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200)

내가 비트코인에 집중했던 것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은 100만 원이 전부였다.

곧 고시원 생활비 30만 원에 스마트폰 할부금도 나갈 터이다.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기에는 밑천이 너무도 모자랐다.

곧 오프라인에 입사한다 쳐도 월급은 최저 임금보다 조금 더 많을 터이다.

‘주식은 평소에 안 해서, 뭐가 오를지 잘 몰라. 성삼 전자는 가지고만 있으면 돈이 된다지만 한 주당 가격이 너무 비싸서 사는 건 무리고. 복잡하게 생각하느니 그냥 맘 편히 비트코인이 오르기만 기다리자.’

지금은 1비트코인이 0.8원에 불과했지만 마음만큼은 무척 든든했다.

이게 얼마까지 오르는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 * *

토요일 오후.

마로니에 공원을 홀로 산책하고 있는데 등록되지 않은 번호로 연락이 왔다.

하지만 나는 그 번호가 누구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백철웅.

오프라인의 사장인 백철웅의 번호였다.

‘전화가 어제 올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확인도 해 보고 그랬나? 지원서를 낸 지 삼 일째에 전화가 왔네.’

지원자가 나 말고는 단 한 명도 없었을 텐데 유명 언론사에 합격했다는 사람이 자신의 매체에 지원서를 냈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사실이 맞는지 확인하다가 늦게 연락을 했으리라.

게다가 오늘은 토요일.

보통이라면 다음 주 월요일에 연락했을 텐데.

상대가 얼마나 애가 탄 지 한눈에 보였다.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혹시 우세진 씨의 핸드폰이 맞습니까?

낮고 굵은 목소리.

백철웅의 목소리가 맞았다.

나는 짐짓 그와 처음 이야기하는 것처럼 전화를 받았다.

“네, 제가 우세진입니다마는 누구시죠?”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오프라인의 사장 백철웅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지원하셔서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사장님.”

-네, 저도 반갑습니다.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오늘 잠시 뵐 수 있을까요?

“네? 오늘이요?”

-네. 갑자기 전화를 드려 토요일에 뵙자고 하는 게 실례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만 꼭 만나 뵙고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회귀 전에는 지원서를 낸 다음 날 연락이 와서는 차주에 사무실에서 보자고 말하던 그였다.

그래도 명색이 사장인데 너무 공손한 모습이 낯설었다.

“아. 네. 시간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니 우진 씨. 혹시 거주지가 어디실까요?

“대학로 쪽인데, 이쪽으로 오시려고요?”

-물론이죠. 갑작스러운 부탁이었는데 이리 흔쾌히 수락을 해 주시니 당연히 제가 가야죠.

“네. 그러면 4시쯤에 제가 잘 아는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문자로 주소 남겨 주시면 거기서 뵙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속에서 피어올랐다.

딱히 권위를 내세우거나 무례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렇게나 공손한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나는 일개 지원자였고, 상대는 사장 아닌가.

‘세상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네.’

* * *

토요일 오후의 카페는 어디든 사람이 많았지만 이곳만큼은 한적했다.

고시원 근처의 카페 ‘적혈마’는 그 맛에 비해 찾는 이가 드물었다.

외진 곳에 있었던 것도 그렇지만 인테리어가 너무 허섭한 탓이다.

카페 이름도 유치했다.

‘적혈마는 무슨…… 무협지 주인공도 아니고. 여긴 인테리어 공사만 잘해도 대박일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는데, 전화기가 울렸다.

백철웅이었다.

전화를 받고 주변을 살피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백철웅입니다.”

“반갑습니다. 우세진입니다.”

우리는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질질 끄는 걸 싫어하는 백철웅답게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왜 오프라인입니까?”

나는 백철웅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50대의 나이였지만 나름 멋쟁이에 옷과 구두는 깔끔했다.

안경 너머 그의 두 눈은 진지했다.

메이저 언론사에서 영업 팀을 불러올 때만 해도 그와 거칠게 언쟁을 벌였다.

영업은 아니라는 나의 말에 그는 그럼 어떻게 회사를 키우냐며 되물었다.

실제로 페이스북 노출도가 줄면서 매출이 큰 폭으로 내려가고 있었기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뉴미디어에 대한 그의 신념을 의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소셜 언론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2010년.

그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법인을 설립하여 뉴스 서비스를 시작했고, 거대한 언론사로 오프라인을 키워 냈다.

나는 앞으로 살짝 상체를 젖혀 그의 눈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저는 소셜 언론에 저널리즘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철웅은 나의 말이 의외였는지 살짝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기분 좋은 미소를 보였다.

“저랑 정확히 생각이 일치하시는군요.”

“기성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바닥입니다. 이제 누구도 언론사나 기자를 기억해서 기사를 보진 않죠. 그냥 포털에 나온 제목을 보고 클릭할 뿐.”

백철웅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유튜브 등이 새로운 매개 창구가 될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술을 기반으로 멋진 매체를 만든다면 그 누구도 소셜 언론을 무시할 순 없을 거예요.”

“맞습니다. 저도 똑같이 생각합니다. 어쩜 나이도 어리신 분이 이렇게 멋진 생각을 하시는지.”

그는 내게 회귀 전과는 다른 제안을 해 왔다.

“사실 저희 오프라인은 사장인 저와 이사인 제 후배 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후배는 개발자라 오프라인의 홈페이지를 제작하고, 기자는 저 혼자뿐이죠.”

그가 후배이자 이사라고 말한 이는 오프라인 홈페이지만 개발하고 몇 개월 뒤에 회사를 나가 그 뒤로는 얼굴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만약 우리 오프라인에 오시게 되면, 실질적으로 기사 대부분은 우세진 씨 혼자 써야 할 텐데 가능하시겠습니까?”

기사 쓰는 거야 질릴 만큼 해 봤다.

그리고 사장이란 할 일이 많은 자리다.

혼자 영업도 해야 하고, 홍보도 해야 하고, 주변에 사업과 관련해서 할 일이 많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고맙다며 내 손을 번쩍 잡더니 손을 흔들었다.

“고맙습니다. 대신 일반 평기자가 아니라 부사장의 자리를 제안 드리고 싶습니다.”

“부사장이요?”

“네 세진 씨가 오시게 되면 세 명인 조직이 되어서 실질적으로 그 밑에 사람은 없겠지만, 조만간 사세를 키워 더 많은 사람을 뽑아야죠. 어떻습니까? 연봉도 4천만 원을 드리겠습니다.”

4천만 원? 부사장?

회귀 전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4천만 원은 입사하고 8년째가 되던 해.

부사장의 직함을 달고서 비로소 얻어 낸 성과였다.

그전에는 최저 임금보다 살짝 높은 금액을 받았었는데 4천만 원이라니.

물론 대기업이나 메이저 언론사에 취업한 친구들의 초봉은 이와 비슷했기에 놀랄 만한 금액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오프라인에서만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너무 놀라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이번에는 더욱 놀라운 제안이 들어왔다.

“아무래도 만족스럽지 않으신 것 같은데…… 그럼 저와 같이 공동 사장으로 해서 연봉 5천 어떠십니까. 이 이상은 저도 무리입니다.”

공동 사장?!

5천만 원?!!!

“젊은 형씨. 여기 우리 카페 앞 고시원에 사는 분 맞죠?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승낙하는 게 어때요? 듣기에 나쁜 제안도 아닌 것 같은데.”

카페 사장이 불쑥 커피를 리필해 준다고 옆에 와서는 말했다.

수염 가득 산적 같은 얼굴에 머리는 며칠을 감지 않았는지 덥수룩했다.

하지만 눈동자만큼은 아이처럼 초롱초롱했다.

50대의 신사가 20대의 젊은이에게 공손하게 부탁을 하는 것은 물론 공동 사장과 5천만 원이라는 말을 꺼내니 호기심이 발동한 모양이다.

그래도 모양새라는 게 있다.

여기서 덜컥 ‘좋습니다.’라고 제안을 받아 버리면 안 된다.

“너무 파격적인 제안이라…… 생각할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

“역시 신중한 분이시네요. 좋습니다. 주말 동안 생각해 보셨다가 차주 월요일 오전에 연락을 주시겠습니까?”

“고맙습니다. 사장님. 월요일 오전까지는 꼭 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저도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백철웅이 먼저 자리를 떴다.

그가 떠난 뒤로도 나는 한동안 자리에 계속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물론 HBS를 수석 합격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달라지다니.

부사장의 위치까지 힘겹게 올랐던 생각을 하니 살짝 허탈하기까지 했다.

“거, 뭐 하는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하요. 앞의 아저씨가 아주 쩔쩔매더구먼. 하하.”

카페 사장은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웃으며 내가 물었다.

딱히 대답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앞으로 커피 마시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요. 내가 젊은 형씨한테는 공짜로 내려 드릴 테니.”

“네?”

“보통 분이 아닌 것 같아 내가 친해지고 싶어 그런 거니 부담 갖진 마시고요. 하하.”

공짜 커피라.

나쁘지 않다.

게다가 인테리어랑 카페명만 아니라면 이 집 커피는 수준급의 커피가 분명하니까.

카페 한쪽 벽에 걸린 낡은 뻐꾸기시계가 나도 공짜 커피 한 잔 달라는 듯 뻐꾹 소리를 냈다.

# 2장 한식당

월요일 오전.

나는 직접 오프라인의 사무실이 있는 종로구의 허름한 건물에 도착했다.

백철웅과 그의 후배 한무원이 반갑게 나를 맞았다.

“잘 부탁합니다. 우 사장.”

“반갑습니다. 우세진 사장님. 한무원입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백 사장님. 그리고 한 이사님.”

“그나저나 이렇게 바로 와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만…… 아니 잘됐네요. 오신 김에 함께 가시죠!”

“네? 어디를요?”

백철웅은 한무원을 혼자 사무실에 남겨 둔 채 나를 데리고 근처 고급 한정식집에 데려갔다.

누구를 만나느냐고 물어봐도 대답도 없이 그저 따라오라고만 했다.

전원 한복을 입은 종업원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한옥으로 된 외부도 그렇고 내부 인테리어도 그렇고 무척이나 호화찬란한 식당.

백철웅이 종업원에게 누군가의 이름을 꺼내자 종업원이 서둘러 안쪽 깊숙한 방으로 안내했다.

‘누가 있길래…….’

나는 일단 백철웅의 뒤를 따라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오! 백 사장님 어서 오세요.”

“바쁘실 텐데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회장님?’

오프라인에 백철웅 위로 회장이 있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었다.

회장을 둘 정도로 엄청난 회사도 아니었고.

그나저나 회장이라고 하기에는 젊었다. 40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그는 백철웅의 뒤에 있던 나를 가만히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뒤에 있는 분이 이번에 함께 사업을 하기로 하셨다는 그분이로군요?”

“네. 정말 엄청난 인재라 제가 삼고초려 끝에 모셔 왔습니다.”

“하하. HBS 수석 합격자라니. 그런데도 그걸 마다하고 스타트업에 합류하시다니. 보통 분은 아니시군요.”

‘킁. 삼고초려는 무슨.’

그나저나 내가 오프라인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것은 불과 몇 분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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