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200)

* * *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제주도 국제 공항까지 여러분을 모시고 가는 기장 이기백입니다. 오늘도 저희 아시아나 항공 023편을 이용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 항공기는…….>

김포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에서 안내 멘트가 나오자 옆에 앉은 이덕오가 투덜거렸다.

“하아. 제가 지금 여기서 우 사장님과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저랑 재밌게 놀다 가면 되죠.”

“아니, 남자 둘이서 무슨 제주도를. 아니 저는 지금 퇴사도 했는데…….”

“퇴사는 무슨, 이번 주는 근신 기간일 뿐 덕오 씨 아직 우리 오프라인 직원이에요.”

“휴…….”

나는 절대로 가지 않겠다는 이덕오를 겨우 설득시켜서 제주도행 비행기에 같이 탔다.

이덕오는 지난 7월에 있었던 제주도 합숙 때 유난히 제주의 아름다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 와 봤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한국에 있는지 몰랐다는 둥 여기서 살고 싶다는 둥 매일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 제주행을 제안한 게 주효했다.

‘내가 같은 20대이기도 하고, 평소 자기를 잘 챙겨 주는 데다 제주도에 집이 있다니 궁금했겠지.’

나는 제주도 합숙이 끝난 지 오래지 않아 대출을 받고 곧바로 당시 알아보았던 비자림 인근의 집을 계약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관계로 돈만 보낸 뒤 그 뒤로는 직접 내려가 보지 못했었는데, 나로서도 좋은 기회였다.

비행기가 제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예약했던 렌터카 업체에 들러 지붕이 열리는 컨버터블 외제 차를 빌렸다.

이덕오는 좋아죽겠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우와! 미니 컨버터블을 실제로 타 볼 줄이야! 사장님, 엄청난데요?!”

“뭐 이런 걸 가지고. 어서 타세요.”

“넵!”

나는 이덕오를 태우고 비자림 인근의 부동산을 방문했다.

부동산 사장은 반갑게 우릴 맞아 주고는 집 열쇠를 내게 건넸다.

“요새 어떵 살미꽈? 좋수꽈?”

“회사가 너무 바뻐서 연락이 늦었네요. 별일 없이 삽니다. 사장님도 별일 없으셨죠?”

“하하. 저는 펜안하무다. 혼저 감수 봅서.”

“네. 고맙습니다. 사장님. 또 연락드릴게요.”

“잘 놀당 갑써. 고맙수다~”

“네.”

부동산을 나오자 이덕오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아니, 사장님. 제주 출신이세요?”

“저요? 아뇨. 서울 사람인데요.”

“와……. 근데 저 말을 어떻게 이해해요? 무슨 외계어 같던데?”

“어쩌다 보니. 혹시 배 많이 고파요?”

시간은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아뇨. 오면서 이것저것 주워 먹은 게 많아서 그런지 배는 안 고프네요.”

“다행이네요. 그럼 집부터 좀 보고 이동할게요.”

“넵!”

부동산을 떠난 지 5분도 되지 않아 집이 보였다.

나는 집 한쪽에 주차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와! 이게 사장님 집이에요?”

이덕오는 흥분한 듯 집을 위아래로 훑으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집 안은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았던 탓에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나는 집 안을 둘러보고는 작은 방 하나를 이덕오에게 쓰라고 주고는 큰방에 짐을 풀었다.

‘이만하면, 엄마 혼자 사시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어. 아니 너무 넓은가?’

엄마 혼자 살기에는 조금 넓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아무렴 어떨까.

내가 내 돈을 주고 엄마를 위해 산 집이다.

뭔가 성공한 어른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집안 곳곳을 살펴보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이덕오를 보니 엄마도 분명 좋아할 게 분명했다.

집에서 조금 쉰 우리는 차를 타고 이전에 머물렀던 세화항 근처의 횟집에 차를 세웠다.

“여기를 또 오게 될 줄이야. 신기하네요.”

“덕오 씨가 회를 좋아하니까 온 건데 괜찮죠?”

“물론이죠!”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었지만 이덕오는 특히 회를 좋아했다.

혼자 다 먹는다는 한무원의 핀잔에도 꿋꿋이 회를 두 점씩 집어 먹을 정도였다.

우리는 전에도 들렀던 마을의 허름한 횟집에 들어가 전복과 뿔소라 회 그리고 데친 문어를 시켰다.

“아니, 물고기는 안 시켜요?”

이덕오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하하. 이것도 한번 먹어 보세요. 사실 뿔소라가 제주도 특산이기도 하고, 분명 좋아할 겁니다.”

“네. 뭐 그렇다면야.”

나는 예전에 작성했던 제주 맛집 리스트를 떠올리며 마치 잘 아는 사람처럼 이야기했다.

그리고 제주도 소주인 한라산을 시켰다.

싱싱한 해산물에 술이 빠질 순 없는 노릇이니.

어느덧 술병이 4병을 넘어 5병이 되려던 사이.

그새 말을 놓기로 한 우리는 오래된 지인처럼 술을 주고받았다.

“덕오야.”

“네, 행님…….”

이덕오가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답했다.

“너 말이야 너.”

“네네. 말씀하십쇼.”

나는 숨겨 두었던 비장의 수를 그에게 꺼냈다.

“너, 우리 이사하자.”

“네? 이사요?”

“그래 이사.”

“제주도로요?”

“아니. 그 이사 말고.”

“그럼요?”

“한무원이 있던 그 이사.”

“네? 제가요?!”

이덕오가 깜짝 놀라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이덕오에게 현재 한무원이 맡고 있는, 하지만 이제 곧 공석이 될 개발 이사 자리(CTO)를 제안했다.

‘어차피 한무원은 퇴사가 확정이고, 이덕오만 한 인재를 잡아 두려면 이 정도는 필요해.’

이덕오는 술이 확 깨는지 두 눈을 비비며 내게 되물었다.

“CTO 자리요? 한무원 이사님이 있는 그 자리?”

“그래. 왜 탐나냐?”

“무, 물론이죠! CTO라니!”

“그래서 할 거야?”

이덕오는 물을 벌컥 마시더니 손으로 입가를 스윽 닦았다.

“형님.”

“왜?”

“제가 오프라인이 싫어서 떠나는 것으로 보입니까?”

“그럼 왜 나가겠다는 건데?”

“아니, 제가 말했잖아요!”

“뭐? 한무원이 싫다고?”

“네! 바로 그거요! 한무원 이사랑 저는 진짜 코드가 하나도 안 맞다니까요!”

“코드가 아니라 한무원이 실력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고?”

“뭐, 그것도 그거고요. 아무튼 그 사람하고는 진짜 안 맞아요.”

“그렇구나.”

“그리고 한 이사가 CTO로 있는데, 제가 어떻게 그 자리에 들어가요? 참…….”

“만약 한무원이 나간다면?”

“네? 한 이사님이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소주를 비웠다.

이덕오는 내가 잔을 내려놓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이사님이 왜요? 개국 공신이잖아요? 백 사장님의 오른팔이고요?!”

“개국 공신은 개국 공신이고, 무능한 건 무능한 거지.”

“한 이사님은 그렇다 쳐도, 저는 겨우 스물다섯인데요?”

“야 내가 몇 살이냐?”

“스, 스물여섯이요.”

“내 직함이 뭐냐?”

“사장님이요…….”

“근데?”

“아닙니다. 형님…….”

오히려 이건 좋은 징조였다.

20대의 사장과 CTO가 있는 젊은 조직.

50대의 백철웅이 뒤를 받쳐 주고 젊은이들이 앞에서 끌면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대화를 끝낸 우리는 가게 앞에 있는 항구로 나갔다.

가을바람이 이젠 제법 차다.

“덕오야.”

“네.”

“그럼 수락한 거다?”

“네. 형님. 제가 형님 옆에서 오프라인을 세계 최고 언론사로 만드는 데 일조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맡겨만 주세요!”

“한잔 더 할까?”

“저야 좋죠~”

“여기는 늦게 여는 가게도 없으니 집에 가서 먹자.”

“넵!”

우리는 근처 편의점에서 술과 안줏거리를 잔뜩 샀다.

그리고 대리를 불러 집에 도착한 다음, 새벽 늦게까지 먹고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이덕오는 개발 능력만 뛰어난 게 아니라, SNS에 대한 이해나 미디어에 대한 철학까지 많은 부분에서 나와 코드가 맞았다.

이런 인재를 놓칠 뻔하다니.

생각만 해도 눈앞이 깜깜했다.

* * *

제주도에서 1박을 마친 우리는 차로 제주도 한 바퀴를 돌며 구경하고는 그날 저녁 비행기로 서울에 올라와 헤어졌다.

그리고 월요일 출근일.

한무원의 퇴사가 그날 오전 공식적으로 사내에 공지되었다.

한무원은 개인 사정을 빌미로 별다른 작별 인사 없이 회사를 떠났다.

‘이덕오한테 맞은 눈이 금방 가라앉진 않았겠지.’

한무원의 빈자리는 이내 새로운 인물로 채워졌다.

바로 이덕오가 개발 이사로 임명된 것이다.

이로서 오프라인은 백철웅, 우세진 공동 사장에 이덕오가 개발 이사로 합류하면서 C-레벨에 20대가 두 명이나 있는 젊은 조직으로 거듭났다.

무엇보다도 한 명의 스타 개발자는 수백 명의 개발자를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이덕오의 개발 능력은 그만큼 뛰어났다.

“이야 참. 사장도 20대고 CTO도 20대고. 난 뭐지.”

박창후가 씁쓸한 표정을 짓고는 농담을 던지자 최루리가 이내 받아쳤다.

“아니 부장이면 바로 C-레벨 밑인데 뭐가 아쉽다고 투덜거려요. 투덜거릴 시간이 있으면 박 부장님도 더 열심히 해서 인정받으시든가요~”

“아이고, 네네. 열심히 해얍죠~ 누구 말씀이라고~”

박창후와 최루리가 분위기를 잘 이끌어 준 덕에 이덕오의 CTO 임명에 오프라인 누구도 불편한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하면 되는구나’, ‘나이와 상관없이 승진할 수 있구나’ 하면서 더욱 불이 붙은 느낌이었다.

한무원의 퇴사 공지와 이덕오의 이사 임명식 이후 나는 부장 셋을 사장실로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네. 젊은 친구가 CTO 되었다고 너무 배 아파하진 말아 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