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200)

“그래서 유리가 깨진 뒤에는 망치가 아니라 손이나 발로 강하게 차 줘야 하잖아요. 왜요? 방금 그렇게 했어요?”

“그렇다니까! 넌 도대체 저거 안 보고 뭐 하고 있냐?”

“아이참 형님도. 어제 들어온 차, 빨리 수리해 달라고 문자가 난리도 아니에요. 빨리 정비소 가야 하는데 참.”

사람들의 환호를 들으며 나는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을 차례로 구했다.

“조심히 나오세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람들은 버스에서 나오면서 연신 내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렇게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모두 나왔다.

총 32명이었다.

‘사망자 15명에 부상자가 17명이었으니…… 총 32명 맞구나!’

다행히 대부분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

모두가 나온 것을 확인한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30분이 300시간 같았다.

* * *

“당시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움직이셨나요?”

“아 그게. 그냥 사람을 구해야겠다고…….”

<우세진 씨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몸을 아끼지 않고 트럭 위를 훌쩍 뛰어올라 트럭 운전자를 구한 것은 물론 버스 안 승객들도 무사히 탈출시키며 오늘날 참된 영웅의 모습을…….>

“하하하. 우 사장, 진짜 장난 아니오. 나라면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도 못했을 텐데!”

한무원 이사가 대견하다는 듯 나와 TV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TV에선 어제오늘 내내 나에 대한 뉴스가 가득했다.

<제2 경인 고속도로 영웅! 고장 난 경차에 이어 트럭과 버스도 구해>

<30여 명 목숨 구한 참영웅…… 구조 이유는 “본능적으로”>

<고속도로 영웅은 누구? 알고 보니 신생 매체 기자>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하겠는데 한무원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계속 뉴스 채널만 돌렸다.

“한 이사, 적당히 하고.”

“아 네, 선배.”

백철웅과 한무원은 대학 선후배 사이였는데, 한무원은 백철웅에게 유독 약했다.

한무원이 TV를 끄자 백철웅이 내게 커피를 건네며 물었다.

“우 사장 몸은 좀 괜찮소?”

“아 네. 저는 멀쩡합니다. 어머니가 많이 놀라셨죠.”

허벅지가 조금 쑤셨지만 다른 곳은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다만 사라진 아들이 한참이나 소식이 없더니 갑자기 사고 현장의 중심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엄마는 돌아오는 내내 내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화가 많이 나셨나.’

신경이 쓰였지만 그래도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사람들도 구하고, 엄마도 무사하고, 나도 건강하니 그럼 됐지 뭐.’

화제의 중심에 오른 건 나만이 아니었다.

오프라인도 대박을 터트렸다.

나는 렌터카 업체의 양해를 구해 차에 설치된 블랙박스에서 영상을 확보, 오프라인에 제공했다.

작성된 기사와 영상은 트위터와 유튜브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또한 이전과는 다르게 방송사나 신문사에서도 전화가 왔다.

좋은 가격을 줄 테니 영상을 우리에게 팔아 달라며.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탓에 블랙박스에 담긴 영상은 장애물 하나 없이 현장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생생히 담고 있었다.

또한 차량에 설치된 블랙박스가 고성능이라 화질 또한 선명하고 뚜렷했다.

수십 만의 트위터 팔로우를 보유한 유명 소설가가 ‘해당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 봤는지 모르겠다. 너무나 감동적이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영웅이자 시민들의 단결된 힘!’이라고 한 트윗은 엄청난 RT를 받기도 했다.

“중국이랑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도 영상 조회 수가 엄청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우 사장님.”

유명 프리랜서 출신의 5개 국어 능통자, 최루리 국제부장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41살이었지만 30대 초반처럼 보일 정도의 동안에, 투박한 안경을 써 일부러 미모를 숨기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의 미인.

“아닙니다. 최 부장님. 덕분에 외국에서도 반응들이 좋더군요. 덕분입니다.”

최루리가 싱긋 웃었다.

백철웅은 토요일이었던 어제, 부장급 이상 인사들에게 긴급 소집령을 내렸다.

내가 블랙박스 영상의 존재를 알렸기 때문이다.

우선 HBS 카메라 기자 출신의 박창후 영상부장이 영상을 다듬고 여러 버전으로 편집하였다.

그걸 바탕으로 하버드 수석 출신의 홍지혜 소셜부장이 홈페이지에 기사를 작성한 뒤 트위터와 유튜브에 올렸다.

마지막으로 최루리 국제부장이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와 스페인어로 번역하여 다시 올렸다.

국내에서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지만, 글로벌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유튜브 조회 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난 속도로 올라갔고, 각지의 주요 언론사에서도 재미있는 사건이라며 소개했다.

일본에서는 왜 우리는 한국처럼 저런 영웅과 시민성을 보여 주지 못하냐며 푸념하는 트윗이 올라와 찬반 토론이 뜨거웠다.

백철웅은 기분이 좋은지 회식을 제안했다.

“다들 주말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괜찮다면 요 앞에 곱창집에서 저녁이라도 들고 가시죠?”

“요 앞에 곱창집이면 꽤 비쌀 텐데 백 사장님 오늘 한턱 쏘시나요?”

“하하, 당연히 제가 사야죠. 그럼 다들…… 응?”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갑자기 한 명이 손을 올렸다.

일행 중 가장 어린 홍지혜였다.

“사장님. 죄송한데, 저는 이만 들어가 봐도 될까요?”

박창후가 눈치를 주며 말했다.

“홍 부장. 거, 사장님이 이야기하시는데 웬만하면 같이 가지? 남자친구도 없는 거로 아는데, 선약 있나?”

박창후의 말에 홍지혜가 거칠게 쏘아보면서 사무실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아뇨, 홍 부장님은 바쁘신 것 같으니 시간 되는 분들만 가죠, 백 사장님도 괜찮으시죠?”

내가 서둘러 분위기를 진화시키자 백철웅도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홍지혜는 나에게 가볍게 묵례를 한 뒤 유유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쳇, 어린 녀석이 건방은…….”

박창후가 투덜거리자 백철웅이 그를 달래며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홍지혜를 제외한 우리 다섯은 곱창집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근처 호프집으로 장소를 옮겼다.

웅~ 웅~

“어? 우 사장님 또 전화 왔어요!”

“진짜네? 이번에는 어디일까요? 우리 내기할까요?”

“오 좋아, 좋아. HBS와 DBS에서는 연락이 왔고…… 고려 일보랑 센터 일보, 하나 일보에서도 연락이 왔으니 WBS나 서아 일보 아닐까?”

“저는 국한 일보에 한 표!”

사람들은 저마다 걸려온 전화의 발신인이 누구인지 맞히는 데 집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곱창집부터 호프집까지 유명 언론사 5곳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우 사장, 어제도 보도 전문인 TTN에서 인터뷰했으니, 부담스러우면 안 해도 됩니다.”

백철웅이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저희는 신생 매체입니다. 가능하면 대표인 제가 나와서 인터뷰하는 게 매체 홍보에 좋겠죠.”

그뿐 아니었다.

‘지금은 오프라인을 어떻게든 외부에 알려야 해. 그래야 인지도도 쌓고, 포털도 빨리 뚫을 수 있지.’

홈페이지와 트위터, 유튜브를 통해 기사를 내보내고 있지만, 파급력에서는 아직 포털 기사를 넘어설 순 없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이들이 포털을 통해 뉴스를 소비했다.

그리고 Never를 비롯한 포털에 뉴스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최소 설립된 지 1년 이상이 지나야만 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지금 같은 기사를 여러 번 터트려서 우리가 중요한 매체라고 외부에서 인정받으면 그보다 훨씬 빨리 들어갈 수 있어.’

게다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포털이 막고 있다고 여론전을 펼치면 불리한 건 포털이었으니까.

* * *

문제는 아이템이 없다는 것이었다.

제2 경인 고속도로 사건 이후, 오프라인은 언론사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로 알려졌다.

많은 매체와 인터뷰를 했고, 기자 협회보 등에서도 새 시대를 선도하는 매체라는 호평을 남겼다.

‘이 정도면 빠르게 시장에 안착했어. 하지만 아직 일반 대중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건 아니지.’

실제로 제2 경인 고속도로 사건 이후 오프라인의 트래픽은 정체 상태였다.

기사 발행량도 늘고, 가끔 화제가 되는 일은 있었지만 제2 경인 고속도로 사건처럼 폭발적으로 터지는 아이템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우리 보름만 제주도에 다녀옵시다!”

“네? 제주도요?”

사람들의 얼굴은 미묘했다.

당혹감 반 기쁨 반.

* * *

쏴아아아.

7월 중순의 제주도는 천국이 따로 없었다.

푸르른 하늘에 하얀색 뭉게구름.

그 아래로 코발트 빛깔의 맑은 바다가 여기가 과연 한국이 맞는지 의심케 했다.

방파제에 둘러싸인 조그마한 해수욕장은 인파로 붐비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깨끗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꺄아아아~”

“하하하, 받아랏!”

구성원 대부분이 혈기 왕성한 20대라 그런지 짐을 풀자마자 해수욕장에 달려와서는 물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뭐 나도 지금은 20대 중반이긴 하지만…….’

“이야, 제가 제주도 출신이지만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어디서 이런 곳을 찾으셨어요?”

서귀포 출신의 박창후가 선글라스를 살짝 올리며 비키니를 입은 일부 여직원을 바라보고는 흐뭇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인이 추천해 줘서요.”

“한적하니 좋네요. 7월의 제주도는 어디를 가나 북적북적한데, 여기는 마치 우리가 전세 낸 거 같네요, 하하.”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햇볕은 따가웠지만 부드러운 바람에 기분이 상쾌했다.

‘여행이라는 게 참 좋구나.’

회귀 전에는 그저 집과 회사의 반복이었다.

기본적으로 워커홀릭이었던 데다가, 엉뚱한 곳에 돈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애는 했지만 서울 밖을 벗어나 본 적은 없는 서울 촌놈.

하지만 최근 연이어 제부도와 제주도에 와서 그런지 여행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은 취미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유명 여행지는 잘 알고 있지.’

오프라인에 근무하면서 엄청난 수의 여행 기사를 썼다.

여행 기사는 클릭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도는 2010년대 중반부터 힐링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떠올랐기에 제주도의 주요 명소는 꿰고 있을 정도였다.

원래부터 유명 관광지였지만,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점차 나아지면서 ‘제주에서 살아 보기’, ‘제주 디지털 노마드’ 등이 새로운 트렌드로 주목받으며 관심의 중심에 섰다.

사람들의 관심은 결국 오프라인의 트래픽으로 이어졌다.

‘2010년의 제주도는 아직 트렌드의 중심은 아니야. 지금부터 여행지, 먹거리 등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하면 분명 대박을 터트릴 거야.’

90%.

아니?

100%다.

제주도 콘텐츠는 만들기만 하면 트래픽이 폭주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인기가 좋았던 것 중 하나가 세화 해수욕장 카페를 소개하는 콘텐츠였다.

그래서 누구보다 세화 해수욕장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원래는 그다지 유명한 곳이 아니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각종 매스컴에서 주목하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히피의 성지가 되었다.

‘정작 가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우리는 세화 해수욕장 인근의 민박집 두 채를 빌려 남자 팀과 여자 팀으로 팀을 나눠 묵었다.

남자 10명, 여자 10명이라 성비도 딱 맞았다.

해안 도로 옆 자그마한 둑에 앉아 박창후와 직원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백철웅과 한무원이 느지막이 나타났다.

“우 사장, 뭐 휴가도 좋고 제주도도 좋은데, 우리 이렇게 막 쉬어도 되는 거요?”

한무원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의 불만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100억을 투자받았지만, 실제적인 수익은 거의 없었으니.

유튜브 수익은 오름세였지만, 아직 핀 번호가 도착하지 않아 수익 창출은 나지 않았고, 홈페이지 광고 수입도 성과라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번 달부터 신규 채용한 인력에 대한 인건비가 나간다.

그런데 비행깃값에, 숙박비에 식사까지 모두 회사에서 지급하기로 했으니.

“걱정 마세요, 한 이사님. 여기서 대박 콘텐츠 몇 개 만들고 올라가면 이번 비용 회수하는 건 일도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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