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200)

“쩝.”

백철웅이 입맛을 다셨다.

그가 아쉬워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포괄 임금제가 있었기 때문에 추가 근무 수당을 주지 않아도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었다.

게다가 이제 새로 출발한 스타트업에서 야근 수당까지 챙기기에는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직원들의 동기 부여를 위해서는 꼭 필요했다.

‘뭣보다 나중에 회사가 커지고 나서 불만이 제기되면 답도 없지. 처음부터 제대로 된 문화를 만들어야 해.’

백철웅이 경고를 한 탓인지 개발 팀도 별다른 문제를 보이지 않았다.

한무원도 업무에 힘썼고, 이덕오도 새로운 CMS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오프라인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와 같았다.

그 결과 기존 서버로는 트래픽을 견딜 수 없어 서버를 증설한 것은 물론,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튜브 구독자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트위터 팔로워는 55만, 페이스북은 25만, 유튜브도 15만 팔로워를 달성했다.

게다가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팔로워도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어 앞으로의 전망을 더욱 밝게 했다.

‘이 수치 만드는 데까지 몇 년 걸렸었는데, 3개월 만에 달성하다니 믿기지 않는군. 이 성장세면 예전 수치를 넘는 건 일도 아니겠어!’

‘게다가 외국 쪽을 함께 공략하길 잘했어. 조만간 외국 팔로워가 국내를 능가하겠는걸?’

국내의 경우 제주도에서 찍어온 영상들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번 여름에는 해외보다 제주도 여행을 더 많이 갔다는 통계 자료가 나올 정도로 사람들은 우리가 만든 영상을 보고 제주도를 많이 방문했다.

덕분에 홈페이지 배너 광고 수익이 큰 폭으로 증가하였고, 많은 언론사와 커뮤니티에 오프라인의 기사를 유료로 제휴할 수 있었다.

“제주도는 진짜 신의 한 수였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아니요. 정말 시의적절했습니다. 마침 7, 8월 휴가철이기도 했고요. 처음에 우 사장이 제주도에 단체로 여행 가자고 했을 때만 해도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닌가 했는데.”

“백 사장님이 배려해 주신 덕분이죠.”

“덕분에 직원들 전체 월급까지는 아니더라도 80% 이상은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지표도 나쁘지 않아요.”

“네. 이런 속도면 올해 안에 흑자 전환도 가능하리라 봅니다.”

“그러게요. 이러면 인센티브도 고려해 볼 만하겠네요.”

“인센티브요?”

백철웅이 인센티브라는 말을 꺼낼 줄이야.

이전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10년 동안 보너스는커녕 명절에 참치 세트가 전부였는데.’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역시 회사든 사람이든 돈부터 벌고 봐야 한다.

* * *

사장실.

스무 명을 새로 뽑고 나서 사장인 나와 백철웅은 사무실 한쪽 공간에 가벽을 설치하고 각자의 사무실 공간을 가졌다.

부사장 시절에도 가지지 못했던 개인 공간.

그때만 하더라도 저런 걸 왜 두나 싶었는데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사장이 되니 각종 VIP 접대에서부터, 대외비, 매출, 영업 이익 등 직원들에게 곧바로 공개하기 곤란한 일들이 많았다.

지금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미스터 우. 그래서 오프라인을 설립한 이유가 뭡니까?”

“아, 네. 시대가 바뀌면서 과거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언론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SNS를 제대로 활용해야 승산이 있다고 본 거죠.”

금발의 리포터는 쉴 틈도 없이 질문을 쏟아 냈다.

크리스티안 케이서스.

CNN의 유명 리포터이자, 이라크 전쟁 당시 종군 기자로 맹활약하여 CNN 부사장의 지위까지 올라간 여장부.

그런 자가 지금 눈앞에서 나를 인터뷰하고 있다니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미스터 우?”

“우 사장님?”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 케이서스와 최루리가 재차 내게 물었다.

영어로 된 페이지를 간단하게 번역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지만 대면 인터뷰는 무리였다.

그래서 최루리가 통역을 위해 동석했다.

“아, 네 죄송합니다. 뭐라고 하셨죠?”

“앞으로 페이스북은 어떻게 되리라 생각하십니까? 마이 스페이스처럼 몰락할까요? 아니면 계속 이 성장세를 이어 갈까요?”

“지금은 트위터보다 한 수 아래지만 조만간 페이스북이 SNS의 제왕이 될 겁니다. 전 세계 모두가 페이스북을 통해 소통하고, 자신의 일상을 올리게 될 테죠. 저희 오프라인도 그에 대비해서 페이스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음, 지나친 확신 아닐까요? 마이 스페이스 역시 2000년대 중후반대까지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인기가 별로 없습니다.”

“두고 보시면 알 겁니다. 제 말이 틀렸는지 맞았는지.”

내가 확신에 가득 차서 말하자 케이서스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준비한 인터뷰는 여기까지입니다.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스터 우.”

“별말씀을요. 콘퍼런스 때문에 멀리 한국까지 오셨는데, 이런 별 볼 일 없는 신생 매체에 와 주시고, 저희가 감사드립니다.”

사실 그녀는 한 메이저 경제지에서 준비한 ‘언론의 미래’라는 콘퍼런스에 연사로 초대되어 한국을 방문하였다.

굳이 오프라인을 방문하여 인터뷰할 이유는 없었지만,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돌연 인터뷰를 요청, 급히 약속을 잡은 것이다.

‘백 사장님이 하시면 좋았을 것을…….’

백철웅은 자기는 영어 울렁증이 있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하지만 최루리가 있으니 사실 영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는 공동 사장이기는 했지만, 창립자는 아니었다.

보통 이런 중요 인터뷰는 창립자가 하기 마련이다.

백철웅이 나를 굉장히 배려해 주고, 믿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열심히 해서 오프라인을 더 크게 성장시키는 수밖에.’

인터뷰를 마친 나는 최루리와 함께 케이서스를 데리고 광화문 인근의 한식당에 들렀다.

불고기가 유명한 가게였다.

의외로 그녀는 불고기도 알고 김치도 알고 있었다.

케이서스는 능숙한 젓가락질로 뻘겋게 익은 김치를 가득 집어서는 입에 가져갔다.

그녀가 탐스럽게 김치를 먹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목젖까지 차오르는 말이 있었다.

두유 라이크 김치?

하지만 꾹 참았다.

“혹시 어떻게 저희를 아시게 되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나는 불고기를 먹고 있는 케이서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최루리가 옆에서 빠르게 통역해 줬다.

“한국에 있는 기자 친구가 한국에 올 거면 꼭 만나 보라고 하더군요. 이곳에 엄청난 미디어 혁명 기업이 있다면서요.”

“혁명 기업은요. 이제 만든 지 고작 3개월도 안 된 신생 매체인걸요. 열심히 해야죠.”

“아니요. 적어도 제가 알기에는 미국조차도 이 정도 수준으로 SNS에 집중해서 매체를 운영하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아니 전 세계적으로도 거의 유일하다 싶은데요?”

“음. 그런가요?”

“네. 저도 영어 자막이 달린 영상과 기사를 봤지만 퀄리티가 굉장히 높았어요. 스토리텔링도 훌륭하고, 영상 퀄리티도 좋고요.”

“보셨다니 영광이네요.”

“아뇨. 농담으로 드리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미국에서도 꽤 화제가 되었어요. 그 교통사고 건 말입니다.”

“아 그거요. 어쩌다가 사고 현장 바로 앞에 차를 댈 수 있어서 찍을 수 있었죠. 운이 좋았어요.”

“운이 좋다는 게 곧 실력이죠.”

“좋은 분들을 많이 뽑았어요. 옆에 있는 최루리 부장님도 그때 뽑은 인재이시고요.”

내 말을 들은 최루리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별말씀을요. 모두 우 사장님 기획이죠.”

“두 분 사이가 좋으시네요. 혹시 연인 사이?”

“네? 아뇨. 그럴 리가요. 최 부장님은 결혼한 지 오래되셨어요. 저는 20대 싱글이고요.”

“그래요? 동양 사람들 나이는 정확히 구분이 안 돼서……”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서 최루리가 괜히 심술궂은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우 사장님. 저 조금 기분 상하려고 하네요. 너무 싫은 티를 내시는데요?”

“아. 그게 아니라, 20대와 40대는 그래도 좀…….”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식사 시간을 지나 티타임까지 이어졌다.

식당 근처 전통 찻집을 찾은 우리는 쌍화차를 주문하고 담소를 나눴다.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케이서스가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미스터 우. 괜찮다면 올해 안에 CNN 본사를 방문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CNN 본사요?”

나는 물론 최루리도 깜짝 놀라 케이서스를 바라보았다.

“네. 함께 식사하면서 미스터 우의 지식이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쯤은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괜찮다면 저희 CNN에도 오프라인의 비밀을 좀 전수해 주시죠?”

“아니 저희한테 무슨 비밀이 있다고…….”

“저도 SNS에 언론의 미래가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독자가 참여하고 소통하지 않는 언론은 이미 죽은 언론이죠. 부디 저희에게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케이서스는 벌떡 일어서더니 내게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했다.

오 마이 갓!

나와 최루리는 그녀를 진정시켜 다시 자리에 앉혔다.

“동양에서는 부탁할 때 이렇게 하는 게 예의라고 들었습니다. 아닌가요?”

“맞긴 하지만 조금 오버하셨네요.”

“그런가요? 갑작스러운 제안이었겠지만 부디 잘 생각해서 좋은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동료들과도 이야기를 나눠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케이서스와 헤어진 뒤 나는 최루리와 함께 천천히 광화문 광장을 걸어 회사로 향했다.

“CNN의 부사장이 3개월밖에 안 된 우리를 취재한다는 것도 놀랍지만, 우 사장님을 CNN 본사에 연사로 초대한 것도 정말 어메이징하네요.”

“최 부장님. 지금 통역하다가 와서 그러신 거죠?”

“네? 뭘요?”

“아니 어메이징하다고 해서요.”

“아. 하하 아니요. 정말 너무너무 놀라서요.”

“저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군요. CNN 리포터가 저를 인터뷰하고, 같이 밥 먹고 차 마시다가 한 수 가르침을 청하다니…….”

“저 여기 오길 진짜 잘한 것 같아요.”

“저희야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영광이죠.”

“아뇨. 번역 일은 재미있지만 좀 루즈하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하루하루가 아주 흥미진진해요!”

“3개월밖에 안 됐는데 벌써 그러시면 곤란한데요. 앞으로 더 놀랄 일이 얼마나 많을 텐데.”

“기대할게요, 우 사장님!”

최루리와 즐겁게 수다를 떨며 걷는데 앞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보였다.

광화문 광장을 늠름하게 지키고 있는 수호신.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기사가 있었다.

회귀 전 처음으로 오프라인 기자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

“최 부장님, 저기 지금 며칠이죠?”

“오늘이요? 9월 20일 월요일이요. 케이서스랑 인터뷰한다고 몇 번이나 당부드렸는데 벌써 잊으셨어요?”

“그게 아니고…… 그러니까 내일모레가 추석 맞죠?”

“그렇죠? 안 그래도 다들 오늘 몇 시에 퇴근하는지 궁금해하던데. 혹시 언제 퇴근하나요? 조금 일찍 갈 수 있나요?”

최루리가 평소보다 두 배는 커진 눈방울로 물었다.

“그게 좀 곤란하겠는데요?”

“네? 뭐가요?”

“오늘도 그렇지만 내일도 출근해야 할 것 같아서요.”

“네? 내일은 추석 연휴인데요?!!”

“그러니까요. 출근해야죠.”

“……?!!!”

# 4장 광화문 물난리

최루리와 함께 회사에 돌아온 나는 모두를 한데 모았다.

다들 무슨 일인지 궁금한 눈치였다.

추석을 앞두고 일찍 집에 들어가려나 싶어 기대하는 표정들.

“여러분. 지금 어떤 마음이신지는 대충 짐작이 갑니다. 그래서 더 미안합니다. 내일부터 추석 연휴인 걸 잘 알고 있지만, 부디 출근을 부탁드립니다.”

순간 모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네?”

“어떡해. 나 기차 예매해 뒀는데…….”

일부 여직원들은 울상을 지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대신 화요일인 내일 하루만 출근하고, 금요일인 24일은 대체 휴가를 드릴 겁니다. 그러니까 추석인 22일부터 일요일인 26일까지 5일을 쭈욱 쉴 수 있죠.”

그제야 일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요일이 추석이라 화, 수, 목 이렇게 삼 일간 휴일이었는데, 화요일에 출근하는 대신 수, 목, 금, 토, 일을 연속으로 쉴 수 있다니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전에 미리 공지한 것도 아니고 갑자기 하루 전날 이야기를 하니 미리 고향에 갈 표를 끊어 두거나 약속이 있는 이들은 곤란해했다.

‘젠장. 회사 일이 너무 바쁘다 보니까, 이게 내일이라는 걸 까먹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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