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야말로 잘 부탁한다.”
그와의 전화를 끊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꼭 우리 쪽에 데려오고 싶었던 인재였는데, 스스로 올 줄이야. 안재영이 고려 일보를 나와 우리한테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서동탁이 화가 많이 나겠어.’
내가 웃으며 모니터를 보고 있는 사이.
메신저 창이 깜빡였다.
이덕오였다.
<사장님. 지시하셨던 보안 프로그램 설치 완료하였습니다.>
나는 이덕오에게 오프라인 홈페이지 보안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언론사 홈페이지는 외부 방문자가 많았지만, 보안에 취약한 경우가 많았다.
IT 회사가 아니었기에 전문 개발자가 많지 않았고, 보안에 대한 인식 자체가 낮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오프라인 사이트가 해킹이라도 된다면 문제가 커진다. 사전에 보안을 강화해 둬야지.’
이럴 때 이덕오와 같은 능력 있는 개발자가 같은 회사에 있다는 건 큰 힘이 되었다.
<그래, 수고했어. 그런데 이 이사. 혹시 지금 바빠?>
<아뇨? 보안 패치도 끝나서 할 건 딱히 없습니다만.>
<잘됐네. 그럼 나랑 밖에서 차 한잔하지.>
나는 이덕오와 함께 회사 주변에 새로 생긴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아니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밖으로 나오셨어요? 그냥 사장실로 부르시지.”
“왜? 가끔은 이렇게 밖에서 바람도 쐬고 기분 전환도 하고 그러는 거지.”
“뭐, 저야 좋죠.”
이덕오는 자신이 주문한 캐러멜 마키아토의 생크림을 맛깔나게 흡입했다.
산만 한 덩치를 하고선 어린아이처럼 입 주변에 생크림을 잔뜩 묻힌 이덕오.
나는 그런 이덕오를 흐뭇하게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덕오야.”
“예. 사장님.”
“우리 지금 쓰고 있는 메신저 있잖아.”
“네, 화이트온이요.”
“우리가 그런 거 개발할 순 없을까?”
“네? 우리가요?! 컥컥.”
이덕오가 사레에 걸린 듯 콜록거렸다.
“그래. 그런데 단순히 PC에서만 되는 게 아니라 모바일에서도 가능한.”
“모, 모바일에서도요?!”
“응. 스마트폰 시대니까. PC만 하는 건 구시대적 발상이지.”
이덕오는 가만히 나의 얼굴을 주시했다.
“저기, 사장님.”
“응.”
“개발자는 저 혼자인데요.”
“알고 있어.”
“그럼 그게 얼마나 무리한 요구인지는 알고 말씀하시는 걸까요?”
“너한테 괜히 이사 자리 준 거 아냐. 개발 능력 뛰어나니까 준거지.”
“아니 그래도…….”
“내가 알기로는 천 명의 개발자보다 단 한 명의 스타 개발자가 훨씬 뛰어나다고 하던데?”
“저는 스타 개발자는 아닌데…….”
“지금부터 하면 되지.”
내가 이덕오에게 메신저 개발에 대해 물어본 건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모두 메신저를 통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 빠르게 모바일 메신저가 중심에 서게 될 거고.’
결국 모바일 메신저는 하나의 플랫폼이 되어 모든 서비스를 흡수하게 된다.
뉴스, 게임, 쇼핑, 택시, 뱅크, 결제, 영화, 웹툰, 웹소설 등등.
포털과 모바일 메신저 등 플랫폼을 지배하지 못한 언론사는 갈수록 여론을 주도하는 위치가 아닌 CP사(Content Provider).
그러니까 단순 콘텐츠 제공자의 역할로 지위가 격하되고 만다.
‘가능하다면 단순히 콘텐츠만 만드는 것뿐 아니라 플랫폼의 기능까지 같이 가면 좋을 것 같은데.’
이덕오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누구보다도 그의 실력은 같이 일해 본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예전 오프라인 개발자 십수 명보다 그 혼자 해내는 속도나 결과물이 훨씬 뛰어나.’
나는 천천히 엉덩이를 뒤로 빼고는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당장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너무 부담 갖진 말고. 천천히 진행해 봐.”
“휴. 한번 해 볼게요. 그래도 너무 기대는 마세요.”
“뭐 당장은 사내 메신저를 만든다는 느낌으로 접근해 봐. 모바일 버전이나 이런 건 천천히 접근하고.”
“네. 어째 오늘 이거 한잔 얻어먹은 것치고는 제가 손해인 거 같은데요.”
이덕오가 입술을 삐쭉 내밀며 툴툴거렸다.
* * *
서울 외신 기자 클럽.
한국에 주재한 외신 기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친교 목적으로 설립된 사단 법인.
정회원은 외신 기자만이 될 수 있었고, 해외에 3년 이상 특파원 활동을 한 내신 기자들은 기자 회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서울 프레스 센터 꼭대기에 있는 라운지에서 만찬을 가지며 친목을 다졌다.
오프라인은 글로벌 미디어 콘퍼런스 이후 종종 이곳의 초대를 받았다.
그동안 최루리와 홍지혜 등이 다녀왔는데 오늘은 특별히 나 혼자 방문하게 되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취재로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글로벌 미디어 콘퍼런스의 후광 덕분일까.
나의 옆자리에는 서울 외신 기자 클럽 회장이 자리했다.
“반갑습니다. 요미우리 신문 김재수 기자입니다. 서울 외신 기자 클럽 회장을 맡고 있죠.”
곱슬머리에 50대 중반쯤 보이는 남자가 내게 손을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프라인의 우세진입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우리는 테이블에 세팅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김재수가 음식을 가리키며 물었다.
“함박스테이크 좋아하십니까?”
“네. 어릴 적 외식 가면 경양식집에서 많이 먹었던 음식이죠.”
“하하. 그렇죠. 일본에서는 함바구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이게 함박스테이크라고 변형되었습니다.”
“그런가요? 그런데 기자님은 한국 분 같은데 어떻게 요미우리 신문에 들어가신 건가요?”
“재일 한국인입니다. 국적은 일본이죠.”
“오늘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어 울렁증이 있어 걱정했는데 옆에 회장님이 앉으셔서 편안하군요.”
“뭘요. 글로벌 미디어 콘퍼런스는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그와 나는 식사를 하며 외신과 내신 등 언론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사를 거의 마칠 무렵.
그는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다.
“오프라인은 특이하게 보도 자료를 받아 쓰지 않더군요.”
“네. 보도 자료는 기사가 아니니까요.”
김재수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신기하네요.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란 게 바로 기자들이 보도 자료를 그대로 복붙하는 것이었는데요.”
“하하. 좀 그런 경향이 있죠.”
한국 기자의 일상은 보통 보도 자료로 시작해서 보도 자료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신문이 아닌 온라인을 통해 기사를 접하면서 급증한 기사량은 한국의 기자들을 더더욱 보도 자료에 얽매이게 만들었다.
보도 자료만 보면 현장 취재를 하지 않더라도 간단히 전화 통화를 통해 취재를 보강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일본만 하더라도 보도 자료를 그대로 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자신이 취재하고 분석한 새로운 정보를 더해야지만 기사로 나가게 되죠.”
“네. 회장님. 서양 언론에서도 보도 자료는 보도 자료일 뿐 이를 기사에 인용하는 경우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아요. 보도 자료에는 정부와 기업 입장에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잔뜩 들어가 있으니까요. 제대로 된 이야기는 보도 자료가 아닌 현장에 있죠.”
회귀 전 오프라인에서 보도 자료 베끼기는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빠르게 기사를 쓰기에 보도 자료 베끼기만큼 좋은 방법은 없었으니.
하지만 그 안에는 기자의 시각과 취재는 전혀 없었다.
그저 정부와 기업의 메시지일 뿐.
쉽게 말해서 불리한 것은 숨기고 좋은 것은 과장하는 게 보도 자료의 기본이었다.
그래서 회귀 이후 보도 자료는 일절 기사화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던 것이다.
‘그걸 이 사람이 알아줄 줄은 몰랐지만.’
“저뿐 아니라 많은 한국의 외신 기자들이 기사 쓸 때 오프라인 기사를 많이 참고합니다.”
“그런가요? 그건 영광이군요.”
“네. 오프라인은 다른 한국 언론사들과는 다르게 보도 자료 베끼기도 없고, 기자만의 시각과 다양한 주장들 그리고 여러 그래픽 자료들이 보기 좋게 실리더군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정말 저희 클럽 만찬에서 자주 나오는 단골 주제입니다. 오프라인 대단하다고요.”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해 주세요. 저희 역시 궁금한 게 있으면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이런 게 바로 서울 외신 기자 클럽의 설립 목적이죠.”
김재수와의 이야기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나와 대화를 하고 싶다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덕분에 프레스 센터를 빠져나온 것은 10시가 훨씬 지난 이후였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광화문은 각종 네온사인과 차량의 헤드라이트로 대낮처럼 밝았다.
재킷의 주머니는 아까 받았던 외신 기자들의 명함으로 수북했다.
오프라인에 대한 내신 기자들의 적대적인 태도에 비하면 외신 기자들의 태도는 정말 달랐다.
‘우리를 자기들 밥그릇 빼앗는 악의 무리로 보는 내신에 비해 외신 기자들은 함께 언론을 발전시킬 동료로서 본다. 이 둘의 차이는 뭘까.’
입안이 씁쓸했다.
광화문에 밀집한 국내 언론사들의 대형 간판들만이 무정하게 빛나고 있었다.
일주일 뒤.
기다리던 안재영이 아닌 이상한 인물이 오프라인에 나타났다.
분홍 하와이안 셔츠에 짙은 선글라스.
노란색 머리에 팔목에는 레터링 문신.
겨울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은 복장.
그나마 한쪽 팔에 얹은 두꺼운 점퍼가 그가 제정신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상한 복장을 한 남자는 오프라인 입구에 서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외부 미팅 갔다가 왔더니 저 이상한 사람은 누구지?’
뭐 하는 사람인지 뒤에서 관찰하고 있는데 박창후가 문을 확 열더니 외쳤다.
“누구신데 이렇게 남의 사무실 앞에서 얼쩡거리시는 거요! 우린 잡상인은 취급 안 합니다. 훠어이~”
“아! 박 부장님? 저 안재영이에요. 저 몰라보시겠어요?”
“네? 고려 일보 안재영 기자요?!”
“네. 이제는 오프라인 안재영 기자이지만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어라? 우세진 사장님한테 이야기 못 들으셨어요?”
“아무 말도 못 들었는데요. 그나저나 한겨울에 이게 무슨 미친 패션인가요? 그 깔끔하던 양반이 갑자기 무슨 생양아치처럼…….”
“하하하. 기분 전환차 하와이에 다녀왔거든요.”
“하와이요?”
“네. 제 취미가 서핑이거든요. 이직하는 사이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많이 이상한가요?”
박창후는 안재영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잔뜩 인상을 쓰고는 안재영의 위아래를 살폈다.
그러다 안재영의 뒤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앗! 우 사장님! 언제부터 거기 계셨어요?”
박창후의 말에 안재영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앞모습은 뒷모습과는 또 달랐다.
도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참.
“그게 도대체 뭐 하는 짓거리냐?”
“뭐? 너도 나의 파격적인 변화가 마음에 안 드냐?”
“뭐라고 얘기해 줘야 할지 모르겠다. 도대체.”
“하하하. 그렇군. 아무튼 첫 출근 신고합니다. 사장님! 안재영 기자. 오늘부터 오프라인에 출근하려 합니다!”
“첫 출근 복장이 도대체 그게 뭐야.”
“왜? 강렬한 인상을 남겨 주려고 그랬는데 너무 셌나?”
“당장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다시 와. 그 상태로는 절대 출근 허락 못 한다.”
“쳇. 신생 매체라고 자유로운 분위긴 줄 알았는데 꼰대 회사로구먼.”
“꼰대고 나발이고, 그 복장으로 출근 가능한 회사가 이상한 거야. 너 스타트업에 대한 이상한 환상 같은 거 있는 거 아냐?”
안재영은 투덜거리며 다시 집에 갔다가 깔끔한 캐주얼을 입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