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의 옆에 서서 오프라인의 모두에게 안재영의 합류를 알렸다.
“이미 구면이겠지만, 고려 일보의 안재영 기자가 오늘부터 우리 오프라인에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따뜻하게 맞아 주시고. 안 기자 셀프 소개 좀 해 줘요.”
“넵! 사장님. 오늘부터 새로 한솥밥 먹게 된 안재영입니다! 나이는 스물여섯! 여자 친구는 아직 없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님들!!”
안재영은 우렁차게 외치고는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합류에 모두가 당황하다 그의 깍듯한 태도를 보고는 따스하게 맞아 주었다.
“하하. 고려 일보 기자 출신에 재벌가 외아들이라 뻣뻣할 줄로만 알았더니 꽤 괜찮은 친구로구먼.”
이미 앞서 인사를 나눴던 박창후가 제일 먼저 나서 안재영을 반겨 주었다.
“그런데 우 사장님. 안재영 기자는 소속이 어딘가요? 우리 아직 취재 부서는 없는데.”
안재영과 인사를 나누던 최루리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우선은 소셜부입니다. 홍지혜 부장 밑에 평기자로 들어갈 거예요.”
“네? 그래도 고려 일보 출신인데…….”
“내년에 인원 충원하면 새로 조직을 개편할 예정이기는 하지만, 우선은 소셜부 소속이니, 홍 부장님은 안 기자 잘 좀 챙겨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안 기자도 홍 부장한테 미움받지 않도록 노력해 주시고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홍 부장님! 그리고 저 부장님 팬입니다. G20 현장에 저도 있었는데 오바마를 상대로 당차게 질문하신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합니다! 존경합니다, 홍 부장님!”
갑작스러운 고백에 홍지혜는 당황한 듯 뒷걸음질을 했다.
그 모습이 재미있었던지 최루리가 그녀를 놀렸다.
“드디어 홍 부장 천적이 나타났네, 나타났어. 스타 기자 되고 나서 저렇게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 보네, 호호.”
안재영의 합류는 오프라인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그는 국내 최고의 신문사인 고려 일보에서도 차세대 에이스라는 평가를 받았던 기자다.
글도 잘 쓰고 SNS나 기술에 대한 이해도 높았다.
무엇보다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어 혼자 튀지 않고 오프라인의 젊은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
복덩어리가 넝쿨째 굴러들어 온 격이었다.
‘게다가 진양 그룹의 외아들이니…… 잘만 하면 괜찮은 투자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 * *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12월의 마지막 금요일 낮.
오프라인은 서울 시청 인근의 고급 호텔 연회장을 빌려 2010년 종무식을 열었다.
연회장 입구에 먹음직스러운 뷔페가 설치된 가운데 연회장 안에서는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이야, 회사 종무식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을 줄이야. 우 사장님 진짜 굿 아이디어인데요?”
최루리가 초밥을 먹으며 대단히 만족스럽다는 듯 연주를 들었다.
“그러게요. 보통 대기업에서 연예인들을 부르거나, MC를 불러 진행하는 경우는 있지만, 오케스트라가 있는 종무식은 저도 처음이네요.”
박창후는 부인인 김지인과 나란히 서서 오케스트라를 구경하며 말했다.
“평범한 종무식보다는 문화와 함께하는 행사가 되었으면 해서 기획해 봤습니다. 만족하신다니 다행이네요.”
“아닙니다, 사장님. 진짜 이런 종무식은 처음이에요. 대만족입니다, 대만족!”
박창후의 웃음처럼 모두가 종무식을 즐겼다.
자유롭게 뷔페에서 식사하며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었고, 또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한 해를 마무리 짓고 있었다.
백철웅이 얼굴에 웃음을 가득 안고는 내게 다가왔다.
“우 사장. 올 한해 고생 많았습니다. 오케스트라도 정말 좋고, 여기 호텔 연회장도 넓고 고급스럽네요. 뉴미디어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행사장 대관도 잘하고 참 능력잡니다. 허허.”
“별말씀을요. 백 사장님이야말로 정말 고생 많으셨죠. 오프라인의 창립자는 백 사장님이시지 않습니까. 정말 큰 결정 하셨고, 너무 잘하고 계십니다.”
“아뇨. 우 사장이 여기에 안 왔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찔합니다. 호텔 종무식은커녕 사무실에서 중국집 음식이나 시켜 먹었을까요? 하하.”
백철웅은 농담이라며 웃으며 말했지만, 회귀 전에는 정말 사무실 밑에 있는 중국집에서 탕수육과 짜장면을 시켜 먹으며 내년에는 더 열심히 해 보자고 파이팅했던 게 전부였다.
‘격세지감이다 참.’
“이제 밥도 어느 정도는 먹은 것 같은데 한 말씀 하셔야죠?”
“내가요? 우 사장이 먼저 하시죠.”
“창립자가 우선입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대신 저 끝나면 바로 우 사장 차례요.”
백철웅은 연회장 앞으로 나가 단상 앞에 섰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안녕하세요, 백 사장님!”
모두가 즐거운 듯 큰소리로 화답했다.
“오프라인 공동 사장 백철웅입니다. 올 한 해 정말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러분들 덕에 오프라인은 창립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이제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 언론사가 되었습니다. 글로벌에서도 나름 주목받는 매체가 되었고요. 제가 오프라인을 처음 만들었을 때만 해도…….”
백철웅은 순간 울컥했는지 잠시 말을 흐렸다.
모두가 그에게 따스한 응원의 손뼉을 쳐 줬다.
누가 뭐라 해도 세계 최초로 소셜 언론을 만들어 운영한 자였다.
나이 오십이 넘을 동안 무명 기자였던 백철웅.
무능한 후배와 소셜 언론이라는 걸 만들기로 했을 때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비웃음을 당했을까.
그랬던 그가 요즘은 오프라인의 창립자 겸 제법 잘나가는 칼럼니스트로 제2의 기자 생활을 하며 느끼는 감회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는 오프라인을 창립하게 된 이유부터 나를 공동 사장으로 끌어들인 일.
이후 500 대 1의 경쟁률을 자랑하는 공개 채용을 했던 일, 그리고 여러 가지 주요 이슈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며 연회장의 모두를 과거로 이끌었다.
사람들은 그때로 되돌아간 듯 아련한 얼굴로 백철웅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절정은 역시 인센티브 발표!
“올 한 해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모두에게 150만 원의 기본 보너스와 함께, 특히 성과가 뛰어났던 네 분에게는 1천만 원의 인센티브가 제공됩니다!”
“와!!!”
아련하게 추억에 잠겨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백철웅은 차례로 네 명의 이름을 불렀다.
이덕오와 박창후, 최루리, 홍지혜.
모두 오프라인의 성장에 앞장선 일등 공신들이었다.
“네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다른 분들 모두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랑합니다. 오프라인!”
백철웅은 다시 한번 오프라인 구성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단상에서 내려왔다.
“이제 우 사장 차례예요.”
“고생하셨습니다. 백 사장님.”
백철웅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나는 천천히 무대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천천히 좌중을 돌아보았다.
백철웅, 이덕오, 최루리, 박창후, 홍지혜, 이수빈 그리고 최근에 합류한 안재영까지.
각자 맡은 바 역할은 달랐지만,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해 주었던 그들.
“감사합니다. 여러분.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오프라인이 전 세계 최고 언론사가 되는 날까지 더욱 노력합시다! 감사합니다!”
갸우뚱거리던 사람들도 열심히 하자는 내 말에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우렁차게 박수를 쳐 줬다.
안재영이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모두가 들으라는 듯 말했다.
“진짜 웃기는 사장님이야.”
* * *
종무식을 마친 나는 한 잔 더하자는 동료들의 권유를 뿌리치고는 오후 비행기를 타고 곧바로 제주도로 내려왔다.
연말만큼은 엄마와 함께하고 싶었던 까닭이다.
마침 한 씨 아저씨도 일이 있다며 제주도를 떠나 있었다.
“제주도에 내려오니까 살 만해?”
나는 엄마가 차려 준 집밥을 먹으며 물었다.
뷔페 식당도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엄마 밥이 최고였다.
“그래. 공기도 좋고. 비자림도 좋고, 한 씨 아저씨도 옆에 있고 좋네.”
“하하. 엄마는 한 씨 아저씨 어디가 그리 좋아요?”
“날 많이 챙겨 주잖니? 그런 사람 또 없다.”
하긴 아빠는 떠나기 전까지 엄마를 때리고 원망했었다.
“엄마.”
“왜?”
“한 씨 아저씨랑 결혼하는 건 어때요?”
“뭐?”
“아니 어차피 같이 살고 있기도 하고, 그냥 결혼해 버리면 엄마도 좋고 한 씨 아저씨도 좋은 거 아냐?”
“아니 그래도 난 초혼도 아니고, 너도 있고…….”
“한 씨 아저씨는 총각이죠? 그럼 됐어. 아들 눈치 보지 말고 엄마랑 아저씨랑 하고 싶은 대로 해요.”
“그…… 그래도 괜찮겠어, 아들?”
“물론이지. 이미 같이 살면서 무슨 그런 형식에 얽매여. 엄마도 참 웃기네.”
“아들…….”
엄마에게 나는 여전히 네 살 꼬마 아이로 보이나 보다.
그녀는 한참을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고맙다고 또 고맙다고 말했다.
‘한 씨 아저씨랑 평생 행복하게 살아요. 아픈 기억일랑 다 버리고.’
식사를 마치고 소파에 누워 뉴스를 보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안재영이었다.
‘이 시간에는 무슨 일이지?’
스마트폰을 켜 문자를 확인한 나는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쳤다.
“하?!”
이런 문자가 왔기 때문이다.
<우 사장님! 덕오 이사님이랑 지혜 부장님이랑 지금 제주 공항에 왔어요. 빨리 우리 데리러 와 주세요! 빨리~>
# 3장 조직 개편
2010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제주 공항은 제주도에서 새해를 맞으려는 인파들로 붐볐다.
“여깁니다, 우 사장님!”
멀리서 안재영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문자대로 안재영, 이덕오, 홍지혜가 도착해 있었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내려오면 어떡합니까?”
내가 따지듯 묻자 안재영이 웃으며 답했다.
“갑자기 내려가신 건 사장님이죠. 우린 그냥 제주에서 새해를 보내고 싶었을 뿐이라고요.”
“맞아. 혼자만 내려가고 치사합니다. 형님.”
“제주에 집도 있으시다면서요? 저희한테도 소개해 주세요.”
셋은 미리 짠 듯 동시에 나를 공격했다.
“집에는 어머니도 계셔서 좀 곤란한데…….”
“왜요? 이미 인천 공항에서도 한 번 뵈었잖아요? 직원들이라고 소개하면 어머니도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홍 부장님 말이 맞아요. 게다가 저는 한 번 가 봤잖아요. 한 번 더 보여 주세요~”
“옳소! 보여 줘! 보여 줘!”
안재영이 이 정도로 행동파인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휴. 알았어. 숙소는 정했고?”
“형님 집에서 자면 되죠~ 집 엄청 넓잖아요~”
“…….”
선임자인 이덕오가 조수석에 타고, 안재영과 홍지혜는 뒤에 앉았다.
백미러를 통해 뒤를 보니 안재영이 홍지혜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체 둘은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죠? 재영이는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하하. 여긴 사석이니까 말 놔도 되지?”
“응.”
“내가 좀 친화력이 좋잖니. 같은 소셜부 소속이라 매일 밥도 함께 먹고 커피도 함께 마시면서 친해졌지.”
“아, 그러고 보니, 둘이 동갑이네.”
가끔 홍지혜가 나와 같은 나이라는 걸 깜빡한다.
‘홍지혜가 직원들과 잘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군.’
셋을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 엄마가 화들짝 놀라며 이들을 반겼다.
“아니, 오프라인 직원분들이잖아? 앗! 홍지혜 기자도 왔네! 실물로 보니까 정말 예뻐요! 어서 들어와요. 모두.”
“칭찬, 감사합니다. 어머니.”
“반갑습니다, 어머니! 하루 실례하겠습니다.”
“세진 형님 동생 이덕오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이구 내 정신 좀 봐. 거실에 잠시만 있어 봐요. 내가 금방 차랑 과자를 가지고 올 테니까.”
엄마는 빠른 속도로 부엌으로 사라졌다가 다과를 가지고 다시 나타났다.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 뜨거울 때 들어요.”
엄마는 직접 볶은 커피를 내려 이들에게 대접했다.
“잘 먹겠습니다!”
몸서리쳐질 만큼 추운 날씨를 뚫고 왔던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