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34/200)

나는 슬그머니 그에게 물었다.

“혹시 소주 한잔?”

“하하. 물론이지. 기자들 점심에 술이 빠지면 되나!”

평일 점심시간은 기자들에겐 취재의 연장이었다.

홍보 팀 사람들을 만나거나 취재원을 만나 술 한잔을 곁들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하지만 회귀 전 오프라인의 점심시간은 근처에 있는 함바집에서 빠르게 밥만 먹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기사를 쓰는 게 전부였다.

취재원이나 홍보 팀을 만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심에 취재원을 만나 술을 마시는 건 일종의 로망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평양 냉면이 먹고 싶어서 부른 건 아닐 거고.”

“너랑 점심 먹으려고 연락한 거 맞거든.”

“실없긴. 너 스터디할 때도 나랑 그렇게 친한 건 아니었잖아. 맨날 바쁘다고 먼저 가던 놈이.”

안재영이 냉면을 먹다 말고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내 눈을 바라보았다.

“저번 애틀랜타에서 기사 잘 써 준 것도 있고, 그 일 이후 네가 쓰는 기사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래?”

“너 의외로 기사 잘 쓰더라? 뭐랄까.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달까?”

“푸하하하하. 뭐야. 내 글에 그런 게 있어? 그나저나 요즘 잘나가는 오프라인 사장님이 그런 이야기를 해 주니까 괜히 으쓱해지는데. 하하.”

“그래서 그런데 난 네가 좀 궁금하다.”

“응? 뭐가? 너 혹시…….”

안재영이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몸을 뒤로 뺐다.

“아니아니. 그런 건 절대 아니고. 오해하지 말고 들어, 인마.”

“그런 말에 당황하지 않을 남자는 아마 없을 거다.”

“한국의 젊은 기자들을 소개하는 기획 기사를 내려고 하는데, 네가 그 첫 번째 인터뷰이가 돼 줬으면 한다. 진심이야.”

안재영은 한동안 내 눈을 살폈다.

마치 진짜인지 아니면 거짓인지 알아보려는 것처럼.

녀석의 표정이 워낙 예리해서 살짝 당황했지만, 나 역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얼마 후 녀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영광인데, 그런 거라면 너희 홍지혜 기자인가? 그분이 적임자이지 않아?”

“오프라인은 빼고 할 거거든. 자사 매체에서 자사 기자를 소개하는 건 웃기잖아.”

“그렇긴 하네. 아무튼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네 눈에 들었다 이거지? 고맙다. 세진아.”

“별말씀을. 그런데 이건 당분간 위에 보고하지 말아 줄래?”

“응? 외부 인터뷰면 위에 보고하지 않고 하는 게 어려울걸? 아. 그날 우리 사장이 난리 쳐서 그런 거야?”

“그래. 서동탁 사장이 이유는 모르겠지만 날 별로 안 좋아하더라.”

“하하하하. 아마 연평도 포격 사건 때 청와대에서 우리가 아니라 너희에게 중요 자료 넘겨줘서 열 받아서 그럴 거야. 네가 이해해라.”

“그럼 승낙한 거다?”

“오케이! 대신 너도 나중에 문제 안 생기게 잘 처리해 줘.”

“물론이지. 고맙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점심과 저녁 시간마다 그를 만나 심층 인터뷰에 들어갔다.

특히 그의 고등학생 시절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물어보았다.

“강남 8학군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학교를 나왔네?”

“어쩌다 보니. 그땐 공부만 한다고 정신없었지, 뭐.”

“친구들은 어땠어? 너무 공부만 시키니까 좀 사이코패스 같다거나 이상한 녀석들도 있을 거 같은데?”

“음. 적어도 우리 학교에서 내가 아는 친구들 중에는 없었다. 다들 좋은 대학 가서 자기가 하고 싶은 꿈을 이루려고 열심히 하는 애들이었지.”

“그래. 혹시 실례했다면 미안.”

“아냐. 성적 때문이라면 모를까, 공부 때문에 미친 애들은 없었어. 하하.”

“혹시 반장 같은 건 안 했어?”

“반장? 너도 알다시피 고등학교 때 반장 같은 거 하면 피곤하잖아. 난 안 했지. 지우 같은 녀석이라면 모를까.”

“지우?”

“아. 반장 한 친구.”

“그 친구에 대해서도 좀 얘기해 봐.”

안재영이 한 손으로 턱을 괴더니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거 인터뷰에 필요한 거야?”

“당연하지. 너는 물론이고 너의 주변 인물들까지 조사해야 심층 인터뷰가 되는 거 몰라?”

“이야. 맞다 맞아. 역시 오프라인 사장님은 인터뷰도 다르네!”

“됐고, 빨리 그 친구에 대해서나 말해 봐.”

안재영은 마시던 커피를 시원하게 들이켠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재미있는 친구였어. 막 엄청나게 친구가 많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뭐랄까 엄청 성실하고 좋은 녀석이었지. 실제로 반장 선거에 나온 상대가 장난 아니었거든?”

“어땠는데?”

“학교에서 무척 인기도 많고 성격 좋은 녀석하고 같이 경쟁했지. 그런데 당선된 건 지우였어. 반장에 잘 어울리는 녀석이었지.”

“반장에 잘 어울린다는 게 성실했기 때문인가?”

“여러 가지 매력이 있었지만 성실하다는 게 컸지. 뭔가 반장은 땡땡이치면 안 되고 성실해야 된다…….”

“공무원 같은?”

“맞아! 그래, 공무원 같은 그런 느낌이 있어야 어울릴 것 같은 이미지가 있잖아.”

“그렇군. 그래서 그 반장 한 친구도 좋은 대학에 갔나?”

“아. 그게…….”

계속 웃고 있던 안재영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왜? 무슨 일 있어?”

“그런 건 아니고. 그 녀석 서울대 법대를 목표로 했었거든. 그런데 수능 성적이 잘 안 나와서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 법대에 4년 장학생으로 갔어.”

“응? 4년 장학생이면 입학생 중 성적 톱이라서 그런 거 아냐?”

“그렇겠지. 그런데 녀석은 거기에 만족 못 하고 결국 미국에 있는 한 주립대 철학과에 도망치듯 유학 갔어. 그 뒤로는 연락이 끊겨서 어찌 지내고 있는지는 모르겠네.”

“그렇구나. 강남 8학군 출신이라고 다 행복한 건 아니군.”

그 말에 안재영이 어이없다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야! 당연하지. 거기서 얼마나 공부에 대한 압박을 줬는지 말로는 다 표현 못 하겠다. 뭐 대한민국 고딩이라면 다 똑같겠지만.”

“고생했다.”

“뭘. 그나저나 덕분에 지우 녀석한테 오랜만에 연락 한번 해 봐야겠다. 어찌 살고 있는지 궁금하네.”

“어? 연락처 알아?”

“물론이지. 나랑 지우 둘 다 스카이에 못 갔다고 수능 끝나고 같이 술도 마시고 그랬거든. 하하. 녀석이 유학 갔을 때도 적응 잘하라고 연락하기도 했었고.”

“혹시 연락되면 나하고도 같이 볼 수 있을까?”

“응? 그것도 심층 인터뷰의 일환인가?”

“물론이지.”

“이야. 진짜 너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알았다. 지우도 괜찮다고 하면 같이 부를게.”

그렇게 안재영과 헤어지고 그가 다시 연락을 한 건 이틀 뒤였다.

<우리 집 근처 카페에서 지우랑 보기로 했는데 시간 괜찮으면 나와.>

안재영의 문자를 받은 나는 곧장 집을 나서 카페로 향했다.

‘경찰에 검거되기 전 박지우를 실제로 만나게 될 줄이야.’

살인자를 만나게 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살면서 살인자와 대면해 본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후우.”

나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차분하게 먹으려 노력했다.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니 안재영과 박지우는 이미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캐주얼한 옷을 입고 나온 박지우는 절대 살인자로 보이지 않았다.

누가 봐도 평범한 스물여섯의 대한민국 청년일 뿐.

박지우는 나를 힐끔 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지우 씨. 우세진입니다. 재영이 친구예요.”

“네.”

“초면인데 만나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재영아 고맙다.”

“뭘. 지우야, 내가 말한 오프라인 사장 세진이야. 너도 오프라인 알고 있다고 그랬지?”

“응? 우리 오프라인을 알고 있어요?”

내가 화들짝 놀라 묻자 박지우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끄덕였다.

안재영은 박지우가 오프라인의 팬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너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깜짝 놀라면서 이것저것 묻더라. 오프라인 대단하다면서.”

“신생 매첸데 알아주신다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네요.”

“야, 겸손도 적당히 해. 우리 고려 일보보다 온라인 트래픽 더 높은 거 다 알고 있으니까.”

“거기야 신문사지, 온라인 매체는 아니잖아.”

“요즘 누가 신문 사서 봐. 다 온라인으로 보지. 어휴. 진짜 위에 있는 꼰대들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말을 듣지를 않으니.”

“하하. 고생이 많다, 재영아. 그나저나 지우 씨도 말 놓으세요. 저 재영이랑 지우 씨랑 동갑입니다.”

“아, 어. 응.”

처음은 셋이 아닌 둘이었다.

나와 안재영이 이야기를 꺼내면 간간이 박지우가 참여하면서 대화가 이어졌다.

우리는 힘들었던 고교 시절의 경험들 그리고 스물여섯이라는 유대감을 바탕으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말이 없던 박지우도 시간이 지나자 편안함을 느꼈는지 차츰 말문이 트였다.

“야! 니들 2002년 기억나냐? 월드컵 때 진짜 장난 아니었잖아.”

“맞아! 하필 고2 때라서 낮 경기는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밤 경기만 겨우 봤지.”

“나는 수업 시간에 몰래 라디오로 듣다가 학주한테 걸려서 진탕 혼났어.”

“크크. 아련하다. 아련해.”

그러던 중 박지우가 무언가 결심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세진아.”

“응.”

“나 너한테 할 말이 있다.”

“응? 뭔데?”

주말 오후의 한 카페.

포근한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가운데 손님이라곤 같은 테이블에 앉은 남자 셋이 전부였다.

카페 알바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흥얼거리며 고풍스럽게 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잔잔한 일본 영화 같은 분위기가 뒤바뀐 건 박지우의 발언 때문이었다.

박지우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얼마 전 대치동 성당에서 죽은 사람 있잖아.”

“으응.”

“그거. 내가 죽였다.”

“뭐?”

“뭐라고?!”

안재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다시 한번 물었다.

“너 지금 뭐라 그런 거냐?”

“내가 죽였다고.”

“뭐?”

“내가 살인자라고!”

“야 이 X발 놈아! 너 미쳤어?”

“안재영! 소리 낮춰!”

나는 간신히 안재영을 진정시키고는 주변을 살폈다.

안재영이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카페 알바가 이상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한참 동안 정적이 흘렀다.

먼저 입을 연 건 안재영이었다.

“대체 왜.”

“그냥 다 짜증이 났다. 그냥.”

예상외로 돌아온 건 건조한 대답.

안재영이 갑자기 박지우의 멱살을 잡더니 당장이라도 내려칠 듯 주먹을 들었다.

“이 X새끼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응!”

“미안하다.”

“나한테 미안한 게 문제냐! 박지우 이 X새…….”

카페 알바가 계속 쳐다보는 통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둘을 데리고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다행히 한낮의 공원은 우리 셋 이외에는 아무도 지나는 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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