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200)

우리는 이광우가 시킨 모둠 고기를 안주 삼아 가볍게 소주를 마셨다.

소주를 석 잔쯤 들이켰을 때 오늘의 주인공이 도착했다.

“오! 모원석 이사장님! 여깁니다, 여기!”

이광우가 입구에서 들어오는 백발의 노인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회의가 길어져서 조금 늦었습니다.”

“하하. 일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모 이사장님 좋아하는 모둠 고기 주문했는데 뭐 더 시킬까요?”

“넷이니까 술국 하나 더 시키시죠.”

“술국? 좋죠! 주인장! 여기 술국 하나 추가요.”

이광우는 상대의 취향을 잘 알고 있는 듯 익숙하게 술국을 주문했다.

백발의 노인은 정장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치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는 나와 백철웅을 번갈아 살펴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국 언론 진흥 재단 이사장 모원석이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이사장님. 백철웅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사장님. 우세진입니다.”

우리는 명함을 주고받으며 악수를 나눴다.

“그래……. 저를 보고 싶다고 하셨다면서요?”

모원석이 이광우가 따라 주는 술잔을 받으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뇨. 저희를 찾은 건 이사장님이시죠. 저희가 아닙니다.”

“응?”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모원석은 살짝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이해했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콘퍼런스 말씀이시군요? 맞습니다. 제가 급하게 오프라인을 섭외하라고 주문했죠.”

“안 그래도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었는데 먼저 연락해 주셔서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를 보자고 한 건 그럼 연사 제의를 수락해 주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다만 수락 조건으로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청이요? 그게 뭐죠?”

“우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건배 한 잔씩 하고 시작하시죠.”

“하하. 좋아요. 들은 대로 재미있는 분이로군요.”

우리는 다 같이 소주잔을 부딪치고 바로 원샷했다.

오늘따라 소주가 달다.

나는 머리 고기를 한 점 집어먹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 서울에서 G20 정상 회의가 열리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이번 정부가 크게 관심을 두고 있는 사안이죠.”

“네. 지금까지 G20을 개최한 나라는 미국과 캐나다, 영국 3개국뿐이었으니까요. G7 소속 국가가 아닌 곳에서 개최하는 것은 한국이 처음이죠.”

“맞아요. 그래서 BH(Blue House, 청와대)에서 이번 건을 집중적으로 홍보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거고요.”

갑자기 이광우가 테이블을 손으로 강하게 치며 외쳤다.

“그게 문제야! 아무것도 모르는 일곱 살배기 애들에게 환율 전쟁에 대한 숙제를 내주고, 아주 나라 꼴이 말이 아닙니다. HBS를 동원한 과잉 홍보는 또 뭡니까? G20 경제 효과가 31조 원? 참나!”

“이 의원님. 지금 말싸움이나 하자고 저를 부르신 건 아니시죠?”

“모 이사장님에게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BH에 있는 높으신 양반에게 하는 소리죠. 어휴.”

이광우는 답답한지 혼자 술을 잔에 따르더니 금방 마셔 버렸다.

실제로 정부에선 서울 G20 정상 회의에 대해 직접 효과만 1,023억 원, 간접 효과는 21조에서 24조 원에 이른다고 발표하여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또한 여러 경제 연구소에서도 450조의 경제 효과에 242만 명의 취업 유발 효과가 있다는 등 황당무계한 기대 효과를 발표하여 트위터에서는 이를 풍자한 패러디가 인기였다.

“분명 과장된 수치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부정적으로만 볼 것만은 아닙니다. 아시아의 변방에서 벗어나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는 맞으니까요.”

“흠. 우 사장. 젊은 친구가 생각보다 보수적이십니다?”

“그런 건 아니고요. 잘한 건 잘한 대로 못 한 건 못한 대로 분리해서 봐야 된다는 거죠.”

“후후. 아직 젊으시네요. 세상이 그리 만만하지 않아요.”

이광우는 담배를 피우고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배인 백철웅도 함께 따라나섰다.

모원석은 그런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젊은 분이 배짱이 대단하네요. 이광우 의원은 야당 실세 중의 실세입니다. 괜히 찍혀서 좋을 건 없을 겁니다.”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이 의원님하고는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갈 생각입니다.”

“그러시군요. 그런데 아까 이야기한 청에 대해서는 아직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만?”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저희 오프라인이 G20의 공식 파트너가 되고 싶습니다.”

“공식 파트너요?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경우에는 공식 방송사 같은 게 있지 않습니까? 저희도 그런 역할을 맡고 싶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이해했는데, G20은 그런 독점적인 중계권이나 보도권을 주는 행사가 아니에요. 정식 언론사라면 누구나 취재할 수 있죠. 그리고 외신에 영어 뉴스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였다면 이미 통합뉴스에서 주관 통식사 약정을 체결했어요.”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건 저희가 독점으로 보도를 한다거나 통신사가 되고 싶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저희가 G20을 집중적으로 보도할 테니, 대신 저희에게 G20 공식 언론사라는 호칭을 부여해 달라는 말씀이죠.”

“G20 공식 언론사라…….”

“아시다시피 저희는 이번 애틀랜타에서 열린 글로벌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매체입니다. G20 공식 언론사라는 타이틀을 달아도 손색이 없다고 자부합니다.”

“흠.”

“그리고 이사장님도 아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BH에서 이번 행사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싶다고요. 저희가 그 선두에 서겠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한번 추진해 보겠습니다.”

이내 이광우와 백철웅이 다시 가게 안으로 돌아왔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온 이광우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런 영향인지 그날 모임은 무려 4차까지 이어졌다.

술이 쓰다.

* * *

모원석을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프라인은 G20 공식 언론사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다.

“G20 공식 언론사라니 뭔가 새삼스럽네요.”

이덕오가 오프라인의 홈페이지 상단에 G20 공식 언론사 배너를 달며 중얼거렸다.

“자자! 여러분 우리는 오늘부터 이번 서울 G20 정상 회의의 공식 언론사입니다. 모두 평소보다 더 분발해 주시고, 국내는 물론 전 세계가 우리를 주목하고 있으니 작은 실수라도 있으면 안 됩니다! 힘내 주세요!”

“넵!”

2010년 11월 11일부터 12일까지 이틀에 걸쳐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정상 회의.

곳곳에서 G20 반대 집회가 열렸지만, 큰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부에서 각국 정상들의 경호와 신변 안전은 물론 행사 보안에 무척 신경을 쓰면서 안전을 위협할 만한 특별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이번 정상 회의의 핵심 의제였던 환율 문제는 오랜 핑퐁 끝에 결국 시장 경제에 맡기자는 결론으로 각국이 합의하면서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미국과 중국이 환율 문제와 관련하여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큰 다툼은 없었다.

오프라인은 공식 언론사인 만큼 누구보다도 빠르게 기사를 썼고 중계에 나섰다.

외국어 번역도 마찬가지.

덕분에 이번 행사의 주관 통신사인 통합뉴스보다 더 빠르게 기사를 내보내 외신들이 통합뉴스가 아닌 오프라인의 기사를 먼저 인용할 정도였다.

또한 단순히 사안을 중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백철웅이 국가 간의 갈등을 중재하고 새로운 국제 협력 방안에 대한 칼럼을 시리즈로 쓰면서 지식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우 사장님, 트래픽도 평소보다 많고, 인용된 기사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대박까진 아니더라도 중박 정도는 되겠는데요?”

“아직 끝난 게 아냐.”

“네? 이제 폐막식만 남았는데요? 형식적인 자리잖아요. 자화자찬하면서 박수로 마무리되는.”

“아니. 오바마 대통령이 폐막 연설을 하는 자리니까. 분명히 큰 게 있을 거다.”

“에이. 별거 있을까요?”

나는 웃으며 이덕오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하긴 그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모르고 있으니.

이날 폐막식은 대한민국 기자들에게는 두고두고 치욕의 날로 기억되었다.

폐막 연설 직후.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그 어떤 한국 기자도 손을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국 기자가 대신 질문을 하면서 그는 중국의 영웅이 되었고, 한국 기자들은 그야말로 무능한 기레기로 낙인찍히고 만다.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세계 권력의 중심인 미국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것에 대한 중압감과 영어를 잘하지 못할까 봐 생긴 두려움이 결합한 결과였다.

‘내가 알려 준 대로 홍지혜가 잘해야 될 텐데.’

나는 이덕오의 커다란 모니터 앞에서 생중계되는 폐막식을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G20의 성과에 대해 발표를 하던 오바마는 도중에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바로 그 순간이다.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하나 드리고 싶군요. 정말 훌륭한 개최국 역할을 해 주셨으니까요.”

예상했던 대로 기자 회견장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그 어떤 한국 기자들도 주변의 눈치만 볼 뿐 손을 들지 않았다.

오바마는 주변을 살피며 다시 말했다.

“한국어로 질문하면 아마도 통역이 필요할 겁니다. 사실 통역이 꼭 필요할 겁니다.”

기자 회견장에 있는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였다.

누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오바마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를 가리켰다.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하지만 저는 중국 기자입니다. 제가 아시아를 대표해서 질문을 던져도 될까요?”

“하지만 공정하게 말해서 저는 한국 기자에게 질문을 요청했어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그럼 한국 기자들에게 제가 대신 질문해도 되는지 물어보면 어떨까요?”

“그것은 한국 기자가 질문하고 싶은지에 따라서 결정되겠네요.”

오바마는 제발 나 좀 구해 달라는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없나요? 아무도 없나요?”

바로 그때였다.

내가 미리 지시를 내린 정확한 그 타이밍에 홍지혜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당황하고 불편해하던 오바마가 환하게 웃으며 홍지혜를 가리켰다.

“네. 미스?”

“오프라인의 홍지혜입니다. 반갑습니다. 대통령님.”

“오프라인? 이번 G20의 공식 언론사 아닙니까. 저야말로 고맙습니다. 아주 당황스러웠거든요.”

오바마가 손으로 부채질하는 시늉을 하자 넓은 기자 회견장이 청중들의 웃음으로 가득 찼다.

앞서 질문을 했던 중국 기자만이 분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아야 했다.

“그래서 어떤 질문인가요? 미스 홍?”

모두의 시선이 홍지혜에게 집중됐다.

전 세계에 생중계를 내보내고 있는 카메라들 역시 마찬가지.

홍지혜는 숨을 고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능숙한 영어가 마이크를 통해 기자 회견장에 울려 퍼졌다.

“최근 미국 정부가 내놓은 여러 대책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들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홍지혜의 발언에 침묵하던 기자 회견장 곳곳에서 탄식과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특히 오바마와 중국 기자 둘은 똥 씹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대에 선 오바마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가뜩이나 중국과 환율 문제로 골치 아픈 상황에서 개최국인 한국, 그것도 G20의 공식 언론사인 오프라인 기자가 이런 질문을 할 줄은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반면 중국 기자는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왜냐하면 그건 바로 네가 했을 질문이니까.’

나는 원래 중국 기자가 해야 했을 질문을 홍지혜에게 알려 주었다.

달랐던 점이 있다면 최대한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질문하라고 몇 번을 당부한 것이 반영됐을 뿐.

‘질문 자체는 팩트에 근거해서 전혀 문제가 없어. 실제로 미국과 중국의 장난으로 세계 각국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기자로서 좋은 질문이야. 중요한 건 질문자의 태도. 너무 건방져서도, 자신감이 넘쳐서도 안 돼. 공손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질문하는 게 중요하지. 요는, 질문은 날카롭되 태도는 공손하게!’

오바마는 한참 동안 고민하는 것 같더니 단상에 설치된 마이크를 손으로 잡고 뽑았다.

그러고는 무대 앞 홍지혜가 서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예상치 못했지만, 좋은 질문입니다.”

“감사합니다.”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은 없다고 하죠? 하하.”

“무례했다면 사과드립니다.”

“아뇨. 다만, 미국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를 희생시키지 않습니다. 이번 G20 정상 회의에서도 환율 문제에 대해 중국과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각국과 여러 협의 과정을 거쳐 결론을 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여쭤본 것은 이번 정상 회의에서의 결론이 아닌 최근 미국에서 나온 일련의 대책들에 대한 것입니다. 대통령님.”

홍지혜의 지적에 오바마는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한참이나 그녀의 질문에 해명해야만 했다.

젊은 여기자에게 쩔쩔매는 오바마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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