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화 (41/200)

하지만 우리 측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적들의 속임수에 특수 부대원 3명이 총상과 찰과상을 입은 것이다.

박창후가 급히 카메라를 가지고 이들의 부상을 찍으러 나갔다.

피를 흘리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을 본 다른 요원들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나는 이들을 인터뷰하려는 박창후를 제지했다.

“지금은 아닙니다. 다음에.”

박창후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뒤로 물러섰다.

실제로 최영함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무거웠다.

아무도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항상 밝은 표정으로 우리를 맞아 주던 김기오 중령조차 더는 웃고 있지 않았다.

총격전에서 부상을 당한 동료를 본 청해 부대원들의 마음에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과 더불어 해적에 대한 복수심과 분노로 가득 차 보였다.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지금 중요한 건 취재야.’

기사로만 접했던 내용을 현장에서 직접 겪으니 이걸 어떻게 전달해야 좋을지 고민스러웠다.

나는 직원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상의했다.

“제 생각에는 분명 며칠 이내에 우리 해군이 해적을 소탕하고 삼호 주얼리호를 구출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분명 엠바고도 풀리고 바로 기사를 송고해야 할 텐데, 이걸 뭔가 극적으로 하려면 뭐가 좋을까요?”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박창후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입을 열었다.

“글로는 한계가 분명할 겁니다. 짧은 다큐멘터리는 어떨까요?”

“다큐멘터리요?”

“네. 우리가 최영함에 도착한 순간부터, 조금 전 일어난 일들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10분 내외의 짧은 다큐멘터리로 제작해서 유튜브와 저희 홈페이지에 올린다면 분명 큰 반향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큐멘터리라…… 여기서 영상은 박 부장님 혼자밖에 못 하는데 가능하시겠어요?”

“기본적인 기획은 제가 하면 되니까, 스토리보드에 들어갈 내용만 우 사장님과 안 기자가 해 주면 문제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재영아, 너도 가능하지?”

“당연하지! 기사 쓰는 틈틈이 다큐멘터리 초안을 짜 보겠습니다.”

그 시간부터 우리는 박창후가 제안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너무 사실만 나열해서 건조해지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감성적으로만 접근하지 않도록.

우리는 사실 요소와 극적 요소를 적절히 조합해 이야기를 짰다.

그사이 부상자 3명은 헬기를 통해 오만의 한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리고 이란 국적의 한 선박이 삼호 주얼리호에 접근하여 검색 작전을 실시하였지만 해적과는 별다른 연관이 없어 훈방 조치되었고, 오만 해군의 함정이 작전 지원차 도착하여 힘을 실어 주었다.

우리는 이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영상과 기사에 담았다.

* * *

그리고 20일 저녁.

김기오가 우리를 함교로 불렀다.

함교에는 최진호 대령을 비롯해 30여 명의 요원들이 비장한 각오로 집결해 있었다.

나는 최진호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드디어 작전 실행입니까?”

김기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VIP로부터 최종 승인이 났습니다. 내일 새벽 4시 무렵에 작전 수행입니다. 지금은 최종 브리핑 시간입니다.”

“알겠습니다.”

최진호 대령은 각자에게 이번 임무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오프라인에 대한 지시도 잊지 않았다.

“국방부에서 오프라인 역시 이번 작전에 함께 참가하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3번째 고속단정에 탑승해 가장 마지막에 삼호 주얼리호에 오를 겁니다. 배에 오른 순간 여러분은 우리와 같은 청해 부대 소속 대원입니다. 절대로 저희 지시를 어기거나 개별 행동을 하여서는 안 됩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대령님.”

나는 빠르게 그의 말에 답했다.

1시간여의 브리핑이 끝나고 모두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새벽 3시에 일어나야 하는 만큼 선내는 9시가 되기도 전에 모두 소등되었다.

1시간, 2시간.

시간은 흘러가는데 긴장감에 잠이 오지 않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마찬가지였는지 여기저기서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드디어 새벽 3시.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구나. 실수하지 말아야지.’

나는 뜬눈으로 지새운 몸을 힘차게 일으켰다.

다른 이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어찌나 깊이 잤는지 다른 분들 자는데 제가 코를 곤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이덕오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코를 골긴…… 밤새 뒤척거리더니.’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이덕오의 어깨를 가볍게 주물러 주었다.

우리는 어제 나눠 받은 해군 특수 전여단 복장으로 갈아입고 각자의 장비를 챙겼다.

이덕오는 취재를 하지 않기에, 현장에 가지 않아도 무방했지만, 어찌나 고집을 부리는지 결국 동행하기로 결정했다.

“제가 의리 빼면 시체라고요! 형님들 다 보내고 저 혼자 여기서 어찌 있습니까?”

“너는 몸뚱이가 크니까 표적이 되기도 쉽겠다. 항상 내 뒤에 숨어.”

“아이고 창후 형님. 그런 건 거울이나 보고 이야기하십쇼.”

“뭐?”

“하하하.”

우리는 일부러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평소처럼 행동했다.

선내에서 전투 배치 방송이 나오자 모두 중갑판으로 이동했다.

앞에 두 팀이 나가고 우리 팀의 고속단정이 진수되었다.

김기오 중령이 직접 지원해서 우리 팀을 지휘하기로 했다.

“직접 안 오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어차피 여러분은 제 지휘 소관입니다. 여러분이 잘돼도 제 탓, 안 돼도 제 탓. 그러니 우리는 운명 공동체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중령님.”

“저야말로 잘 부탁하겠습니다. 모두 살아서 돌아옵시다!”

김기오의 표정에는 사뭇 진지함이 묻어 있었다.

그제야 이게 실전이라는 실감이 들었다.

모두 고속단정에 탑승하자 삼호 주얼리호를 향해 은밀 기동이 빠르게 시작됐다.

20여 분이 지났을까.

고속단정이 어느 정도 삼호 주얼리호에 접근하자 미리 약속한 것처럼 링스 헬기에서 빨간 불빛들이 선박으로 내리꽂혔다.

헬기에서 K-6 사격이 시작된 것이다.

투투투투투투투투투!!!!!

며칠 전 들었던 중기관총의 둔탁한 소리가 새벽의 아라비아해를 가득 메웠다.

링스 헬기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라 해적들이 시선을 우현으로 돌리는 사이.

최영함이 좌현의 해적들을 향해 집중 사격에 나섰다.

펑펑!

투투투투투투!!!

최영함에서도 위협 함포 사격과 함께 함교의 K-6 기관총을 동원해 지원 사격에 나서며 해적들의 정신을 빼앗았다.

그사이 고속단정들은 빠르게 선미를 향해 돌진했다.

피융!

간간이 들리는 저격수들의 사격 소리를 들으며 해군 특수 전여단 요원들은 산을 오르듯 선체를 등반하였다.

A 팀이 안착하고, 이내 B 팀이 안착하였다.

탕탕!

탕탕탕!

위에서는 교전이 벌어지는 모양.

상황을 살피던 김기오가 갑판을 장악했다는 무전을 받았다.

내게 고개를 까닥거린 그는 곧바로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우리도 곧장 그를 따라 사다리를 잡았다.

사다리를 이용해 선체를 올라가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해군 특수 전여단 요원들과 달리 우리는 이런 훈련을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지 않던가.

하지만 결코 이들에게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누구 하나 낙오하지 않고 삼호 주얼리호에 오를 수 있었다.

배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자 어느새 선교에 올라선 해군 특수 전여단 요원들이 보였다.

링스 헬기가 환하게 선교를 비추며 해적들을 위협했다.

박창후는 가방에서 빠르게 카메라를 꺼내 이들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나와 이덕오, 안재영 그리고 김기오는 박창후의 주변에서 동태를 살피며 그를 엄호했다.

C 팀인 우리가 계단을 통해 선교로 접근하자, A 팀과 B 팀이 선교 내부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섬광탄.

눈이 부셔 당황하고 있던 해적들을, 선교로 진입한 해군 특수 전여단 요원들이 빠르게 제압했다.

선교 모퉁이를 살펴보니 삼호 주얼리호의 선원들이 두려움으로 고개를 떨어뜨린 채 모여 있었다.

요원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우리는 대한민국 해군 청해 부대입니다! 한국 사람은 고개를 들어 주십시오!”

그제야 선원들이 안도의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선원 중 한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해적이 선장을 쐈습니다!”

그가 가리킨 방향에는 석종호 선장이 총에 맞은 채 쓰러져 있었다.

다행히 그는 의식이 있었다.

요원들이 다가가 빠르게 지혈을 시작했다.

요원들은 선원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대조해 가며 신원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크흑……. 고…… 고맙습니다. 여러분.”

선원들은 이제야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뜨거운 눈물과 함께 요원들을 향해 고맙다며 손뼉을 쳤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여긴 C 팀이 맡아 주시고, 우리는 선체를 다시 수색하겠습니다.”

A 팀과 B 팀은 선교의 안전을 우리에게 맡기고 삼호 주얼리호 내부를 살피러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부에서 총소리가 들려왔고, 무전기에선 이들이 선체에 숨어 있는 해적들을 사살했다는 내용이 들려왔다.

“A 팀. 선장실 근처에서 해적 두목으로 보이는 이를 사살했다. 오버.”

해당 무전이 들리고 10분 뒤.

저격수 이외에는 일시 사격 중지 명령이 떨어지면서, A 팀이 부상이 심한 석종호 선장을 싣고 최영함으로 먼저 떠났다.

“이…… 이제 다 끝난 걸까요?”

이덕오가 김기오에게 물었다.

김기오는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직 해적이 모두 소탕되지 않았습니다. A 팀이 복귀하면 다시 소탕에 나설 겁니다.”

“끈질기네요, 해적들. 이쯤 되면 포기할 것도 같은데.”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죠. 어쩌면 지금이 가장 위험한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제 근처에서 절대 떠나지 마십시오.”

그때였다.

다다다다다다다!

갑판 쪽에서 격렬한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건.

# 4장 훈장

“도대체 무슨 일이야!”

김기오가 무전에 대고 소리쳤다.

<지지지직--- 잔당들이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무전에선 교전 소리가 거칠게 흘러나왔다.

아니 무전을 통하지 않고서도 알 수 있었다.

평화가 찾아온 줄로만 알았던 삼호 주얼리호에는 다시 총소리가 가득했다.

선원들은 두려움에 떨며 온몸을 움츠렸다.

그때였다.

박창후가 조심스럽게 밖을 살피더니 갑자기 카메라를 들고 선교 입구로 뛰쳐나갔다.

“앗! 위험합니다!”

김기오가 소리쳤으나 박창후는 이미 선교를 나간 뒤였다.

“제가 잡아 보겠습니다!”

“아뇨, 위험해요. 여기 계세요!”

나는 김기오의 손을 뿌리치고 재빨리 선교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니 박창후가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박 부장님. 위험합니다. 어서 다시 들어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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