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1/200)

그런 탓일까.

김지인을 사모하던 뭇 남성들이 매일 밤 술을 마시며 한탄한다는 이야기가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그날 밤.

나는 젊은 남자 직원들을 불러 모아 회사 앞 호프집에서 연애의 덧없음에 대해 설파했다.

“여러분. 연애란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겁니다. 상처만 받을 뿐이에요. 슬퍼하지 마시고 그 에너지를 일에 쏟읍시다. 연애하면 돈이 나오나요?”

“아뇨…….”

“하지만 일을 하면 돈이 나오죠! 게다가 열심히 해서 성과가 나오면? 인센티브가 붙습니다. 일이 최고예요, 최고!”

몇몇은 나의 설득에도 납득하지 못한 듯 고개를 저었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직원이 일이 최고라며 건배를 제의했다.

‘아무렴 일이 최고지.’

그날 이후 젊은 남자 직원들이 평소보다 더욱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뿌듯해하며 업무를 보고 있는데 핸드폰에서 통합뉴스 알람이 떴다.

<속보. 북한군 연평도에 포 사격>

순간적으로 시간이 정지된 것만 같았다.

‘아차! 이 중요한 뉴스를 놓치고 있었구나!’

2010년 11월 23일.

대한민국 연평도를 향해 북한이 무차별 포격을 가한 사건.

이로 인해 대한민국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하였으며, 군인 16명, 민간인 3명이 중경상을 입는 등 인명 피해가 발생하였다.

남북한 휴전 협정 이후.

북한군이.

대한민국의 영토를 직접 공격하여.

민간인이 최초로 사망하였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큰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일대 사건이었다.

또한 8개월 전 일어났던 천안함 침몰 사건에 이어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남북한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나는 즉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백철웅과 박창후, 홍지혜 및 몇몇 기자들과 함께 연평도로 향했다.

결혼이 며칠 남지 않은 박창후가 차 안에서 계속 불안한 표정을 하고 있길래 조용히 한마디 던졌다.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북한도 전면전을 원하는 건 아닐 테니까요. 후계 구도를 확립하기 위한 도발일 뿐 이 이상의 피해는 없을 겁니다. 그러니 안심하세요.”

서울을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우리는 인천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주변은 이미 배를 구하려는 취재진으로 북적거렸다.

하지만 군인들이 취재진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여러분 제발 물러서십시오. 여러분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군인들의 외침과는 무관하게 취재진의 항의도 만만치 않았다.

“국민의 알 권리가 우선입니다! 당장 연평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나는 바다가 보이는 인천항 한쪽 공터에 자리를 잡고 박창후와 홍지혜를 불렀다.

“어차피 추가 공격은 없을 겁니다. 오늘 연평도에 들어가는 건 불가능해 보이니 일단 당장 여기서 생중계라도 합시다. 박 부장님이 찍고, 홍 부장이 리포터 하는 걸로, 당장!”

홍지혜는 G20 당시 오바마에게 질문하여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인지도가 상승했다.

모니터 뒤에서 기사만 쓰는 것보다는 카메라 앞에 서서 얼굴을 비추고 생방송을 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홍지혜와 박창후가 생중계를 시작하자, 군인들과 다투고 있던 방송사 취재진도 하나둘 우리를 따라 급하게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시청자들은 TV 뉴스가 아닌 우리 유튜브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휴전 이후 첫 민간인이 사망하는 포격 사건이었던 만큼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유저들이 오프라인의 유튜브에 접속해 스타 기자인 홍지혜의 보도를 지켜봤다.

최루리의 국제부는 빠르게 5개 국어로 번역해 자막을 붙였고, 홍지혜 역시 한국어로 한 말을 영어로 다시 이야기하며 중계를 이어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회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또한 소셜부가 내놓은 기사들도 포털과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며 오프라인의 트래픽은 계속해서 최고치를 경신했다.

박창후의 옆에서 노트북으로 기사를 쓰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왔다.

흰머리가 듬성듬성 난 남성이었다.

그는 내게 명함을 하나 꺼내더니 건넸다.

“한민족 신문 박인찬입니다. 반갑습니다.”

나는 그의 명함을 한 손으로 받으며 계속해서 타자를 쳤다.

“많이 바쁘시네요?”

“그렇죠. 특종이니까요.”

“이미 오프라인에서 보도할 만큼 했는데, 또 할 게 있습니까?”

“기사야 만들면 계속 나오는 거 아닙니까.”

“하하. 그렇네요. 그런데 유튜브 생방송은 도대체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내가 알기로는 유튜브에 생방송 기능은 없는 거로 아는데.”

실제로 유튜브가 생방송 기능을 도입한 것은 2011년이 처음이었다.

나는 빠르게 기사를 송고한 뒤에 노트북을 탁 하고 닫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그의 두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IT 쪽 취재하시나요?”

“아뇨. 국방 쪽 취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튜브에 대해서도 잘 아시네요?”

“원래 관심 없었는데, 오프라인에서 너무 잘하니까 요즘 좀 들여다봤습니다.”

“그러시군요. 유튜브랑 MOU 맺고 전 세계 최초로 생방송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우와 그러셨군요? 그런데 왜 그런 건 기사도 나오지 않았을까요?”

“어디에도 알리지 않았으니까요.”

“보도가 나왔으면 오프라인에 더 유리하지 않았을까요? 유튜브와 독점 계약을 맺었다고요.”

“반대로 다른 방송이나 회사의 표적이 될 수도 있겠죠. 오프라인에만 편의를 줬다고요.”

“하하하. 그런데 이거 저한테 말씀하셔도 되는 겁니까? 제가 기사를 쓸지도 모르는데요.”

“어차피 생방송 하는 거 다 아는데 이제 와서 뭘 숨기겠습니까.”

“그렇네요. 하하. 괜찮으시면 저도 명함 하나만 건네주시죠.”

기사 쓰는데 바빠서 그의 명함만 받고, 내 명함을 건네주지 않았다.

“깜빡했네요. 오프라인의 우세진이라고 합니다.”

내가 명함을 건네자 그의 두 눈이 더욱 커졌다.

“아니, 당신이 우세진 사장? 젊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이렇게 어린 분인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 네.”

“혹시 우 사장님. 괜찮다면 HBS와 함께 몰래 연평도에 잠입하지 않겠습니까?”

“잠입이요?’

“네. 지금 상황을 보니까 군인들이 길을 열어 줄 것 같진 않고 당분간 연평도에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중대 사안을 감춘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죠. HBS 쪽이랑은 이미 입을 맞춰 둔 상황입니다.”

“그렇군요. 그렇지만 지금 취재진이 연평도에 들어가 봤자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아니 포격 현장이지 않습니까? 기자에게 이보다 더 생생한 장소가 있을까요? 휴전 이후 첫 민간인이 살해된 현장입니다!”

“현장을 알리고 신속한 것도 좋지만 보안과 관련된 문제예요. 신중해야죠.”

“이거, 제가 경솔했군요. 제가 한 말은 그냥 못 들은 걸로 해 주십쇼.”

박인찬은 나를 노려보더니 자리를 떴다.

‘특종을 건지고 싶다는 그 마음은 누구보다 잘 알지만, 한국은 휴전 상황일 뿐 전쟁이 끝난 게 아니야. 이럴 때일 수록 신중해야지. 국민의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국가 안보와 기밀 보호 역시 중요하잖아.’

실제로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과잉 취재가 이어지면서 과장 왜곡 보도와 오보가 쏟아졌다.

나는 일어서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방송사의 카메라는 계속해서 새로 설치되었고, 기자들은 노트북을 연 채 끊임없이 기사를 쓰고 있었다.

“이제 철수하죠.”

“네?”

“아니 우 사장! 연평도에 가지도 못했는데 철수하자고?”

나는 다시 한번 크게 소리쳤다.

“네. 철수합시다!”

인천항의 취재진 모두가 나의 목소리에 흠칫 놀란 듯 일시 정지되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들이 하던 일을 이어나갔다.

오프라인 기자를 태운 차량만이 인천항을 쓸쓸히 빠져나갔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

차에 탄 사람들은 도대체 왜 철수하냐고 따졌다.

“사장님, 뭔가 착각하신 거 아닙니까? 다시 돌아가죠?”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두려움에 떨던 박창후가 거세게 항의했다.

“여러분은 이런 비상 상황이 그저 컴퓨터 게임 중계하듯 상황을 중계하면 다라고 생각하시나요?”

“네?”

“위기 상황입니다. 이런 때일 수록 이 사태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앞으로 예상되는 파장은 뭔지, 우리의 문제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죠.”

“하지만 연평도 현장만큼 더 국민들이 보고 싶어 하는 장면이 있을까요?”

“어차피 현장 사진은 통합뉴스에서 오는 거 받아 쓰면 됩니다. 다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내용으로 기사 쓰는데 우리가 한 줄 보탠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그런 것보다는 보다 넓은 시각에서 이번 사건의 원인과 문제점에 대한 분석 기사를 쓰면 됩니다. 그거면 충분해요.”

“하긴, 이미 유튜브랑 홈페이지 조회 수는 역대 최고치네요. 어그로는 충분히 끌었으니 이제 심층 분석 기사로 승부를 보시자는 거죠?”

홍지혜가 옆에서 나를 보며 물어보았다.

나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모원석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네. 이사장님. 우세진입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우 사장! 급해요, 급해! 지금 당장 청와대로 와 주세요!

“네? 청와대요?!”

모원석의 전화가 걸려 온 이후 최고 속도로 달린 우리는 금세 청와대에 도착했다.

무슨 일이냐며 길을 막던 사복 경찰들도 우리가 오프라인임을 밝히자 즉시 길을 열어 주었다.

청와대 정문을 통과해 차에서 내리니 모원석이 반겨 주었다.

“빨리 오셨군. 지금 당장 들어갑시다.”

“대통령은 저 안에 있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급하니까 어서!”

모원석의 재촉에 우리는 곧바로 청와대 본관에 들어섰다.

‘살아서 청와대에도 다 들어와 보고. 출세했네.’

주위를 둘러보자 전통을 살린 외관과 달리 현대적인 감각과 시설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우리는 계단을 따라 2층에 위치한 대통령의 접견실 앞에 섰다.

“똑똑. 대통령님 오프라인 일행이 도착했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들어오세요.”

갈라지듯 쉰 소리.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 이국대.

접견실에는 TV로만 접하던 이국대 대통령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대통령님. 오프라인에서 찾아왔습니다.”

모원석의 말에 이국대는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바라보았다.

“반갑습니다. 직접 보도까지 하셨으니 사정은 잘 아실 테고.”

이국대는 우리에게 좌우에 설치된 의자에 앉으라고 권한 뒤 자신은 정중앙에 설치된 의자에서 브리핑 자료를 넘기며 빠르게 말했다.

“저번 G20 정상 회의 때처럼 이번에도 오프라인이 활약을 좀 해 줬으면 좋겠는데.”

“네?”

이국대의 아리송한 말에 모원석이 보충 설명을 해 줬다.

“대통령님의 말은 이번 연평도 포격 사건과 관련하여 오프라인에서 중심을 잡아 줬으면 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말씀이실까요?”

백철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이국대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백철웅에게 답했다.

“정부에서 중요 자료를 오프라인에 먼저 넘길 테니 이를 잘 보도해 주세요. 확대, 왜곡은 절대 금물입니다.”

대통령의 말에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일개 신생 매체에 이번 사건의 중요 자료를 먼저 넘기겠다고?

홍지혜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공영 방송인 HBS가 아니라 저희에게 맡기시는 의도가 있으실까요?”

“흠……. 저번에 오바마를 당황하게 한 기자로군요.”

이국대는 모원석을 바라보며 대신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원석이 서둘러 답했다.

“HBS나 WBS 모두 올해 파업을 벌이는 등 정부와 관계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중요 자료를 그들에게 먼저 넘겼을 때 군 기밀이 노출되는 것을 걱정하고 계십니다.”

HBS와 WBS 모두 공영 방송을 명분으로 파업에 들어서면서 정부와 각을 세운 상태였다.

‘이국대가 언론을 장악하려고 무리한 결과지만.’

“대통령님은 최근 글로벌 미디어 콘퍼런스에서의 활약과 서울 G20 정상 회의의 공정 정대한 보도 등 오프라인을 높게 평가하고 계십니다. 이번 사태가 명백한 북한군의 도발인 만큼 확전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정부와 군의 시각을 균형 있게 보도해 줄 매체가 필요한 상황이지요.”

“화…… 확전이요?!”

박창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어디까지나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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