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0/200)

오바마가 누구던가.

전 세계 최강 파워를 자랑하는 아메리카의 캡틴 아니던가.

이에 대해 주요 외신들도 빠르게 기사를 내보냈다.

<한국의 오프라인, 오바마를 몰아붙이다.>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은 없다.’ 신생 매체에 쩔쩔맨 오바마>

<주최국인 한국의 G20 공식 언론사, 미국에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지다.>

진땀을 흘린 오바마는 기자 회견장을 빠져나오면서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폐막식은 편안한 마음으로 참석했습니다만, 한국의 기자 한 분 덕분에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한 방 먹었네요. 하하.”

* * *

서울 G20 정상 회의가 끝나고 며칠 뒤.

한국 언론 진흥 재단 이사장인 모원석에게 핀잔을 듣기는 했지만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갔다.

오히려 홍지혜와 오프라인은 오바마를 몰아붙였다며 SNS나 다른 언론사에서 영웅으로 떠받들어졌다.

다만 모두가 만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백철웅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이광우 의원 통해서 들은 얘긴데, V.I.P가 격노를 했다고 해요. 모원석 이사장이 한국 언론의 힘을 널리 알렸으니 오히려 잘된 거라고 겨우 말려서 진정됐다고 합니다.”

“잘됐네요.”

“휴…….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제발 저랑 미리 상의 좀 하고 진행하세요, 우 사장.”

“알겠습니다. 백 사장님.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정말 홍 부장이 오바마에게 그런 질문을 던질 땐 심장이 떨어지는 줄만 알았습니다.”

백철웅은 고개를 저으며 내 방을 나갔다.

같은 사장으로서 그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번 건만큼은 그와의 상의가 필요하지 않았다.

‘만약 홍지혜가 나서지 않았다면 한국 언론계는 이후 10년 넘게 이 사건으로 놀림을 받았을 거야.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14년에 EBC에서 방영하는 6부작 다큐를 통해 널리 퍼졌을 테니까. 한국 기자와 언론을 위해서도 미리 막아 두길 잘한 거지.’

나는 책상 앞에 놓인 연필을 집은 뒤 빙글빙글 돌렸다.

‘G20은 잘 마무리 지었고. 그럼 다음 건을 준비해 볼까.’

나는 재빨리 전사원을 회의실로 집결시켰다.

모두의 얼굴에서 G20을 성공적으로 보도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특히 일약 스타 기자가 된 홍지혜는 풍기는 아우라가 180도 달라졌다.

그녀는 진한 화장을 하고 몸에 딱 붙는 원피스를 입고는 도도한 자세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표정에선 깊은 신뢰와 믿음이 느껴졌다.

‘질문 하나로 사람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구나.’

나는 홍지혜의 변신에 새삼 감탄하며 직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여러분 모두의 노고 덕에 G20 정상 회의를 잘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긴장의 끈을 놓칠 순 없죠. 여러분들에게 또 다른 미션을 주려고 합니다.”

“또 다른 미션요?”

칭찬을 기대하고 있던 직원들의 표정에선 당혹감이 엿보였다.

박창후가 입을 삐죽 내밀고는 말했다.

“아니 우 사장님. 글로벌 미디어 콘퍼런스에 서울 G20 정상 회의까지 근 몇 달간은 집에 제때 들어가지도 못했어요.”

“압니다, 알아요. 다만 아직 오프라인의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 생각에 연말까지만 조금 더 노력해 주신다면 내년 초에 공개 채용도 하고, 지금 계신 여러분들에게는 보름의 특별 휴가를 드릴 예정입니다.”

“와!! 드디어 사람 더 뽑는 건가요?”

“보름간의 특별 휴가! 대박!”

울상을 짓던 직원들의 표정에서 다시 활기가 보였다.

“그러니 조금만 더 힘내 주세요. 연말에는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도 제공할 예정입니다. 물론 성과와 상관없이 기본 보너스도 두둑할 테고요. 그렇죠, 백 사장님?”

내가 백철웅을 바라보며 말하자 백철웅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이런. 이거 연말까지 비밀로 하기로 한 거 아니었나요?”

“힘내자는 의미로 제가 좀 빨리 공개했습니다. 괜찮으시죠?”

“이미 말이 나왔는데 어쩌겠습니까. 우 사장의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올해 여러분 덕분에 정말 엄청난 성과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여러분께 보답하고자 많은 준비를 하고 있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와!!! 보너스!”

오프라인 사무실은 마치 축제라도 열린 것처럼 뜨거운 열기로 불타올랐다.

나는 그 열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드릴 미션은 바로 굿즈입니다.”

“굿즈요?”

“네. 맞습니다. 캐릭터 사업도 좋고, 굿즈도 좋고 둘을 결합한 상품도 좋습니다. 뭐가 됐든 시장에서 통할 좋은 아이디어를 내주시는 분들에게는 그에 맞는 대우를 보장하겠습니다.”

그 말에 한쪽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던 안경 낀 여성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저…… 사장님…….”

“네. 수빈 씨. 말씀하세요.”

이제는 더 이상 파견 사원이 아닌 정식 오프라인 사원이 된 디자이너 이수빈이었다.

애틀랜타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원화성을 설득해 파견 사원들을 모두 정식 직원으로 돌린 것이다.

“저기…… 캐릭터 사업도 괜찮다면 제가 직접 그린 캐릭터들도 가능할까요?”

“물론이죠!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수빈 씨 그림도 그려요?”

나의 질문에 이수빈이 수줍은 듯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이수빈의 옆에 있던 동료 디자이너가 대신 답했다.

“수빈이 언니는 여기 오기 전에 웹툰 작가 지망생이었어요! 그림 진짜 잘 그려요!”

“오, 그래요?”

“게다가 지금 오프라인에 자료 사진으로 쓰이는 그림은 모두 언니 작품이에요~”

“진짜요? 안 그래도 이건 어디랑 계약 맺고 가져다 쓰는 건지 궁금했는데 수빈 씨가 직접 그린 그림이군요? 대단한데요!”

나의 말에 모두가 한마디씩 꺼냈다.

맞다, 정말 그림 잘 그린다, 디자인 실력이 너무 좋다 등 이수빈에 대한 칭찬은 끝날 줄 몰랐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가고.

마감 기한으로 정한 시간에 접수된 아이디어는 총 7건이었다.

그중 3건은 퀄리티가 굉장히 뛰어났다.

“대형 기획사와 제휴해서 아이돌 굿즈를 만들자라. 나쁘진 않군. 한류는 앞으로도 계속 커질 테니까. 그리고 이건? 음……. 오프라인 굿즈 매장을 만들어서 굿즈를 유통하자라. 이것도 좋군.”

압권은 이수빈의 캐릭터였다.

엄청난 퀄리티는 물론, 총 12개의 캐릭터가 다양한 상황과 동작에 따라 제각각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심지어 GIF로 만들어진 파일을 클릭하니 캐릭터가 살아 있는 듯 생생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녀가 보낸 PPT에는 각 캐릭터의 이름이며, 나이, 성격 등 디테일한 컨셉은 물론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는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 무려 A4 12장에 빼곡히 녹아들어 있었다.

‘도대체 이 친구는 왜 웹툰 작가 안 하고 여기서 디자이너를 하고 있는 거야?’

나는 그녀가 보낸 기획서의 꼼꼼함과 디테일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부장급 이상 직원들과 상의한 끝에 우리는 총 3개의 상을 만들었다.

대형 기획사와 제휴하자는 의견은 동상.

오프라인 굿즈 매장을 만들어 운영하자는 의견은 은상.

이수빈의 캐릭터는 금상에 선정됐다.

또한 상금이 제공됐다.

동상은 50만 원, 은상은 100만 원, 금상은 300만 원.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수빈은 사원에서 부장으로 초고속 승진됐다.

그녀를 위한 부서도 신설됐다.

바로 IP 개발부.

앞으로 IP 개발이 무척 중요해질 거란 전략적 판단 때문이었다.

아직은 이수빈을 포함한 디자이너 둘이 전부였지만, 조만간 사원을 더 뽑을 예정이었다.

3백만 원의 상금과 함께 부장 승진이라는 파격 대우에 이수빈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니 저, 저는 그냥 일개 사원인데…….”

“아뇨. 오늘부터 IP 개발부장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부장님.”

이수빈이 울 것 같은 얼굴을 하자 옆에 있던 동료 디자이너가 그녀를 꼬옥 안아 주었다.

“언니! 축하해! 아니 이 부장님 영전을 축하드립니다!”

IP 개발부가 신설되면서 오프라인은 더욱 가열 차게 앞으로 나아갔다.

당장 보름 뒤에는 언론 진흥 재단에서 주관하는 코리아 미디어 콘퍼런스의 발표 준비를 해야 했고, 글로벌 미디어 콘퍼런스 이후 외신의 인터뷰 요청이 자주 들어와서 그걸 처리하는 일만 해도 만만치가 않았다.

정말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랄 지경.

‘그렇다고 내가 다 벌여 놓고는 힘들다고 주저앉을 순 없지.’

나는 매일 철야를 하면서 악착같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서면 인터뷰에 답을 하느라 골머리를 섞고 있는데 박창후가 들어왔다.

“우 사장님. 많이 바쁘시겠지만, 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너무 바빠서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모니터만 바라본 채 물었다.

“네. 말씀하세요.”

하지만 박창후가 꺼낸 이야기에 나는 키보드를 치던 손을 멈추고 한동안 그를 쳐다보아야만 했다.

“저 지인이랑 결혼합니다.”

“경리 보는 지인이요?”

“네.”

“저기 박 부장님. 그 친구 20대 초반 아닙니까?”

“네…….”

“박 부장님은 38살이고요.”

“네…….”

“도대체 언제부터 사귀었는데요?”

“제주도 다녀온 뒤로…….”

“혹시 속도위반이에요?”

“네…….”

박창후는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 고개를 조아리며 웅얼거렸다.

“그래서 언제 결혼하는데요?”

“그게, 부모님이 하도 성화를 내셔서…….”

“그러니까 언젠데요?”

“12월 4일이요. 토요일입니다.”

“얼마 안 남았네요?”

“네…….”

나는 깊은 한숨을 뱉으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박창후는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 두 손을 공손하게 앞으로 모으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박 부장님.”

“네?”

“축하드린다고요. 아니 직원 간 결혼은 당연히 축하드릴 일이 아닙니까?”

“저…….”

“왜요?”

“저 뭐 징계 먹고 그런 거 아닌가요?”

“아니 징계를 왜요? 지금 박 부장님이 잘못하신 거예요?”

“아뇨, 그런 건 아닌데 그래도 좀 반사회적이랄까……. 반도덕적이랄까.”

“하하하. 그걸 아시면 지인 씨한테 잘해 주세요.”

“네. 그거야 잘하고 있죠, 지금도.”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나요?”

“요즘 정신이 없어서 식장만 겨우 잡았어요.”

“그래서 저번에 굿즈 이야기했을 때 투덜거리셨던 거군요?”

“너무 바빠서 연애할 시간도 없어요. 진짜.”

“죄송합니다. 제가 회사 키우는 데에만 몰입해서 미처 신경 쓰지 못했네요. 아무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우 사장님.”

알고 봤더니 오프라인에서 나 빼고 모두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내가 너무 직원들한테 무신경했구나. 회사를 빨리 키우고 싶은 욕심에 앞만 보고 달려왔나 보다. 올 연말만 지나면 직원들 장기 휴가도 주고 나도 좀 쉬어야겠어.’

의자에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아무튼 박창후가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15살 차이를 극복한 결혼이라니.

게다가 김지인은 귀여운 외모로 또래 직원들에게도 무척 인기가 많았다.

‘옆집 아저씨 같은 박창후가 도대체 무슨 스킬로 그녀를 꼬셨을까.’

살며시 문밖을 살펴보니 박창후가 어려운 건을 해결했다는 듯 김지인 옆에서 껄껄대며 웃고 있었다.

직원들도 모두 웃으며 격려하는 분위기.

‘여러 의미에서 참 대단합니다, 아저씨.’

박창후와 김지인 커플은 그날 이후 대놓고 사내에서 애정 행각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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