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한 번에 병을 진단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증상이 고관절염이나 허리 디스크와 유사해 단순 근골격계 질환으로 오인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진료과를 전전하다 3년 이상이 지나서야 비로소 병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엄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회귀 전 엄마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수중에 돈이 없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언론 고시 준비를 포기하고 오프라인에 들어갔다.
유명하다던 병원에 다녀도 차도가 없었는데 오프라인에 입사한 지 4년째가 되던 해, 의사는 뒤늦게 강직 척추염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사과는커녕 그동안 냈던 병원비 한 푼 돌려주지도 않았다.
치료가 늦어지면서 척추 변형이 심해졌고, 물체가 두 개로 보이는 포도막염 등 다른 동반 질환까지 뒤따랐다.
수년째 엉뚱한 치료를 받고, 증상까지 심해졌는데 의사는 그래서 어쩔 거냐는 표정만 짓고 나 몰라라 했다.
‘으…….’
그때 그 의사의 바보 같은 표정만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린다.
“급성 관절염이라고 하더구나. 휴식을 취하면 괜찮아진다고 했으니 너무 걱정하진 마.”
“이 돌팔이 자식들이.”
“세, 세진아? 왜 그러는 거야?”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한 번 당했으면 됐지 또 당할 순 없었다.
나는 즉시 병실을 나와 담당 의사를 찾아갔다.
“아, 김혜미 환자 아들…….”
“됐고, 도대체 뭘 근거로 관절염이라고 하는 거요?!”
내가 잔뜩 인상을 쓰고 거칠게 따지자 담당 의사는 불쾌하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는 한 손가락으로 안경을 세웠다.
“보호자분. 병원에서 의사한테 이러는 게 실례라는 걸 모르는 나이는 아닐 텐데요?”
나는 속에서 터져 나오는 화를 억눌렀다.
괜히 일을 키울 필요는 없었으니까.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천천히 말했다.
“엄마는 아무리 쉬어도 목과 허리에 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진다고 늘 이야기했습니다.”
나의 말에 의사의 눈이 살짝 흔들리는 게 보였다.
다행히 아주 맹탕은 아닌 모양이다.
“전신이 피로하다는 말도 자주 하시고, 근육통이나 관절통도 자주 호소하셨습니다.”
“또요?”
“이상하게 아무런 힘도 없이 축 처져 있거나, 우울한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원래 그럴 분이 아니거든요.”
“혹시 눈이 부시다거나 뿌옇게 보인다는 말씀은 없으셨나요?”
“아직은요.”
“아직은?”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알았으니 다시는 이렇게 무례하게 행동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는 나를 내쫓았다.
‘이만하면 충분히 알아들었겠지. 포도막염 증상에 관해 묻는 걸 보니까 대충 감은 온 거 같고.’
나는 한 씨 아저씨에게 엄마를 잠시 부탁한다고 말하고는 병원을 나와 근처 편의점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샀다.
술을 마실 때를 제외하면 거의 피지 않았는데 지금은 너무 담배가 당겼다.
치지직.
라이터에 불을 붙이고 담배 한 개비를 빨았다.
후우우.
잿빛 연기가 바람에 아지랑이처럼 흩날렸다.
지금처럼 빨리 발견할 수 있었으면 그 고생은 안 했을 텐데.
‘이번 생에선 후회하지 말아야지.’
오랜만에 피우는 담배가 무척 텁텁했다.
* * *
회사에는 3일의 휴가를 냈다.
엄마가 쓰러졌다는 말에 백 사장도 한 이사도 괜찮으니 더 오래 쉬다 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다들 바쁠 텐데, 사장이라는 놈이 혼자만 오래 빠질 순 없는 노릇이었다.
“딱 3일만 쉬다가 돌아올게요. 죄송하지만 조금만 힘내 주세요!”
나의 조언 덕분이었는지 엄마는 결국 강직 척추염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일단 퇴원해도 된다며 당부 사항을 전했다.
“현재 강직 척추염을 완치시킬 수 있는 치료법은 없어요. 하지만 적절히 치료하면 거의 정상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혹시 아드님이 의사세요?”
“네? 우리 아들이요?”
“강직 척추염은 의사들도 정확하게 진단하기 어려워서 애를 먹는 병인데…… 나이로 보아 이제 인턴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친구가 대단합니다.”
“저기 우리 아들은 의사가 아니라 언론사 사장이에요.”
“네? 언론사요?”
얼빠진 얼굴을 한 의사를 뒤로한 채 병원을 나왔다.
근처 약국에서 약을 사고 나오는데 옆으로 렌터카 회사가 보였다.
퍼뜩 무언가 떠올랐다.
나는 엄마의 손을 꼬옥 붙잡고 말했다.
“엄마 우리 여행 가자!”
“여행?”
“응! 안 그래도 엄마 바다 보고 싶어 했잖아. 응? 지금 바로 가자.”
“아니 너 회사도 가야 하고…….”
“회사에는 휴가 냈어.”
“장터도 나가 봐야 하고…….”
“아 진짜!!”
나는 엄마의 손을 이끌고 렌터카 회사로 들어가 고급 세단 한 대를 빌렸다.
예전 같았으면 감히 생각도 못 했을 테지만 이제 연봉도 적지 않다.
엄마랑 함께 가는 여행인데 괜히 돈 아낄 필요가 없었다.
“세진아, 이런 차 빌려도 괜찮아? 비싸 보이는데…….”
“나 사장이잖아. 월급 많이 받아. 걱정 마.”
마침 며칠 전 첫 월급도 받았다.
통장에는 354만 원이 대표 월급이라는 이름으로 찍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닐지도 모를 금액이겠지만 감회가 남달랐다.
회귀하기 전에도 받아 보지 못했던 금액이었으니.
괜히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차를 빌리고 운전석에 탑승했다.
조수석에 앉은 엄마가 안전 벨트를 하며 물었다.
“저기, 아들. 그런데 어디 갈 거야?”
회사, 집, 회사, 집만 반복하다 보니 여행은 취미가 아니었다.
하지만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는 서해.
그리고 서해에는 한국판 모세의 기적으로 유명한 제부도가 있었다.
언젠가 회식 자리에서 어떻게 결혼했냐는 직원의 말에 백철웅은 자랑하듯 말했다.
“제부도라고 있어. 간조 때는 섬과 육지 사이의 땅이 드러나서 육지와 연결이 되는데 만조 때는 바닷물에 둘러싸여서 섬이 되는 거지.”
“이야 그거참 신기한 곳이네요. 그런데요?”
“잘 생각해 봐. 여행을 왔는데 밤에 육지로 돌아갈 수 없다면?”
“오?!”
이후 오프라인 직원들 사이에서는 애인을 데리고 제부도 가기가 한동안 유행했다.
그때의 기억이 남아 있던 탓인지 내비게이션 목적지에 제부도를 찍고는 달렸다.
물론 상대는 엄마였지만 아무렴 어떠랴.
* * *
1시간 반을 달렸을까.
에어컨에서 짠 내가 올라왔다.
이내 바다가 보였다.
광활한 갯벌을 사이에 두고 중앙 차선도 없는 2차선 도로가 이어졌다.
“흐음~”
엄마는 기분이 좋았는지 창문을 열고 바다 향기를 맡았다.
엄마의 웃는 표정을 보니 덩달아 내 기분도 좋아졌다.
나는 외관이 괜찮아 보이는 펜션에 들어가 방을 잡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주차장에는 우리 차밖에 없었다.
“세진아, 우리 빨리 짐 풀고 밖에 나가자!”
엄마는 10대 소녀가 된 것처럼 신이 나서는 바다 경치를 즐겼다.
하늘의 갈매기들이 먹을 걸 주는 줄 알고 단체로 비행하는 모습이 실로 장관이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한참 동안 근처를 돌아본 우리는 펜션 근처 횟집에 들어갔다.
메뉴를 빠르게 살펴본 나는 모둠 회와 소주를 시켰다.
그 모습을 지켜본 엄마가 덥석 내 손을 잡고는 말했다.
“아들, 많이 컸네.”
“그럼 벌써 스물여섯인데.”
“일은 할 만해? 사장 일이라는 게 쉬운 게 아닐 텐데…….”
“아냐 너무 좋아. 괜찮은 직원들도 많이 뽑았고, 조만간 크게 이름을 알리게 될 거야.”
이때만 하더라도 나는 그 조만간이 얼마나 빨리 올지 전혀 짐작조차 못 하고 있었다.
“잘됐네. 잘됐어. 너무 무리하진 말고.”
“물론이지. 엄마나 조심해. 약 잘 챙겨 먹고 의사가 알려 준 대로 운동 잘하고.”
“그래그래. 응? 잠시만, 아들”
엄마의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을 확인한 엄마의 얼굴이 장미꽃처럼 붉게 변했다.
“아 네. 고맙습니다. 네. 네. 세진이랑 여행 왔어요. 네. 제부도요. 네. 잘 쉬다 갈게요. 연락할게요.”
어째 엄마의 태도가 수상쩍다.
“누구야?”
“응? 아……. 한 씨 아저씨.”
“채소 가게 아저씨?”
“응.”
“아저씨가 왜?”
“아, 아니 퇴원 잘했냐고 물어봐서.”
“흐음. 이거 수상한데 수상해.”
“얘가 수상하긴 뭐가 수상해.”
“아니 엄마 얼굴도 그렇고, 한 씨 아저씨가 지나치게 챙겨 주는 것도 그렇고. 수상한 냄새가 난단 말이야…….”
“아이참, 소설은 혼자 쓰지 그러니!”
엄마랑 웃으며 투덕거리는데 주문한 모둠 회가 나왔다.
바닷가라 그런지 양이 엄청나게 많아 보였다.
“보아하니 어머니 모시고 오신 모양인데, 내 서비스로 많이 드렸어요. 잘 쉬다 가세요.”
“고맙습니다. 사장님.”
“고맙습니다.”
회는 무척 신선했다.
양도 많고 두툼한 회.
회 한 점에 소주 한 잔이 그냥 들어갔다.
결국 세 병째 소주를 깔 때 엄마는 이실직고하고 말았다.
“그래. 엄마, 한 씨 아저씨랑 사귄다. 됐냐!”
어렴풋이 둘의 관계가 보통은 아니라고 짐작하고 있었지만, 엄마 입에서 직접 들은 적은 없었다.
엄마의 연애라니.
그렇다고 배신감이나 분노를 느끼진 않았다.
다 큰 성인이었고, 아빠가 돌아가신 지도 오래되었다.
‘아빠 돌아가시기 전까지 매일 시달리기만 하셨는데 이제는 새로운 인생 즐기셔야지.’
나는 엄마의 연애를 축복해 줬다.
엄마가 고맙다며 우셨다.
참 울음이 많은 사람이다.
우리 엄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