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200)

“네?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공동 사장으로 합류한다는 말이요. 저는 분명 오늘 확답을 드리겠다고 하였는데, 원화성과의 약속은 그 전에 잡아 두시지 않으셨습니까?”

“하하 감입니다 감. 내가 기자 생활만 25년을 했어요. 척 보면 느낌이 와요. 우 사장은 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베테랑 기자의 감이라.

취재해 본 적이 없어서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지만,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자본이 별로 없으니 저를 공동 사장 시켜 주신 건 이해하겠는데, 그래도 투자받는 건 아깝지 않습니까?”

“왜요?”

“아니, 투자를 받는 순간 더 이상 회사가 내 것이 아니잖아요. 투자자의 회사지. 그것도 무려 백억 원. 우리는 이제 그저 원화성이 나가라면 언제라도 나가야 하는 바지사장인데요.”

“하하하하. 우 사장. 아직 어려서 그런지 잘 모르네요.”

“네?”

“원화성은 이쪽의 전문가가 아닙니다. 투자자죠. 우리가 나가면 누가 오프라인을 키웁니까? 그리고 그의 돈이 있으면 10년 걸릴 걸 단 2년 만에 이룰 수 있겠죠. 안 그런가요?”

그의 말이 맞았다.

과연 승부사 백철웅이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네.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오늘 원화성에게 투자받을 수 있는 확률을 어느 정도로 보셨나요?”

백철웅은 잠시 자리에 멈춰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흐음. 투자받을 확률이라…… 10%? 아니 5%? 하지만…….”

“하지만?”

“아침에 우 사장이 오면서 뭔가 될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70%? 하하하.”

70%라니.

도대체 그는 나의 뭘 믿고 그랬을까.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 * *

엔젤 머니가 신생 매체에 백억을 투자한다는 소문은 금세 퍼졌다.

메이저 언론에서도 경제면에 꽤나 중요하게 해당 이슈를 다뤘고, 방송 뉴스에도 나왔다.

‘듣보잡 매체에 백억이라니. 무슨 일인가 싶겠지. 게다가 직원도 겨우 3명뿐인데 말이지.’

“일단 자본금은 확보했으니, 사람을 뽑아야지.”

“물론입니다. 백 사장님. 제가 좀 생각해 본 게 있는데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나의 말에 백철웅과 한무원은 당연하다는 듯 허리를 숙여 경청했다.

공동 사장이라는 것도 있겠지만 원화성에게 백억을 따낸 영향인지 그들은 나의 말 한마디도 가볍게 흘리지 않았다.

“일단 취재는 나중이라고 생각합니다.”

“동감합니다.”

“그래서 취재 기자를 뽑기보다는…… 외국어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을 한 팀. 그리고 영상을 찍고 편집할 수 있는 팀을 하나. 마지막으로 단문을 감각적으로 잘 쓸 수 있는 팀을 하나 마련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원화성과 이야기하면서 나왔던 것들이로군요.”

“맞습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SNS. 그중에서도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튜브니까요. 국내 계정뿐 아니라 해외 계정도 같이 돌리면서요.”

“그런데 그러면 그들도 기자라고 부릅니까?”

한동안 말이 없었던 한무원이 궁금한 듯 물었다.

“네. 물론입니다. 그들도 기자입니다. 번역을 하든, 글을 쓰든 영상을 찍든 모두 동일합니다. 월급도 같고 대우도요.”

“그렇게 할 필요가 있나요? 기자야 뭐 언론사의 핵심이니까 그렇다 쳐도, 영상 쪽은 최저 임금만 줘도 한다는 사람이 널렸을 텐데.”

“아니요. 그건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는 인재가 오프라인에 오지 않을 겁니다. 업계 최고 대우에, 어떠한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단호하게 이야기하자 한무원은 아쉽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가 말한 대로 회귀 전 오프라인은 그랬다.

싼값에 젊은이들을 불러 모아 마음껏 착취하고선 그들이 제풀에 떨어져 나가면 또 새로운 사람을 뽑았다.

특히 영상 쪽이나 개발 쪽, 디자인 쪽은 글을 쓰는 기자들과는 대우가 크게 달랐다.

언론사의 핵심은 기자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였다.

‘기자들조차 최저 임금보다 조금 더 많은 수준이었지만.’

인건비가 낮으니 매출과 영업 이익은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부에 경험이 쌓이지 않았다.

죄다 나가 버리는데 경험이 쌓일 리가 있나.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잡플래닛과 블라인드 등 기업 정보 및 리뷰를 남기는 사이트가 등장하면서 여론은 점점 오프라인에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오프라인을 나간 이들이 원색적인 비난을 남긴 것이었다.

외부인이 아니라 한때 오프라인에 몸을 담갔던 이들의 비난이었기에 더 가슴 아픈 일이었다.

당연히 회사에 남아 있는 자들의 사기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런 악순환을 막기 위해선 처음부터 제대로 된 규칙을 세워야만 해.’

게다가 백억의 투자금.

그 뒤에는 국내 최고 자본가인 원화성과 엔젤 머니가 버티고 있었다.

돈 몇 푼 아끼자고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된다.

“그럼 인재 채용과 부서 편성은 우 사장에게 모두 맡기고 나는 외부 홍보와 영업에 집중하겠습니다.”

“저는 홈페이지랑 서버 구축에 집중하도록 하죠.”

“네. 저를 믿고 맡겨 주신 만큼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나는 다음과 같이 3개의 부서를 편성하였다.

우선 국제부.

외신 번역 및 국내 기사 번역을 전담한다.

영어 두 명에 중국어 한 명이면 충분하다.

이어서 영상부.

영상 뉴스 생산을 전담한다.

촬영 셋에 편집 둘. 그리고 기획 한 명.

마지막으로 소셜부.

오프라인 홈페이지에 국문 기사를 쓰고 이를 각 SNS 채널에 최적화해서 유통시킨다.

트위터 두 명, 페이스북 두 명.

‘일단 3개 부서에 13명이면 충분하다. 그 이상의 인력은 오프라인을 키우면서 추가로 뽑으면 되니까.’

나는 다음과 같은 채용 공고를 올렸다.

<꿀잼 콘텐츠로 세계 정복할 사람 여기여기 모여라!>

SNS로 대박을 노리는 멋쟁이 기업 오프라인에서 글 좀 쓰고,

영상 좀 찍을 줄 아는 인재를 찾습니다.

다음을 읽어 보고 조금이라도 해당된다면 망설이지 말고 지원 고고!

당신의 저널리즘을 응원할 뜨거운 선배들이 기다리고 있다고욧!

‘현기증 나니까 빨리 와요~’

이런 이들을 공개 수배합니다!

국제부 00 / 영상부 00 / 소셜부 00

(중략)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너! 지금 바로 로켓에 탑승하세요!

내가 낸 채용 공고는 순식간에 이슈의 중심에 섰다.

실제 구직 중인 사람이 아니더라도,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며 각종 커뮤니티에서 퍼 간 탓에 구직 사이트의 서버가 터져 나갈 정도였다.

혹자는 기존의 형식을 처참하게 파괴한 재기발랄한 채용 공고라며 극찬했다.

형식뿐만이 아니었다.

부서에 상관없이 모두 기자 직함과 동등한 대우를 보장했다. 학력과 연령, 성별, 학점 등 실력과 관계없는 것들은 전혀 보지 않는다는 내용도 구직자의 흥미를 끌었다.

‘사실 2020년에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채용 공고 문구지만 2010년에는 파격이겠지.’

채용 공고는 대박이었다.

무려 6천여 명이 신생 매체에 지원하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13명 뽑는 데 6,483명이라니…… 무려 500 대 1의 경쟁률이네!”

“이 정도면 글로벌 대기업 경쟁률보다도 높은 것 같은데요.”

백철웅과 한무원은 입사자들이 낸 지원서를 훑으며 혀를 내둘렀다.

경쟁률도 경쟁률이었지만 10대에서부터 50대까지 다양한 나이의 지원자는 물론 하버드 출신에서부터 고교 중퇴까지 인재 풀이 다양했다.

물론 그중에는 장난으로 지원한 자들도 적진 않았지만, 대다수는 진지했다.

‘사실 이 정도까지 사람이 몰릴 줄은 몰랐었는데…… 몇 년 빠르다는 게 이렇게까지 효과를 볼 줄이야.’

정말로 오프라인을 1년 만에 국내 최정상 언론사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다.

우리는 삼 일간의 밤샘 작업 끝에 비로소 면접자의 5배수인 65명을 추렸다.

서류라면 이제 이가 갈릴 정도였다.

그렇다고 이어진 면접이 쉬웠냐고?

전혀.

지원자들의 호기심이 어찌나 많은지 면접관인 우리가 질문하는 것보다 그들이 우리에게 물어보는 게 훨씬 많을 정도였다.

어떤 지원자는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미디어에 대해 30분간 일장 연설을 하기도 했다.

하루에 8명씩 면접에만 2주가 소요됐다.

* * *

채용 공고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백 사장님. 볼살이 홀쭉해지셨네요.”

“그러는 우 사장도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장난 아니구먼.”

“나는 10㎏나 빠졌다고요. 어이구야. 나이 먹고 이제 무슨 일인지.”

실제로 면접관 셋 모두 크게 체중이 줄었을 정도로 채용 스트레스는 엄청났다.

그렇지만.

뿌듯했다.

녹초가 된 대가로 13명의 지구 방위대급의 우수 인재를 채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연령대는 물론 성비도 아름다웠다.

22살부터 41살까지.

여자 일곱에 남자가 여섯.

나는 공동 사장 겸 편집 국장을 겸하기로 했다.

국제부에는 41살에 5개 국어를 능통하게 할 수 있는 최루리 기자가 부장을 맡게 되었다.

이전에는 프리랜서 번역가로 일하면서 어찌나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하는지 ‘번역의 신’이라고 불렸단다.

영상부에는 38살에 HBS 카메라 기자 출신의 박창후 기자가 부장을 맡게 되었다.

면접에서 HBS에 미래 따윈 없다는 말이 가산점을 받았다.

소셜부에는 26살에 하버드 대학을 전체 수석으로 졸업한 홍지혜 기자가 부장을 맡았다.

한국 국적의 유학생이 하버드를 전체 수석으로 졸업한 건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원화성에게 부탁하여 디자이너 2명과 개발자 1명 그리고 경리 1명을 함께 채용했다.

이들 모두가 출근한 날은 어벤저스가 한자리에 모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채소 가게 아저씨로부터 온 문자였다.

<세진아! 엄마가 갑자기 쓰러졌다. 한국 병원으로 빨리 와! 지금 당장!>

알코올 냄새.

나는 알코올 냄새를 아주 싫어한다.

죽기 전까지 고주망태로 산 아버지한테 풍겼던 냄새와 닮았기 때문이다.

코를 찌르는 알코올 냄새로 가득 찬 6인실.

허겁지겁 도착한 병실 침대 위에 엄마가 미안한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채소 가게 한 씨 아저씨가 있었다.

“오늘따라 계속 허리가 아프다카드만 갑자기 쓰러지지 뭐꼬.”

“고맙습니다. 아저씨.”

아저씨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침대에 누운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 좀 괜찮아요?”

“괜찮아, 괜찮아. 아이고, 장사해야 하는데, 이렇게 갑자기 와도 되는지 모르겠네.”

“아지메, 아까맨치로 또 쓰러질라까이! 그런 걱정일랑 하지 말고 누워 계셔. 내가 다 알아서 할 거 아이가!”

아저씨의 사투리가 한층 더 격하게 들렸다.

“맞아요. 엄마, 가게는 한 씨 아저씨한테 맡기고, 좀 쉬면서 안정을 취하세요.”

“그거 다 상할 텐데…….”

“아 진짜!”

“앵가이 쫌!”

두 남자가 거칠게 항변을 하자 엄마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했다.

“그나저나 의사는 뭐래요?”

나는 엄마의 병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강직 척추염.

척추가 뻣뻣해지면서 전신이 아프고, 아무리 쉬어도 척추 부위의 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지는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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