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TV를 켜자, 아침 뉴스에서 ‘조간신문 살펴보기’라는 코너가 진행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익숙한 얼굴과 함께 오프라인이 등장했다.
내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찍힌 고려 일보의 1면이었다.
<자극적인 소셜 언론. 이대로 괜찮나?>
제주도의 겨울은 춥다.
두꺼운 외투 사이사이를 침투한 칼바람이 순식간에 잠기운을 데리고 사라졌다.
대도시인 서울과 다르게 편의점이 많지 않은 까닭에 차를 타고 인근의 편의점을 방문했다.
편의점 문을 열자마자 신문 가판대가 보였다.
나는 얼른 고려 일보를 꺼내 집었다.
TV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편의점 주인으로 보이는 남성이 신문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신문에는 내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실려있었다.
“우세진 사장님?”
“네.”
“신문에 나셨네요?”
“그러게요.”
그는 신문 제목을 살펴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나쁜 놈들이요. 자기들이 한 짓은 생각도 안 하고 왜 열심히 하는 오프라인을 공격하는지…….”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부모님이 여기 비자림 인근에 사시죠?”
“아, 네. 그걸 어떻게?”
부모님이라는 말에 잠시 주춤했으나 짐작 가는 바가 있어 그렇다고 대답했다.
“거기 아버님이 매일 이 주변 도시면서 자랑하시거든요. 아들이 오프라인 사장이라고요.”
“그래요?”
“네. 저희 편의점도 단골이세요. 자주 오시죠.”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났다.
나는 커피 우유 하나와 고려 일보 한 부를 사서 차 안으로 들어왔다.
핸들 위에 신문을 올려놓고 살피니 무려 1페이지부터 3페이지까지가 오프라인에 대한 비방이었다.
고려 일보 논설 위원장을 시작으로, 서울 대학교 교수, 유명 국회의원 등이 나서 오프라인이 언론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미친놈들! 고려 일보가 훨씬 심하면 심했지, 어찌 그걸 오프라인의 문제점이라고 이야기하는지…….”
기가 찼다.
완벽한 선전 포고였다.
게다가 현 정권의 비호 아래 G20 정상 회의, 연평도 포격 사건, 아덴만 여명 작전을 단독 보도하는 등 취재 특혜를 얻었다며 정부에 대한 공격도 있었다.
‘서동탁과 이국대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더니 정말인가 보군.’
나는 즉시 모원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입니다. 이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우 사장.
“제가 왜 전화를 걸었는지는 잘 아시리라 봅니다.”
-저도 신문 봤습니다. 서동탁 사장이 오프라인에 서운한 게 많은가 봅니다.
“정부와 청와대도 같이 공격하더군요.”
-갈라섰다고 보는 게 좋겠죠.
“제가 봤을 때는 전혀 근거도 없고, 논리도 없습니다. 언론 재단 차원에서 경고라거나 제재를 할 수는 없습니까?”
-아시다시피 재단은 언론 산업 진흥을 위한 곳이라 제재 등은 어렵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아무튼 이사장님도 서동탁 사장을 보시거든 넌지시 경고의 말씀 정도는 전해 주세요. 도가 지나치다고요.”
-그러죠.
그렇게 정리될 줄만 알았던 오프라인에 대한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니 시작이었다.
고려 일보를 시작으로 센터 일보, 서아 일보, 한민족 신문, 파란 일보 등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프라인에 대한 공격이 시작됐다.
나는 바로 제주도를 떠나 서울로 올라갔다.
백철웅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사흘 만에 나타난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 사장님! 저 쉬어도 다들 열심히 하신다더니 결과가 이게 뭡니까?”
“미안하게 됐습니다.”
“막진 못해도 반론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
나는 안재영을 백철웅의 사무실로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고려 일보 쪽은 뭐래요?”
“동기들 통해서 들은 정보로는, 서동탁이 반오프라인 연합군을 조성했다고 하더군요. 한국의 메이저 언론사 대다수가 동참했다고 합니다.”
“반오프라인 연합군이요? 어처구니가 없네요. 우리가 무슨 불구대천 원수도 아니고!”
“그게 그들 생각은 다른가 봅니다. 오프라인이 갑자기 커지니 자신들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고 생각하나 봐요.”
“참나. 평소에 좀 잘들 하든가요.”
“폭풍 성장도 폭풍 성장이지만 현 정권의 비호를 받고 있는 건 사실이니, 그 부분에서 불만들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가 일부러 청와대에 로비를 한 것도 아니고, 그쪽에서 다른 곳들을 못 믿으니까 우리한테 정보를 주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그래도 그들을 그런 사실을 모르니까요.”
“안 되겠습니다. 이번 주 내로 기자 회견 잡아 주세요. 지금까지 오프라인에 대해 나온 비난들 모아서 하나하나 반박할 겁니다. 더 이상 저들에게 마이크를 주면 안 되겠어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안재영이 나가고 백철웅이 입을 열었다.
“괜히 다른 언론사를 적으로 돌렸다가 더 힘들어지는 거 아닙니까?”
“적이요? 저들이 먼저 저희를 적으로 돌렸습니다.”
“그렇지만 저쪽은 다수고 우리는 혼자입니다. 상대가 될까요?”
“여론은 저희 편입니다. 그걸 떠나서 저들이 주장한 대다수는 허위이거나 과장입니다. 오히려 그들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잘못이 더 커요. 제대로 준비해서 반박한다면 우리가 더 유리합니다.”
“휴. 알겠습니다. 기자 회견은 우 사장님이 알아서 준비해 주세요.”
“네.”
나는 즉시 부장들에게 현재 다른 언론사가 오프라인을 비방하는 근거에 대해 반박하는 자료를 모으라고 지시했다.
나는 나대로 자료를 모으며 부장들이 전해 주는 자료를 참고로 기자 회견장에서 발표할 PPT를 제작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PPT 제작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저녁도 잊은 채 컴퓨터 앞에 붙어 있었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온몸이 찌뿌둥했다.
‘너무 오래 했나, 총 맞은 자리가 아프네.’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11시.
하품을 하며 방을 나서니 누군가가 타이핑하는 소리가 들렸다.
‘응? 이 시간까지 누가 또 있었나?’
키보드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 보니 홍지혜가 아직 자리에 있었다.
“홍 부장님? 이 시간까지 무슨 일이에요?”
“앗! 우 사장님. 반박 자료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
“하하. 그건 제가 할 이야기예요. 저녁은 드셨어요?”
“저녁이요? 그러고 보니 못 먹었네요.”
“밥은 먹고 해야죠. 괜찮으시면 요 앞에 국밥집 가실래요?”
“아. 저야 좋죠.”
“그래요. 갑시다.”
나는 홍지혜와 함께 오프라인 사무실 앞에 있는 24시 국밥집에 들렀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저렴한 국밥에 술을 마시고 싶은 애주가들로 손님이 적지 않았다.
“아줌마! 여기 국밥 두 개요. 아 참, 지혜 씨, 소주 괜찮아요?”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이제 반주가 생활화된 듯 보였다.
홍지혜는 수저통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내 내게 내밀며 말했다.
“우 사장님. 많이 힘드시죠?”
“뭘요. 그냥 어처구니가 좀 없을 뿐이죠.”
“네. 정말이요. 언론사라는 건 지성인들의 집합체인데……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이는지 모르겠어요.”
“다들 자기 밥그릇 뺏기는 거라는 생각에 악착같이 달려드는 거죠. 나쁜 놈들이에요.”
“목숨을 걸고 취재해 온 사람한테 한다는 이야기가 사상 초유의 작전에 잿물을 던질 뻔했다는 둥 한국 언론계를 어지럽힌다는 둥…… 휴. 진짜 진절머리가 나네요.”
“하하. 오늘 스트레스 많이 받으셨나 봐요?”
“당연하죠. 오프라인 직원 중에서 스트레스 안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거예요.”
“한 잔 받으세요. 오늘 늦게까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 사장님도요.”
한 병 두 병 빈 병이 늘어날수록 홍지혜는 평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에 올 때만 해도 이런 건 꿈도 못 꿨죠. 오바마한테 질문을 던지고, 주변에서는 스타 기자라고 칭송해 주고.”
“그게 다 지혜 씨가 잘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고생 많아요.”
“고생이야 우 사장님이 많죠.”
“요즘은 뭐 고민거리 없어요?”
“고민거리요? 딱히 없네요. 바빠서 정신이 없다 정도?”
“사장으로서 미안하네요.”
“미안은 뭘요. 회사랑 같이 성장한달까, 아주 즐거워요, 요즘.”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홍지혜에게는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냈다.
<지혜 씨, 감사합니다. 지혜 씨 같은 인재들 덕분에 오프라인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사장으로서 늘 고맙고 미안합니다.>
* * *
다음 날.
나는 백철웅에게 오늘은 재택으로 근무하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총에 맞은 부위가 쑤셨기 때문이었다.
좁은 고시원에서 쭈그리고 앉아 타이핑을 치니 허리가 아파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결국 노트북을 들고 고시원 앞에 카페 ‘적혈마’로 이동했다.
“오! 오랜만!”
“네. 형님 잘 계셨어요?”
“나야 뭐 늘 똑같지. 그러는 우 사장은 요즘 장안의 화제던데?”
“장안의 화제요?”
“신문이고 방송이고 죄다 오프라인 욕밖에 안 하니!”
“에혀. 그것 때문에 골치 아파요.”
“그럴 것 같더라. 커피 시원하게 내려 줄 테니까 마시고 화 좀 가라앉혀.”
“고맙습니다. 형님.”
“고맙긴 뭘.”
그는 늘 그랬듯 케냐 AA 원두로 만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대령했다.
나는 컵을 들어 단숨에 절반 가까이 들이켰다.
“천천히 마셔. 그러다 체할라.”
“형님이 만드는 커피는 왜 이렇게 맛있어요? 진짜 마약 커피라니깐!”
“우하하하하하. 내가 우 사장을 아끼는 마음에 만드니 당연히 그런 것 아니겠냐?”
“장사는 어때요?”
“뭐 늘 똑같지. 한가하니 나야 좋지만.”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최루리를 비롯해 국제부 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며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요즘 잘나가는 대기업에서는 사내에 카페가 있어서 저렴한 금액에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이야기.
“저기 형님. 여기 임대죠?”
“응? 그렇지. 왜?”
“혹시 우리 회사에 들어오실래요?”
“응? 너희 회사에? 거기 언론사 아냐? 나는 한 번도 글 써 본 적 없는데?”
“아뇨. 기자가 아니라 카페 사장으로요.”
“카페 사장?”
“네. 요즘은 이렇게 회사와 계약을 맺고 사내에 카페를 들이는 걸 사내 복지 차원에서 많이 한다고들 하더라고요.”
“회사랑 계약을?”
“네. 저희가 고용 관계를 맺는 게 아니라 계약을 하는 거죠. 오프라인 사무실 한 공간에 카페를 임대하고, 거기에 들어와서 판매하시는 거예요. 직원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커피를 마시고, 회사는 나머지 금액을 대신 내어 드리고요. 물론 임대 금액은 공짜로 해 드릴게요.”
“고, 공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