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200)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더 일하겠다는데 사장으로서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하지만 나는 근엄한 표정으로 외쳤다.

“아뇨. 이 이상 남겠다는 사람은 월급 깎을 겁니다. 그러니 다들 빨리 집에 가세요! 어서!”

다들 입이 한 댓 발이 나와서는 투덜거리며 사무실을 나갔다.

오직 한 사람만이 나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덕오였다.

“아니 왜요! 서버 터진 거 금방 고칠 수 있습니다! 잠깐이면 돼요!”

“괜찮아요, 진정해. 이거 집에서도 고칠 수 있죠?”

“아 네. 가능은 한데…….”

“그럼 됐어요. 덕오 씨 오늘 고생 많았으니까 어여 들어가서 좀 쉬어요.”

“아니 제가 금방…….”

“괜찮다니까. 집에 가서 하고. 그럼 월요일에 봐요. 연휴 잘 보내고. 빠빠이~”

내가 억지로 등을 떠밀자 이덕오는 그제야 주춤주춤 몸을 움직였다.

180㎝가 넘는 커다란 덩치가 축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떠나는 뒷모습이 안쓰럽다.

‘덕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만하면 충분해. 추석 연휴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TV에서 이번 뉴스를 보면서 우리의 존재를 알았겠지. 기대 이상의 성과야.’

페친인 모 기자는 자괴감으로 얼굴을 들 수 없다며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자연 재해 앞에서 오프라인과 트위터의 힘은 실로 대단하구나! 기성 언론과 방송이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기자로서 부끄럽다.>

2010년 9월 21일.

오프라인이 국민들에게 각인된 날이었다.

* * *

추석 하루를 엄마와 함께 지낸 뒤 나는 곧바로 집을 나와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출근했다.

‘뉴스는 24시간 쉬지 않고 나오니까.’

그렇다.

뉴스는 쉬지 않는다.

명절이라고, 휴일이라고, 새벽이라고 뉴스가 나오지 않는 게 아니다.

정부나 단체에서 발표하는 자료가 없을 뿐 뉴스거리는 쉬지 않고 나온다.

‘10년 동안 주말에도 일하는 게 습관이 돼서 그런지, 가만히 있으면 몸이 쑤신단 말야.’

사장이 되면서 한동안 기사를 쓰지 못했는데 광화문 물난리 사건 덕분에 예전의 감이 살아났다.

컴퓨터 전원을 켜니 다운된 서버는 멀쩡히 복구되어 있었다.

나는 새삼 이덕오의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포털을 살폈다.

휴일이라 뉴스거리가 많지는 않았지만, 포털과 다른 언론사를 참고해 계속 기사를 생성했다.

오프라인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인지가 되었는지, 이전보다 훨씬 더 조회 수나 반응이 좋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포털이랑 딜할 만하겠는데? 연휴가 끝나면 바로 미팅 약속을 잡아야겠어.’

그렇게 기사를 쓰다가 사무실을 떠난 건 오후 3시가 지날 무렵이었다.

12개의 기사를 만들어 내고는 뿌듯한 마음으로 향한 고시원.

고시원으로 바로 들어가려는데 앞에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응? 오늘 추석 연휸데 문 열었잖아?’

고시원으로 들어가려던 나는 카페 쪽으로 몸을 돌렸다.

가게 입구에는 ‘cafe 적혈마’라는 네온사인 간판이 대낮임에도 환하게 켜져 있었다.

“형, 고향 안 내려갔어요?”

카페로 들어가자 안에서 부스스한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의 카페 사장이 반갑게 맞이했다.

“응? 우 사장? 그러는 자네야말로 집에는 안 가고?”

“아이참, 사장은 무슨. 그냥 세진이라고 부르라니까요.”

“하하, 나는 우 사장이 편한데 말이지.”

백철웅과 첫 미팅을 한 장소였던 이곳은 어느덧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다.

공짜로 커피를 준다는 말에 이끌려 틈나는 대로 방문을 했더니 사장인 김희철과는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

‘뭣보다 커피가 정말 너무 맛있기도 하고.’

그는 묻지도 않고 케냐 AA 원두로 커피를 내리고는 물과 얼음을 넣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내게 건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였다.

“고마워요, 형.”

“뭘. 우 사장한테는 언제든 공짜지. 아 맞다! 우 사장네 고시원 앞에 젊은 여자가 몇 시간째 버티다가 조금 전에 떠났는데, 대체 뭐 하는 여잔지…….”

“여자요?”

“암! 아침 일찍부터 와서는 고시원을 들락날락하더니, 입구 계단에 앉았다가, 근처를 서성거리기도 하고, 여기서 커피도 한 잔 마시고, 그러다 갔지. 게다가 얼굴하고 몸매는 어찌나 착하던지.”

“사연 있는 여잔가 보죠, 뭐.”

“그러게. 우 사장도 그렇고 여기 고시원은 능력 좋은 사람들이 많이 사나 봐.”

“커피는 많이 팔았어요? 여기가 워낙 외져서 사람들이 가게가 있는지도 잘 모를 텐데.”

“하하. 오늘은 그 사연 많은 여자 한 명한테만 팔았네. 우 사장한테 주는 커피가 두 번째 내린 커피~”

“아 진짜, 여기 받아요!”

나는 재빨리 지갑에서 5천 원을 꺼내 김희철에게 주었다.

하지만 그는 절대 받을 수 없다며 한사코 거부했다.

5천 원짜리 지폐가 꼬깃꼬깃 접혀 다시 내 손으로 돌아왔다.

고마운 마음에 나는 이틀 전 있었던 일들을 그에게 이야기해 줬다.

“와! 역시 우 사장! 내가 사람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다니까! 뉴스를 안 봐서 몰랐는데, 그런 일이 있었군.”

그는 마치 자기 일처럼 오프라인의 흥행을 기뻐해 줬다.

덩달아 신이 난 나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홍지혜의 이야기를 들은 김희철의 두 눈이 번쩍거렸다.

“오호라, 이거이거 그 홍 부장이라는 아가씨가 우 사장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말이지.”

“아네요. 관심은 무슨. 그냥 사장이랑 부장, 임원과 직원의 관계.”

“그런데 둘이 동갑내기 아냐? 딱 봐도 로맨슨데 요고. 동갑내기 사장과 직원의 애끓는 로맨스! 크으…….”

“됐고요. 저는 할 일이 많은 사람이라 연애 같은 건 1도 관심 없습니다.”

“하아? 스물여섯, 돌도 씹어 먹을 나이에 연애에 1도 관심이 없다?”

“네네. 성공하기 전까지 여자는 걸림돌일 뿐이에요.”

김희철은 갑자기 진지한 자세로 팔짱을 끼고 말했다.

“어떻게 사랑을 하지 않고 성공을 하겠다는 건가?”

“그게 왜요? 성공하려면 일에만 집중해야죠.”

“하아. 이것 참. 우 사장.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돈?”

“이 친구 보소? 거기서 돈이 왜 나와! 사랑이지! 사랑!!”

“…….”

“단언컨대 사랑보다 더 위대한 건 이 세상에 없다고. 언더 스탠?!”

“눼이눼이.”

한참을 사랑에 대한 그의 개똥철학을 들어 주었다.

이만하면 커피값으로는 충분하겠지.

* * *

다음 날 눈을 뜨니 김희철이 한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랑이라…….’

요즘 부쩍 홍지혜에게 눈이 가는 건 사실이었지만 연심은 아니었다.

뛰어난 인재를 잘 활용해서 오프라인을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었을 뿐.

‘사랑은 무슨. 다 부질없는 짓이야.’

나는 옆으로 뒤척여 방바닥에 놓인 반쯤 비워진 생수통을 집었다.

“꿀꺽”

미지근한 물을 마셔서 그런지 목이 더 탔다.

‘휴…….’

아무리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해도 사랑이라는 말은 불씨처럼 번져 나갔다.

그러자 의도적으로 지웠던 이름이 떠올랐다.

주소월.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

대학 CC였던 우리는 참 뜨겁게 서로를 사랑했었다.

하지만 내가 집안 사정으로 오프라인에 입사하자, 그녀는 가는 길이 다른 것 같다며 매정하게 나를 버리고 떠났다.

덕분에 그 뒤로 다시는 사랑 따윈 믿지 않았다.

이후 주소월은 메이저 언론사인 국한 일보에 입사해 거기 기자랑 사귀고 결혼까지 했다.

‘나도 진짜 바보였지. 어쩌자고 거길 가서…….’

흑역사 중의 흑역사였다.

헤어지고 한 번도 연락이 없었던 주소월은 자신의 결혼식 며칠 전 내게 커피톡을 남겼다.

<오랜만이야. 잘 지내? 어쩌다 보니까 결혼이라는 걸 하게 되네. 혹시 시간 괜찮으면 놀러 와. 연락 줘.>

이어서 모바일 청첩장 링크가 전해졌다.

갈까 말까 수없이 고민하다가 그래도 한때나마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참석한 결혼식.

하지만 그건 정말 착각이었다.

화려한 예식장.

수많은 하객들.

너무나 아름다웠던 주소월.

그 옆의 다른 남자.

그날의 그 더러웠던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X발!”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일만 하자. 일만.’

공허한 마음을 달랠 때는 일이 최고다.

나는 오늘도 출근하기로 마음먹고 공동 샤워실에서 몸을 씻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만큼 일하기 좋은 환경은 없으니까.

물기가 남은 머리를 부스스 헝클며 고시원 입구 문을 열었다.

“아앗!”

난데없이 여자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앗! 죄송합니다. 앞에 사람이 있는 줄 모르고. 괜찮으세요?”

“아이 젠장. 앞 좀 보고 다녀요!!”

상대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안 그래도 기분 더러운데.’

나는 평소와 다르게 언성을 높였다.

“입구에 그렇게 위험하게 앉아 있으면 어떡합니까!”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뭐라고요? 앗! 세진아! 우세진!!!”

카페 적혈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나와 주소월이 마주 보고 있는 가운데, 김희철이 카운터에서 턱을 괴고는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난 듯 나와 주소월을 번갈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으흠……. 그래서 전 여친이었다?”

자그마한 키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귄 사람이자 가장 사랑했던 여인.

주소월.

하지만 지금 그녀가 나를 보는 표정은 도깨비가 따로 없었다.

‘갑자기 연락이 끊겼으니 당황스러웠겠지.’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테이블 위에 올려진 물만 꿀꺽꿀꺽 마셨다.

“진짜 나한테 할 말 없어?”

“…….”

“야! 우세진! 내 말 안 들려!!!”

주소월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가만히 있었다.

“어떻게 연락 한 번 없이…… 와 진짜…… 너 대단하다…….”

주소월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도 마찬가지였어. 갑자기 문자 하나 남기고 떠난 건 네가 먼저였다고.’

나는 주소월을 쳐다보지 않고 딴 곳을 응시하며 과거를 회상했다.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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