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작년처럼 어마어마하게 사람들이 몰리면 자소서가 긴 게 마이너스잖아? 솔직히 다 읽을 자신 있어?”
힘겨웠던 작년의 기억이 떠올라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거봐. 어차피 기본적인 사항은 이력서로 체크할 수 있을 거고, 자소서는 아주 핵심적인 부분만 확인하면 돼. 오히려 6줄로 얼마나 더 재치 있고 간결하게 자신을 알릴 수 있을지 테스트도 할 수 있을 테고.”
“그건 이해가 가네요. SNS에서도 긴 글보다는 짧은 글이 먹히니까, 기사를 쓰고 SNS를 작성하는 데에도 참고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홍지혜도 좋은 아이디어라며 안재영을 두둔했다.
나는 안재영이 쓴 공고문을 백철웅에게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미있다며 그렇게 하라는 백철웅의 문자가 왔다.
“백 사장님도 좋다고 하시니, 그럼 이걸로 이번 채용 공고문을 올리겠습니다. 다들 괜찮죠?”
모두가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와 2011년의 첫 출근.
사무실은 2011년 채용 공고문으로 종일 떠들썩했다.
“이거 누구 아이디어예요? 이번에도 우 사장님이 낸 건가요?”
박창후가 웃겨 죽겠다는 듯 모니터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뇨. 이번에는 안재영 기자가 낸 아이디어입니다. 재밌나요?”
“당근빠따죠! 작년 것도 진짜 웃겼지만, 이번 건 아주 저세상 버전인데요?”
“그 정도예요?”
“네 반응도 엄청 좋네요. 덕분에 지원자들도 엄청나고요.”
오프라인의 2011년 채용 공고문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금방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작년의 사례가 있었던 덕분인지 사람들은 ‘오프라인이 또!’라며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각종 커뮤니티는 물론 언론사에서도 재치 넘치는 채용 공고문이라며 우리가 올린 채용 공고문을 소개했다.
모 언론사는 구직 시장이 단군 이래 최악의 취업난이라고 불릴 정도로 얼어붙어 있는 가운데, 재치 있고 단순한 채용 공고문이 큰 호응을 얻은 것 같다며 기사를 냈다.
무엇보다 6줄 한정의 자소서 항목은 SNS에서 밈(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특정한 문화 요소)이 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6줄 내외로 소개하는 글을 올리면서 오프라인의 채용과 무관하게 일종의 놀이처럼 즐겼다.
30명 모집에 2만 4천여 명의 지원.
작년 공개 채용 경쟁률인 500 대 1을 가뿐히 뛰어넘은 800 대 1의 경쟁률.
오프라인은 도대체 누굴 뽑아야 좋은 사람은 뽑을 수 있을지 말단 사원부터 사장까지 흥분의 도가니였다.
하지만 그 흥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 * *
2011년 1월 15일 토요일.
쉬는 날이었지만 나와 백철웅은 한국 언론 진흥 재단에서 주최하는 미디어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광화문에 위치한 행사장에 방문하였다.
오전 행사를 모두 끝내고 모원석을 비롯해 재단 사람들과 점심을 먹으며 글로벌 진출을 위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모두의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응? 뭐야? 한국인 8명이 승선한 삼호 주얼리호가 해적에게 피랍되었다고?”
“아니 요즘 왜 이렇게 이쪽 지역에서 대한민국 선박이 자주 납치되는 거죠?”
“얼마 전에도 해적들한테 몸값 지불한 사례가 있었잖아요? 이놈들이 아주 악질이에요, 악질!”
“국민들도 몸값만 지불하고 또다시 반복되는 사태에 아주 분노하고 있어요.”
삼호 주얼리호 피랍 사건.
아라비아해에서 한국인 8명이 승선한 삼호 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된다.
하지만 사건은 단순한 피랍과 해적들의 몸값 요구로 끝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주도 아래 대한민국과 미국, 오만, 파키스탄 해군이 연합하여 공동 작전을 수행.
납치 6일 만에 대한민국 청해 부대가 선박을 급습하여 해적을 사살 및 생포하고 인질을 모두 구출해 내며 대한민국이 해외에서 수행한 최초의 인질 구출 작전이라는 대성과를 올린 것이다.
대박 사건임을 직감한 나는 조용히 모원석을 데리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이사장님.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이요?”
“네. 지금 당장 청와대에 연락해서 이번 사건 저희가 현장 취재하고 싶다고 전해 주십시오.”
“이번 사건이라 하심은…… 조금 전에 삼호 주얼리호 피랍 사건?”
“네. 분명 청와대에서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겁니다.”
“그래요? 저는 따로 전달받은 내용은 없습니다만.”
“아무튼 지금 바로 전화해서 저희의 의중을 전해 주세요. 아마 금방 답변받으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람 참……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연락해 보지요.”
모원석은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청와대에 연락하더니 표정이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네? 아니 정말입니까? VIP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요?! 네네 알겠습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아니 우 사장. 혹시 VIP와 따로 연락하고 지내요?”
“아니요. 연락처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걸…….”
“왜요?”
“VIP가 근처에 있는 해군 부대를 현장에 파견해서 해적 소탕과 인질 구출을 고려 중이시라고 합니다.”
“그래요?”
“아니 역사상 한국군이 해외에서 인질 구축 작전을 수행한 적이 없습니다. 만약 VIP가 정말로 그 일을 밀어붙인다면 단군 이래 최초의 작전이 될 거라고요!”
“그렇군요.”
“참 이해가 안 가는군요? 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우 사장 촉이 보통이 아닙니다.”
“칭찬 감사드립니다.”
“허허. 아무튼 VIP에게 전달되었으니 연락이 또 올 겁니다.”
“고맙습니다. 이사장님.”
청와대에서 답변이 오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날 오후.
나는 백철웅과 모원석과 함께 또다시 청와대 접견실을 방문하였다.
이국대가 나를 보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 이번 작전에 오프라인이 함께하고 싶다고요?”
“맞습니다. 대통령님. 허락해 주신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아라비아해에 가서 대한민국 해군이 납치된 선박을 구출하는 모습을 취재하고 싶습니다.”
“내가 이번 작전을 수행하리라 어찌 알았습니까?”
이국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낮게 깔렸다.
“최근 소말리아 부근에서 대한민국 선박이 납치되는 사건이 잦습니다. 국민 여론도 좋지 않고요. 대통령님이시라면 분명 무언가 결단을 내리시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흐음. 겨우 그걸로?”
“네.”
이국대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국방부 장관을 불렀다.
곧 군복을 입은 날렵한 체구의 인물이 접견실에 들어왔다.
국방부 장관 정해룡이었다.
그는 접견실에 들어옴과 동시에 한참 동안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장관. 여기가 이번 작전을 취재하고 싶어 하는 오프라인이요.”
“네. 각하.”
“장관이 보기에는 어떻겠소? 이번 구출 작전에 오프라인이 함께 가서 취재를 했을 때 괜찮을 것 같소?”
“신변에 대한 이야기라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저희 군인들도 목숨을 걸고 하는 작전. 100% 안전할 거란 보장은 할 수 없겠군요.”
“그렇다고 하는데 어떻소?”
백철웅의 입에서 꿀꺽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 저희는 좋습니다.”
내가 자신 있게 이야기하자 옆에 있는 백철웅과 모원석은 물론 이국대와 정해룡까지 나를 쳐다보았다.
정해룡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직원들과 이야기는 된 겁니까?”
“그런 걱정은 저희가 해야 할 부분이고, 총 몇 명까지 갈 수 있겠습니까?”
“4명. 그 이상은 저희도 어렵습니다.”
“4명이라…… 알겠습니다. 이 부분은 저희도 상의하고 오후에 다시 연락드려도 되겠습니까?”
“지부티항에 있는 청해 부대는 오늘 자정에 출동할 예정입니다. 그들이 피랍 해역에 도착하기에는 이틀밖에 걸리지 않을 테니, 한국에서 가려면 최소한 내일 오전에는 출발하는 게 좋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저녁까지는 명단을 정리해서 넘겨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청와대를 나와 광화문 인근 카페에 들렀다.
“우 사장. 이번 건은 직원의 생명과 직결된 일입니다. 괜찮겠습니까?”
“우선 저는 당연히 갈 예정입니다. 나머지 셋은 취재 하나에 카메라 하나, 그리고 기술 담당 하나.”
“그럼 박창후, 홍지혜, 이덕오?”
“홍지혜 부장보다는 군대를 다녀온 안재영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남자라지만 박창후 부장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동의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해 봐야죠.”
“휴. 주말에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걱정 마십시오, 백 사장님. 청와대와 관계가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었고, 이번 건만 잘 처리하면 이번에 뽑고 있는 채용에서도 더 좋은 이들이 많이 지원할 겁니다.”
“이미 충분히 많아요, 많아.”
“이 정도로 목숨 걸고 한다는 걸 보여 줄 수 있으니까 추가로 지원하는 이들의 각오는 남다르겠죠.”
나는 바로 안재영과 이덕오에게 전화를 걸어 이들에게 흔쾌히 동의를 얻어 냈다.
심지어 안재영은 무척 신나 하며 좋은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말할 정도였다.
‘문제는 박창후인데…….’
하지만 그는 연평도 포격 사건 때도 더 취재하고 싶다며 열정이 넘쳤던 사람이었다.
분명히 허락해 줄 거란 믿음이 있었다.
“박 부장이십니까?”
-네. 우 사장님. 토요일 오후에 무슨 일이세요? 뭐 급한 거 터졌습니까?
“네. 아주 급한 건이요.”
-응? 그런 게 있었나? 네 어떤 일이죠?
“내일 당장 저랑 같이 오만에 갈 수 있습니까?”
-오만이요? 사우디아라비아 밑에 있는 오만?
“맞습니다.”
-아니 가는 거야 문제는 없는데 무슨 일로…….
나는 박창후에게 일의 전말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박창후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김지인과 이야기한 다음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결혼했으니 와이프와 상의가 우선이겠지.’
박창후가 만약 안 된다고 하였을 때는 그 밑의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나 고민하던 차.
곧바로 박창후에게 전화가 왔다.
“네, 박 부장님. 지인 씨와 상의해 보셨나요?”
-네. 사장님. 가겠습니다.
“정말요?!”
-네. 지인이도, 회사 일이고 사장님이 직접 전화해서 요청하실 일이라면 당연히 가는 게 맞다고 하네요.
“고맙습니다. 박 부장님. 고맙습니다, 지인 씨.”
-그래서 제가 준비할 건 뭐고, 뭘 취재해야 하는지 알려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정리해서 메일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날.
나와 이덕오, 박창후와 안재영은 성남에 위치한 서울 공항을 방문하였다.
서울 공항은 2개의 활주로가 설치된 공군 기지로 공군 활동 이외에 대통령의 해외 방문이나 해외 국빈들의 방한 시에 주로 사용되었다.
“이야, 세진아. 너 진짜 보통이 아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우릴 위해 특별히 공군 수송기를 내줬다고?”
“응. 취재 잘해 달래.”
“흐흐흐. 장난 아니네. 무슨 종군 기자 된 기분인데?”
“야, 안재영. 몇 번이나 말했지만 이번 작전은 장난이 아니야. 조심해.”
우리는 각오를 다지고 수송기에 탑승했다.
10시간 정도의 비행이 끝날 무렵.
작은 창문 밖으로 공항 활주로가 보였다.
오만의 살랄라 공항이었다.
“먼 길 고생 많으셨습니다. 대한민국 해군 중령 김기오입니다.”
“반갑습니다, 중령님. 오프라인 사장 우세진입니다.”
살랄라 공항에 도착하니 청해 부대 소속의 김기오 중령이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키는 작지만 옷을 뚫고 나올 듯 다부진 근육이 탄탄한 체격을 자랑했다.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청해 부대 소속의 최영함이 지부티 항에서 피랍 지역으로 이동 중에 있습니다.”
“그럼 실제로 작전에 들어가는 건 언제쯤이죠?”
“대략 이틀 뒤인 18일 무렵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