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200)

2010년 9월 21일.

추석 연휴 첫날인 그날 한국의 중부 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시간당 100㎜가 넘는 비에 가옥이 침수되는 등 수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서울에서는 하루 259㎜가 넘는 폭우가 내려 9월 하순 강수량으로는 1908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비가 내린 것으로 기록될 정도였다.

특히 광화문 일대는 광화문 광장 조성 과정에서 제대로 배수 시설을 만들지 않아 사람 무릎 깊이까지 물이 가득 차올랐다.

10년 전에 발생했던, 일명 광화문 물난리 사건.

연휴 첫날이라 모두 방심하던 차에 터진 사건이기에, 기성 언론에서는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대신 회귀 전 오프라인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다.

제2 경인 고속도로 사건도 나쁘지 않았지만 단 한 장의 사진이 기사의 전부였다.

하지만 광화문 물바다 사건은 수많은 이들이 트위터에 사진을 올리고 현재 자신의 상황을 전하는 등, 다수가 참여하는 공론의 장이었다.

오프라인은 트위터 사용자들이 올린 각종 사진과 내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한편, 이를 기사로 정리하여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한 중견 언론인은 우리가 신생 매체에게 졌다며 분발을 요구할 정도였으니 오프라인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성장의 기폭제였다.

‘그러니 절대 이 기회를 포기할 순 없어. 포털에 올라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나는 부장들에게 부서마다 내일 출근이 가능한 인원을 조사해 보고하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일이 도착했다.

“디자이너랑 개발 모두 가능하고. 국제부도 모두 가능하고, 영상부는 2명이 빠지고, 소셜부는 응?!”

<소셜부는 모두 쉽니다. 냉무>

본문도 없이 제목만 달랑 보내온 메일.

홍지혜에게 온 메일이었다.

‘몇 명 빠지는 건 상관없지만, SNS에 기사를 내보낼 소셜부가 모두 쉰다는 건 말도 안 되지!’

나는 급히 사장실로 홍지혜를 불렀다.

방으로 들어온 홍지혜의 표정은 단호했다.

“도대체 왜 내일 출근을 해야 하는지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해 주시죠! 아니면 저는 수락할 수 없습니다.”

‘아니 내일 기록적인 폭우가 올 거라는 걸 어떻게 설명하냐고…….’

실제로 이날 기상청이 예상한 내일 강수량은 고작 20~60㎜.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홍지혜가 더욱 기세를 몰아갔다.

“거봐요. 사장님도 대체 내일 왜 모두 출근하라는지, 말씀을 못 하시잖아요? 저희 소셜부는 저 포함 그 누구도 출근하지 않겠습니다!”

“오프라인이 설립되고 처음 맞는 민족의 대명절이에요. 분명 뭔가 이슈가 나올 겁니다.”

“그렇다고 그게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외면할 정도로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단순한 휴일도 아니고 추석입니다. 고향이 먼 친구들도 있어요. 며칠 전도 아니고 하루 전에 갑자기 이러시면 곤란하죠.”

“홍 부장님. 이번 한 번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절 믿고 내일 하루만 출근하면 안 되겠습니까? 다른 부원들은 어렵더라도 홍 부장님만이라도요.”

그녀의 눈꺼풀이 미묘하게 떨렸지만, 이내 마음을 굳힌 듯 고개를 저었다.

안타까웠지만 더 이상 설득하는 건 어려워 보였다.

“알겠습니다. 나가 보세요.”

“네.”

홍지혜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묵례를 하고는 문으로 향했다.

깐깐한 사람이다.

“아, 홍 부장님.”

“네?”

“고향이 어디세요?”

“부산입니다.”

“부산. 머네요. 차편은 구하셨어요?”

“네. 표는 한 달 전에 벌써 예매해 뒀습니다.”

“그렇군요. 우산 잘 챙기시고, 조심히 다녀오세요.”

“네. 사장님도 명절 잘 보내세요.”

그녀가 나가자 무거웠던 공기가 차츰 옅어졌다.

나는 의자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짙게 낀 먹구름이 마치 내 마음 같았다.

* * *

9월 21일.

점심때까지 사무실로 출근하라고 한 나는 10시쯤 고시원을 나와 사무실로 향했다.

날씨는 흐렸지만, 비가 내릴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어차피 본격적으로 퍼붓는 건 점심 지나서 2시 무렵부터였지.’

회귀 전 여친 주소월과 대학로에서 데이트했을 때가 떠올랐다.

같이 점심을 먹고 차 한잔하러 가는데 갑자기 미친 듯이 비가 퍼붓더니 금세 발목까지 물이 차올랐다.

급히 지하철역으로 주소월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백철웅에게 전화가 왔다.

-당장 사무실로 출근해!

그렇게 휴일에 갑자기 출근해서 기사를 만들었다.

‘대박이 나지 않았으면 분명 두고두고 백철웅을 욕했겠지.’

새삼 홍지혜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백철웅이 나를 반겼다.

“백 사장님. 빨리 나오셨네요?”

“연휴에 직원들 출근하라고 해 놓고 사장이 늦으면 안 되죠.”

“존경스럽습니다. 사장님.”

“하하, 우 사장도 빨리 나왔잖아요. 저도 조금 전에 왔습니다. 그나저나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백철웅의 눈빛에는 궁금함과 더불어 나를 걱정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음……. 기자의 촉이랄까요?”

“기자의 촉이요?”

“네. 사장님도 제가 오프라인에 올 걸 감으로 알았다고 하셨잖아요? 저도 오늘 분명 뭔가 터질 것 같아서요.”

“껄껄껄. 아니 정말 그런 이유로 직원들 모두 연휴 첫날에 출근시킨 겁니까?”

백철웅이 배를 잡고 웃었다.

그와는 오랫동안 함께 일해 봤지만 이렇게 격의 없이 웃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니 그게 그렇게 웃깁니까?”

내가 볼멘소리로 말하자 그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이해합니다. 아뇨, 맞습니다. 그럴 때가 있죠. 기자의 감, 기자의 촉이 시키는 일이요.”

“두고 보세요. 분명 뭔가 터질 겁니다.”

그와 이야기하는 사이 박창후가 도착하고 차례로 최루리, 한무원이 도착했다.

한무원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우 사장님. 저 집이 강릉인데,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한 이사님. 오늘 서버 좀 잘 부탁드립니다.”

“아니 휴일에 무슨 서버 타령인지. 그리고 서버 확충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요! 넘쳐 납니다. 넘쳐 나요!”

“아무튼 신경 좀 써 주세요.”

“아니 무슨 신경을 써 달라는 건지 참…….”

12시 반이 되자 오늘 출근하기로 한 직원들이 모두 모였다.

나는 사과 겸 감사의 의미로 밑에 중국집에서 탕수육과 양장피, 팔보채 등의 요리를 거하게 시켰다.

박창후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저는 어차피 이번에 안 내려가려고 했어요. 내려가 봤자 결혼 안 하냐, 사귀는 애인은 있냐, 아니 왜 그 좋은 직장은 그만두고 그런 곳에 갔느냐 타박만 들을 텐데요.”

최루리가 탕수육을 조신하게 집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곳은 뭘요. 멋진 곳이죠. 저는 집이 광주라서 어제 일찍 퇴근하고 바로 내려갈 계획이었어요. 우 사장님만 아니었으면 저도 홍 부장처럼 그냥 내려갔을 거라고요~”

“정말 고맙습니다. 최 부장님. 홍 부장님은 집에 중한 일이 있다고 해서 내려갔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흥! 중한 일은 뭘요. 안 봐도 비디옵니다. 누구는 가족이 없고 고향이 없습니까? 휴일에 왜 나오냐고 따졌겠죠. 안 그렇습니까?”

박창후가 정곡을 찔렀지만 나는 모르는 척 시선을 피했다.

모두가 배부르게 식사를 끝낼 즈음.

누군가 창밖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와! 뭐야, 미친 듯이 퍼붓네!”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 * *

창밖을 내다보니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물 폭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우산도 없이 나온 이들은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백철웅이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더니 조용히 말했다.

“우 사장님이 느낀 촉이 이건가 보죠?”

“아마도요.”

박창후는 내가 따로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뭘 해야 하는지 명확히 이해했다.

역시 HBS 카메라 기자 출신이었다.

프로의 역량이란 갑자기 터진 일에 얼마나 신속하게, 잘 대응하느냐의 여부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는 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사무실 안과 밖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소셜부가 출근하지 않은 관계로 국제부가 SNS를 맡았다.

“최 부장님. 우선 트위터랑 페이스북에서 물 폭탄 관련된 내용은 모두 찾아봐 주시고, 괜찮은 사진이나 내용이 있으면 우선 한글 기사로 먼저 만들어 주세요. 번역은 그다음이고요.”

“네, 걱정 마세요. 우 사장님.”

“저는 트위터에서 찾은 사진으로 저희 트위터에 라이브 중계를 할 테니까, 좋은 소스 있으면 전달해 주시고요.”

“넵!”

역시나 반응은 바로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튜브의 조회 수가 치솟았고, 홈페이지 접속량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른 매체에서는 기사가 나오지 않으니 사람들이 오프라인에 몰린 것이다.

게다가 빠르고 정확하며, 영상으로까지 편집된 기사에 사람들의 만족도가 무척 높았다.

한무원은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했으나 천재 개발자 이덕오가 있으니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사무실이 분주한 만큼 사무실 밖의 풍경도 실로 가관이었다.

이미 인도와 도로의 구분이 사라진 밖은 넘실거리는 물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바지를 무릎 위까지 접어 올리고 다녔고, 하수도 곳곳에서 물이 역류해 도로 위로 흙탕물을 게워 내고 있었다.

사무실이 위치한 종로 외에 서울 강서와 강남, 강북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곳곳에서 차량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물에 잠긴 도로가 속출했다.

강서구와 양천구에선 반지하 방으로 쓰나미처럼 물이 밀려들어 오면서 집 전체가 물에 잠기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묘한 희열이 찾아왔다.

미칠 듯이 기사를 써낼 때 느껴지는 감정.

집중해서 기사를 쓰고 있는 그때.

“탕탕탕!”

누군가 사장실 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누구세요? 나 바쁘니까 이따 들어…….”

“쿵!”

대답도 없이 문이 쾅 하고 열렸다.

부산에 내려간다던 홍지혜가 온몸이 비에 흠뻑 젖은 채 서 있었다.

“아니 부산에 내려간다더니 여긴 왜?”

“이거였나요?”

“네?”

“우 사장님이 말씀하신 추석 이슈라는 게?”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여전히 퍼붓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군요.”

그녀는 젖은 몸으로 뚜벅뚜벅 다가오더니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USB였다.

“이건?”

“인터뷰요.”

“인터뷰?”

“네. 제가 사는 신촌 쪽도 폭우로 난리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점심 무렵부터 사진도 찍고 사람들 인터뷰도 했죠.”

“아니 어제 고향에 간다는 거 아니었어요?”

“그건…….”

홍지혜는 한동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말이 없었다.

얼마나 비를 맞았는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떨어지는 물방울이 그칠 줄을 몰랐다.

그녀가 서 있던 바닥은 금방 흥건해졌다.

“일단 몸부터 닦고 오는 게 좋겠어요. 지하에 있는 24시 사우나 오늘도 문 연 거 같던데 빨리 다녀오세요.”

오프라인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에는 오래된 24시 사우나가 있었다.

공휴일이나 늦은 시간에도 문을 닫지 않아 피곤할 때면 종종 애용하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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