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200)

모원석이 선을 그었으나 이국대가 아쉽다는 듯 뒤에서 중얼거렸다.

“난 이미 F-15 전폭기 두 대로 북한을 정밀 타격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군 관계자들이 미군과 협의할 사항이라고 말렸을 뿐.”

접견실에 있는 모두가 대통령의 충격 고백에 놀라 제대로 반응을 하지 못했다.

‘아니 지금 전폭기로 공격을 하라고 한 거면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건데, 제정신인가?!’

나 역시 이국대의 말에 충격을 받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상황을 정리한 건 모원석이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오프 더 레코드로 해 주시고. 그래서 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나는 백철웅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나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아니던가!

정부에서 먼저 고급 정보를 우리에게 넘긴다니.

안 그래도 현장에서 한발 물러나 심층 분석 기사를 쓰자고 직원들을 독려하던 차였다.

그런데 정부와 군의 고급 정보가 있다면 그 깊이는 훨씬 더 깊어질 것이다.

‘거절은 바보 같은 짓이지!’

우리는 그 자리에서 바로 승낙하고 접견실을 나왔다.

모원석이 잘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제가 오프라인을 적극 추천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제대로 된 보도를 할 수 있는 곳은 오프라인밖에 없다고요.”

“고맙습니다. 이사장님. 대통령은 일전에 G20 때 일로 오프라인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렇긴 한데, 지금 상황에서는 뭐 믿고 맡길 만한 곳이 없으니까요.”

“고려 일보나 센터 일보, 서아 일보는 대통령의 우군이지 않습니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뭣보다 과잉 취재로 벌써 몇 가지 실수를 저질렀고요. 이건 비밀인데 고려 일보랑은 요즘 관계가 많이 틀어진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랬군요. 그런데 자료는 어떤 식으로 보내 주실 건가요?”

“거쳐야 할 곳들이 많아서 좀 복잡하긴 한데…… 아마 최종적으로는 홍보 수석 통해서 전달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사장님.”

“저야말로.”

우리는 모원석에게 인사를 하고 난 뒤 청와대를 빠져나와 오프라인 사무실에 돌아왔다.

안 그래도 심층 분석 기사에 대해서는 뼛속 깊이 한이 서려 있었다.

회귀 전에는 단 한 번도 써 보지 못했던 심층 분석 기사.

그것은 기생 언론 그리고 기레기라고 욕을 먹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이건 하늘이 우리에게 준 엄청난 기회다. 청와대에서 건네준 자료로 최고의 심층 분석 기사를 만들어 내자. 그 어떤 메이저 언론사에서도 준비하지 못할 만큼의 퀄리티로!’

* * *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한 오프라인의 보도는 달랐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에 대한 단순 중계성 정보가 아니라, 이 일이 왜 일어났으며, 현재 상황과 문제점은 무엇이고, 앞으로 예상되는 위기에 대한 분석.

그리고 차갑게 식어 버린 남북 관계를 어떻게 하면 보다 우호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등에 대한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자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갔다.

분석 기사라고 글만 길게 쓴 게 아니었다.

그에 맞는 인포그래픽과 사진, 통계, 동영상 등 그 누구라도 기사를 읽으면 이해할 수밖에 없는 마법의 기사들이 만들어졌다.

반면 다른 언론사의 방송이나 기사는 최대한 자극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TV 화면에 나오는 폭발 장면은 단순 CCTV 녹화 화면으로 폭발음이 없었지만, 자극적인 폭발 효과음을 덧입히거나, 컴퓨터 그래픽을 동원해 위협적인 장면으로 묘사했다.

또한 북한군의 공격에 연평도가 불타오르는 사진에 과도한 보정을 하거나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포격을 받은 바그다드의 사진을 연평도 사진이라고 올리는 등, 공포감을 부추기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오프라인은 현장엔 없었지만, 그 어떤 현장 취재 기사보다 더 생생하고 논리적이었다.

포털의 댓글과 SNS에는 연일 자극적인 장면으로 공포를 조장하고 감성팔이에 천착한 언론들을 비판하는 글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어휴, 진짜 오보 쩌네. 볼 건 오프라인밖에 없는 듯.>

<기레기 놈들은 맨날 질질 짜거나 화딱지 나는 거 말고는 기사를 못 쓰나 봄.>

<저거 그대로 보도하면 북한 놈들에게 우리 군사 기밀을 그대로 주는 거 아님? 미쳤나 보네.>

그와 반대로 오프라인에 대한 칭송은 나날이 늘어났다.

홈페이지 트래픽도, SNS 조회 수도 평균치를 내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상승 곡선이 이어졌다.

천재 개발자 이덕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트래픽 상승치가 가팔랐다.

연평도 포격 사건의 진정한 승리자는 바로 오프라인이었다.

* * *

연평도 포격 사건이 점점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힐 즈음, 광화문에선 한국 언론 진흥 재단의 코리아 미디어 콘퍼런스가 열렸다.

국내 주요 메이저 언론사의 주요 인사들이 모두 초청된 가운데 발표는 오직 오프라인 한 곳에서 진행되었다.

언론사 이외에도 포털, 스타트업, 관공서 등 미디어와 연관된 곳이라면 누구라도 방문할 수 있어 행사장은 인파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이번에 오프라인 단독 발표라며?”

“응. 요즘에 가장 잘나가는 언론사니까.”

“진짜 올해 만들어진 신생 매체가 맞긴 한 거야? HBS나 고려 일보도 못 하는 걸 너무 쉽게 하네!”

“그러니까 거기 젊은 사장에게 미디어의 마술사라는 말을 하는 거 아니겠어~”

미디어의 마술사라니.

언제 그런 별명이 붙었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나는 단상에 나가 글로벌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발표했던 내용에 최근 연평도 포격 사건에서 현장 취재 대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심층 분석 기사를 쓴 이유에 대해서도 추가해서 발표하였다.

‘확실히 CNN이랑 글로벌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발표한 경험이 있으니까 긴장되지도 않고 이야기도 술술 나오네.’

나는 자신감 있게 중요한 대목에서는 천천히, 그리고 기술적이거나 복잡한 내용은 빠르게 건너뛰며 발표를 진행하였다.

또한 단독 발표 행사였던 만큼 나 혼자 모든 발표를 책임지지 않았다.

CMS 및 개발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덕오가 발표했고, 유튜브와 영상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박창후가, 언론의 SNS 활용 팁과 노하우에 대해서는 홍지혜가 각각 세션을 맡아 진행하였다.

특히 홍지혜는 최근의 높아진 인기를 증명하듯 발표가 끝나자 같이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언니 너무 예뻐요! 사진 좀 찍어 주세요!”

“홍 기자님, 팬입니다. 사인 한 장 부탁드립니다!”

홍지혜는 더는 부끄럼을 타거나 뒤로 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당당하게 웃으며 팬들의 성원에 화답했다.

모든 발표가 끝나고 Q & A 시간.

관객석의 ⅓ 이상이 손을 들 정도로 참여 열기가 뜨거웠다.

“오프라인의 기세가 무섭습니다. 그 원동력을 딱 하나만 뽑자면 무엇일까요?”

“홍지혜 기자는 한국인 최초의 하버드 전체 수석입니다. 영입 비결이 궁금합니다.”

“백철웅 사장님! 자신의 나이에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우세진 사장을 어떻게 알고 사장 자리를 제의하시게 되었습니까?”

“오프라인 전체 인원이 겨우 스무 명이라는 게 맞나요? 인력 구성을 알려 주세요!”

덕분에 Q & A만으로도 2시간이 훌쩍 지나갈 정도.

모든 행사가 끝나고 무대 앞에서 사람들과 명함을 주고받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인파를 가르며 다가왔다.

덩치 큰 사내를 앞장세운 채 경호원으로 추측되는 이들이 주변 사람들을 겁주며 길을 연 것이다.

덩치 큰 사내가 내게 손을 번쩍 내밀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우 사장님. 고려 일보 서동탁 사장입니다.”

그의 한 마디에 주변에서 탄식이 쏟아졌다.

국내 최고 메이저 언론사인 고려 일보의 수장.

말로만 들었지, 실제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름처럼 정말 삼국지에 나오는 동탁이 살아 있었다면 딱 저 모습과 같았으리라.

# 2장 적을 옮기겠습니다!

나는 무대에서 내려와 그와 마주 섰다.

서동탁의 키는 185㎝는 가뿐히 넘어 보일 정도로 장대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천천히 악수를 했다.

한참을 흔들었음에도 그는 나의 손을 놓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세게 손을 쥐는 게 아닌가.

큰 키에서 나오는 엄청난 악력.

‘이 새끼가?!’

나 역시 그의 손을 놓지 않고 더 세게 잡았다.

순간, 서동탁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그는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후후. 이렇게 나오시는 분은 또 처음이네요.”

“반갑습니다. 서 사장님. 오프라인 우세진입니다.”

“네. 서동탁입니다. 오늘 이야기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미디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깊은 깨우침을 얻었고요.”

“별말씀을요. 저야말로 고려 일보의 신속하고 정확한 기사에 늘 감탄을 하고 지낸답니다.”

“하하. 칭찬인 줄은 알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군요. 이 한마디는 꼭 전해 드렸으면 해서 앞으로 나왔습니다.”

“말씀하시죠.”

서글서글하게 웃고 있던 서동탁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진짜로 SNS에 언론의 미래가 있다고 믿는 건 아니시죠? 도대체 누가 퍼 나르는지도 모르는 외부 플랫폼에 언론사의 기사를 유통하다니.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네요.”

그렇다고 물러설 내가 아니다.

“제 발표를 듣고 깊은 깨우침을 얻으셨다고 하더니 도대체 어떤 깨달음인지 궁금하네요.”

“SNS 따위에 미디어의 미래를 걸면 절대로 안 되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답니다.”

나와 서동탁은 한참을 마주 보며 눈싸움을 벌였다.

‘그래도 메이저 중의 메이저인 고려 일보 사장이라면 좀 다를 줄 알았는데, 기성 언론사는 어쩔 수 없는 건가. 아니면 이번에 연평도 포격 사건에서 청와대에 뒤통수를 맞은 거로 나한테 악감정이 쌓인 걸까.’

서동탁의 얼굴에는 그동안 쌓아 올린 1등 신문에 대한 자부심과, 절대로 SNS 매체 따위는 인정할 수 없다는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여러 사람이 몰려왔다.

모원석과 백철웅, 박창후의 만류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던 서동탁은 홍지혜가 개입하자 비로소 입을 열었다.

“오! 천조국의 오바마를 물 먹인 홍지혜 기자님이로군요. 하버드 출신 인재라고 들었습니다.”

“네. 서 사장님. 만나 뵈어서 반갑습니다. 보는 눈도 많은데 자리를 옮기시는 게 어떠신가요?”

“아뇨. 보는 눈이 뭐 어때서요. 그것보다 고려 일보에 오시는 건 어떠십니까? 홍 기자 정도의 미모와 능력이라면 1등 신문 고려 일보에서 훨씬 더 매력적인 커리어를 쌓을 순 있을 텐데요?”

난데없는 스카우트 제의라니.

오프라인의 모두가 서동탁의 오만방자함에 인상을 쓰고 있는데 홍지혜가 대뜸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러시죠!”

서동탁에 쏠려 있던 시선이 모두 홍지혜에게 옮겨갔다.

“역시! 똑똑하신 분이로군요. 당장 내일이라도 오시면 좋을 것 같은데?”

“대신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서 사장님.”

“조건이요? 연봉이라면 부르는 대로 맞출 용의가 있습니다만.”

“아뇨. 연봉 같은 게 아닙니다.”

“그럼?”

“제가 가는 동시에 고려 일보는 신문 발행을 멈춰 주십시오.”

“뭐?!”

“그래서 신문사가 아닌 SNS를 통해 뉴스를 유통하는 소셜 언론이 된다면, 그렇다면 제가 바로 적을 옮기겠습니다.”

“뭐라고!!”

홍지혜의 응답에 서동탁은 크게 당황했다.

거만함의 끝판왕이었던 그가 무너지는 모습에 속이 다 시원했다.

그는 경호원들의 부축을 받고는 씩씩거리며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홍 부장님. 제법인데요?”

“뭐가요? 전 진짜로 고려 일보가 소셜 언론이 되면 가려고 했는데요?”

“하하하하. 진짜로 홍 부장님이 고려 일보로 가는 줄 알고 식겁했습니다.”

“흥! 저에 대한 믿음이 겨우 그것뿐이었단 말이에요? 진짜로 가 버릴 걸 그랬네요.”

“농담이죠. 농담. 아무튼, 오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날 밤은 아주 늦게까지 회식이 이어졌다.

많은 이야기가 나왔지만, 모두의 입에서 공통되게 나왔던 장면은 바로 홍지혜가 서동탁에게 물을 먹이는 순간이었다.

특히 최루리는 배를 잡고 웃으며 홍지혜를 따라 했다.

“고려 일보가 소셜 언론이 된다면! 그렇다면 바로! 적을 옮기겠습니다! 서돼지 사장님!”

“아이고 배야! 하하하하하.”

홍지혜가 얼굴이 빨개져서는 그녀를 말렸지만 최루리는 몇 번이나 그 장면을 재현했다.

* * *

코리아 미디어 콘퍼런스를 잘 마무리한 후, 나는 금요일 하루를 휴가 내고 혼자 제주도로 내려왔다.

다음 날이 박창후와 김지인의 결혼식이었기 때문이다.

제주도가 고향인 박창후는 결국 제주도에서 결혼하기로 정했다.

“하……. 저도 진짜 서울에서 결혼했으면 했는데요. 부모님이 절대 허락해 주질 않으시네요.”

“지방분들은 그런 정서가 있으시니까요.”

“아무튼 사장님 포함해 모두에게 너무 죄송합니다. 바쁘신 분들은 안 오셔도 괜찮으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박창후는 미안하다는 듯 이야기했지만 이미 오프라인 직원 모두 제주도로 향하기로 입을 맞춘 상태였다.

그의 결혼식이었어도 당연히 그랬을 테지만, 김지인의 결혼식이기도 했다.

동료 둘이 결혼한다는데 식에 빠질 정도로 오프라인의 유대감은 낮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