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들이 밀집한 종로구.
거기서도 유명한 선지해장국 가게가 바로 나의 집이었다.
매일매일 기자들이 찾아왔고, 그들은 자신들의 무용담을 해장국 한 뚝배기에 남겼다.
기자는 나의 우상이었다.
기자가 되고 싶어 전공도 신문 방송 학과를 택했고, 대학에서는 학보사 회장도 했다.
사정사정해 연락처를 알아낸 다음 유명 기자들 인터뷰도 하러 다녔다.
‘엄마가 갑자기 쓰러지지만 않으셨어도…….’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랬다면 이 거지 같은 오프라인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함께 메이저 언론사 기자를 꿈꾸던 여자 친구와 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빌어먹을 재능이야.’
학보사 다닐 때는 빨리만 쓸 줄 알지 제대로 된 기사는 쓰지 못한다고 맨날 선배들에게 욕을 먹었는데 오프라인에서는 아니었다.
남들이 하루에 다섯 개를 쓸 때 나는 스무 개씩 기사를 쓸 수 있었다.
사장인 백철웅을 비롯해 동료 모두가 감탄했다.
포털에서는 내가 쓴 기사가 많이 본 기사에 걸렸고, SNS에서는 수십만 건의 공유가 일어났다.
오프라인에 다니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나는 더 많은 우라까이를 해 댔고, 어느덧 부사장이 되어 있었다.
오프라인도 처음에 들어왔을 때 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게 독이 될 줄은.
어느새 나는 대한민국 기레기의 대표 주자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나무위키의 기레기 항목에 내 이름이 버젓이 있을 정도였으니.
병에 있는 술이 줄어들수록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아이씨……. 들어간 술이 오줌 구멍으로 안 나오고 왜 눈물 구멍으로 나오냐 젠장.’
술이 달다.
달빛에 취해 잠이 들었다.
* * *
눈을 뜨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토할 것 같았지만 어쩐지 익숙한 냄새였다.
‘젠장. 어제 과음해서 이불에 토했나?’
불길한 생각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폈지만 어째 원래 있어야 할 전등 스위치가 보이지 않았다.
새벽이라지만 지나치게 어두웠다.
게다가 무척 좁은 느낌.
조금씩 어둠에 익숙해지자 방 안의 모습이 들어왔다.
나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천장까지 이어진 책상. 그 밑에 놓인 좁은 침대.
낡은 의자가 보였고, 책상 위에는 책들과 노트가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여기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공간이었다.
대학로 고시원.
오프라인에 들어가기 전 기자 준비를 하던 고시원이었으니 말이다.
문득 한쪽 벽에 걸린 달력의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2010년 1월 1일.
도대체 뭐가 뭔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분명 오늘은 2020년 4월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어째 통통하던 뱃살도 군더더기 없이 쏙 들어가 있고, 팔과 다리의 근육도 이상할 정도로 단단하다.
침대에 앉아 한참을 생각해 봤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하나였다.
회귀.
딸깍!
불을 켜고 주변을 살폈다.
창문 하나 없이 단출한 방.
이런 공간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는 걸까.
나는 큰 키가 아니다.
175㎝로 대한민국 남자 평균 키 정도 될 거다.
그런데도 이 방의 침대는 명백히 내 키보다 작았다.
발이 땅바닥에 닿으니 무릎을 웅크리고 잤던 기억이 났다.
방 안의 물건을 뒤지다 문득 영화 ‘트루먼쇼’가 생각났다.
‘누군가가 지금 나를 특정 공간에 몰래 가둬 두고 카메라로 중계하는 건 아닐까?’
나는 금세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에는 지나치게 디테일했다.
10년 전 내가 살던 곳.
10년 전 내가 입던 옷.
10년 전 공부하던 책들과 필기구.
무엇보다 저 핸드폰.
지금은 단종돼서 구하기도 힘든 은색 폴더폰.
술 마시다가 떨어뜨려서 앞쪽에 흠집이 많은 것도 그대로였다.
펄럭~ 펄럭~
나는 벽에 걸려 있던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달력에는 전년도 언론사 시험을 기반으로 각 언론사의 공채 기간이 적혀 있었다.
연출이 아니다.
나는 10년 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 * *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좁은 방 안에서는 도저히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기 힘들었다.
지금 상태로 더 있었다간 폐소 공포증에 걸릴지도 모르리라.
나는 두꺼운 외투를 입고는 방문을 열었다.
좁은 복도가 보였다.
내 방에서 나오는 불빛을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어둠의 공간.
방문을 닫고 복도를 따라 걸었다.
찌그덕 찌그덕.
발을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오래된 나무 바닥이 비명을 질렀다.
‘회귀가 아니라 무슨 판타지 던전 같은 곳에 빠진 건 아니겠지?’
다행히 차츰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복도가 끝나갈 즈음 신발장이 보였다.
내 신발로 추측되는 신발을 신고는 계단을 따라 내려왔다.
1층에 도착하니 유리문이 보였다.
꿀꺽.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차가운 겨울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자 몽롱했던 정신이 번뜩 깬다.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냥 일반적인 바깥 풍경이다.
‘휴.’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천천히 길을 걸었다.
새벽이라 그런지 오가는 이 없이 주차된 차들만 무심히 서 있다.
5분 정도 걸었을까.
대로가 나오면서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마로니에 공원.
나의 대학 시절 대부분을 함께했던 공간.
창동으로 이사한 이후에는 거의 와 본 적이 없었는데 괜히 반갑다.
‘아련하네…….’
말없이 공원을 거닐던 나는 갑자기 멈춰 섰다.
건너편 건물의 옥상에 설치된 대형 옥외 광고판의 문구가 보였기 때문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성삼 그룹의 신년 광고였다.
2010년이라니.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회귀는 진짜였다.
광고판을 한참 바라보던 차에 떠오르는 장소가 한 곳 있었다.
‘진짜 2010년이 맞다면, 분명 있을 거야!’
고시원에서 생활했을 무렵, 자주 가던 24시 감자탕집.
뼈 해장국이 단돈 4천 원.
돈 한 푼 아쉬운 언시 준비생(언론 고시 준비생)에게는 너무나 착한 가격이었다.
그렇다고 재료가 부실하거나 맛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가 해 주시는 선지해장국과 비교해도 크게 맛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으니.
그래서 공부하다 피곤하거나 지칠 때면 늘 그곳에서 뼈 해장국을 사 먹곤 했었다.
그러다 오프라인에 입사한 뒤로는 가 보지 못했었는데, 언젠가 대학로에 올 일이 있어 찾아가 봤더니 가게가 보이지 않았다.
이전했다는 내용도 보이지 않고 해서 무척 아쉬워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나도 모르게 그만 횡단보도를 건너 감자탕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 코너만 돌면 분명 그곳이 있을 거라는 기대와 함께.
‘나이스!!!’
나는 오랫동안 생사를 모르고 지내던 이산가족을 상봉한 사람처럼 감격에 겨워 멍하니 감자탕집 간판을 바라보았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다시 만나도 이보다 기쁘진 않으리라.
정신을 차리고 감자탕집에 들어섰다.
새벽이라 그런지 손님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구석 테이블에서 졸고 있던 식당 이모가 딸랑거리는 종소리에 눈을 뜨고는 몸을 움직였다.
나 때문에 깬 것 같아 살짝 미안했다.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웃으며 주문했다.
“이모, 여기 뼈 해장국 하나요.”
주문한 지 오래지 않아 뼈 해장국이 나왔다.
뜨거운 김을 내뿜는 뚝배기에는 어마무시한 양의 고기가 가득 실려 있었다.
‘역시 내가 기억하는 그 집 맞구나!’
나는 걸신들린 사람처럼 해장국을 폭풍 흡입했다.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았는지 눈을 반만 뜨고 있던 이모가 그런 나를 보더니 눈이 솔방울만큼 커졌다.
“어휴 학생! 천천히 먹어. 그러다 입천장 다 데겠다!”
“헤헤, 괜찮아요. 이거 진짜 너무 먹고 싶었거든요. 10년 만에…….”
“10년? 여기 생긴 지 5년밖에 안 됐는데?”
“아…… 아녜요. 10년 된 가게만큼 맛있다고요.”
“아무튼 천천히 먹어야지. 안 되겠다, 잠깐만.”
이모는 주방 쪽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남은 음식을 해치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뚝배기 안에 가득 있던 고기가 어느새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접시로 옮겨졌다.
만족스럽게 국물을 마시고 있는데 이모가 주방에서 뼈 해장국 한 그릇을 새로 들고 나왔다.
터억!
“응? 이건 뭐예요?”
“새벽 손님 특별 서비스!”
“그런 것도 있어요?”
“너무 잘 먹으니까 주는 거야. 이건 좀 천천히 먹어.”
“고맙습니다, 이모. 자주 올게요.”
나도 모르게 목이 메려던 찰나, 이모 뒤로 TV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뉴스였다.
리포터는 오늘부터 인터넷을 통해 성범죄자 신상 공개가 이뤄지고 있다고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당시 언론 고시를 준비하며 중요 이슈라고 체크해 두고 공부했던 기억이 났다.
나는 의자를 TV 쪽으로 돌리고서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래.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10년 전인 2010년으로 회귀한 게 틀림없어. 고시원도 그렇고, 이 폴더폰도 그렇고, 감자탕집도 그렇고. 게다가 아직 오프라인에 들어가기 전 언시 준비생일 때로 돌아왔고.’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분명 퇴근하고 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