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CNN의 부사장이신 케이서스가 한국을 방문해서 저와 저희 조직을 인터뷰해 주셨습니다. 그때 만난 인연으로 이렇게 CNN의 본사를 방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분에 넘치는 영광입니다. 고맙습니다, 케이서스.
케이서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저희 오프라인이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영어를 잘 못하지만, 옆에 있는 이 친구는 하버드 전체 수석 출신으로 여러분들이 듣고 이해하시기에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겁니다. 어때요, 그런가요?”
“하하하.”
가벼운 농담에 사람들의 표정에서 적대감과 긴장감이 사라지는 게 보였다.
또한 그들이 다시 한번 나와 홍지혜를 새롭게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들에게 오프라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때때로 박수 소리와 환호성, 그리고 감탄사가 터졌고, 무표정했던 사람들의 얼굴에선 어느덧 놀랍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이상으로 저희 오프라인에 대한 소개는 마치려고 합니다. 긴 시간 들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 말이 홍지혜를 통해 통역되기 무섭게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힘찬 박수를 보냈다.
CNN 고위 인사들의 박수라니.
감격에 겨워 눈물이 찔끔 나올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처음에 이 방에 들어왔을 때 우리를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매서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던 대머리 중년 남성이 손을 번쩍 들었다.
대머리에 비친 형광등 불빛이 만화 표현처럼 번쩍거렸다.
“CNN 보도국장 데이비드 커터입니다.”
“반갑습니다, 국장님.”
“아주 인상적인 연설이었습니다. 덕분에 오프라인에 대해 잘 알게 되었고요.”
“다행이네요.”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이 있더군요.”
“의문점이요?”
커터는 PPT 화면을 가리키더니 물었다.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바로 비즈니스 모델이죠. 오프라인이 추구하는 것, 그리고 SNS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준비하신 발표를 통해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론사도 기업. 무료로 봉사할 순 없는 노릇이죠. 오프라인의 BM은 무엇입니까? 그에 대해 대답할 수 없다면 저는 오프라인을 절대 인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속 가능성이 없으니까요.”
비즈니스 모델. 줄여서 BM.
그 역시 원화성과 마찬가지로 BM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홍지혜와 최루리를 바라본 다음 케이서스를 바라보았다.
케이서스는 자기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남의 언론사에 와서 굳이 우리의 수익 모델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커터의 질문 이후 모두 내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수익 모델이 제일 궁금한 거겠지.’
어쩔 수 없었다.
커터의 지적답게 언론사는 기부 단체가 아니다.
수익도 없으면서 조직을 운영한다는 건 망상에 불과하다.
나는 커터의 머리 위에 있는 형광등을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국장님이 말이 맞습니다. 형광등을 켜려면 전기가 필요하듯 언론사를 운영하려면 돈이 필요하죠.”
홍지혜가 바로 통역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대로 통역하라고 일렀다.
홍지혜가 말하자 커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희는 몇 가지 방법으로 수익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건 이 자리의 성격상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 가운데 중요한 몇 가지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말에 커터를 비롯한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좀 더 잘 듣고 싶다는 듯 앞으로 의자를 당겨 앉았다.
“우선 광고 수익이 있습니다. 저희는 한국에만 기사를 발행하는 게 아니라 글로벌에 기사를 뿌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광고 수익도 제법 크죠. 두 번째는 기사 제휴를 통한 뉴스 정보 제공료를 포털을 비롯한 대형 커뮤니티, 기업 등에서 받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유튜브를 통한 수익 창출입니다. 아시다시피 유튜브에서는 조회 수에 따라 수익을 쉐어해 주죠. 네 번째는…….”
나는 몇 가지 BM을 소개하고, 이에 관해 설명을 덧붙였다.
중간중간 손을 들고 질문을 하면 그에 대해 간단히 대답해 주었다.
모두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나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특히 커터는 흥미롭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손을 드는 사람이 없자 나는 커터를 바라보고 말했다.
“이것으로 국장님의 궁금함이 해결되셨으면 좋겠네요. 어떠셨나요?”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힘차게 손뼉을 쳤다.
“완벽합니다. 평소 BM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미스터 우의 설명으로 흐릿한 시야가 환하게 밝아진 느낌입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미스터 우.”
“과찬이십니다. 다만 저희는 신생 매체에 직원 수도 겨우 스무 명에 불과합니다. 역사도 길고, 직원 수가 4천여 명에 이르는 여러분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겠죠. 제가 말씀드린 부분은 참고로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언론사의 고민은 규모가 크든 작든, 역사가 길든 짧든 어디든 비슷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커터는 벌떡 앞으로 나오더니 내게 악수를 요청했다.
나는 기꺼이 그의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눴다.
살벌한 무도승이 일순 인자한 노승으로 변해 있었다.
케이서스가 멀리서 재미있다는 듯 나를 보고 웃었다.
* * *
케이서스의 집무실.
우리는 발표를 했던 방에서 나와 그녀의 집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대단합니다. 커터 국장은 평소에도 까다롭기도 CNN 내에서 유명하거든요. 그런 그가 순한 양처럼 미스터 우에게 가서 악수를 할 줄이야.”
“아닙니다. 국장님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어 저로서도 뿌듯합니다.”
“하하하. 처음에 오프라인과 미스터 우를 여기로 부를 때만 해도 여기저기서 불만 섞인 투정을 들어야만 했죠. 뭐 그런 이상한 매체를 우리 시간까지 내주면서 부르냐고요. 하지만 오늘로 더 이상 그런 말을 들을 일은 없겠네요.”
“저희로서는 그저 감사한 일이죠.”
“그리고 오늘 발표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내일 발표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더군요. 그대로만 해 주셔도 거기 모인 모두가 깊은 인상을 받으리라 확신합니다.”
케이서스가 그리 말해 주니 한결 기분이 가벼워졌다.
“아시다시피 내일 콘퍼런스는 묵고 계신 호텔에서 진행됩니다. 내일 발표 준비로 바쁘실 텐데 이만 들어가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네. 부사장님. 덕분에 정말 좋은 경험하였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네, 내일 발표도 기대합니다. 저도 분발해야겠네요.”
우리는 케이서스의 집무실을 나와 CNN의 뉴스 룸을 지나갔다.
모두 자신이 맡은 업무에 정신없이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우리를 불렀다.
“미스터 우! 여기요, 여기!”
커터였다.
그는 큰 키를 이용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내게 명함을 건넸다.
“혹시 제가 결례를 했다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례는요. 역시 아무나 CNN 보도국장을 하는 게 아니구나 감탄하였답니다.”
“하하. 과찬입니다. 내일 콘퍼런스에서 발표하시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케이서스와 CNN이 귀한 시간을 내주셨죠.”
“사실, 행사 이후에 각 언론사 국장들끼리 따로 모여 회담을 합니다.”
“아? VIP 미팅 같은 걸까요?”
“그렇죠.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세계 미디어의 큰손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는 자리에 가깝지만요.”
“네. 그런데 그 말씀은 왜?”
“제게 내일 그 자리에 미스터 우를 초청할 수 있는 영광을 주셨으면 좋겠군요.”
“네?”
나와 최루리, 홍지혜 모두 커터의 제안에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이건 저의 직감인데, 내일 콘퍼런스의 모든 관심은 오프라인에 집중될 게 틀림없습니다. SNS를 이용한다는 발상도 신선하지만, BM이나 지금까지 해 오셨던 일들 모두 기성 언론사에 있어서는 너무나 독특하고 매력적이니까요.”
“저와 오프라인을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 같은데요?”
“아니요. 사실 처음에는…… 의심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건 확신이에요.”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면 정말 영광이죠.”
“그래서 어떠십니까? 옆에 두 분과 함께 오셔도 좋습니다.”
나는 최루리와 홍지혜를 바라보았다.
둘 다 활짝 웃고 있었다.
“좋습니다. 커터. 내일 콘퍼런스가 끝나고 연락해 주시면 말씀하신 자리에 방문토록 하겠습니다. 이건 제 명함입니다.”
나는 그에게 명함을 건넸다.
커터는 큼지막한 손으로 명함을 받더니 셔츠 안쪽 주머니에 쏘옥 집어넣었다.
“고맙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이만 푹 쉬시죠!”
“네. 내일 뵙겠습니다.”
우리는 CNN 센터를 빠져나와 걸어서 호텔로 이동했다.
“엄청난데요? 글로벌 미디어 국장 모임에 우리가 낄 수 있다니!”
“저는 지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는데 설마 아직도 꿈인 건 아니겠죠?”
최루리와 홍지혜가 흥분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그녀들을 다독이며 차분히 말했다.
“여러분, 아직 콘퍼런스가 끝난 게 아닙니다. 내일 우리 발표가 형편없으면 커터는 우리를 초대하지 않을 겁니다.”
멍하게 있던 둘의 표정이 빠르게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니 오늘은 어서 제 방에서 리허설 준비를 마저 하죠. 각자 자료 가지고 제 방으로 와주세요. 당장!”
우리는 점심과 저녁을 모두 룸서비스로 주문하고는 밤늦게까지 발표 준비에 매진했다.
내가 이야기하면 홍지혜가 통역했고, 이를 최루리가 지켜보면서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교정하는 작업을 수십 번 반복하였다.
둘의 표정이 무척 피곤해 보였지만 연습을 멈출 순 없었다.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간.
최루리가 더 이상 했다가는 목이 나갈지도 모르니 그만하자고 하고 나서야 각자 방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 *
커터의 예상은 적중했다.
글로벌 미디어 콘퍼런스의 주인공은 CNN도, 뉴욕 타임스도, 더 타임스도, 르몽드도, 로이터도 아닌 바로 우리 오프라인이었다.
CNN의 발표가 빨리 끝나고 내가 단상에 오를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의 표정에선 지루함이 엿보였다.
하지만 30분에 걸친 나의 발표가 끝났을 때는 콘퍼런스장 전역에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바로 뒤에 발표하는 더 타임스의 편집국장은 농담으로 이런 말을 던질 정도였다.
“제 앞에 슈퍼 루키가 있는 줄 알았다면 발표 순서를 미리 조정해 달라고 했을 겁니다.”
콘퍼런스가 끝나자 모두가 우리 자리에 몰려들어 명함을 건네고 자기소개를 하며 질문을 던졌다.
최루리와 홍지혜는 명함을 주고받고 답변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엄청난 인파에 이광우 의원은 감히 내 쪽으로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백철웅을 생각해서라도 내가 먼저 다가갈 필요가 있겠지.’
나는 인파를 뚫고 이광우에게 다가갔다.
내 쪽에서 다가가자 어쩔 줄 몰라 하던 이광우 의원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는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나의 손을 꼭 잡더니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하하하. 이게 누구십니까! 우 사장 아닙니까!”
“의원님, 오랜만입니다. 이렇게 미국까지 와 주시고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오늘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고 있는데요! 하하하. 자랑스럽습니다. 우 사장님!”
“아닙니다. 운이 너무 좋았을 뿐입니다.”
“지나친 겸손은 예의가 아닌 거 아시죠? 하하하, 진짜 멋집니다. 오늘 끝나고 뭐 하십니까? 약속 없으시면 제가 대접해 드리고 싶은데요.”
뚜르르르-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이광우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데이비드 커터였다.
깜짝 놀라 서둘러 홍지혜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7시까지 호텔 최상층에 위치한 스페셜 스위트룸으로 와 달라는 이야기였다.
“죄송합니다. 의원님. 언론사 VIP들과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오늘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가 정중히 양해를 구하자 이광우가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우 사장. 오늘은 나 말고도 부르는 곳이 많겠죠.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요. 한국에 돌아가면 시간이 날 테니 우리 약속은 귀국 이후에 잡아 봅시다. 오늘 고생하셨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원님.”
“대신 한국 가면 절대 잊지 않기요.”
“물론이죠.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이광우와 악수를 하는데 그의 뒤에서 펄쩍 뛰며 허우적거리는 누군가가 보였다.
안재영이었다.
무거워 보이는 카메라를 들고 있던 그는 이광우의 뒤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어떻게든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나는 주변의 양해를 구하고 그를 내 쪽으로 끄집어냈다.
“의원님. 괜찮으시면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으시죠?”
“아, 그럴까요? 저야 영광이죠. 하하하.”
나는 안재영의 어깨에 있는 카메라를 가리키며 그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안 기자님. 여기 이광우 의원님과 제 사진 하나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네! 물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