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으면 모를까, 알고 있는데도 지나칠 순 없잖아.’
요금소를 통과한 나는 급히 핸들을 우측으로 꺾고 요금소 사무실 쪽에 차를 멈췄다.
“엄마, 진짜 미안한데,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줄래요?”
“응? 왜? 무슨 일인데?”
엄마가 깜짝 놀라며 내게 물었다.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줘요. 나 금방 다녀올게!”
“아, 아들!”
나는 밖으로 나와 조수석에 타고 있던 엄마를 강제로 내렸다.
엄마는 영문도 모른 채 그저 내가 시키는 대로 밖으로 나와야 했다.
엄마를 내리고 다시 차에 타려던 순간.
옆으로 둔탁한 소리가 지나갔다.
겔겔겔겔겔~
빨간색 경차였다.
“저기요! 거기 빨간 경차! 멈춰요! 멈춰!”
요금소 정산원이 경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애처롭게 외쳤다.
나는 급히 운전석에 타고 경차의 뒤를 따랐다.
‘경차 앞에서 차를 세워서 막아야 하나? 아냐. 그럼 도로 한복판에 멈추는 건 똑같잖아. 젠장!’
나는 우선 비상 깜빡이를 켜고는 천천히 경차의 뒤를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차의 속도가 점점 줄더니 결국 멈춰 섰다.
후방을 확인한 나는 즉시 차에서 내렸다.
한낮이라지만 뻥 뚫린 고속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운 채 내리자니 두려움이 컸다.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트렁크를 열었다.
다행히 삼각대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삼각대를 집어 든 순간.
빠아아앙!!!
대형 트럭이 화를 내듯 클랙슨을 거칠게 울리며 내 옆을 지나갔다.
온몸의 세포가 쭈뼛거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삼각대를 가지고 차 뒤쪽으로 걷다가 이내 포기하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삼각대를 세우고 다시 차 쪽으로 돌아왔다.
‘주간에는 100m 뒤에 삼각대를 세우라지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이건 분명히 실제로 체험해 보지도 않은 놈들이 만든 게 틀림없어!’
당시 해당 사고의 가장 큰 이유로 경차 운전자의 안전 조치 미흡이 꼽혔었다.
도로 교통법에는 고장이나 그 밖의 사유로 고속도로 등에서 자동차를 운행할 수 없게 되면 삼각대나 유도 조명 봉 등을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주간에는 100m 이상, 야간에는 200m 이상에 말이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여기서 직접 체험하니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말들이 나왔고, 정부는 2017년이 되어서야 규정을 ‘자동차의 후방에서 접근하는 자동차의 운전자가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설치해야 한다’로 수정했다.
삼각대를 세운 나는 경차에 접근했다.
아주머니는 어찌해야 할 줄 몰라 핸들만 꼭 붙잡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갓길에 세웠으면 좋았겠지만, 상대는 60대 아주머니였다.
엔진이 고장 난 채 오랜 시간 달리다가 고속도로 한복판에 차가 갑자기 멈춰 서면서 분명 패닉에 빠졌으리라.
똑똑.
내가 창문을 두드리자 아주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아줌마, 위험하니까 빨리 문 여세요. 빨리!”
“어……. 이…… 이거 어떻게 열더라.”
패닉에 빠진 아줌마는 차 문을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손으로 손잡이를 여는 시늉을 취했다.
아주머니는 그제야 운전석 문을 열 수 있었다.
“아줌마 당장 나와서 옆자리에 타세요. 제가 운전할게요.”
“아……. 아……. 고마워요. 고마워요.”
나는 아주머니가 조수석에 타는 것을 확인한 뒤에 운전석에 앉았다.
경차의 시동은 꺼진 상태였다.
‘엔진 고장이라더니 시동조차 안 켜지나?’
키를 몇 번이나 오른쪽으로 돌렸지만 차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뒤에서 트럭과 버스가 돌진해 온다는 생각이 들자 식은땀이 났다.
나는 급히 경차에서 내려 아주머니를 내 차에 태우고 갓길로 이동했다.
“아줌마, 저는 뒤에 오는 차에 수신호를 할 테니까 경찰에 신고 좀 해 주세요. 고속도로 한복판에 차가 오래 서 있는 건 위험하니까요.”
“그, 그게 더 위험하지 않을까? 그냥 빨리 경찰에 신고만 하고…….”
“아니 그럼 경찰이 올 때까지는 어떻게 하고요?! 빨리 전화하세요!”
덜컥!
나는 차 문을 열고는 트렁크에서 유도 조명 봉을 꺼냈다.
조명 봉의 가운데 버튼을 누르니 빨간색 Led에 반짝반짝 불이 들어왔다.
삼각대가 보이고 내가 옆에서 유도 조명 봉으로 신호를 하니 지나가는 차들이 모두 속도를 줄이며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몇 대의 차가 지나간 후.
멀리서 5t 트럭이 접근하는 게 보였다.
트럭은 다른 차들과는 달리 별반 속도를 줄이지 않고 내 옆을 휭하니 지나갔다.
그리고 그 뒤로 버스 한 대가 마치 트럭과 스피드 경주를 하듯 빠르게 지나갔다.
“아이 이 양아치 같은 놈들! 사람이 서 있는데 뭘 저렇게 빨리 지나가! 저러니 사고가 났지!”
나는 멀리 사라져 가는 트럭과 버스의 뒷모습을 보고는 욕을 한 바가지 날렸다.
“휴. 그래도 다행히 사고는 안 난 거 같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순간.
끼이이이익!
쿵!
거대한 충돌음이 사방을 가득 메웠다.
# 3장 영웅
‘이럴 리가 없는데…….’
나는 갓길에 세워 둔 차를 빠르게 몰아 앞으로 달려갔다.
버스 추락 사고와 비슷한 시간대에 근처에서 또 다른 사고가 났다는 소식은 기억에 없었다.
그랬을 터인데.
눈앞에는 기억과는 다른 형태의 사고가 벌어져 있었다.
도로 곳곳에 버스와 트럭의 충돌 흔적이 선명했다.
부서진 중앙 분리대 콘크리트 조각들과 버스와 트럭의 파편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압권은 중앙 분리대를 반쯤 넘어선 버스와 한쪽으로 쓰러져 누워 있는 5t 트럭.
‘원래라면 사고가 나서 버스는 추락하고 5t 트럭은 중앙 분리대와 접촉했어야 맞는데…… 설마 내가 한 행동으로 미래가 바뀐 건가?!’
“아……. 아……. 이게 도대체…….”
조수석에 탄 아주머니는 충격을 받았는지 부들부들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아주머니를 진정시킨 뒤 비상 깜빡이를 켜고 차 밖으로 나왔다.
교통량이 많지 않았지만, 장애물이 생기면서 금방 차들이 내 뒤로 길게 밀리기 시작했다.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누르고 사고 현장에 접근했다.
다행히 버스 안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빨리 가 보자!’
버스 입구로 진입을 시도하려던 나는 이내 포기해야만 했다.
버스가 중앙 분리대를 넘어선 탓에 입구가 반대쪽 도로 허공에 둥둥 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럭과 세게 부딪혔는지 입구를 비롯한 버스 정면의 훼손이 심했다.
‘젠장……. 이거 어떻게 들어가지?’
고민하는 사이 옆에서 신음 소리가 들렸다.
“으……. 사람 살…… 려…… 누가 좀 도…… 와줘요.”
쓰러진 트럭에서 나는 소리였다.
나는 급히 몸을 틀어 트럭으로 달려갔다.
트럭의 정면에 도착하니 안에는 우측으로 90도 누워 있는 트럭 운전자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트럭의 드러난 배 부분을 통해 위로 뛰어올랐다.
“어어……. 저기 위험한데…….”
“조심하세요!”
“야! 용감하다, 저 친구!”
어느새 사고 현장에는 차에서 내려 접근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올라오면서 기름으로 범벅이 된 손으로 운전석을 열었다.
하지만 잠겨 있는지 문은 열리지 않았다.
탕! 탕!! 탕!!!
내가 운전석 유리를 세게 내리치자 트럭 운전자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덜컹.
그제야 문이 열렸다.
5t 트럭인 데다가 하늘을 향해 문을 열려니 여간 무거운 게 아니었다.
‘끄으응…….’
“힘내라! 청년!”
“조심해!”
몰려든 사람들이 트럭 밑에서 응원을 해 줬다.
사람들의 응원 덕분이었는지 나는 문을 열 수 있었다.
머리에 피를 흘린 채 환하게 웃는 트럭 아저씨의 모습이 이질적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문을 닫히지 않게 고정한 채 운전자를 트럭 밖으로 꺼내야만 했으니.
나는 문을 등으로 받친 뒤 주변을 둘러보고 소리쳤다.
“거기 아저씨! 저 좀 도와주세요! 그리고 그쪽 아저씨도요!”
내가 상대를 지목해서 소리치자 지목당한 이들이 움찔거리더니 이내 차 위로 올라왔다.
“도와줄게요!”
“함께 꺼냅시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나는 그들과 힘을 합쳐 운전자를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었다.
쿵쿵!
한숨 돌리려던 찰나, 버스 안에서 이쪽을 바라보며 자신들도 꺼내 달라며 아우성치는 모습이 보였다.
마침 트럭에서 운전자를 꺼내면서 운전석 뒷자리에 고정된 빨간색 안전 망치가 생각났다.
나는 급히 안전 망치를 집어 들고 트럭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냅다 버스 쪽으로 달려 사람이 보이지 않는 버스 뒷좌석 유리의 가장자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찌지지직!
내리친 부분에 조그마한 구멍이 생기면서 유리 전면에 거미줄이 치듯 금이 퍼져갔다.
나는 몇 번 강하게 내리쳤다.
하지만 통유리로 된 유리는 구멍만 넓혀질 뿐 일반 유리가 깨지듯 산산이 조각나지 않았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소리쳤다.
“거기 학생!”
“응? 저요?”
“그래요. 여기 깨진 창문을 발로 세게 차 주세요!”
나와 시선이 마주친 버스 안 남학생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자리를 피하자 그는 한쪽 발로 강하게 유리를 내리쳤다.
그러자 통유리가 그대로 밖으로 떨어지면서 버스와 분리되었다.
“와!!!”
통유리가 떨어지면서 버스 안과 밖이 동시에 환호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남성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야. 저 청년. 우리랑 같은 업계에 있나 본데?”
“응? 왜요?”
“너도 알잖아. 차량 유리는 아무 데나 쳐서 깨지는 게 아니라는 걸.”
“그렇죠. 가장자리를 쳐야 깨지죠. 그런데 왜요?”
“저기 저 청년이 정확히 가장자리를 치더라고.”
“우연히 맞았는가 보죠. 뭐.”
“아냐. 저기 좀 봐. 고속버스처럼 선팅이 된 차들은 필름지가 충격을 흡착하면서 깨진 유리가 흩어지지 않고 붙어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