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혜는 괜찮다고 고집을 피웠지만, 흠뻑 젖은 옷은 그녀의 속옷 라인을 무방비로 노출했다.
내가 슬쩍 어깨를 가리키자 그녀는 화들짝 놀래며 사장실을 나갔다.
‘이럴 거면 그냥 나오지 고집은…….’
홍지혜가 건네준 USB를 PC에 꽂자 여러 장의 현장 사진과 함께 워드 파일이 보였다.
신촌 쪽도 광화문과 마찬가지로 곳곳이 침수되는 등 피해가 컸다.
DSLR로 찍었는지 해상도도 엄청나게 크고 사진도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과 다르게 선명했다.
그리고 홍지혜가 작성한 인터뷰는 생생함이 넘쳤다.
차량 범퍼 높이까지 물이 차오른 외제 차가 도로 한가운데 서 있는 가운데, 해당 차량의 오너를 인터뷰한 내용이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외제 차. 이제 지쳤는지 움직일 힘도 없어>
신촌 하늘이 뚫렸다. 갑자기 퍼부은 비는 신촌 도로를 메콩강으로 만들었다. 탁한 흙탕물은 사람들의 마음도 어둡게 했다. 흙탕물에 갇힌 한 시민을 만나 보자.
“친구 돌잔치가 있어서 왔는데 갑자기 비가 퍼붓더니 길 가운데에 꼼짝없이 갇혀 버렸어요! 경찰 아저씨한테 도움을 요청해도 마땅한 해결 방법도 없고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네요. 너무 당황스러워요!”
그 밖에도 1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을 사진과 함께 인터뷰한 내용은 트위터와는 다른 정제된 묘미가 있었다.
나는 즉시 홍지혜의 이름으로 해당 내용을 정리하여 기사로 내보냈다.
제목은 이러했다.
[단독] 오프라인 기자가 ‘현장 취재’한 신촌 메콩강!
트위터 소스를 바탕으로 한 기존의 다른 기사와는 달랐던 탓인지 사람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와 이제 직접 취재도 하는 거예요? 오프라인 대박!>
<홍지혜 기자님!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 취재 조심하세요!>
<흐흐흐. 메콩강 표현 지대로네!>
이렇게만 끝내 버리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나는 디자이너들을 불러 홍지혜의 뉴스를 정사각형의 이미지로 만들게 시켰다.
“지금 이 뉴스를 조금 더 시각화시켜 봅시다. 정사각형 레이아웃에 장마다 글이 조금 있고, 해당 글을 설명할 수 있는 사진을 넣어서 총 열 장 내외로 만들 수 있겠나요?”
처음에는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던 디자이너들도 직접 손으로 그려서 보여 주니 대번에 이해했다.
바로 카드 뉴스의 등장!
2010년까지만 해도 카드 뉴스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비슷한 느낌으로 커뮤니티 등에서 지식 채널의 영상을 캡처하여 올리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언론사에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만든 것은 2014년 정도나 되어서였다.
이후 몇 년간 카드 뉴스는 SNS 포맷의 제왕이었다.
언론사든 마케팅이든 카드 뉴스를 활용하지 않는 곳이 없었으니.
‘원래 계획은 조금 더 뒤에 만들 생각이었지만 지금 이 기세를 놓치고 싶진 않군.’
홍지혜의 글도 좋았지만, 디자이너들의 감각도 뛰어났다.
간단히 설명했을 뿐인데 척하면 척이었다.
그들은 금세 멋진 카드 뉴스를 뽑아내었다.
‘이덕오도 그렇고 원화성이 소개해 준 이들은 하나같이 뛰어나단 말이야. 지금은 파견직으로 나와 있지만, 부탁해서 우리 쪽에 정규직으로 채용해야겠어.’
페이스북의 사진첩 기능을 이용해 카드 뉴스를 올리자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생소했던 탓인지 생각만큼 폭발적인 반응은 아니었지만.
‘지금 당장은 이게 뭔가 싶겠지만, 곧 모두가 카드 뉴스를 소비하게 될 거야.’
페이스북에 올린 카드 뉴스 댓글들을 살피고 있던 차에 홍지혜가 목욕을 마치고 돌아왔다.
채 마르지 못한 젖은 머리 아래에서 하얀색 피부가 뽀드득 윤기가 났다.
“홍 부장님 덕에 반응이 좋네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홍지혜는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USB에 든 사진하고 인터뷰요. 제가 편집해서 올렸는데, 반응이 아주 좋아요.”
내가 모니터를 그녀 쪽으로 돌리자 홍지혜가 성큼 다가와서는 기사를 확인했다.
“와, 이걸 이렇게 정리해서. 그것도 제 이름으로 올려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우 사장님.”
“뭘요. 취재한 건 홍 부장이니까요.”
“하지만 편집해서 올리신 건 사장님이시잖아요?”
“취재한 사람을 바이라인(기사 작성자의 이름)에 넣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그녀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더욱더 내 쪽으로 몸을 밀착시켰다.
“그런데, 페이스북에 올린 이 사진은 뭔가요? 처음 보는 형태인데, 이거 정말 좋은데요? 기사와 다르게 가독성도 무척 좋고요!”
“카드 뉴스라는 건데, 이 기사를 시작으로 앞으로 꾸준히 제작할 거예요. 분명 반응이 좋을 겁니다.”
“네. 앞에 본 기사랑 같은 내용인데 눈으로 들어오는 게 전혀 달라요. 훨씬 더 감성적이고, 잘 이해가 된달까…… 다만…….”
“다만?”
“너무 글이 요약되었달까, 기사의 맥락이 제대로 전달되는지는 조금 걱정이 드네요. 이번 건이야 인터뷰 정도였으니까 상관없다고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걸 만드신다면 그 부분은 신경을 써야 할 거 같아요.”
역시 홍지혜였다.
그녀는 카드 뉴스의 약점을 대번에 파악했다.
뛰어난 가독성은 카드 뉴스의 장점이었지만 반대로 단점이기도 했다.
빠른 정보 전달이 목적인 만큼 전체적인 맥락을 모두 설명하기보다는 짧고 자극적인 문장과 그림이 중요했다.
충분한 배경 지식을 전달하지 못하다 보니 왜곡된 인식과 잘못된 정보를 줄 우려가 있었다.
“그 부분은 앞으로 홍 부장님을 비롯한 소셜부에서 해결할 숙제입니다. 디자이너분들과 잘 논의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갑자기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에요? 연락이라도 줬으면 마중 나갔을 텐데.”
“그게…….”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아뇨! 사실 우 사장님이 말씀하신 게 마음에 걸리기도 했고…….”
“뭐가요?”
“그, 오프라인 설립되고 처음으로 맞는 대명절이라고 하신 거요. 뭔가 이슈가 나올 거라는 말…….”
“네. 그런 말을 제가 했었죠. 하지만 홍 부장님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셨나요? 근거가 뭐냐며?”
홍지혜는 즉각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우 사장님! 제가 경솔했어요. 설마 이렇게까지 폭우가 내릴 줄은…….”
“아니에요. 고개를 드세요. 저라고 이걸 정확히 예측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뭔가 터질 것 같다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만 있었죠. 연휴 전날 갑자기 그런 말을 하면 누구라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들은 다 납득하고 출근하셨잖아요! 저랑 저희 부서만 제가 고집을 피워서…….”
“홍 부장님이 취재한 내용이 반응이 좋으니까 소셜부는 오늘 출근한 거로 볼게요.”
“네? 그건 말도 안 되죠!”
“말이 안 되기는요. 홍 부장 기사가 오늘 만들었던 오프라인 기사 중에 가장 댓글 수가 많아요. 페이스북도 그렇고.”
“그래도…….”
“그만하고, 자리로 돌아가 봐요. 할 일 많지 않아요?”
“아 네.”
퇴근하기 전에 알게 된 사실인데 홍지혜는 어제 아는 동생에게 표를 넘기고 자신은 집에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혹시나 싶어 오전 내내 동네 카페에서 노트북을 들고 살폈지만 별다른 이슈가 나오지 않자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폭우가 쏟아졌고 무언가를 직감한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해 인터뷰를 시작했다고.
‘고향에 안 간 걸 고맙다고 해야 하나 말을 안 들어서 괘씸하다고 해야 하나.’
나는 그녀가 나간 방향을 한참 동안 말없이 쳐다보다 생각을 접고는 이덕오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사장님.”
“네. 혹시 지금 바로 홈페이지에 게시판 하나 붙일 수 있어요?”
“게시판요?”
“네. 사람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남길 수 있는 자유 게시판이요.”
“음. 그리 어렵진 않습니다. 자유 게시판은 기존에 오픈 소스도 많아서 비용도 안 들고요.”
“오케이. 그럼 지금 바로 준비해 주세요. 다 되면 연락 주시고요.”
나는 이덕오를 시켜 물 폭탄 전용 자유 게시판을 생성해 오프라인 홈페이지에 붙였다.
‘평소와 다른 큰 이슈가 생겼을 때는 특집 페이지를 별도 생성해 운영하면 트래픽이나 반응도 훨씬 좋으니까.’
포털이나 언론사에서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의 큰 이벤트가 있으면 별도 페이지를 구축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별개의 도메인이 생기니 사람들의 반응을 모으기도 쉽다.
예상대로 전용 게시판이 생기자 사람들은 트위터가 아닌 게시판에 자신들의 현황과 소감 등을 남기기 시작했다.
SNS에서 따로 검색하지 않아도 곧바로 사진과 현황 등을 찾을 수 있게 되자 기사를 만들기도 한결 수월해졌다.
그뿐 아니었다.
그동안 소스를 찾아 발행하는 것이 우선이고 독자와의 소통은 부차적이었는데, 게시판이 생기자 곧바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야 진짜 오보청. 이번에도 크게 한 건 해 주시네!>
<허벅지까지 물이 차서 구청에 신고했는데 긴급 대처가 전혀 없네요! 아휴 속 터져!>
<볼 게 오프라인밖에 없다! 다른 언론사들은 연휴라고 죄다 휴가냐!>
<연휸데 고생 많으십니다. 오프라인 기자님들 응원합니다!>
<오프라인 따봉 드세요, 두 번 드세요!>
<저희 집에 물이 들어오고 있어요! 도와주실 분 안 계신가요?>
<앗 어디세요? 근처면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좌표 불러주세요! 당장 달려가겠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오보를 낸 기상청에 대한 분노와 서울시 및 정부의 늦장 대처를 지적하는 분위기가 오프라인에 대한 칭찬과 응원으로 변하더니 급기야는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도 자기들끼리 자발적으로 수재민을 돕기 시작했다.
‘대박인데?! 게시판 만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서로 돕겠다고 나서고!’
흥분감이 전신을 감쌌다.
기자라면 사랑해 마지않을 대박 감동 기삿감이 제 발로 나타난 것 아닌가!
“홍 부장님! 이 게시판 글들로 당장 기사 쓰세요. 빨리요!”
나는 홍지혜에게 게시판을 보여 주며 즉시 기사를 쓰라고 지시했다.
홍지혜도 사안의 중요성을 인지한 듯 군말 없이 지시에 임했다.
기사 가운데 감동 스토리만큼 매력적인 게 있던가.
살인, 방화, 사고, 비리, 성폭행…….
사람들은 사회 전면에 가득 찬 부정적인 기사에 질릴 대로 질려 있었다.
하지만 사람끼리 서로 돕고 위기를 극복하는 이야기는 모두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든다.
갑작스러운 폭우에 지쳐 있던 사람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기자라면 누구라도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소재다.
이에 대한 언론사 간 취재 경쟁도 치열했다.
실시간 폭우 속보는 흘려보냈지만, 이번 건 만큼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미담 사연이 넘쳐 나는 오프라인의 물 폭탄 전용 게시판은 자연스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많은 곳에서 우리를 취재하고 싶다는 연락이 줄을 이었다.
나는 지금 당장 인터뷰는 곤란하지만, 오프라인의 출처만 명확히 표기해 준다면 우리 쪽 사연을 마음껏 다뤄도 무방하다고 답했다.
한 방송사에서는 수차례 연락을 하는 탓에 대표로 내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과거, 제2 경인 고속도로 사건 당시에도 인터뷰했던 보도전문채널 TTN이었다.
언론사의 구애와 별도로 오프라인의 트래픽은 시간이 지날수록 최고치를 경신했고, 급기야 오후 7시.
<사이트에 연결할 수 없음>
offline.co.kr에서 연결을 거부했습니다.
다음을 시도:
· 연결 확인
· 프록시 및 방화벽 확인
ERR_CONNECTION_REFUSED
[새로 고침]
서버가 뻗어 버렸다.
사무실 곳곳에서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헐!”
“아 뭐야! 한 이사님! 덕오 씨, 이것 좀 어떻게 해 봐요!”
“서버 터졌어! 빨리 복구시켜 줘요! 아씨 지금 업로드 중이었는데!”
오프라인 모두의 시선이 개발 팀을 향했다.
한무원과 이덕오에게 당장 상황을 해결하라는 무언의 압박.
갑작스러운 상황에 한무원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마흔다섯이나 나이를 먹고서는 당황하는 꼴이라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반면 스무 살이나 어린 이덕오는 담담했다.
마치 당장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비장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나는 두 사람 쪽으로 몸을 움직이고는 이덕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자자, 여러분 모두 휴일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장인 제가 갑자기 연휴 전날 근무하라고 했는데 다들 너무 잘 따라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서버도 많이 무리한 모양이에요. 이만 쉬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봅니다. 그러니 다들 퇴근하세요, 퇴근!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의 퇴근 신호에 모두가 당황했다.
“네? 퇴근이요?”
“아 왜요! 저 기사 더 쓰다 갈래요!”
“저도요! 영상 만들 게 더 많아요!”
사람들은 오늘이 휴일이라는 것도 잊은 채 더 일하고 싶다고 아우성쳤다.
‘여기저기서 오프라인을 칭찬하고, 우리가 발행한 기사가 주목을 받으니까 불이 붙은 모양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