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0/200)

이덕오가 궁금한 듯 갑자기 손을 들었다.

“그럼 저희는 언제 최영함에 갈 수 있나요?”

“내일 오전에 저희가 준비한 헬리콥터를 타고 최영함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아, 최영함은 여기 따로 기항하지 않나 보군요.”

“맞습니다. 피랍된 선박을 구출하는 게 최우선이다 보니, 지부티항에서 곧바로 삼호 주얼리호가 있는 곳으로 이동 중입니다.”

안재영이 명함을 건네며 김기오에게 물었다.

“고맙습니다. 중령님. 오프라인의 안재영 기자입니다. 그럼 저희는 오늘 어디로 가면 되나요?”

“네. 저를 따라 인근의 리조트에서 1박 하시게 됩니다. 편히 쉬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작전 브리핑 및 안전 사항과 기타 준칙 등에 대해 교육을 받으셔야 해서 아마 정신없으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당연한 절차죠.”

안재영이 씨익 웃으며 짐을 들었다.

우리는 김기오의 안내에 따라 인근 리조트에 짐을 풀고는 로비에 위치한 회의실로 집결했다.

김기오는 여전히 군복을 입은 채 회의실 TV에 노트북을 연결했다.

TV 화면에는 <아덴만 여명 작전 개요>라는 PPT가 떴다.

김기오가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 계신 기자분들은 인간이 가장 느슨해질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명이 밝아 오는 시기죠.”

김기오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정확합니다. 하루 중 이 시간대의 온도가 가장 낮습니다.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의 경계심이 가장 낮아지는 시간대죠. 그래서 특수 부대 작전은 주로 이 시간대에 실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해적이나 테러 단체도 이 시간을 특별히 경계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혹시 밀리터리 전문가이신가요? 맞습니다. 하지만 소말리아 해적들이 그 정도로 정교한 집단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번 작전은 여명이 밝아 오는 시기에 감행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작전명이?”

“맞습니다. 아덴만 여명 작전이죠.”

“그렇군요. 그런데 나눠 주신 자료들을 보니 청해 부대의 정식 명칭이 소말리아 해역 호송 전대더군요. 이름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네. 저희는 대한민국 해군 최초로 전투함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역에 파병되었습니다. 국적에 상관없이 상선들의 호위를 맡고 있죠.”

“국적에 관계 없이요? 그럼 대한민국 상선 이외에도 호위하고 있나요?”

박창후가 김기오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저희는 항구적 자유 작전…… 아프리카의 뿔이라는 미국 제5 함대 지휘하에 수행되는 작전에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CTF-150이라는 연합 해군 사령부 대해적 작전 부대에 배속되어 있죠.”

“와.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연합 작전이군요.”

“그렇습니다. 물론 저희의 우선 보호 대상은 대한민국 국적의 선박입니다만, 그와 상관없이 모든 국적의 선박이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임무입니다.”

“그런데 청해 부대라는 이름은 어디서 따온 건가요? 뭔가 장보고가 생각나는데.”

안재영의 물음에 김기오가 웃으며 답했다.

“맞습니다. 장보고가 전남 완도에 설치했던 해상 무역 기지 ‘청해진’에서 그 이름을 따왔죠.”

“이야, 멋진 이름이네요.”

“고맙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번 작전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그 전에 나눠 드린 이 문서에 모두 서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서명이요?”

“네. 보시면 아시게 될 겁니다.”

김기오는 가방에서 문서를 꺼내 우리 넷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문서에는 우리가 이 작전에 참여한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의지로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며, 생명을 잃더라도 국가에는 그 어떠한 책임도 없으며, 손해 배상 청구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옆에 앉은 박창후가 침을 꼴깍 삼켰다.

“생명 포기 각서군요.”

“맞습니다. 이 각서에 서명을 해 주셔야만 이번 작전에 대해 브리핑할 수 있고, 여러분을 안내해 드릴 수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넷을 돌아보았다.

모두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내 서명을 하고 각서를 김기오에게 건넸다.

“그럼. 지금부터 제 이야기에 집중해 주십시오. 청해 부대 모두 이번 작전에 목숨을 걸고 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을 살뜰히 챙겨 드리는 것은 아마 오늘이 마지막일 겁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이야기가 여러분의 생명을 구하는 가이드가 될 테니 꼭 집중해서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김기오는 이번 작전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에서부터, 우리가 지켜야 할 일들, 하지 말아야 할 일, 그리고 만에 하나 해적에 납치되거나 위기의 상황에 빠졌을 때 대처법 등에 대해 3시간 동안 단 1분의 쉼도 없이 전해 주었다.

“이것으로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릴 사항은 모두 안내해 드렸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김기오가 저 말을 하고 나자 모두가 책상에 고개를 처박고 엎드렸다.

“하아……. 이거 10시간 비행보다 더 빡세네요.”

“그러게요. 죽겠어요. 당장 샤워하고 자고 싶군요.”

“여러분들이 내일 최영함에 타게 되면 며칠간 제대로 씻기도 어려울 겁니다. 오늘 푹 쉬시는 걸 추천합니다.”

우리는 김기오의 조언대로 곧바로 각자의 방에 들어가 몸을 씻고 휴식을 취했다.

긴 여행 끝에 이어진 숨 돌릴 틈 없는 교육.

우리 일행은 곧바로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 * *

다음 날 오전.

리조트 로비에 집결한 우리는 호텔 한쪽에 주차된 헬리콥터를 타고 곧장 최영함으로 이동했다.

투두투두투두투두---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가 무척이나 귀에 거슬렸지만, 짙은 푸른색의 아라비아해는 그저 무심히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박창후는 예전에 HBS에 있을 때 몇 번 헬리콥터를 탄 적이 있다며 이덕오와 안재영 앞에서 으스댔다.

“헬기 타다 보면 기류 때문에 갑자기 급하강을 할 때가 있지! 진짜 몇 번을 겪어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단 말이야.”

오래지 않아 멀리서 항해 중인 구축함이 눈에 보였다.

내가 해당 구축함을 가리키자 김기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 최영함입니다. 탑승 인원 300명에 항속거리 1만 2백 킬로미터, 최대 30노트의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우리 해군의 자랑이죠.”

김기오는 최영함에 무척이나 애정이 깊은 듯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그가 최영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이 헬리콥터는 선미에 있는 헬기 선착장에 무사히 내려앉았다.

헬리콥터에서 나오니 김기오가 앞에 있는 남성에게 경례하였다.

“필승! 중령 김기오, 살랄라에서 오프라인 취재진을 데리고 함대로 복귀하였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 힘든 점은 없던가요? 최영함 함장 최진호 대령입니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최진호 대령이 웃으며 우리에게 악수를 건넸다.

“네. 대령님. 반갑게 맞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프라인 사장 우세진이라고 합니다.”

나는 그와 악수를 나눈 뒤 오프라인 직원들을 차례로 소개했다.

그는 우리를 함교로 이끌더니 현재 상황에 대해 브리핑했다.

“삼호 주얼리호 선장인 석종호 선장이 아주 큰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현재 해운사 측과 통화한 내용을 유추했을 때 선박 속도를 늦추기 위해 해적들 몰래 엔진 오일에 물을 탄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엔진 오일에 물을요?”

“네. 그래서 선박이 자주 멈추는 등 제대로 운항을 못 하고 있죠. 해적들의 본거지인 소말리아까지 가는 속도를 늦춘 셈입니다.”

“그로 인해 선장님이 위험에 빠지진 않으실까요?”

“워낙 베테랑 선장이고 강단이 있는 분이라 괜찮으실 겁니다.”

최진호는 내일 새벽 피랍 해역인 아라비아해 입구에 도착할 예정이라며, 우선 선내에서 쉬고 있으라고 지시했다.

김기오의 안내로 도착한 방은 4인 1실로, 2층 침대가 좌우에 각각 배치된 자그마한 방이었다.

카메라 장비로 짐이 가득한 박창후는 침대에 가방을 올려놓고는 푸념했다.

“어휴. 여기 너무 좁아서 저는 제 가방을 안고 자야겠는데요.”

“함선이니 이해해야죠. 덕오도 짐 잘 챙겼지?”

“네 형님. 중령님이 신경 써 주셔서 인터넷도 연결됩니다. 송신 문제없어요.”

“오케이. 재영이도 컨디션 괜찮지?”

“물론. 빨리 취재하고 싶어 몸이 달아올랐다, 아주!”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절대 오버하지 말고. 취재도 중요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다치면 곤란해. 알았지?”

“넵! 사장님! 필승!”

별일 없는 항해가 이어졌다.

새벽에 아라비아해 입구에 도착했다는 선내 방송이 있은 뒤로는 근처에 배 한 척 지나가지 않았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피랍되고 일주일 이내에 작전에 성공했던 것 같은데. 며칠 더 기다려야 하나.’

흐릿한 기억을 떠올리며 창밖으로 바다를 멍하니 보고 있는데 다시 한번 선내에 방송이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빨간색 램프가 작동하면서 경고음이 함께 울렸다.

“비상, 비상! 지금 당장 선내에 있는 모두 각자 제자리로!”

우리도 급히 짐을 챙겨 함교로 뛰어 올라갔다.

함교로 들어서자 우리를 발견한 김기오가 입을 열었다.

“오셨군요. 삼호 주얼리호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보여 모두 경계 상태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레이더망을 보여 주었다.

최영함을 중심으로 멀지 않은 곳에 빨간색 점이 하나 그리고 그 인근에 또 다른 빨간색 점이 보였다.

“빨간색 점은 뭐죠?”

“삼호 주얼리호입니다.”

“그럼 또 다른 점은요?”

박창후가 카메라를 돌리며 묻자 최진호 대령이 답했다.

“몽골 국적의 상선입니다. 삼호 주얼리호가 제 속도를 내지 못하자, 근처를 지나는 몽골 상선을 추가로 빼앗으려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니 이 나쁜 놈들이 또 해적질을!”

그때였다.

삼호 주얼리호에서 아주 작은 빨간 점이 나오더니 몽골 선박을 향했다.

“함장님! 삼호 주얼리호에서 무언가 이동하고 있습니다! 해적선으로 추정됩니다!”

“대기하고 있던 헬기와 고속단정 당장 출동시켜!”

“알겠습니다, 함장님! 링스헬기, 고속단정 A, B 당장 출동하라, 당장 출동하라!”

나는 조심스럽게 옆에 있는 김기오에게 물었다.

“중령님. 그럼 저희도 함께 출동합니까?”

김기오는 최진호의 눈치를 살피더니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된 이후에 여러분들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중령님, 이건 앞서 저희에게 브리핑한 내용과 다른데요? 저희도 함께 출동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상부의 명령입니다. 취재도 중요하지만, 여러분들의 안전이 더 중요합니다.”

분했지만 여기서 더 고집을 피울 순 없었다.

우리는 최영함을 떠나는 링스 헬기와 고속단정 2척을 멍하니 함교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실시간 중계라도 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각서에는 피랍된 선원들의 안전을 이유로 실시간 중계는 절대로 할 수 없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오프라인은 한국어 외에도 다양한 언어로 서비스되고 있었기 때문에 해적들이 오프라인의 보도를 모니터링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현장을 라이브로 보도할 순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최영함에서 취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박창후는 아쉬운 듯 함선의 가장 앞부분에 위치한 현두로 뛰쳐나갔다.

그는 카메라를 이용해 멀리 떠나가는 헬기와 고속단정을 찍었다.

그리고 얼마 후.

링스헬기에 설치된 K-6 중기관총이 해적선을 향해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마치 하늘을 날고 있는 거대한 용이 지상을 향해 뜨거운 불의 숨결을 내뱉는 것처럼 웅장하고 또한 요란했다.

링스 헬기가 해적선에 위협 사격을 가한 사이.

그쪽으로 관심이 쏠린 해적들을 피해 고속단정이 빠르게 삼호 주얼리호의 반대쪽 면에 접근했다.

이내 해적과 청해 부대 소속 해군 특수 전여단 요원들의 교전이 이어졌다.

투투투투투!

멀리 떨어진 최영함에서도 선명하게 들리는 사격 소리.

안재영과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하나라도 잊지 않기 위해 노트북을 열고는 현장의 모습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이어진 교전 소리가 잦아들더니 무전기에서 다음과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지지직- 해적들이 삼호 주얼리호에서 백기를 들고 있다. 오버.>

“백기라고? 항복하는 거구나!”

“와와!!!”

함교는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이렇게 해적들이 빠르게 항복할 줄 그 누가 생각했을까.

하지만 이상했다.

‘분명 이렇게 빨리 구출 작전에 성공했던 것 같진 않은데…… 또 역사가 바뀐 건가?’

내가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즈음.

무전기에서 다시 긴급한 소리가 들렸다.

<지지지직- 저…… 적들이 다시 공격합니다. 으악!!!>

해적들은 항복하는 척하며 대원들의 방심을 유도한 뒤 AK 소총으로 무차별 발포한 것이다.

“이 약아빠진 새끼들! 작전 중지! 작전 중지! 고속단정은 바로 최영함으로 후퇴하라!”

최진호 대령은 이를 악물고 퇴각 명령을 내렸다.

얼마 후.

링스 헬기와 고속단정이 나포한 자그마한 해적선을 끌고 최영함으로 다시 돌아왔다.

해적선 안에는 해적들이 사용하던 AK-47 3정과 사다리가 널브러져 있었고, 해적선에 타고 있던 해적 4명은 실종된 상태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