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철웅은 한턱낸다며 직원들 모두의 왕복 비행깃값을 회사에서 처리하기로 선언했다.
“우 사장님도 내일 오전에 같은 비행기로 가시지, 굳이 하루 전날 가시는 이유가 있으세요?”
홍지혜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아, 어머니가 제주도에 계셔서, 오랜만에 인사 좀 드리려고요.”
“어? 전에는 서울에 계시지 않으셨어요?”
“일이 있으셔서요.”
“그때 저랑 부동산 같이 간 건 그래서?”
“역시 홍 부장님은 눈치가 빠르시네요.”
나는 애틀랜타에서 돌아온 직후 엄마에게 제주도 집문서와 열쇠를 넘겼다.
엄마는 도대체 이게 뭐냐며 집문서를 몇 번이나 보고 또 보았다.
“엄마 몸도 안 좋잖아. 공기 좋은 데에서 좀 쉬라고.”
“아니 그래도……. 니가 돈이 어딨다고.”
“뭐야! 나 언론사 사장이야~ 그리고 요즘 우리 언론사가 좀 유명해? 엄마 주변에서 아들 이야기 많이 하지 않아?”
“그러게나 말이다. 요즘 TV며 신문이며 온통 우리 아들 회사 이야기만 해서 엄마가 정신이 없네. 딸래미 소개해 줄 테니까 너 좀 불러 달라고 난리다.”
“그렇지? 그러니까 편하게 받으세요.”
“아니……. 그래도. 제주도면 아무런 연고도 없는데.”
“쌍문동은 뭐 연고가 있어서 왔나. 살다 보면 다 고향이고 그런 거지.”
나는 강제로 집문서와 열쇠를 엄마에게 넘기고, 이사를 권했다.
예상은 했지만, 엄마의 남자친구인 한 씨 아저씨가 무척 적극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대형 트럭으로 엄마의 이사를 도왔다.
“짐이 별로 없으니까 마 여기에 죄 다 들어가네! 엄마는 내가 안심하고 모셔다드릴 테니까 세진이 니는 걱정 마꼬 회사 일에만 집중하그래이!”
그렇게 엄마를 보내고 한동안 연락도 못 드렸는데 이번 기회에 제대로 인사나 올릴 겸 하루 일찍 내려가기로 한 것이다.
엄마한테는 비밀로 하고 몰래 집에 도착했는데 어째 익숙한 얼굴이 정원을 손질하고 있었다.
“한 씨 아저씨!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아니, 세진이 니야말로 여긴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꼬!”
“그건 제가 드릴 말씀인데요?”
내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한 씨 아저씨를 쳐다보자 그는 무안한지 집 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를 따라 집으로 들어오자 앞치마를 한 엄마가 급히 나왔다.
“아들!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야!”
“아니 엄마! 지금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한 씨 아저씨는 여기 왜 있어? 서울에서 장사 안 해?”
“아 그게…….”
“느그 엄마 혼자만 보내기 쪼마 그래서 내 같이 왔제…….”
한 씨 아저씨가 능글맞은 표정으로 말했다.
“와……. 내가 진짜 엄마 힘드니까 쉬라고 제주도에 집도 얻은 건데. 말이라도 해 주지 그랬어요?”
“네가 너무 바쁜데 여기까지 신경 쓸까 봐 그랬지……. 미안하다 세진아.”
“휴. 아녜요. 아무튼 두 분이 같이 계셨으면 외롭지는 않으셨겠네요.”
나는 둘에게 내일 직원 결혼식이 제주도에 있어서 미리 들렀다며 사정을 설명했다.
“그랬구나. 아무튼 우리 아들 요즘 많이 바쁘지? 오바마도 찍고 연평도도 찍고, 아주 정신없겠더라.”
“뭐야? 엄마 유튜브로 뉴스 봐요?”
“응. 공중파에서는 오프라인 안 나오니까, 그 뭐냐, 트위터랑 페이스북으로도 보고 유튜브로도 보고, 넥스트에서도 보고 그러지.”
“TV 놔두고 고생하시네요.”
“한 씨 아저씨가 컴퓨터 바탕 화면에 바로 가기 만들어 줘서 그래도 쉽게 봐.”
“고맙네요. 참.”
나는 한 씨 아저씨를 뚱하게 쳐다보다가 이내 표정을 바꿨다.
‘어찌 되었건 엄마가 좋아서 저렇게 옆에서 도와주는 건데 괜히 삐딱하게 볼 필욘 없겠지. 그동안 많이 도와주신 것도 사실이고.’
나는 짧게 한숨을 내뱉고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두 분, 낯선 곳에 내려와서 그동안 고생 많으셨네요. 그동안 연락도 못 드리고 죄송합니다. 오늘은 제가 맛난 거 쏠 테니까 나가시죠!”
나는 둘과 함께 성산 일출봉 근처의 흑돼지 맛집에 들러 거하게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엄마가 화장실에 갔을 때 한 씨 아저씨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저씨.”
“어야.”
“엄마 잘 부탁합니다. 진짜로요.”
“세진아……. 고맙데이.”
“아시죠? 울 엄마 고생 많이 한 거?”
“알제. 다 알제. 걱정 붙들어 놓아라. 내가 네 엄마 옆에서 딱 지킬 테니!”
“그런데 서울에서 하던 장사는 어쩌시려고요?”
“그거야 뭐 여서도 할 수 있지 않겠나? 트럭도 그대로 있고.”
말과는 다르게 그의 표정은 조금 어두워 보였다.
하긴 오랫동안 해 오던 사업을 팽개쳐 두고 엄마 하나만 보고 따라왔을 테니.
“아저씨, 혹시 엄마랑 같이 식당 한번 해 보실래요?”
“식당?”
“네. 울 엄마가 해장국 진짜 잘하잖아요? 허리가 안 좋으니까 직접 하라고는 말 못 하겠고, 그냥 관리만 하고, 아저씨가 옆에서 같이 도와주면 해 볼 만할 것 같은데요.”
“다 좋은데, 식당은 어디서?”
“엄마 집 마당이 엄청 넓잖아요? 거기에 조그마하게 열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근처에 비자림도 가깝고.”
“아 정원에? 거 괜찮을 거 같기도 하고.”
“처음에 여기 집 알아봤을 때부터 그게 마음에 들어서 산 거기도 해요. 건축물 용도 변경도 가능하다고 하니까 아저씨는 저 가고 나면 엄마한테 살짝 물어봐 주세요.”
“어야. 그러마. 근데 돈은 있꼬?”
“네. 그건 전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한 씨 아저씨는 뭐가 그리 좋은지 혼자서 소주를 2병 이상 마셨다.
덕분에 나도 반병만 마시려던 술을 2병이나 마시게 되었다.
제주의 밤이 깊어 갔다.
* * *
박창후와 김지인의 결혼식은 서귀포 인근에 있는 한 수목원에서 진행되었다.
한겨울이었지만 김지인이 꼭 야외 결혼식을 하자고 고집했다고 한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조용조용한 아가씨인 줄 알았는데 고집 있네.’
그럼에도 그녀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따뜻한 제주의 기후 덕분인지 수목원 곳곳엔 동백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고, 앙상한 나뭇가지가 아닌 푸르른 수목이 우리를 반겼다.
그뿐인가.
이제 겨우 스물셋인 김지인은 꽃보다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며 바보처럼 웃고 있는 박창후.
‘저렇게나 좋을까.’
모두 박창후가 챙겨 준 피로연에 참석한다고 다음 날 오후 서울행 비행기를 끊은 가운데, 나는 이덕오와 함께 먼저 서울로 올라갔다.
“형님! 저 제주도 좋아하는 거 알면서 진짜 왜요! 너무하시네요!”
“야. 너 스스로 저번에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서버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며! 그나마 한가한 주말에 고쳐야지, 언제 하려고.”
“아 진짜! 창후 형님이 저한테 아는 동생들 소개해 준다고 그랬는데!”
“닥치고 따라와.”
입을 삐죽 내밀던 이덕오를 끌고 서울에 도착한 나는 내일 아침 일찍 회사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하고 공항에서 헤어졌다.
* * *
다음 날 새벽.
이덕오보다 일찍 나서려고 7시에 알람을 맞춰 놓고 일어났는데 알람과 동시에 뜬 통합뉴스 속보가 눈에 들어왔다.
<1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성당 앞 살인 사건 발생>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대치동 ‘묻지 마 살인 사건’.
미국 명문대를 중퇴한 스물여섯의 남성이 또래 남성을 잔인하게 살해하여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게다가 둘은 아무 일면식도 없던 사이.
그게 ‘묻지 마 살인 사건’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였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나이가 나와 같았고, 언론에서는 게임 중독의 결과라며 엄청나게 보도를 해 댔던 통에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다.
나는 급히 회사로 출근한 다음, 살인 사건이 났다는 기사를 빠르게 송고했다.
‘아직은 경찰에서 용의자가 누구인지 짐작조차 못 하는 상태지. 살인자는 CCTV 조사가 끝난 2주 정도 뒤에나 잡히니까.’
이 사건은 묻지 마 살인 사건의 자극성이나 폭력성과는 또 다른 이유로 크게 화제가 되었다.
바로 게임 중독의 위험성을 대표하는 사례로 꾸준히 회자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은 공중파 뉴스가 벌인 희대의 코미디로 이어진다.
‘WBS 뉴스에서 게임 폭력성 실험을 한다며 갑자기 PC방 전원을 내리면서 문제가 됐지. 화가 난 PC방 이용자들은 마구 욕설을 내뱉었고, 이를 카메라가 편집 없이 그대로 담으면서 게임을 하면 이렇게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말도 안 되는 코미디를 진지하게 방송했고.’
해당 뉴스는 게임 중독의 대표 사례로 대치동 묻지 마 사건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 사건의 원인이 게임 중독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살해자와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어떤 기자 역시, 스카이나 해외 명문대를 가지 못한 사람을 실패자 취급하는 한국 사회의 탓이 제법 크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려 주목을 받기도 했었고.
“블로그 주인장 이름이 뭐였더라…….”
나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해당 블로그를 찾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해당 블로그를 찾을 수 있었다.
<즐거운 인생! No Take의 끄적끄적 잡문 블로그입니다.>
“잠깐……. No Take?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이름인데?”
나는 명함집을 꺼내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한 장의 명함에 시선을 고정했다.
<고려 일보 문화부 기자 안재영
이메일: [email protected]>
‘설마…….’
필명만 같은 게 아니었다.
녀석이 쓴 글들을 살펴보니 나와 함께했던 언시 스터디 준비에 대한 내용도 나왔다.
“이 블로그 주인이 안재영이었을 줄은…….”
입가에 쓴 웃음이 났다.
용의자가 검거된 이후 안재영은 고려 일보의 기자이면서도 개인 블로그에 살해자를 옹호하는 듯한 글을 남겨 당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하지만 바이럴 가치가 크다고 판단한 나는 그의 글을 복사해 오프라인에 기사를 냈고, 이에 항의하는 고려 일보의 메일을 받아 투덜거리며 기사를 내렸던 기억이 났다.
‘오히려 잘됐어. 서동탁에게 한 방 먹일 수 있겠는데.’
나는 안재영의 명함을 탁자에 두드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 *
광화문 인근의 한 평양 냉면집.
아직은 언론을 통해 유명해지기 전이라 점심시간임에도 가게 안은 제법 한산했다.
‘평양 냉면이 힙스터의 소울 음식이 되는 건 2015년 무렵이야. 그전까지만 해도 실향민을 비롯한 어르신들의 전유물이었지.’
나는 텅텅 빈 테이블과 혼자 오신 어르신들만 드문드문 앉아 있는 가게 안 풍경을 한가로이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여. 조금 늦었다.”
“그래. 별일 없고?”
“별일이야 없고……. 그나저나 웬일이냐? 네가 점심을 같이 먹자고 연락을 다 하고. 바쁜 거 아니었어?”
“바쁘지만 시간 쪼개서 연락한 거야.”
“크크. 고맙네.”
안재영은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평양 냉면 좋아해?”
“응. 좋아하지.”
“의외네? 나 완전 마니아거든. 그런데 보통 여기 소개하면 아무런 맛도 안 난다거나, 걸레 빤 물맛이 난다고 해서 난처했거든. 또래 중에 평냉 좋아한다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니까. 그래도 머지않아 평양 냉면이 미각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거다.”
“뭐? 하하하. 그런 날이 언제 올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오면 좋겠네.”
우리는 평양 냉면 두 그릇과 편육 한 접시를 시키고 다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런데 세진아, 언론사 사장 일은 할 만하냐?”
“바쁘지 뭐.”
“그렇군. 같은 언론사라고 해도 나는 일개 기자고 넌 사장이니까……. 뭔가 정신없을 거 같다.”
“나는 가끔 기사도 쓴다.”
“응? 사장인데 기사도 쓴다고? 장난 아니네.”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바쁜 와중에도 널 만나러 나왔는지 이해해 주길 바란다.”
“하하. 그래, 고맙다, 고마워. 이건 내가 사마.”
주문한 평양 냉면과 편육이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