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영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벤치에 주저앉고는 중얼거렸다.
“미친. 이게 도대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
나는 안재영을 진정시킨 뒤 박지우에게 물었다.
“그래서, 경찰에 자수는 했고?”
“자수했으면 오늘 여기에 못 나왔겠지.”
“자수할 생각은 있고?”
“없었는데. 모르겠다. 지금 너희들한테 얘기한 시점에서 뭘 어찌해야 할지.”
드라이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박지우의 손이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게 보였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지만, 사실을 털어놓음으로써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일까.
“대체 왜 그런 거야?”
“모르겠다. 그냥 게임을 하다가. 화가 났어.”
“화가 난다고 사람을 죽이진 않아!”
“알아. 그런데 그땐 그랬어. 나도 모르게 맨 처음 만나는 상대를 죽여 버려야겠다는 그런 감정이 들더라. 무작정 부엌에서 식칼을 가지고 거리로 나갔지.”
“휴…….”
“게임이 잘 안 풀렸어?”
“그런 건 아니고.”
“근데 왜?”
“그냥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짜증이 나더라. 난 진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왜 지금 집에서 게임이나 하면서 이러고 있는지 짜증이 났다. 짜증이.”
“박지우…….”
박지우는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얼굴로 자신의 떨리는 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가고 싶은 대학도 못 가고, 미국에서도 적응 못 하고. 폐인처럼 집 안에만 틀어박혀서 게임만 하는 나에게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패자라고. 병신이라고…….”
순간 안재영이 박지우의 떨고 있는 손을 덥석 잡았다.
“고생했다, 인마. 전화라도 하지 그랬냐. 친구야.”
그 한마디에 영혼을 잃은 듯 건조하던 박지우의 두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재, 재영아! 허어어어엉!”
박지우는 폭풍같이 오열했다.
안재영은 박지우의 두 손을 잡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안아 주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박지우의 흐느낌이 옅어질 무렵.
“자수하자.”
안재영이 박지우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박지우도 결심을 굳힌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수하면 형량이 좀 줄어들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가자.”
안재영이 박지우의 손을 끌고 가려는 순간.
“지금 이런 이야기 해서 미안한데.”
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자수하기 전에 사과문을 먼저 올리는 게 어때?”
“사과문?”
나는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쳐다보는 둘을 향해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잘 생각해 봐. 자수하는 동시에 언론은 너를 게임에 중독된 괴물로 묘사할 거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네.”
안재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나도 기자지만 언론은 보통 가해자의 편을 들지 않아. 좋은 먹잇감으로만 볼 뿐.”
“먹잇감?”
박지우의 말에 안재영이 답했다.
“그래. 화난 대중들에게 물고 뜯고 씹을 수 있는 먹잇감을 던져 주는 거야. 그래야 트래픽도 오르고, 기사도 많이 보니까.”
박지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맞아. 그럼 네가 무슨 말을 하든, 사람들은 너라는 한 개인을 죽이려고 돌팔매질을 하겠지. 네가 도대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너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테고.”
“하지만 사과문을 올린다고 뭐가 달라질까? 지우가 살인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잖아!”
“내가 하는 말은 살인을 정당화하자는 말이 아니야. 하지만 그 배경에 대해서는 한번 자세히 들어 볼 필요가 있다는 거지.”
“그런 게 가능할까…….”
안재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말꼬리를 내렸다.
“재영이 너도 우리 사회가 스카이나 해외 명문대를 가지 못하면 실패자 취급하는 현실에 불만 있지 않아? 적어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를 주자는 거지.”
“기회라.”
안재영은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블로그에 글을 올릴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해 고민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라면 분명 동참해 주리란 믿음이 있었다.
나는 안재영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다소 힘을 주어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오프라인에서 발표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안재영은 박지우의 얼굴을 쳐다보았고, 박지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월요일 11시.
점심시간을 앞두고 조금은 마음이 풀어진 시간대.
오프라인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채널을 통해 긴급 속보를 날렸다.
<잠시 뒤 대치동 묻지 마 살인 용의자 대국민 사과문 발표!>
소식은 순식간에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오프라인 홈페이지의 트래픽은 또다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끝없이 치솟았다.
나는 오프라인 사무실 한쪽 공간을 치운 뒤 임시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중앙에는 박지우가 의자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스튜디오라고 해 봤자 조명과 카메라가 전부였지만 벽에 걸린 ‘대치동 묻지 마 살인 용의자 대국민 사과문 발표’라는 현수막이 왠지 모를 긴장감을 조성했다.
신혼여행에서 막 돌아온 박창후의 얼굴에선 어느덧 땀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그만한 베테랑 기자도 이런 자리는 익숙지 않다는 뜻이겠지.’
나는 박지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준비를 마쳤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박창후가 크게 소리쳤다.
“큐!”
박지우는 주말 내내 나와 안재영과 함께 다듬은 사과문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조……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피해자 부…… 분과 유가족분들. 저…… 저는 최근 대치동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가해자 바…… 박지우입니다. 저로 인해 상처를 받은 모든 분께 지……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제가 너무 크……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지…… 진심으로 반성합니다.”
수십 번 연습을 했지만, 박지우의 목소리는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나와 안재영은 괜찮다며 박지우를 응원했다.
박지우는 약 15분에 걸쳐 A4 5장에 적힌 사과문을 천천히 읽어 나갔다.
거기에는 공부만이 전부였던 그의 고교 시절 이야기. 그리고 수능에 실패해 원하던 학교에 가지 못했을 때의 당혹감과 충격. 결국 도피하다시피 미국 유학을 택한 것. 하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게임에 빠진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그의 입에서 직접적으로 한국 교육과 사회의 문제점을 탓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들어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해 낙오자 기분이 드는 건 지우 혼자만의 심정이 아닐 테니까.’
드디어 마지막 문단이 나올 때가 되자 박지우는 숨쉬기가 힘든 듯 꺼억꺼억거렸다.
안재영이 다급히 뛰쳐나가 그에게 물병을 건넸다.
박지우는 그가 건넨 물을 마시더니 괜찮아진 듯 안재영의 손을 잡고 다시 사과문을 이어나갔다.
“저…… 저는 피해자분과 그 유가족분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겨…… 결코 제 죄를 씻을 수 없겠지만…… 저…… 정말 너…… 너무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죄…… 죄송합니다.”
박지우는 그저 미친 듯이 잘못을 빌었다.
준비한 멘트가 아니었기에 그가 진심으로 잘못을 구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저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로 경찰이 들이닥쳤다.
따로 신고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프라인에서 생중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이쪽으로 경찰이 출동한 것이다.
박지우는 아무런 저항 없이 경찰의 손에 이끌려 오프라인을 떠났다.
안재영은 뭐가 그리 서러운지 남의 사무실에서 목을 놓아 울었다.
한참이 지나 겨우 진정된 그를 내 방으로 끌고 갔다.
“고생했다. 재영아.”
“아니다. 세진아, 고맙다. 진짜 고맙다.”
“뭘…… 지우가 잘 선택했지.”
“X발. X새끼. 그래도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으니까……. 모두에게 사과했으니까…….”
“그래. 마냥 게임에 중독된 미친 괴물로만은 보이지 않을 거다.”
“응. 고맙다 세진아.”
물론 사안이 그렇게 희망적으로만 흘러간 것은 아니었다.
오프라인의 게시판에는 오프라인과 박지우를 비판하는 댓글들로 가득했다.
<오프라인 이거 범죄자 소굴 아닙니까? 살인자를 감싸 주다니요? 박지우랑 같이 잡혀 들어가야 할 듯!>
<어떻게 살인자를 옹호하는 건가요? 나 오프라인 팬이었는데 이제 다시는 안 오렵니다. 실망이 크네요, 진짜!>
<진짜 말이 안 나온다. 대국민 언론사라고 믿었던 오프라인이 이런 미친 짓을 하다니!>
게시판은 오프라인은 옹호하는 유저들과 비난하는 유저들 간의 싸움으로 난장판이 되었다.
백철웅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우 사장. 괜찮겠소? 지금까지 쌓아 온 이미지가 한 번에 무너질 수도 있어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니요. 이 정도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겁니다.”
나는 홍지혜에게 지시해 그동안 인터뷰했던 박지우의 이야기를 기사화했다.
강남 8학군의 고등학교에서 전교 10등 내외의 모범생이 어떻게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살해하게 되었는지.
그의 학창 시절과 유학 시절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 암울했던 과정까지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짜여 있었다.
또한 1등만을 기억하는 더러운 한국 사회와 명문대 진학만을 인생의 전부라 여기고 있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들.
그리고 한국 사회와 한국 교육이 지향해야 할 점과 그로 인해 얻게 될 이익 등에 대해 심층 분석한 기사를 함께 내놓았다.
경직되어 있던 여론은 지식인들을 시작으로 조금씩 변화를 일으켰다.
<1등만 기억하는 한국 교육이 괴물을 만들었다.>
<한국 교육,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묻지 마 살인 사건으로 드러난 한국 교육의 민낯……. 해법은 없나?>
박지우와 오프라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은 차츰 한국 사회와 한국 교육이 더욱 성숙하고 성찰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물론 사람들은 박지우를 결코 용서하거나 옹호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성실하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던 한 청년이 왜 갑자기 살인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자성의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게임 중독의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긴 하였지만, 메인은 아니었다.
방송사에서 PC방을 찾아가 갑자기 전원을 내리는 황당무계한 일을 펼쳐지지 않았다.
기사는 여론을 바꾸었다.
그리고 바뀐 여론은 사회를 움직였다.
결국 교육부 장관이 TV에 나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였다.
“국민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해 대한민국 교육을 책임지는 기관의 수장으로서…….”
* * *
“수고 많았다 재영아.”
-뭘. 너랑 오프라인이 고생 많았지.
“그나저나 너 생방송 때 갑자기 화면에 나와서 위에서 혼나는 거 아냐?”
-하하. 그래서 할 말이 있는데.
“응?”
-나 고려 일보에 사표 냈다.
“뭐?!”
-그러니 네가 좀 책임져라.
“뭐야, 언제 냈는데?”
-조금 전에 부장한테 내고 나왔다.
“야! 그럼 어떡하냐!”
-왜?
“서동탁 책상에 딱 던지고 나와야지! 겨우 부장 나부랭이한테!”
-응? 하하하하하하, 그러게, 그 생각을 미처 못했네?
“안 되겠네. 다시 가서 서동탁한테도 던지고 와라.”
-하하하. 알았다.
“농담이고, 그래 그럼 내일부터 바로 출근할래?”
-나 좀 쉬고 싶은데 일주일만 뒤에 가면 안 될까?
“좋지. 너 어디에 배치할지도 고민 좀 해 봐야겠다.”
-뭐야~ 나도 부장 같은 거 시켜 주면 안 되나?
“부장 자리가 넘쳐나냐? 고민은 해 볼게.”
-쳇. 알았다. 또 연락할게! 잘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