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200)

만약 내가 오프라인에 오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려고 백철웅은 저런 말을 했을까.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얼굴에 웃음을 띤 채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우세진이라고 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우 사장님. 저는 원화성이라고 합니다.”

“네? 원화성?!”

내가 깜짝 놀라며 그를 쳐다보자 그가 의외인 듯 백철웅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 혹시 저를 알고 계시나요?”

모를 리가 있나.

원화성은 2대 포털인 ‘넥스트’의 창립자이자 현재는 대형 벤처 캐피털인 ‘엔젤 머니’의 회장이었다.

IT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모를 수가 없는 유명 인사.

“이야, 젊은 친구가 의외네요. 여기 식당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저를 모를 텐데요. 하하.”

“그럴 리가요 회장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 아닙니다. 저 듣보잡이에요. 듣보잡.”

원화성이 겸손을 떨었지만 그는 국내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재력가였다.

그나저나 이상했다.

내가 알기로 오프라인이 백철웅의 인맥으로 여기저기 소액의 투자를 받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원화성의 자금을 받은 적은 없었다.

이내 방으로 고급 식사가 제공되었고 나는 잠자코 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나저나 백 사장님. 오늘 저를 꼭 보고 싶다고 하셨다면서요.”

“네. 회장님. 제가 초면에 무리한 부탁을 드렸는데,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뭐, 저도 이광우 국회의원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굳이 시간을 내지는 않았겠죠.”

이광우 국회의원.

현재 야당인 민주 통일당의 실세 중의 실세.

그러고 보니 백철웅은 이광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나도 오프라인 부사장을 달고 나서 몇 번 술자리에 불려 갔던 게 기억났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회장님. 오늘은 다름이 아니라 왜 저희에게 투자를 하셔야 하는지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네. 저를 보고 싶어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비슷한 말을 하시곤 하죠.”

원화성은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 편하게 식사를 시작했다.

“회장님도 아시다시피, 한국에 아이폰3GS가 출시되면서 거대한 팬덤이 형성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고작 핸드폰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섰고 어떤 이들은 밤을 새우기도 했죠.”

원화성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식사를 계속했다.

“그뿐입니까? 트위터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도 점점 늘고 있고요.”

“그렇죠.”

“유튜브 이용자는 아직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점점 시대는 텍스트가 아니라 영상을 요구하게 될 겁니다. 분명히요!”

원화성이 식사를 멈추고 고개를 들어 백철웅을 쳐다보았다.

“그래서요?”

“하지만 기성 언론은 변화가 없을 겁니다. 제가 기성 언론의 기자 생활을 30년 가까이 했기에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기성 언론이 아닌 소셜 언론의 대두는 시대의 사명입니다, 회장님!”

시대의 사명이라는 말에 백철웅은 그 어느 때보다 힘을 주어 말했다.

시대의 사명이라.

사실이었다.

기성 언론의 힘은 점점 약해졌고 소셜 언론의 힘은 커졌으니.

다만 소셜 언론이 기성 언론을 압도할 정도로 신뢰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더 많이 공유되고, 소비되었을 뿐.

“흠……. 저도 일정 부분 동의합니다. 기존에 있던 언론이 네트워크와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는 제약이 있죠. 기자 사회가 기술 기반이 아니기도 하고.”

“네 맞습니다. 회장님. 정확하십니다!”

“그렇지만, 수익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뭘 어떻게 돈을 벌겠다는 거죠?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기사가 많이 공유된다고 돈을 벌 수 있나요?”

백철웅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자연스럽게 답했다.

“물론입니다. 클릭 수가 늘어나 오프라인 홈페이지의 트래픽(서버의 데이터 전송량)이 늘어나면 비싼 광고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음……. 광고료라. 뭐 나쁘진 않죠. 하지만 그걸로 기성 언론을 압도할 수 있을까요? 제가 알기로 기성 언론은 부동산에도 투자하고, 교육 사업도 벌이고 언론 사업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수익을 얻고 있어요. 그들도 홈페이지 광고료를 받고 있을 텐데 게임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 그건…….”

백철웅은 설마 원화성이 이 정도로 언론 사업에 이해가 밝은지 예측하지 못했는지 쉬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것 보세요. 저를 보자고 하셨으면서 이 정도 준비밖에 안 하시다니. 실망했습니다. 백 사장님. 이광우 의원이 하도 좋게 이야기하기에 기대했는데…….”

백철웅은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식사는 남았으니까 그럼 이제 사업 이야기 없이 편하게 먹읍시다.”

원화성이 콧방귀와 함께 갈비찜을 집으려던 그 순간.

“회장님. 제가 한 말씀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원화성과 백철웅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쏠렸다.

백철웅의 표정에는 놀라움이.

원화성의 표정에는 흥미로움이 보였다.

“뭔가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요?”

“네. 회장님. 회장님 말씀이 너무 정확해서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하하. 저도 이 바닥에 오래 있다 보니 이 사람 저 사람 사귀어서요. 주워들은 건 많죠.”

“네. 그런데 회장님도 아까 동의하셨다시피 기성 언론은 점점 하락세를 겪고 있습니다.”

“그렇죠. 종이 신문 보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요. 하지만 방송사는 다르지 않습니까? TV 뉴스는 모두 보잖아요?”

“아니요. 아이폰이 등장했으니 이제 스마트폰의 시대가 올 겁니다. 모두 손안의 조그마한 기계만 쳐다보고 TV에 대한 수요는 점점 줄어들 겁니다.”

“음. 저도 아이폰이 엄청난 혁신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이제 겨우 첫발이에요. 성삼 전자에서 내세운 유니버셜은 아이폰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고요. 스마트폰의 시대라는 건 조금 시기상조 아닐까요?”

“지금은 그렇겠죠. 하지만 곧 따라잡을 겁니다. 성삼 전자의 패스트 팔로워 전략의 성공에는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하하. 자기 확신이 과하시네요.”

“아니요. 이건 자기 확신이 아닙니다. 백철웅 사장님의 말씀처럼 시대적 사명이죠. 한번 스마트폰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은 절대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원화성은 한동안 내 얼굴을 뻔히 쳐다보고는 물었다.

“뭐 그렇다고 칩시다. 그래도 그걸로 뭘 어떻게 돈을 벌겠다는 거죠?”

BM(수익 모델)에 대한 원화성이 질문이 재차 돌아왔다.

나는 살짝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광고료를 국내 한정으로 한다면 분명 파이가 적을 겁니다. 하지만 글로벌로 확장한다면 무한한 가능성이 생기죠.”

“글로벌? 뉴스 사업을 글로벌로 확장시키겠다는 겁니까?”

“네. 요즘 외국에서 대학 나온 친구들 많습니다. 취업이 쉽지 않아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죠. 그들을 채용해서 글로벌로 뉴스를 발행하면 됩니다.”

“호오. 그렇죠. 굳이 외국물 먹지 않더라도 국내에 영어 잘하는 친구들은 널리고 널렸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모두 기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회장님. 하지만 저널리즘 교육이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닙니다. 매뉴얼만 정확하다면 누구나 금방 보고 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요? 그렇다면 굳이 언론 고시라는 말도 없었을 텐데요.”

“그런 말은 기성 언론사 기자들의 밥그릇 지키기에 가깝습니다. 진입 장벽을 높게 쌓아서 성역을 만드는 거죠. 하지만 신문이 지금처럼 대중화될 수 있었던 것은 1센트(페니)로 판매된 페니 신문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페니 신문이요?”

“네 고작 1페니에 살 수 있는 값싸고 재미있는 뉴스로 가득한 신문이었죠.”

“그건 흥미 위주의 황색 언론 아닙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신문과 언론의 출발이었습니다. 지금처럼 견고한 저널리즘은 후대에 만들어진 거고요.”

“그렇다면 우 사장은 지금의 저널리즘이 올바르지 않다는 말입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의 저널리즘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어려워졌습니다. 그게 일반 대중의 니즈에 맞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저널리즘이라는 게 쉽지 않으니까 그만큼 돌아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무나 언론사를 만드니까 언론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오프라인은 아무나가 아닙니다. 저와 백 사장님은 오프라인은 한국 최고의 언론사로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원화성이 턱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뭔가 쐐기가 필요했다.

“그뿐 아닙니다. 유튜브에서는 영상을 올리면 수익을 나눠 줍니다. 지금은 유튜브 이용자가 많지 않지만 곧 모두가 유튜브에 올라타려고 아우성일 겁니다. 저희 오프라인이 유튜브 뉴스의 표준이 되겠습니다, 회장님!”

나의 말을 들은 원화성이 잠시 양해를 구하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응 진표야. 나 화성이다. 그래 별일 없고? 내가 뭣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러는데. 혹시 유튜브 수익이 좀 괜찮나?”

잘은 모르겠지만 유튜브의 관계자와 통화를 하는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으응. 그래, 그렇단 말이지? 올해부터 새롭게 파트너 판매 광고도 하고, 광고주와 직접 협의도 하고 그런다고? 그래서 수익이…… 으응. 알았어. 고맙다. 조만간 술 한잔하자. 응.”

그리 나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전화를 끊은 원화성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아니, 무척이나 심각했다.

백철웅은 긴장한 듯 나를 슬쩍 쳐다보더니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원화성이 젓가락을 놓더니 주문 벨을 눌렀다.

곧 종업원이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갑자기 원화성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말에 종업원은 물론 백철웅과 나 역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네. 여기에서 제일 비싼 술이 뭡니까?”

“아. 최고로 비싼 술이라면…… 잠시만…….”

“아닙니다. 그냥 젤 비싼 거 아무거나 두 병 부탁합니다.”

“아 네네. 알겠습니다.”

그때부터 방의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백철웅의 얼굴에는 화색이 가득했다.

원화성도 기분이 좋은 듯 연거푸 잔을 비웠다.

“백 사장, 그리고 우 사장. 내가 얼마나 투자했으면 좋겠소?”

백철웅은 원화성의 눈치만 살피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한…… 10억이면…….”

“백 사장님 술잔이 비었네요. 여기 받으시죠.”

“아……. 고맙네.”

나는 서둘러 백철웅에게 술을 따랐다.

10억이라니.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거면 뭐 하러 원화성을 불렀단 말인가.

원화성과 엔젤 머니는 투자금이 크기로 유명했다.

몇백, 몇천억이 움직였다.

그런 상대에게 10억은 애들 장난이었다.

‘원화성의 기분도 좋아 보이는데, 그 정도로 그칠 순 없는 노릇이야.’

나는 원화성에게도 술을 따르며 잠시 생각했다.

어차피 투자받을 거 이왕이면 크게 질러 버리는 게 이득이다.

몇억 받아 봤자 두세 건의 단신 기사가 전부일 거다.

하지만 백억 단위 투자라면?

충분히 이슈 거리가 될 수 있다.

엔젤 머니가 신생 매체에 거액을 투자했다고 소문이 나면 여기저기서 무슨 일인지 궁금해할 테니까.

나는 마음을 굳히고 말문을 열었다.

“백억. 백억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회장님.”

나의 말에 백철웅은 물론이고 원화성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 백억이라고 했소?”

원화성이 실눈을 뜨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백억 맞습니다.”

원화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내게 술을 따랐다.

술잔에는 한 치의 여유도 없이 술이 가득 찼다.

그는 한참이나 내 눈을 쳐다보더니 돌연 방긋 웃으며 말했다.

“뭐…… 까짓거. 우 사장이 마음에 들었으니 해 드리죠. 백억!”

무려 100억이 오프라인에 투자되는 순간이었다.

* * *

거하게 낮술을 먹고 사무실에 돌아오는 길.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백철웅에게 살짝 물었다.

“그런데 백 사장님.”

“아이고 우리 복덩어리 우 사장님. 말씀하세요.”

평소와는 다르게 콧소리가 가득 낀 그의 목소리가 컸다.

“원화성하고는 언제 약속을 잡으셨습니까? 거물이라 약속 잡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하하. 토요일이요. 우 사장하고 헤어지면서 이광우 의원한테 연락해서 사정사정 부탁했죠. 다행히 오늘 시간이 있다더군요.”

“제가 여기 안 왔으면 어쩌려고 그런 거짓말을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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