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200)

<신문 봤어. 고맙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덕분에 큰 도움이 됐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답장이 왔다.

<9개월이나 연락 한 번 없던 사람이 이런 건 참 빠르네? 약속 안 잊었지?!>

<그래. 편한 날짜 알려 주면 최대한 맞춰 볼게.>

<알았어. 연락할게!>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덕분에 포털하고 협상할 때 큰 도움이 되겠어.’

나는 곧바로 Never와 넥스트의 언론 제휴 팀에 메일을 보냈다.

가급적 빨리 만나고 싶다고.

추석 연휴에 크게 활약했던 덕분인지 주소월의 1면 기사 때문인지 이후는 무척 빠르게 진행됐다.

Never도 넥스트도 우리가 자사의 뉴스 영역에 들어가는 것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이 협업을 하자며 매달렸다.

‘회귀 전에는 그렇게 뻣뻣하게 굴더니…….’

나는 빠르게 2대 포털과 기사 제휴를 끝마쳤다.

확실히 포털에 기사가 나간 뒤부터 조회 수가 껑충 뛴 것은 물론, 주변의 시선도 달라졌다.

이덕오의 꼼꼼한 SEO 탓에 오프라인의 기사는 어떤 검색어로 입력을 하든 최상단에 노출되었다.

취재해 달라며 기사 제보가 오는 것은 물론 대기업 홍보 팀에게서 같이 밥 한 끼 먹자는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회귀 전의 오프라인에서는 절대로 겪어 보지 못한 일.

‘좋은 신호야.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국내 최고가 아닌 세계 최고야. 어서 빨리 글로벌 쪽도 좀 터져 줘야 될 텐데.’

국내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글로벌은 아직 크게 이슈가 없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유튜브 구독자의 상당 비율이 외국인이었고, 기사나 영상에 대한 반응도 좋았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외지고 작은 땅덩어리에서 일어나는 뉴스가 화제가 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추석 연휴 때처럼 글로벌 이슈도 한 건 정도는 전 직원이 집중해서 매달려야 할까?’

어떻게 하면 해외 확장을 더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최루리에게 전화가 왔다.

“네. 최 부장님. 무슨 일이세요?”

-우 사장님, 지금 빨리 사무실로 와 주세요! 빨리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네! 지금 한 이사님하고 덕오 씨가 서로 멱살 잡고 싸우고 난리예요!

“네?! 누구랑 누가 싸워요?”

-한무원 이사랑 이덕오 씨요!!!

최루리가 핸드폰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 5장 개발진

서둘러 도착한 사무실.

싸움은 이미 끝나 있었다.

하지만 살벌한 공기는 여전했다.

사무실 한구석에는 거구의 이덕오가 씩씩거리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한 이사님은요?”

내가 최루리에게 묻자 그녀는 백철웅의 방을 가리켰다.

나는 서둘러 백철웅의 방으로 들어갔다.

한무원은 이덕오에게 한 대 맞았는지 오른쪽 눈이 팅팅 부어 밤탱이가 돼 있었다.

“백 사장님, 한 이사님! 어떻게 된 겁니까?!”

“으흠…….”

한무원은 물론 백철웅도 대답이 없었다.

‘후배라는 녀석이 스무 살이나 어린 애랑 싸웠다는 게 부끄러운 모양이군.’

나는 소파에 앉아 한무원을 바라보았다.

어린 애에게 맞아 화가 날 법도 한데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괜찮습니까, 한 이사님?”

“저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다쳐서 어딜…….”

한무원이 벌떡 일어서더니 사장실을 나갔다.

백철웅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후배라고 데려온 놈이 저렇게 부족해서야.”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이덕오와 싸웠다더군요.”

“왜요?”

“CMS 제작 방식을 두고 다퉜다고 합니다.”

“흠.”

신규 CMS는 개발 완료 직전이었다.

딱히 다툴 만한 내용은 없었을 텐데.

‘그동안 서로 맺혔던 게 폭발했던 건가?’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전 직원이 그 모습을 다 봤을 텐데.”

“휴.”

백철웅이 다시 한번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어찌 되었건 오프라인의 창업 멤버 중 하나였다.

대학 후배였고, 이사로 채용해서 오프라인의 홈페이지와 서버를 구축한.

‘아무리 무능하다 한들, 자기 손으로 내치는 건 마음에 걸리는 건가.’

나는 심호흡을 짧게 하고, 백철웅에게 말했다.

“사내에서 대놓고 싸움을 벌인 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징계 사항입니다. 그래야 다른 직원들이 회사를 무서워하고, 이번 일을 납득할 수 있겠죠.”

“어쩌면 좋겠소?”

“아직 사규가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사규도 만들고, 둘에게는 감봉 및 근신 처리하면 어떨까 싶네요.”

“우 사장은 그걸로 괜찮겠습니까?”

“네?”

백철웅이 내 쪽으로 몸을 당기며 손에 턱을 괴었다.

“한 이사가 우 사장 눈에 차지 않는다는 건 내 잘 알고 있소. 실력은 부족하지, 일은 안 하지. 이사라는 녀석이 놈팡이나 다름없으니.”

“…….”

“그런데 이번에는 부하 직원하고 사내에서 주먹다짐까지? 하아……. 내가 진짜 우 사장이랑 직원들 볼 면목이 없습니다.”

“아닙니다. 사장님. 사장님을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아뇨. 이제는 제 인내심에도 한계가 왔어요. 결단을 내려야 될 것 같습니다.”

“결단이라면 어떤?”

나는 은근히 속으로 기대하며 물었다.

그때였다.

똑똑똑.

“누구십니까?”

“사장님, 저 이덕오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백철웅은 내게 괜찮냐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와요.”

“네.”

이덕오가 백철웅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내가 백철웅과 함께 있는 걸 흘깃 보고는 입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사장님들.”

“그래 무슨 일로?”

“저 그만두겠습니다.”

“뭐라고?”

“응?!”

나와 백철웅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이덕오가 빠진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오프라인의 개발 및 IT 운영과 관련해서 이덕오는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이덕오가 없으면 당장 홈페이지의 유지 보수가 불가능했다.

“한 이사랑 다툼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게 갑자기 회사를 그만둘 정도의 일인가?”

백철웅이 걱정스레 물었다.

“아뇨. 그거 때문에 그만둔다는 게 아닙니다.”

“그럼?”

“이번 CMS뿐만 아니라 제가 하는 모든 작업에 한 이사님은 딴지를 거셨어요.”

“그런.”

“그게 옳은 소리면 저도 아무 말 안 합니다. 저보다 20년은 더 이 바닥에 계신 분이고요. 하지만 전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딴지를 거니, 도저히 이런 환경에서는 일을 지속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화가 많이 난 건 알겠는데, 그런 건 조금 더 차분해진 다음 이야기하는 게 어떻습니까. 방금 이야기한 건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아니요. 제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백 사장님.”

이덕오는 마음을 굳혔는지 단호했다.

“알겠습니다. 이 문제는 우 사장과 더 상의해 볼 테니, 덕오 씨는 먼저 퇴근하세요.”

“네. 그럼 먼저 나가겠습니다.”

백철웅은 이덕오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답답한 듯 창밖을 바라보았다.

* * *

다음 날.

어제의 주먹다짐으로 인해 근신 처분을 받은 한무원과 이덕오가 빠진 개발 팀의 두 자리가 유독 크게 보였다.

지나가는 직원마다 흘깃거리며 개발 팀의 빈자리를 쳐다보았다.

‘당장은 아무 일이 없지만, 조그마한 문제라도 발생하면 이걸 처리할 사람이 내부에 아무도 없다. 손 놓고 방치할 게 아니라 빨리 처리해야 할 문제야.’

나는 급히 백철웅의 방으로 들어갔다.

“백 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응? 우 사장도? 저도 그렇습니다.”

“아. 그럼 먼저 하시죠?”

“어제 말씀드리려다가 이덕오가 와서 말을 다 하지 못했는데, 한무원 이사는 내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네? 한 이사님을요?”

나는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네. 제가 뿌린 씨앗이니 제가 해결을 해야죠. 한 이사랑은 이미 이야기 끝냈습니다.”

“어제저녁에 한 이사를 만나셨습니까?”

백철웅은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았다.

“한 이사님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무원이도…… 그렇게 바보는 아닙니다. 이미 자기가 부족하다는 걸 뼈저리게 알고 있더군요.”

“그랬군요.”

“하지만, 우 사장이 오면서 100억을 투자받고, 회사가 너무 빠르게 성장하면서 그걸 옆에서 함께 보고 싶은 욕심이 컸겠죠.”

“아닙니다. 한 이사님이 오프라인 홈페이지와 서버 구축한 걸 여기 직원 중에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으니까요.”

“적당히 위로금 쥐여 주고 내보내려고 합니다.”

“네. 당연히 그래야죠. 창업 멤버인데요. 그럼 형식상으로는 한 이사님이 사표를 내는 거로?”

“그럴 생각입니다. 회사에서 잘랐다고 하는 건 회사도 그렇지만 한 이사 개인한테도 불명예고요.”

“이해합니다. 그 건에 대해서는 100% 동의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우 사장이 저한테 하실 말씀은?”

백철웅이 궁금한 듯 눈을 번쩍였다.

“이덕오랑 잠시 제주도에 다녀오겠습니다.”

“제주도요? 이덕오랑?”

“네. 제가 한번 설득해 보겠습니다.”

“흠. 마음을 굳힌 것 같던데 가능하겠습니까?”

“되든 안 되든 해 봐야죠. 당장 한 이사님도 나가시는데, 덕오까지 없으면 큰일 납니다.”

“그렇긴 합니다마는 새로 사람을 뽑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이미 마음 떠난 사람을 잡는다는 게…….”

“새로 뽑으려면 시간도 걸리지만, 덕오만큼 뛰어난 개발자를 만나는 건 불가능하겠죠.”

“우 사장이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그래서 언제 내려가려고요?”

“금요일에 하루 휴가 내고 다녀오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죠. 제가 더 도와드릴 만한 일은?”

“없습니다. 서울에서 잘되길 응원해 주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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