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4/200)

“네. 대신 커피 금액은 싸게 해 주셔야 하고요.”

“아니 나야, 커피를 많이 팔 수 있다면야 지금보다 훨씬 싸게 할 수 있지!”

“그렇죠? 안 그래도 저희 인원이 늘어날 예정이라 위에 한 층을 더 임대하려고 하거든요. 그럼 공간도 조금 남고 해서 한쪽 공간을 카페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생각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이야. 이거 진짜 생각도 못 했던 일인데…… 챙겨 줘서 고맙네, 우 사장!”

“아니에요. 예전부터 형님 가게 커피 너무 맛있는데, 위치도 그렇고 인테리어도 그렇고. 사람이 너무 없어서 아쉬워하던 차였어요.”

“하하하하. 이거 다 내가 한 건데?”

“그러니까 형님 인테리어 감각은 꽝이라는 거죠.”

“그런가? 하하.”

우리는 웃으며 카페 인테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이나 나눴다.

그때 안재영에게 문자가 왔다.

<사장님! 토요일 낮 12시 시청 앞 서울 광장에서 기자 회견 세팅 완료했습니다!>

* * *

시청 앞 서울 광장.

많은 이들이 가족과 연인의 손을 붙잡고 토요일 한낮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마이크를 잡았다.

찌잉-

스피커의 고음이 여유롭던 서울광장에 가득 울려 퍼졌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사람들이 이쪽을 주목했다.

“안녕하십니까. 오프라인 공동 사장 우세진입니다.”

우세진이라는 말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발걸음을 멈추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본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근 오프라인을 두고 일어졌던 몇 가지 불미스러운 사건들에 대해 반박하고자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토요일 점심에 기자 회견장을 방문해 주신 기자님들과 여러 관계자 여러분께 거듭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나는 잠시 마이크를 멈추고 좌중에 인사를 건넸다.

기자들의 표정에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기대된다는 표정과 함께 주말에 기자 회견을 연 것에 대한 불만이 반씩 섞여 있었다.

통상 기자 회견은 평일에 열렸다.

하나는 기자들의 편의를 위해서였고, 또 하나는 주말엔 신문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즘같이 평일과 주말 구분 없이 온라인으로 뉴스를 보는 시대에는 크게 의미 없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 당장 저희 오프라인에 대한 공격, 그리고 소셜 언론에 대한 공격을 멈춰 주시기를 간곡히 청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전혀 근거 없는 비방 그리고 스스로를 옭아매는 자승자박에 가까운 문장들로 저희 오프라인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플래시 세례가 터졌고, 기자들은 노트북을 열고 내가 하는 한마디 한마디를 그대로 받아쳤다.

“첫째. 저희 오프라인은 언론의 적이 아닙니다. 그 예로 오프라인이 설립된 이후 한국의 언론 자유 지수는 69위에서 20위권으로 단숨에 뛰어올랐습니다.”

언론 자유 지수는 국경 없는 기자회가 2002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자료로, 180개 국가의 언론 자유도를 여러 지표를 토대로 순위를 정해 나타낸 공신력 높은 평가였다.

실제로 국경 없는 기자회는 해당 자료에서 특별히 한국에 대해 언급하며 오프라인이라는 소셜 언론의 등장으로 언론의 미래가 기대된다는 후한 평을 내리기도 하였다.

“둘째, 지금 언론은 SNS의 부정적인 면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처음 TV가 보급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은 정치인 간 토론 활성화로 인해 민주주의가 더 활성화되리라 기대했지만, 뉴스 소비는 줄고, 엔터테인먼트 소비가 더 늘었습니다. 인터넷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TV와 인터넷이 쓸모없다고 할 수 있나요?”

“아니요!”

나의 질문에 서울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일에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공존합니다. 그렇지만 현재 언론에서는 SNS와 소셜 언론의 부정적인 면만 집중적으로 부각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희도 전통 언론의 부정적인 면만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기업을 협박해 돈을 뜯는다거나, 균형 있는 기사가 아닌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기사만 쓴다고 말이죠.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방법도 아니거니와 의미 없는 글자 낭비일 뿐일 테니까요.”

“맞소!”

일부 지지자들이 목에 힘을 주고 응원해 주었다.

나는 미소를 띠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는 청와대의 특혜를 받지 않았습니다. G20 정상 회의 공식 언론사 타이틀은 그저 형식상에 불과했습니다. 여기 계신 기자분들에게 묻겠습니다. 저희 오프라인만이 G20 정상 회의를 취재하고 단독 보도하였습니까?”

기자들이 고개를 저었다.

“연평도 포격 사건은요? 저희는 단지 과열된 현장 취재를 지양했고, 청와대가 보내 준 고급 정보를 국가 안보에 맞게 적절히 가공하여 내보냈을 뿐입니다. 저희가 청와대에 고급 정보를 요청했던 게 아니라 청와대에서 저희를 지목해서 정보를 넘겨준 것이고요. 이것이 저희의 잘못입니까?”

“아닙니다! 오프라인은 아무 잘못 없어요!”

“아덴만 여명 작전의 경우 제가 무리를 한 것은 맞습니다. 청와대에 오프라인이 현장 취재를 하고 싶다고 강하게 요청하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청와대나 정부에 저희처럼 현장 취재를 요청한 언론사는 단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아닙니까?”

내가 기자들을 둘러보고 묻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일부 기자는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인 채 모니터만을 바라보았다.

실제로 오프라인을 제외한 다른 언론사에서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토대로 기사를 냈을 뿐 아덴만까지 가려 하지 않았다.

정부의 취재 제한 조치를 떠나서 애초에 현장을 취재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아시겠지만 저는 현장에서 총에 맞았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잘했다는 게 아닙니다. 중요한 작전 도중에 큰 피해를 입힐 뻔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저희는 목숨을 걸고 현장을 취재하였고, 또한 대한민국 해군은 역사에 길이 남을 큰 성과를 올렸습니다. 이것이 저희의 특혜입니까?”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나는 다시 강조하였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오프라인만의 특혜이고, 저희 오프라인이 언론에 피해를 끼치는 겁니까?”

“아닙니다!”

“저는 저희 오프라인이, 대한민국 언론의 공적이 아닌, 대한민국 언론을 한 단계 성장시킨 선봉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사 여러분과 그리고 여기 계신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께 말씀드립니다. 저희 오프라인은 현재에도 이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로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독자 한 분 한 분만을 위해 사회를 감시하고, 진실 보도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그런 언론사가 되겠습니다, 여러분!”

“와아아아!!”

현장에 있는 시민들뿐 아니라 몇몇 기자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 주었다.

* * *

기자 회견 이후.

언론의 오프라인에 대한 공격은 눈에 띄게 줄었다.

일요일에 신문을 내는 곳은 적으니 따로 지면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온라인에서는 꽤 화제가 되었다.

대체로 기성 언론사가 오프라인에 한 방 먹었다는 반응이 주였다.

고려 일보는 간간이 오프라인이 아닌 소셜 언론의 위험성에 대한 컬럼을 실었지만, 1면이 아닌 가장 뒤에 있는 오피니언 면이었다.

‘서동탁도 더 이상 다른 언론사를 규합시킬 명분은 없겠지.’

나는 안재영을 사무실로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네. 안 부장. 요즘 취재부는 어때요?”

아덴만 여명 작전 이후 오프라인은 서른 명의 인력을 새로 뽑았다.

나는 약속대로 안재영을 신설한 취재부의 부장으로 임명하고, 휘하에 4명을 배치하였다.

“한 명 한 명이 일기당천입니다. 글도 잘 쓰지만, 취재 열정이 굉장해요. 우리는 언제 아덴만 여명 작전 같은 곳에 취재 가냐고 맨날 물어보네요.”

“그런 일이 또 언제 터질지 모르니까 안 부장님이 잘 교육시켜 주세요.”

“여부가 있습니까. 사장님도 지원 좀 팍팍 해 주세요!”

나는 안재영과 취재부와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갑인 데다, 뛰어난 인재와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나의 심리를 미리 헤아려서 좋은 조언을 해 주었다.

“그나저나 등 쪽은 좀 어때요?”

“가끔 무리를 하면 아프긴 한데, 괜찮습니다.”

“생각보다 오래가네요. 조심하십쇼.”

“네. 안 부장도 건강 잘 챙기세요. 젊다고 너무 술만 마시지 말고요.”

“하하. 사장님도 저랑 동갑이면서 무슨 그런 말을. 항상 건강하십쇼.”

“내일부터 2주간 휴간데, 안 부장은 뭐 하세요?”

“벌써 하와이행 티켓 끊었습니다.”

“하와이요?”

“네. 제가 서핑을 좋아해서요. 왜 전에도 오프라인 들어오기 전에 하와이 다녀왔었는데.”

나는 당시 안재영이 입었던 우스꽝스러웠던 옷이 떠올라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설마, 또 그때처럼 이상한 옷 입고 나타나는 건 아니죠? 밑에 애들도 많은데 조심하세요.”

“에이, 그게 왜요. 은근히 꼰대라니깐. 그러는 사장님은 2주간 뭐 하세요?”

“저야 제주도 내려가야죠.”

“키야. 제주도 진짜 좋다. 부럽네요.”

“그러니 안 부장도 빨리 제주에 땅이나 집 사 둬요.”

“하하. 안 그래도 요즘 좀 둘러보고 있습니다.”

“직원들에게는 이번 휴가 취지나 의미에 대해 잘 설명해 주시고요.”

“넵!”

기자 회견이 끝나고 나와 백철웅은 고민 끝에 전 직원들에게 보름간의 특별 휴가를 부여했다.

기존의 직원들에게는 언제든지 쓸 수 있는 보름간의 휴가를 추가로 제공하는 동시에, 전사적으로 보름간 쉬기로 결정한 것.

새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 사원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나올 만한 일이었다.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2주일씩이나 전사 휴가를 주다니. 개꿀이네!”

사무실을 나온 나는 고시원에 들러 내일 내려갈 짐을 쌌다.

그때였다.

전화기가 울렸다.

주소월이었다.

‘응? 무슨 일이지?’

나는 받을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이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은. 너네 회사 내일부터 2주간 쉰다며?

“응? 그걸 네가 어떻게 아냐?”

-흥. 안재영이랑 동창인 건 너 혼자만이 아니거든.

“그래서 무슨 일인데?”

-너 전에 분명 나한테 밥 산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기사 1면 냈던 거 기억 안 나?

그제야 나는 주소월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아……. 맞다 맞아. 내가 정신이 없었구나. 미안하다.”

-미안하면 내일 시간 좀 내.

“나 내일 제주도 가야 하는데.”

-하루 늦춘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거 아니거든.

주소월은 집요한 여자였다.

이 이상 자극했다가는 당장 집 앞까지 찾아올지도 모른다.

나는 벽에 붙은 달력을 살피며 대답했다.

“알았다. 그럼 내일 언제 봐? 너 퇴근하고 나서?”

-나도 내일 연차 냈어. 오전에 보자.

“응? 연차를 냈다고?”

-그래. 내일 신촌 무비박스 영화관에서 보자. 영화는 내가 살 테니까 밥은 네가 사.

영화라.

그러고 보니 회귀하고 나서는 단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다.

‘영화광인 주소월 때문에 참 영화를 많이 봤었는데…….’

나는 씁쓸한 뒷맛을 다시며 약속 시각과 장소를 정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 * *

다음 날.

약속 장소인 신촌 무비박스 영화관에 도착하자 주소월이 평소에는 보지 못한 예쁜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다.

“여기야, 여기!”

주소월은 반갑게 웃으며 내게 영화 티켓을 건넸다.

영화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소셜 네트워크’였다.

페이스북의 창립 과정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전기 영화.

‘설마 오프라인이 소셜 언론이라고 이 영화로 고른 건가?’

주소월은 할리우드 영화보다는 인디 영화를 좋아했다.

소셜 네트워크가 블록버스터급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주소월의 평소 취향은 아니었기에 의아했다.

게다가 이 영화는 2010년 11월에 개봉한 영화로 벌써 개봉한 지 3개월이 지난 영화였다.

“뭐야? 페이스북에 관심 많아?”

“당연하지. 요즘 페이스북에 관심 없는 사람이 어딨냐.”

“그건 그런데, 네 취향은 아니지 않아?”

“내 취향이 뭔데? 너 좀 웃기다.”

주소월은 콧방귀를 뀌다니 스낵 코너를 가리켰다.

“이상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저기 가서 팝콘이랑 음료수나 사 와. 나 무슨 음료 좋아하는 건 알고 있지?”

나는 말 없이 스낵 코너에서 팝콘과 제로 콜라를 사다 그녀에게 건넸다.

“이건 안 까먹었네.”

주소월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짓고는 영화관으로 입장했다.

영화의 상영 시간은 121분.

2시간에 걸쳐 페이스북의 설립 도중 일어나는 여러 성공과 갈등 장면이 번갈아 나왔다.

B급 영화의 대가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이 영화를 2010년 최고의 영화로 뽑았을 만큼 흥미진진한 영화였지만 내게는 아니었다.

‘세 번이나 봐서 그런지 영 재미가 없네.’

나는 페이스북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욕심에 회귀 전 이 영화를 여러 번 보았고, 또한 해당 영화를 인용하여 여러 기사를 만들었다.

다 아는 내용을 다시 보니 그다지 흥미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주소월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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