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1/200)

“아이고, 그럴 리가요. 그 친구, 아니 이 이사님 실력이 그만큼 뛰어나신 건데요.”

“좋게 생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박 부장님.”

“별말씀을요.”

“지금 세 분 부장님들을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글로벌 문제로 상담 드릴 게 있어서입니다.”

“글로벌 문제요?”

최루리, 박창후, 홍지혜 모두 의외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물론 서비스를 시작한 지 3개월밖에 안 되었는데 이 정도 수치라면 누구라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

국제부장인 최루리가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우 사장님도 아시다시피 지금 저희 글로벌 확장세는 충분히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습니다. 팔로워도 계속 늘어나고 있고, 조회 수도 마찬가지고요.”

“알고 있습니다.”

“네? 그런데 어떤?”

“결정적인 한 방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광화문 물난리 사건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인지된 것 같은 그런 한 방이요.”

“……?!”

박창후가 쉽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 사장님. 말씀하시는 바는 이해하지만 저희는 대한민국 언론사입니다. 게다가 이제 서비스를 시작한 지 4개월 차입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만.”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여러분.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시는 것 같군요. 저희는 대한민국 언론사가 아닙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홍지혜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손을 들고 물었다.

“저희는 명백히, 대한민국 수도 서울, 그중에서도 언론들이 밀집한 종로구에 위치한 신생 매체입니다. 우 사장님.”

“위치적으로는 그렇죠.”

“위치적으로는?”

“네. 저희는 AP 통신이나 타임지, 포브스 등 전 세계를 상대로 미디어 활동을 펼치는 그런 글로벌 매체입니다. 그러려고 여러분을 뽑은 거고요. 특히…….”

내가 최루리를 바라보고 말하자 그녀가 긴장하며 물었다.

“특히?”

“국제부를 만든 건 그게 전부죠. 글로벌에서 인정받는 것.”

나의 한마디로 사무실의 공기는 무거워졌다.

그동안 웃으며 좋은 말만 했었는데, 갑자기 날카로운 이야기를 꺼내자 다들 당황한 모양새였다.

홍지혜가 분위기에 주눅 들지 않고 재차 손을 들었다.

“멋진 이야기입니다. 공감하고요. 하지만 순서라는 게 있잖아요? 지금도 충분히 상승 곡선을 그리며 오르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뇨. 저는 그것보다 더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여러분 같은 인재를 뽑은 시점에서는 더더욱요.”

“끄응.”

홍지혜는 할 말을 잃은 듯 뒤로 물러났다.

한참을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던 최루리가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CNN! CNN은 어떨까요?”

“CNN이요?”

“네. 얼마 전 CNN 부사장인 크리스티안 케이서스가 인터뷰를 마치고 사장님께 올해 안에 CNN 본사를 방문해 달라고 했잖아요?”

“음. 그랬죠. 그런데요?”

“한국의 언론이, 그것도 신생 매체가 CNN의 초청을 받아 본사를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뉴스거리죠. 게다가 단순 방문이 아니라 뉴미디어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전수하러 가는 것 아닌가요? 이건 엄청난 뉴스입니다.”

일리가 있었다.

머나먼 동방의 나라 대한민국.

경제력은 높았지만, 언론 자유 지수는 그다지 높지 않은 미디어의 변방.

그런 곳의 신생 매체가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CNN을 상대로 뉴미디어에 대한 지식을 전수한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 미디어에서 눈길을 끌 만한 뉴스였다.

‘당장 일반 대중들에게 큰 관심거리는 아니겠지만, 전 세계 미디어에 우리의 존재를 인지시킬 수 있는 아이템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바로 최루리에게 지시했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케이서스에게 메일을 보내서 올해 안에 방문하고 싶은데 언제가 좋을지 문의해 보세요.”

최루리가 보낸 메일은 곧바로 다음 날 회신이 왔다.

최루리는 뛸 듯이 기뻐하며 내게 메일 내용을 전했다.

“우 사장님! 케이서스한테 답변이 왔습니다. 너무 고맙다고요!”

“다행이네요. 그래서 언제 오래요?”

“이번 달 중순에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세계의 주요 미디어들이 참석하는 국제 콘퍼런스가 있는데, 그때 연사 자격으로 방문하면 어떻겠느냐더군요.”

“국제 미디어 콘퍼런스에 연사요? 이거 스케일이 큰데요?”

“그렇죠! CNN만 있는 게 아니라 영국의 가디언, 프랑스의 르몽드 등 전 세계 주요 미디어가 모두 모이는 자리니까요.”

“우리를 알리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자리네요. 그런데 이번 달 중순이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갑자기 연사 자리가 난 건가요?”

“원래는 케이서스가 단독으로 발표할 시간인데, 그중 일부를 우리에게 주고 싶다더군요.”

“네? CNN 발표의 일부를 우리에게요?”

“네. 케이서스가 우 사장님과 우리를 정말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그러면 준비를 많이 해야겠는데요.”

“그렇죠.”

“최 부장님은 지금 당장 영어로 발표 자료 준비해 주시고요, 다른 부서들도 회의에 같이 참석해서 모두 여기에 집중해 달라고 전해 주세요.”

“네.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나는 곧바로 긴급 회의를 소집하고, 백철웅부터 막내 직원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았다.

“여러분. 우리에게 지금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엄청난 기회란 말에 모두가 내 말에 집중했다.

“미국 CNN 부사장이 국제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자신들의 발표 시간 일부를 양보해서 우리를 알릴 시간을 주었습니다.”

“와. 대박!”

“CNN이면 저번에 인터뷰한 거기 아닌가?”

“국제 미디어 콘퍼런스라니!”

모두가 설레는 표정으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당장 그날 콘퍼런스에 우리를 알릴 PPT를 제작해야 합니다. 국제부, 영상부, 소셜부, 디자인, 개발 모두 그동안 해 왔던 모든 것들을 여기에 녹여 내야만 해요!”

모두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모두 서둘러주세요!”

“네!”

그렇게 국제 미디어 콘퍼런스 발표 자료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콘퍼런스 삼 일 전에 미국에 도착해야 하니 실질적인 시간은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나는 직접 케이서스에게 이런 귀한 기회를 줘서 무척 감사하다는 답장을 썼다.

케이서스는 와 주는 게 영광이라며 나를 포함한 일행 세 명의 비행기 티켓과 4박 5일 동안의 호텔과 관광 등의 경비를 무료로 제공할 테니 참석 명단을 알려 달라고 했다.

“와! CNN답게 배포도 크네요. 3명 경비를 모두 자기들이 제공하겠다니.”

최루리가 이 소식을 듣고는 무척 기뻐했다.

“저희가 요청한 게 아니라 연사로 초대받은 거니까요.”

“네 맞아요. 정말 황홀하네요.”

“저도 기분은 좋네요. 미국은 처음 가 보기도 하고요.”

“우 사장님 미국 처음이세요? 그럼 진짜 설레시겠네요! 그런데 셋이면 우 사장님하고 나머지 둘은 어떻게 되죠?”

최루리는 짐짓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내게 물었다.

‘나랑 백철웅 사장 그리고 영어 잘하는 최루리까지 이렇게 셋이 가면 되는 건가?’

그렇게 쉽게 생각했던 미국 방문은 의외의 곳에서 암초를 만났다.

“왜 최 부장님이 가신다는 거죠?”

“그거야 제가 여기서 영어를 가장 잘하니까요!”

“하. 누가 그래요? 저 하버드 수석인데요?”

“저는 케이서스랑 직접 메일도 주고받았거든요?”

“그거랑 콘퍼런스는 아무런 상관도 없잖아요?”

“뭐라고요?!”

두 명의 여성이 나를 사이에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왼쪽엔 최루리, 오른쪽엔 홍지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기가 가야 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조금 전만 해도 화기애애했는데 말이지.’

30분 전 백철웅의 사무실.

부장급 이상이 모여 글로벌 미디어 콘퍼런스 참석과 관련한 회의를 하고 있었다.

비행기 티켓 포함 4박 5일간의 경비를 모두 CNN 측에서 제공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모두 한마음이었다.

하지만 그 인원이 3명으로 제한된다는 말에 분위기가 돌변했다.

우선 입을 연 자는 박창후였다.

“3명이라면 CNN에서 초청한 우 사장님은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것이고, 나머지 두 자리엔 통역 한 명과 임원 한 명인가요?”

최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마도 그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겠죠?”

어색하게 앉아 있던 이덕오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기 저는 임원 단 지도 얼마 안 되었고, 뭣보다 가서도 큰 도움이 못 될 것 같네요. 저는 빼고 이야기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박창후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하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어는 젬병이거든요.”

최루리가 웃으며 핀잔을 줬다.

“그러게 평소에 영어 공부 좀 하지 그랬어요~”

“영상 편집 프로그램인 파이널 컷 프로는 영문판으로 쓰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 말이죠.”

“그건 박 부장님이 기능을 다 외웠으니까 그런 거겠죠. 아무튼 이러면 이번 미국행은 두 사장님이랑 저로 결정 난 거네요?”

그때였다.

그동안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던 홍지혜가 번쩍 손을 들었다.

“저도 가고 싶은데요.”

모두의 시선이 홍지혜에게 쏠렸다.

이어서 최루리에게.

그게 조금 전의 상황이다.

‘통역은 최루리가 더 전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홍지혜가 밀린다고 볼 순 없어. 하버드 수석이기도 하고.’

나이는 제법 차이가 나지만 둘 다 오프라인의 부장이다.

게다가 영어 실력도 뛰어나다.

둘 중 누가 더 미국행에 적합하다고 쉬이 이야기하기 어려웠다.

모두가 눈치를 보는 사이 백철웅이 점잖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두 분이 그렇게 가고 싶어 하니, 그럼 이번 미국행은 우 사장과 두 분이 다녀오시면 되겠네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백 사장님!”

“저는 미국에 몇 번 다녀와 봤고, 어차피 가 봤자 우 사장만큼 뉴미디어에 대해 잘 이야기할 수도 없어요. 관광 목적으로 따라갈 바에야 이렇게 가고 싶어 하는 두 분을 보내는 게 더 낫죠.”

“아니 그래도 설립자신데…….”

“괜찮습니다. 사장이 둘 다 회사를 떠나 있는 건 곤란하기도 하고. 그 대신.”

“그 대신?”

“두 분이 제 몫까지 글로벌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제대로 우리 오프라인을 알리고 와 주셔야 합니다. 가능하시죠?”

최루리와 홍지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처럼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미국에 갈 멤버가 정해지고 나서 매일 정신없는 하루가 이어졌다.

나는 프레젠테이션 발표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다른 직원 모두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데 집중했다.

미국으로 떠나기 이틀 전.

백철웅이 긴급한 표정으로 내 방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세요? 그렇게 다급하게?”

“우 사장. 바쁜 거 잘 압니다만, 오늘 저녁에 시간 있습니까?”

“오늘 저녁이요? 발표 준비 때문에 좀 힘들 것 같습니다만. 무슨 일로 그러세요?”

“그게. 이광우 의원 기억해요?”

“민주 통일당 원내 대표요? 원화성 회장을 소개한?”

“맞습니다.”

“네. 그런데 갑자기 이광우 의원은 왜요?”

“그가 오늘 저녁에 우 사장을 꼭 한번 보자고 하더군요.”

“저를요?”

“자세한 내용은 직접 만나서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백 사장님 부탁이면 당연히 가야죠.”

나는 서둘러 발표 준비를 마치고 백철웅과 함께 인근에 있는 고급 일식집을 방문했다.

안쪽 방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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