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42/200)

“어쩌면 이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사장님이나 어서 들어가세요!”

그는 내 말을 뿌리치고는 갑판 쪽으로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젠장!’

사고를 치면 안재영이 칠 줄 알았지 결혼한 박창후가 칠 줄은 몰랐다.

나는 박창후가 향한 계단과 선교 입구를 번갈아 살피다 결국 박창후의 뒤를 쫓았다.

2층으로 내려간 박창후는 카메라를 들고는 총소리가 나는 쪽으로 접근했다.

타다다당!

총소리는 선교에 있을 때보다 더욱 크게 들려왔다.

박창후에게 거의 근접했을 무렵.

그것은 거짓말처럼 그렇게 나타났다.

아래층에서 요원들에게 쫓긴 듯 헐레벌떡 도망쳐 온 해적 한 명이 우리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총을 겨눴다.

“박 부장님 위험합니다!!!”

탕!

나는 박창후를 밀치고 커다란 고통과 함께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얼마나 잠을 잤던 걸까.

눈을 떠 보니 등과 허리 쪽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두 개의 고통은 미묘하게 달랐다.

허리 쪽이 너무 오래 누워 있어서 얼얼한 느낌이었다면 등 쪽은 불에 덴 듯 뜨겁고 동시에 가시가 찌르는 듯 아팠다.

“아야…….”

탄성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앗! 백 사장님! 우 사장님 일어나셨어요!!!”

이덕오의 목소리였다.

힘겹게 눈을 떠 보니 병실이었다.

“우 사장! 우 사장! 정신이 들어요? 내 말 들려요?”

백철웅이었다.

아니 그를 비롯해서 이덕오, 안재영, 박창후, 그리고 홍지혜까지 보였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내가 그들을 향해 입을 열자 홍지혜는 눈물을 글썽였고, 박창후도 어울리지 않게 코를 훌쩍거렸다.

“사장님이 저 대신 총을 맞으셔서…….”

“네? 총이요?”

그럼 지금 등 쪽이 무척 아픈 이유가 혹시 총상 때문일까?

조심스럽게 등 쪽을 만져 보았지만, 붕대가 감긴 것 말고는 딱히 이상은 없었다.

“박 부장 대신 해적이 쏜 총에 맞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요.”

백철웅이 내 손을 꼭 잡고는 천천히 말했다.

“그럼 해적은요?”

“청해 부대가 모조리 소탕했죠. 우 사장님 쏜 녀석도 곧바로 뒤따라온 요원한테 처리되었어요!”

“아…….”

나는 뭔가 퍼뜩 생각이 나서 박창후를 보고 외쳤다.

“영상은요? 그럼 영상은 괜찮아요?”

“네. 그런데…….”

박창후의 얼굴이 밝지 않았다.

“왜요?”

“그게…… 제가 그때 찍은 영상은 김기오 중령에게 압수되었습니다. 멋대로 행동했다면서요.”

“네? 그럼 이전에 찍은 영상은?”

“그건 다행히 다시 돌려줬어요. 하지만 제가 선교에서 내려와서 찍은 영상은 빼앗겼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우 사장님.”

“아닙니다. 아무튼 다들 무사하신 거죠?”

내가 모두의 안부를 묻자 다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다친 건 세진이 너라고, 인마! 좀 괜찮아?”

안재영이 나를 다그쳤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하아……. 의사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는데 괜찮긴 뭐가 괜찮냐 짜샤.”

안재영의 말에 따르면 오만의 살랄라 국제 병원으로 긴급하게 이송된 나는 촌각을 다투는 수술 끝에 겨우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걱정이 이해되는 한편 고마웠다.

“진짜 괜찮다. 다들 무사했다니까 그럼 됐지.”

모두의 표정에서 못 말린다는 웃음이 보였다.

홍지혜만 빼고.

“지혜 씨는 어떻게 온 거예요?”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홍지혜가 말이 없자 백철웅이 대신 답했다.

“소식 듣고 저랑 같이 왔습니다.”

“네? 그럼 한국에는 누가 남아 있어요?”

“최루리 부장이 남아서 관리하고 있죠.”

“휴. 다행이네요.”

“지금 이 상황에서도 그런 말이 나와요, 정말!”

홍지혜가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나는 최대한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어떡합니까? 회사 키우겠다고 총까지 맞았는데 회사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그제야 홍지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음을 보였다.

* * *

살랄라 국제 병원에서 2주를 보낸 뒤 우리는 청와대에서 내준 전세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전세기가 끝이 아니었다.

전세기에서 내리자마자 청와대 홍보 수석이 마중 나오더니 곧바로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옮겨져 검진을 받았다.

검진 후에는 차를 타고 이동하여 광화문에 있는 5성 호텔의 스위트룸 키가 손에 쥐어졌다.

* * *

입국 다음 날.

안정을 확인한 청와대는 곧바로 나를 불렀다.

청와대 접견실 문이 열리면서 이국대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평소와 다르게 직접 걸어와 나에게 악수를 건넸다.

“수고하셨소. 우 사장.”

“아닙니다. 대통령님. 마무리가 좋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저희 쪽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큰 실수는 무얼요. 그나저나 몸은 좀 괜찮습니까? 등 쪽에 총을 맞았다고 들었는데?”

그는 내 등을 가리키며 괜찮냐고 물었다.

“네. 처음에는 많이 불편했는데 이제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병원에서도 꾸준히 운동하고 재활하면 괜찮아질 거라더군요.”

“다행입니다. 영상 봤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는 겁니까? 겁도 없이.”

“아? 저희 박창후 부장이 찍은 영상 보셨군요?”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 잘못했으면 제가 오프라인 때문에 하야할 뻔했습니다.”

그가 책임지고 승인한 작전이었다.

우리 해군이 해외에서 벌이는 첫 인질 구출 작전이었고 오프라인은 유일하게 따라간 언론사였다.

모든 언론사에 엠바고를 요청할 정도로 보안에 신경 썼는데 거기 보낸 언론사 기자가 총에 맞고 죽었다면?

안 그래도 그의 인기는 그리 높지 않았는데 임기도 끝나기 전에 지지도가 바닥을 찍고 위기에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저희의 불찰입니다.”

“아무튼 잘 마무리되었고, 오프라인이 찍은 다큐멘터리와 기사는 아주 반응이 좋아요. 덕분에 내 지지도도 많이 올랐고요.”

박창후는 자신의 잘못을 속죄라도 하듯 다큐멘터리 제작에 공을 들였다.

덕분에 도저히 혼자서 찍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영상이 완성되었다.

해당 영상은 토요일 황금 시간대에 HBS와 오프라인 홈페이지 그리고 오프라인 유튜브 계정에 동시 방영되며 70.9%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HBS가 자체 집계한 시청률로는 역대 최고 기록.

심지어 세계 최대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인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박창후는 그 영광을 내게 돌리고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국대의 말처럼 해당 다큐멘터리가 나간 뒤 국정 지지도는 22%나 오르며 1년 만에 다시 50%대로 오를 수 있었다.

‘이국대의 입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을 만하네.’

한국에 돌아온 뒤 수많은 안부 전화가 걸려 왔지만 아쉬움을 표한 건 이광우 의원이 유일했다.

“우 사장! 몸 좀 괜찮죠?”

“네 의원님.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네. 다행인데. 그것참 그런 영상을 찍어 오면 우리 입장이 참 그러네요…….”

“하하. 민주 통일당에서도 멋진 걸 기획하시면 또 영상 찍겠습니다.”

이국대는 내게 국민 훈장인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이어서 회사에서도 2주간의 공식 휴가가 부여되었다.

“아니, 백 사장님. 2주간 나오지 말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아직 회복하려면 시간도 더 필요할 거고, 그간 고생이 많았으니 제발 2주간 아무 생각하지 말고 푹 쉬었다 오세요.”

“저 괜찮다니까요. 2주간이나 쉬면 회사는…….”

“회사가 뭐요! 우 사장 말고는 다들 바봅니까?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회사 걱정은 그만하고 우 사장 몸 생각이나 해요.”

“아니 그래도…….”

“됐습니다. 2주간 유급 휴가고, 회사 근처에 얼씬거리기만 해도 바로 쫓아낼 테니까 쉬다 오세요. 이만 끊습니다.”

“백 사장님, 백 사자…….”

나는 어쩔 수 없이 제주도에 내려가는 표를 구해야만 했다.

광화문에서 김포 공항까지 호텔에서 잡아 준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데 택시 기사가 몇 번이나 백미러로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택시 기사가 한참을 말을 걸까 말까 고민하는 게 느껴져서 내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걸었다.

“기사님. 뭐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세요. 왜 그리 안절부절못하세요?”

“저기…… 혹시 그 오프라인 사장이신 우세진 사장 아니신가요?”

“그렇습니다만 그걸 어떻게?”

“역시! 어제 뉴스에서 봤습니다!”

“뉴스요?”

“네. 아덴만 여명 작전 단독 취재하시다가 해적 총을 맞으셨죠? 그걸로 어제 국민 훈장 받으셨고요.”

“그랬죠.”

“이거 정말 영광입니다. 내리시기 전에 사인 한 장 받을 수 있을까요?”

“네. 뭐 그 정도야.”

지금까지 나름 뉴스에 많이 얼굴이 팔렸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제 아들하고 며느리도 오프라인의 엄청난 팬입니다. 이거 진짜 영광입니다!”

“그래요? 고마우신 분들이네요.”

“우 사장님 전에도 좋은 일 정말 많이 하셨더라고요. 고속도로에서 트럭 기사랑 버스 승객들도 구하셨고, 비행기에서는 응급 환자도 구하셨고요. 한국의 자랑이십니다.”

“에이……. 아닙니다. 그저 운이 좋았어요.”

“하하하. 겸손하시기까지. 오늘 택시비는 안 받을 테니까 내리기 전에 꼭 사인만 해 주세요!”

사인 네 장.

끝끝내 요금을 안 받겠다는 그에게 택시비로 지불한 가격이었다.

택시 아저씨뿐이 아니었다.

공항에 들어서면서부터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 집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나를 알아보고 사인을 부탁하고 사진을 같이 찍자는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연예인의 삶이 무척이나 고달프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만 유일하게 그런 나를 평소와 똑같이 대해 주는 이가 있었으니.

엄마였다.

엄마는 현관에서 한참이나 울면서 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모습을 보고 옆에서 한 씨 아저씨가 한마디 거들었다.

“세진아! 인마! 그런 일이 있으면 엄마나 나한테 문자 하나라도 하지 그카나?!”

“죄송해요. 걱정하실까 봐요.”

“김 여사도 고마 질질 짜소! 엥가이 했으니까 세진이도 쉬야제!”

하지만 엄마의 울음은 한참이나 그칠 줄 몰랐다.

내가 현관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30분이나 지난 후였다.

나는 엄마와 한 씨 아저씨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는 용서를 구했다.

엄마는 다시는 그런 위험한 곳에는 절대 가지 말라며 청와대에서 받은 훈장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셨다.

내가 다시는 그런 곳에 취재를 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엄마의 잔소리가 끝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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