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홍지혜가 갑자기 시선을 돌리며 딴 곳을 바라보았다.
“지혜 씨가 포트폴리오로 주셨던 글들이 정말 멋지고, 감성적이었고 또 위트가 넘쳤기에 뽑은 거죠.”
“…….”
“저도 글 쓰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멋진 글을 쓰는 사람이 누군지 정말 정말 궁금했습니다. 하버드 수석은 그냥 덤이었죠.”
“뭐 칭찬은 됐어요. 그래서 하고 싶으신 말이 뭔가요?”
홍지혜가 평소의 까칠한 눈빛으로 쏘아봤다.
“오프라인은 한 사람의 힘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닙니다. 팀워크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요.”
“…….”
“저는 지혜 씨가 조금 더 다른 분들과 어울렸으면 좋겠어요. 평기자가 아니잖아요? 부장입니다. 조금 더 책임감을 가져 주셨으면 합니다.”
“제게 하고 싶으신 말은 그게 단가요?”
“네.”
그녀는 나를 지나 앞으로 성큼 걸었다.
“무슨 의미로 하신 말씀이신지 잘 이해했어요, 우 사장님.”
“그럼?”
“주의할게요. 근데 여기 한 바퀴는 다 돌고 가는 거죠?”
“물론이죠.”
홍지혜가 앞서 걷고 내가 뒤를 따랐다.
우리는 말 한마디 없이 정상을 다 걷고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더 큰 불화가 생기기 전에 말해 주고 싶었다.
부사장의 지위에까지 오르면서 수많은 부하 기자들을 다뤄 봤다.
자기 잘난 맛에 주변과 트러블을 일으키는 이들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대부분 회사 분위기만 망가뜨린 채 몇 개월 만에 조직을 떠났다.
사장인 만큼 미리 경고해 두고 싶었다.
‘똑똑한 사람이니까 이해했겠지.’
내가 차에 시동을 켜고 핸들을 움직이자 옆에 있던 홍지혜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럼 다시 민박집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아뇨. 잠깐 들를 데가 있어요.”
“또요?”
“네. 뭐 지혜 씨 때문에 가는 건 아니니까 안심하세요.”
“…….”
홍지혜가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다랑쉬오름 인근에 있는 부동산에 차를 세웠다.
“부동산? 여기서 취재할 내용이 있나요?”
“아뇨. 개인적인 일로 들렀어요. 지혜 씨는 차에 계셔도 괜찮아요.”
“네에.”
나는 홍지혜를 차에 혼자 놔둔 채 오래된 부동산 사무실로 들어갔다.
“딸랑~”
현관에 설치된 풍경이 맑은 소리를 냈다.
“혼저 옵서…….”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무거운 배를 이끌고 푹신한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네. 혹시 비자림 근처에 싸고 괜찮은 전원주택 있을까요?”
“비자림 마씀? 게메 서울에서 왔수꽈?”
“네. 육지 것입니다.”
“하하하하. 육지 것 맞수꽈? 제주도 사투리로 말 호난 무신 거옌 고람 신디 몰를쿠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충은 이해합니다.”
“이야, 참말로 좋수다. 형씨 몬딱 마음에 듭디다. 호꼼만 이십서게!”
그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컴퓨터로 무언가를 빠르게 검색했다.
‘제주도 사투리 번역기가 유행했을 정도로 제주도 방언은 기사로도 인기가 좋았으니까. 대략 기억하고 있지.’
실제로 제주도 방언 모음 기사는 오프라인에서도 조회 수가 높은 콘텐츠 중 하나였다.
하도 여러 번 재발행을 하다 보니 제주도 사투리를 잘 몰라도 대충 어떤 내용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내게 비자림 근처에 적당한 매물 세 곳을 알려 줬다.
세 군데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비자림 입구 근처 사거리 모퉁이에 있는 집이었다.
위치도 마음에 들었지만, 가격도 1억밖에 하지 않았다.
내가 모퉁이 집을 고르자 부동산 아저씨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와 형씨, 제법 보는 눈이 있수꽈!”
그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내가 고른 집을 칭찬했다.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고, 집이 조금 낡았지만, 대지가 넓어서 나중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기에도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부동산을 나와 실제로 집을 봤다.
비자림까지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에 벽돌로 지어진 단아한 집.
“아주 좋네요. 이 집 제가 계약할게요. 다시 연락드릴 테니까 절대 다른 사람한테 집 팔면 안 됩니다. 아저씨! 아셨죠?”
“하하하하, 알았수다. 또시 꼭 옵서양!”
나는 아저씨에게 누누이 당부하고 차에 탔다.
홍지혜가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아는 분이에요?”
“아뇨. 처음 보는 분이에요.”
“그런데, 뭘 저렇게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요?”
“뭐, 제가 마음에 들었나 보죠.”
“흠. 신기한 사람…….”
그녀는 내가 신기하다는 건지 아니면 부동산 아저씨가 신기하다는 건지 알 수 없는 말을 남겼다.
‘그나저나 1억이면 정말 싸군.’
이때까지만 해도 제주도 부동산의 가격은 착하디착했다.
하지만 곧 미친 듯이 폭등할 것이다.
1억도 하지 않았던 허름한 시골 주택이 5억, 10억, 나중에는 20억을 불러도 매물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한국 사람은 물론 중국인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물건을 사 갔으니, 나중에는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꿈의 동네가 되어 버렸지.’
‘그리고 멋모르는 사람들은 보기에 좋다고 해안가의 집을 구하지만, 거기는 소금기도 많고 바닷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살기에 좋지 않아. 여기처럼 해발 200~600m 지역인 중산간 지대가 사람 살기에 좋지.’
워낙에 많은 사람이 제주도에 내려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왔기에 그들의 실패담은 좋은 기삿거리였다.
뭣보다 내가 살기 위한 집이 아니었다.
사진으로밖에 보지는 못했지만, 비자나무로 우거진 비자림은 산책하기 좋은 곳으로 유명했다.
‘엄마가 맑은 공기 마시며 유유자적 살기에는 여기만 한 곳도 없어. 나중에 땅값 오르면 팔아도 좋고.’
몸이 좋지 않은 엄마를 언제까지나 장터에 혼자 나가게 하고 싶진 않았다.
모아 둔 돈은 없지만, 명색이 언론사의 사장이고 월급도 나쁘지 않다.
1억 정도라면 대출을 받아서 사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게다가 몇 년만 지나면 미친 듯이 폭등한다는 걸 뻔히 알고 있었으니.
‘안 사면 바보지.’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홍지혜가 재미있다는 듯 그런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 * *
우리는 약 2주 동안 제주도 곳곳을 돌면서 여러 콘텐츠를 만들었다.
제주 맛집 지도에서부터, 이색 체험지, 숨겨진 명소 등 영상에서부터 사진, 그리고 글까지 다양한 기사를 제작한 것이다.
계획했던 콘텐츠를 모두 만들고는 서울에 올라가기 위해 공항에 도착하니 직원 모두 검게 탄 피부가 단체 동남아 관광객 같았다.
“헤헤, 최 부장님. 어깨가 투 컬러네요.”
박창후가 최루리의 어깨를 바라보며 짓궂은 농담을 던졌다.
최루리는 이날 어깨끈이 없는 오프 숄더 원피스를 입었는데, 브래지어 끈이 있던 부분만 흰색이 선명했다.
“후후. 그러게요. 그나저나 박 부장님은 수염도 조조처럼 간사하게 나는데 그냥 자르는 게 낫지 않나요? 일부러 기르시는 건 아니죠?”
그녀의 말에 일행 모두가 폭소했다.
나도 사실 하고 싶었던 말이었는데 차마 꺼내지 못했던 것을 최 부장이 시원하게 한 것이다.
2주간의 여정을 다녀온 뒤 사무실 분위기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2주 내내 보면서 서로 친해진 것도 있고, 상대를 이해하게 된 것이 컸다.
이 사람은 어떤 성격이고 저 사람은 어떤 스타일인지 알게 되면서, 콘텐츠가 나오는 시간도 빨라졌다.
그뿐이랴.
제주도에서 만든 콘텐츠 모두가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튜브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당연히 콘텐츠의 출발지였던 홈페이지의 트래픽도 깡충 뛰어올랐다.
“이거, 제2 경인 고속도로 트래픽은 진작에 뛰어넘었는데요?”
한무원이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적어도 10년은 계속 우려먹을 수 있을 겁니다.”
“진짜 대단합니다. 우 사장은 진짜 미디어계 미다스의 손이요. 인정!”
“뭘요. 한 이사님도 트래픽 폭주로 서버 관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고생이 많습니다.”
“하하. 제 밑에 있는 녀석이 아주 똘똘해서요.”
그가 말한 이는 이덕오였다.
오프라인에 투자한 원화성으로부터 개발자로 지원받은 인재였다.
“네. 원화성 회장이 지원해 준 사람이니까요. 한 이사님이 잘 인도해 주세요.”
“인도는 무슨. 저보다도 잘하는 친굽니다.”
한무원의 칭찬은 농담이 아니었다.
이덕오의 능력은 정말 대단했다.
이전 오프라인의 홈페이지는 누가 봐도 구질구질한 느낌이 강했다.
한무원이 만든 홈페이지였다.
하지만 이덕오가 합류한 뒤로 오프라인의 홈페이지는 무척이나 세련되고 깔끔해졌다.
홈페이지는 물론이고 그가 개발하고 있는 CMS(콘텐츠 관리 시스템)는 무척이나 편리하고 직관적이었다.
기사 편집도 쉽고, 해시태그 입력이나 사진과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를 붙이기도 쉬웠다.
“이전에 CMS가 티코라면 지금 만들고 있는 CMS는 포르쉐를 타는 느낌이죠.”
최루리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덕오 씨의 새로운 CMS만 적용되면 SEO(검색 엔진 최적화)에서도 유리하니까 트래픽은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더 올라갈 겁니다.”
내가 확신에 차서 말하자 한무원이 조금 난처하다는 듯 말했다.
“뭐, 덕오의 CMS가 대단한 건 인정하지만, 두 배는 솔직히 오버죠. 한 150% 정도 더 오를지는 모르지만.”
“아뇨, 두 배로 잡은 건 최댓값이 아니라 최솟값입니다. 이 정도 수준의 CMS라면 두 배는 거뜬하죠.”
“흠. 과연 그럴까요?”
한무원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아래에 있는 덕오가 너무 잘하니까 불편한가?’
하긴 한무원은 회귀 전에도 형편없는 일 처리로 백철웅과 자주 싸우다가 금방 나간 사람이었다.
지금은 다행히 밑에 뛰어난 이덕오가 있고, 거액의 투자금을 받는 등 형편이 좋아지면서 백철웅과 싸우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사직으로서 딱히 하는 일이 많지는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내치고 싶었지만, 제주도에 다녀온 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이사급을 갑자기 내보내서 찬물을 끼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 걱정을 읽었는지 백철웅이 한마디 보탰다.
“한 이사. 아랫사람 칭찬은 그만하고 자네도 열심히 해.”
“네, 선배…….”
한무원이 잔뜩 풀이 죽은 채 자리를 떴다.
“박 부장님, 요즘 이 폰트가 뜨던데, 이거 어떠세요?”
“오! 이거 괜찮은데? 유료야?”
“아뇨. 무료 폰트예요.”
“뭐, 이게 무료라고?!”
“네. 요즘에 대기업에서 경쟁적으로 무료 폰트를 만들어서 풀더라고요.”
“이야. 참 좋은 시대네. 방송국에 있을 때는 다 유료만 썼거든. 폰트당 몇천만 원씩 1년 사용료로 줬던 거 같은데 말이지.”
“뭐 좋은 건 유료 폰트가 많긴 한데요, 찾아보면 무료 중에서도 쓸 만한 건 많아요.”
“오케이. 그거 폰트 정보 상현이한테 알려 주고, 나한테도 커피톡 보내.”
13명을 뽑는 데 6천여 명이 지원해서 고생한 것도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제주도에 다녀온 뒤로는 그야말로 순풍에 돛을 단 배와 같았다.
오프라인 구성원 모두가 하나로 협력해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기사를 만들지, 외부에서 더 많은 유입을 끌어 올지 고민했다.
부서나 직무와 상관없이 서로 유기적으로 호흡하며 아이디어를 나눴다.
심지어는 회사에서 하라고 한 적도 없는데 먼저 야근을 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나는 백철웅을 설득해서 야근 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그거 굳이 안 줘도 될 텐데.”
“아뇨. 주는 게 장기적으로 더 이득입니다. 직원들 힘도 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