장이 돈 많이 준다고 꼬셨겠지.”

나는 대호의 빈 잔을 채우며 계란 프라이를 뜯었다.

바삭바삭한 흰자에 고소한 노른자가 식욕을 돋았다.

대호는 나한테 건배도 하지 않고 혼자 츄릅 술을 마시며 물었다.

“그런데 부사장님. 그럼 그거 진짜예요?”

“뭐가?”

“그…….”

“말해 봐, 짜샤.”

“그 요즘 우리 매출이 예전 같진 않잖아요? 페이스북에서 소셜 피로도 높아진다고 기업 계정 노출도는 줄이고 개인 계정 노출은 높이면서 오프라인 노출도도 떨어졌으니까요.”

나는 계속 말해 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사장님이 요즘 계속 말씀하시는 게 우리도 이제 기업 영업해야 한다고, 그걸로 돈 벌어야 한다고. 그게 오프라인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늘 말씀하시고요. 그럼 이제 우리 영업도 해야 하는 거예요?”

“야, 이대호.”

“네?”

내가 정색을 하자 이대호는 흠칫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넌 기업 삥 뜯는 게 맞다고 생각하냐?”

“어……. 아뇨, 그래도 이미 기성 언론사에서는 다 하는 거고.”

“야, 나는 차라리 우라까이를 할지언정 기업 삥 뜯는 건 진짜 기자가 할 짓은 아니라고 본다. 기업에 일부러 부정적인 기사 써서, 홍보 팀에서 연락 오면 광고비나 협찬을 요구해? 씨X 양아치도 아니고, 그건 진짜 아니지!”

“아니 저도 뭐 그게 좋다는 건 아닌데요. 우라까이나 삥 뜯는 거나…….”

“휴……. 그래서 네가 오프라인 다니는 거다 인마…….”

“네?”

“됐다. 가자.”

나는 서둘러 계산을 마치고는 나를 배웅하려는 이대호를 뿌리치고 혼자 택시에 탔다.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너나 나나…….”

“네?”

“아뇨. 창동이요.”

* * *

늦은 저녁이었지만 종로에서 창동까지는 시내를 통과해야 해서 1시간이나 걸렸다.

집에 들르기 전 편의점에서 소주를 두 병 샀다.

도저히 이런 기분으로 잠을 청할 순 없었다.

집에 도착한 나는 옷을 훌렁훌렁 벗어 던지고 침대에 기대 소주를 깠다.

창밖에서 달빛이 넘어와 마른오징어를 휑하니 비췄다.

‘이러려고 기자가 된 건 아닌데……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릴 때부터 한결같이 신문 기자가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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