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200)

* * *

제부도에서 2박을 하면서 푹 쉬었다.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가 내게 서운한 게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긴 집에도 거의 안 가고 내가 불효자 중의 불효자지 뭐.’

평생 엄마랑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 해 본 적이 있었던가.

뿌듯한 한편 미안함이 들었다.

렌터카를 반납하려고 내비게이션을 찍으려던 찰나.

“근데 아들. 여기 서해니까 인천 공항이랑 가깝지 않아?”

“인천 공항이요? 그리 멀진 않죠.”

“그래? 혹시 괜찮으면 인천 공항에 들렀다 가도 될까?”

“응? 인천 공항에? 거긴 왜요?”

“그게…….”

“괜찮으니 말해 봐요.”

“엄마가 인천 공항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잖니? 친구들이 매번 외국 갔다 왔다고 자랑하면서 인천 공항 이야기를 하던데 한번 내 눈으로 보고 싶어서 말이지.”

“엄마…….”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

고작 부탁한다는 게 인천 공항 구경시켜 달라는 거라니.

조만간 엄마 모시고 해외여행이라도 가야겠다.

나는 즉시 차를 몰고 영종도로 향했다.

1시간쯤 달리자 인천 대교가 나타났다.

“엄마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공항이에요.”

“그렇구나. 저기 비행기들도 보이네.”

비행기를 본 엄마가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그때였다.

엄마가 앞에 가는 경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세진아, 앞에 저 차 왜 저럴까? 낮술이라도 마셨나?”

엄마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빨간색 경차 한 대가 이상할 정도로 저속으로 휘청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게요. 여기 고속도로라서 저렇게 천천히 움직이면 위험할 텐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

차선을 옮겨 경차를 지나갔다.

슬쩍 쳐다보자 운전자인 아주머니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아이구. 아줌마가 초보 운전이신가, 고생하시네.”

엄마의 호들갑에 머릿속에 한 가지 기사가 떠올랐다.

그리고 등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설마 그 사건은 아니겠지?’

나는 속도를 내서 인천 대교 요금소를 통과했다.

‘만약 저 차가 내가 아는 그 차가 맞다면. 사고는 이제 금방이야!’

* * *

회귀하기 십 년 전.

엄마가 갑자기 쓰러지고 고민 끝에 교수님께 일자리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교수님! 좀 급해서 그러는데, 혹시 당장 취업할 수 있는 언론사는 없을까요?”

“당장?”

“네. 아주 급합니다!”

어처구니없는 부탁이었지만, 그는 내 얼굴을 보더니, 사정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최근에 아는 기자 하나가 새로 언론사를 차렸다고, 괜찮은 학생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는 이야기를 하긴 했지.”

“어딥니까 거기가?!”

“뭐라고 그러더라. 잠시만. 메일 좀 확인하고.”

그는 잠시 컴퓨터를 살펴보더니 말했다.

“이름이 오프라인이야. 트위터로 기사를 낸다더군.”

“트위터요?”

“그래. 요즘 굉장히 핫한 플랫폼이지 않나? 트위터 언론사라니…… 재미있는 세상이야.”

“그렇군요.”

“그런데 괜찮겠나? 자네 학보사도 그렇고, 굉장히 열심히 준비했잖나?”

“…….”

“뭐 나름의 사정이 있으니 날 찾아온 거겠지. 그럼 그쪽에 소개해 주면 될까?”

“아니오, 교수님. 괜찮습니다.”

그렇게 미뤄 뒀다가 코너에 몰려 결국 교수님의 추천도 없이 스스로 지원서를 내서 들어간 오프라인.

출근 첫 주는 별다른 게 없었다.

한가하다 못해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허름한 건물이었지만 오프라인의 사무실은 종로 한복판에 위치했다.

게다가 사무실은 꽤 넓었다.

그 큰 공간에 백철웅과 한무원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의 책상만 띄엄띄엄 배치되어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 예방에 최적화된 사무실.

한무원은 나한테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온라인 게임에만 집중했다.

백철웅은 트위터 계정을 하나 파라고 하더니, 어떤 트윗이 인기가 있는지, 유명인은 누가 있는지 수시로 체크해서 보고하라고 했다.

허무했다.

기자라고 뽑아 놓고는 기사에 ‘기’ 자도 꺼내지 않았으니까.

출근한 지 5일 차가 되던 날.

불금이라 들뜬 마음으로 퇴근을 하려는데 백철웅이 사무실을 나가려는 나를 붙잡았다.

“세진 군. 괜찮으면 내일 회사에 나올 수 있을까?”

“네? 내일이요? 내일은 토요일인데…….”

“허허. 원래 기자에게 공휴일은 의미가 없지. 주말이라고 뉴스가 없는 건 아니니까. 안 그래?”

“…….”

“하하. 나오기 싫은 모양인데?”

“아, 아뇨. 그런데 내일은 오늘하고는 다른 걸 하나요? 아니면 굳이…….”

“뭐 자네도 트위터에 대해서는 대략 감을 잡았겠지. 그럼 기사도 한번 써 봐야지?”

“기사요?”

“그래. 보통 토요일에는 기삿거리가 평일보다는 적으니까 한번 연습 삼아 해 볼 만할 거야.”

“아 네.”

“내가 옆에서 도와줄 테니까 너무 긴장하진 말고.”

“그럼 몇 시까지 출근하면 될까요?”

“평일하고 똑같이 9시.”

“네…….”

‘일도 없으면서 첫 주부터 주말 출근이라니.’

투덜거리며 사무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딩동~

여친 주소월이었다.

하루의 고단함을 모두 잊은 채 환하게 웃으며 핸드폰을 열었던 나의 표정은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급격히 일그러졌다.

<세진아 미안. 엄마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우리는 이제 가는 길이 다른 거 같아. 이만 헤어지자.>

군대에 갔을 때도 고무신을 거꾸로 신지 않았던 그녀다.

신방과 04학번 동기로 메이저 언론사 기자를 목표로 함께 꿈을 향해 달리던 든든한 동료.

과 안에서도 바퀴벌레 부부라며 놀림을 받았다.

그런데.

그 문자 한 통이 끝이었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부재중 통화만 계속됐다.

그녀의 친한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모르겠다며 나를 외면했다.

지옥 같은 밤이었다.

혼자 집에서 소주를 마시는 습관을 들인 것도 그때부터였다.

늦잠을 잤다.

좁은 고시원에 있으니 미칠 것만 같았다.

달리 갈 곳도 없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어슬렁어슬렁 오프라인 사무실로 향했다.

점심 무렵이 지나 사무실에 도착한 내게 백철웅은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물었다.

“점심은 먹었고?”

“네…….”

하필 그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백철웅은 피식 웃으며 내게 묻지도 않고 짬뽕 한 그릇을 시켰다.

짬뽕은 주문한 지 15분 만에 배달되었다.

사무실 바로 아래에 중국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루룩후루룩!

나는 부끄러움도 잊은 채 엄청난 속도로 면발을 흡입했다.

그릇의 바닥이 드러날 무렵.

“세진 군! 세진 군! 어서 빨리!”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하고 있던 백철웅이 빨리 자기 자리로 오라며 손짓했다.

부랴부랴 자리로 가 보니 그는 내게 통신사인 통합 뉴스의 속보를 가리켰다.

<인천 대교 아래로 버스 뒤집힌 채 추락>

“당장 관련 키워드로 트위터 검색하고, 언론사 속보 주시하고!”

우리는 곧장 전투 태세로 돌입했다.

얼마나 찾았을까.

사고 현장 근처에 있던 누군가가 트위터에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참혹한 현장이라며 올려진 사진에는 뒤집힌 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납작해진 버스가 있었다.

“사장님! 여기 사고 사진이요!!”

백철웅이 급히 내 자리로 왔다.

“오, 맞다 맞아. 이거야! 아직 사진 올린 언론사는 없어! 지금 당장 제목하고 사진으로만 기사 올리고, 트위터에 노출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언론사의 속보 경쟁은 치열하다.

누가 먼저 빨리 기사를 쓰는지로 평가를 받으니까.

나는 백철웅이 시키는 대로 제목과 사진으로만 된 기사를 올렸다.

트위터에 노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트윗은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퍼져 나갔다.

내가 올린 사진이 원본이 아니었음에도 주요 언론사에서는 확인도 하지 않고 사진을 캡처해서는 마치 자기네 사진처럼 기사에 실었다.

저작권 개념이 희박할 때라 캡처한 사진에 자기 언론사 로고를 박는 곳도 많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사고 경위 등 내용이 추가된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백철웅의 지시로 나는 다른 언론사의 기사를 참고하여 기사를 수정했다.

“그게 바로 2보라는 거야. 1보 쓰고 내용 업데이트해서 다시 보내는 거지!”

백철웅은 한 건 해냈다는 표정으로 의기양양해져서는 내게 말했다.

뿌듯했던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속보 경쟁에서 메이저 언론사를 이겼구나!

내가 찾은 사진이 다른 언론사에서도 모두 쓰는구나!

진짜 기자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 기분과 다르게 사고는 그야말로 참혹했다.

15명의 사망자와 17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대형 참사.

일명 인천 대교 버스 추락 사고.

사고 경위는 이랬다.

인천 대교 요금소를 저속으로 통과한 빨간색 경차는 요금소에서 700m 떨어진 곳에 엔진 고장으로 멈춰 선다.

도로 한복판에 10분가량 비상 깜빡이만 켠 채 멈춰 선 경차를 5t 화물차가 추돌.

화물차를 바짝 뒤따르던 고속버스가 이를 피하고자 오른쪽으로 급히 핸들을 꺾다가 10m 아래로 추락하였다.

추락을 막아야 했던 가드레일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가드레일 밑부분이 콘크리트가 아닌 모래로 허술하게 고정돼 있었던 것이다.

경차 운전자의 안전조치 미흡과 버스 기사의 안전거리 미확보, 부실시공 및 허술한 도로 관리 등 그야말로 인재(人災)의 총집합.

* * *

그렇게 오프라인에 들어와 처음으로 작성한 기사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기에 똑똑히 기억이 났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사람을 구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엄마의 안전이 우선인가.

하지만 답을 내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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