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49/200)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은은한 조명이 켜진 밤의 정원.

원화성은 정해지와 함께 높이가 3m는 훌쩍 넘어 보이는 대문까지 나를 배웅했다.

“자주 놀러 오세요. 제가 좋은 분들 많이 소개해 드릴게요.”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회장님.”

용인에 위치한 원화성의 집에서 대학로까지는 막히지 않으면 차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하지만 도로에는 퇴근하려는 차들로 가득했다.

정체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라디오를 켜니 마침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가 연주되기 시작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손으로 운전대를 툭툭 친다.

한강의 야경과 노란색 헤드램프와 빨간색 테일램프의 반짝임이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선보였다.

‘가능하면 외부 간섭은 적을수록 좋지.’

투자자 입장에서야 공동 투자 방식을 통해 투자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어 좋겠지만, 창업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지분을 일부분 포기하는 것이기에 투자자가 많을수록 외부 간섭이 커져 자유도가 낮아질 우려가 있었다.

음악을 들으며 한참 고민하는 사이 벌써 차는 대학로 고시원 앞에 도착했다.

원화성의 집을 보고 와서 그런지 유독 고시원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아껴 써야지. 크게 불편한 것도 없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고시원으로 들어가는데 손에 쥔 스마트폰이 울렸다.

진양 그룹 안태익 회장이었다.

의외라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았다.

“네. 회장님. 우세진입니다.”

-우 사장님.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마음이 급해서 말이죠.

“무슨 일로?”

-저번에 리조트 사업에 투자하고 싶다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만?”

-투자하시죠. 저도 오프라인에 투자하겠습니다.

“네? 그게 무슨?”

-제가 오프라인에 100억을 투자하겠습니다.

“100억 원이요?”

-대신 그걸로 오프라인은 저희 리조트 사업에 투자하는 겁니다.

“네?”

-그러니까 우 사장님께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계시면 오프라인이 우리 진양 그룹이 추진하는 제주도 리조트 사업에 대한 지분을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흠.”

-대신 저희도 오프라인에 100억 원에 상당하는 지분을 갖게 되는 것이고요. 어떠십니까?

어떠냐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단 말인가.

제주도 리조트 사업 투자에 대한 대가로 오프라인의 지분을 받겠다니.

안 그래도 방금 원화성에게 시리즈 B 투자를 요청하고 오는 길이 아니었던가.

언젠가는 안재영의 아버지가 있는 진양 그룹으로부터 모종의 투자 제안이 오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나 빨리, 게다가 이런 스와프 딜(Swap Deal)의 형태로 올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투자 이유가 아드님이 저희 회사에 있기 때문인가요?”

나의 질문에 안태익이 웃으며 답했다.

-아뇨. 우 사장님. 저는 사업가입니다. 단지 아들 녀석이 거기 있다고 해서 거액의 투자를 결정하는 그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냉철하게 기업 분석을 하였습니다. 현재 사업의 포트폴리오, 수익률, 산업 전망, 대내외 평판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였죠. 그래서 제가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아십니까?

“어떤?”

-이건 당장 투자해야 한다고, 반드시 우리 진양 그룹과 함께 나아갈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고. 그런 결론이 나오더군요.

“영광입니다.”

-단지 제 의견만이 아닙니다. 저희 재무 팀의 보고 자료에서도 강력하게 추천하더군요.

“재무 팀 분들에게 식사라도 한번 대접해 드려야겠군요.”

수화기 너머로 안태익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저희 그룹 자회사 중에서도 벤처 캐피털이 있어 괜찮은 스타트업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지만, 오프라인 같은 곳은 또 처음 보았습니다. 과연 원화성 회장이 투자할 만하구나 싶더군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해야 할 것도 많고요.”

-하하. 그런 욕심과 열정. 우 사장님은 진정 사업가의 귀감이십니다.

진양 그룹의 오프라인에 대한 투자와 그로 인한 제주도 리조트 사업의 투자 결정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백철웅을 비롯한 내부에서는 만장일치로 통과되었고, 원화성도 놀랍다며 칭찬해 주었다.

“진양 그룹이라. 좋은 회사죠. 영화 사업 등에도 진출해 있으니 미디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도 않을 테고요. 좋은 투자입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걸로 제주도 리조트 사업에 대한 지분을 맞바꾸기로 하였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죠?”

나는 원화성에게 안태익과의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좋은데요? 저도 제주에 별장이 하나 있습니다만, 제주는 아주 매력적인 곳이죠. 잘하셨습니다.”

“기존 투자자이자 최초 투자자이신 회장님께는 말씀드려야 될 것 같아서요.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렇게라도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볼수록 신기합니다.”

“네, 어떤?”

“SNS와 취재만 잘하는 게 아니라 사업하는 솜씨도 정말 일품이라 말이죠. 실무랑 관리 그리고 영업은 각자 전문 영역이 있는 건데, 우 사장님은 그걸 다 잘하는 만능형이라 정말 보면 볼수록 신기합니다.”

진양 그룹이 오프라인에 100억 원을 투자한다는 뉴스가 나간 지 사흘 후.

원화성의 엔젤 머니에서 시리즈 B 투자로 750억을 오프라인에 투자한다는 소식이 발표되었다.

* * *

연이은 거액의 투자 유치 발표가 한국의 언론계와 경제계를 뒤흔든 지 오래지 않아.

다른 형태의 뉴스가 이웃 나라인 일본 전국을 흔들었다.

규모 9.0의 대지진이 동일본을 강타한 것이다.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일명 동일본 대지진이라 불리는 일본 근대 지진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

일본 정부 스스로가 2차 세계 대전 종식 이후 최악의 재난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 규모와 피해는 엄청났다.

사망자 수만 1만 5천 명이 넘었고, 행방불명자는 3천여 명이 넘었으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상자와 피난민이 발생했다.

해일과 화재로 마을이 지도에서 사라지고 정전, 단수, 통신 마비, 교통 폐쇄, 토지 액상화 현상 등 대규모 2차 피해가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 유출이었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를 비롯한 여러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해 방사능이 유출되고 이로 인해 수십만 명이 살던 고향을 떠나 이주해야만 했다.

산리쿠 앞바다에서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는 통합뉴스의 속보를 받자마자 즉각 비상 상황임을 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비상! 비상! 지금 당장 특별 취재 팀 운영하고, 모두 전시에 준하는 상태로 업무에 임해 주세요!”

점심을 먹고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후라 사무실에서는 오후의 나른함이 곳곳에서 피어나고 있던 차였다.

갑작스러운 외침에 많은 이들이 당황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우 사장님. 엄청 큰 뉴스이긴 한데 옆 나라인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고, 일본에서 지진은 무척 흔하잖아요? 갑자기 비상 상황은 왜요?”

박창후 부장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아직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터지기 전이었고, 피해 규모가 알려지기 전이라 다들 이 사건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했다.

“원전이 보통 어디에 있습니까?”

“원전이요? 해안가?”

“맞습니다. 그리고 방금 지진이 일어난 곳 부근에는 후쿠시마 제1 원전과 제2 원전 같은 원자력 발전소가 있습니다.”

“아…….”

원자력 발전소는 핵연료가 핵분열을 할 때 발생한 열로 증기를 만든 뒤 터빈을 돌려서 전기를 생산하는 구조다.

이때 만들어진 증기는 복수기로 보내져 냉각수에 의해 냉각된 후에야 다시 물이 되는데, 이 과정에서 냉각수로 사용될 대량의 물이 필요했다.

따라서 원전은 대량의 물을 마음껏 쓸 수 있는 해안가에 지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긴 한데, 이번 지진으로 원전에서 직접 사고가 난 건 아니잖습니까.”

취재부에 새로 들어온 신입인 이세윤이 손을 들어 물었다.

연세대 신방과를 졸업한 그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기자 근성으로 뚤뚤 뭉친 친구였다.

“그렇죠. 하지만 언론사란 항상 최악의 상황을 미리 대비하며 취재에 나서야 합니다. 자. 이만하면 됐으니 어서어서 움직이세요. 그리고 부장들은 모두 제 방으로 집합.”

부장급 이상 인사가 모두 방에 모이자 집무실이 좁게 느껴졌다.

나는 당장 일본으로 떠날 특별 취재 팀으로 누가 갈 것인지 물었다.

“우 사장님이 왜 이렇게 야단을 떠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저는 가겠습니다.”

안재영이 씨익 웃으며 손을 들었다.

“예전에 HBS에 있을 때 일본 출장은 몇 번 가 보았습니다.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박창후도 번쩍 손을 들며 말했다.

“아덴만 여명 작전에는 따라가지 못했지만 이번만큼은 꼭 같이 가고 싶습니다.”

홍지혜가 다소곳이 손을 올렸다.

이덕오도 가고 싶다며 손을 들었지만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이 이사는 한국에서 서포트해 주세요. 내가 부탁한 메신저 개발은 잘되고 있죠?”

“여부가 있겠습니까. 팀원들도 충원되었겠다, 회사 지원도 빵빵한데요. 사실 지금 당장 출시해도 문제는 없는데 자잘한 버그가 있어서 테스트 중에 있습니다.”

“네. 그거 엄청 중요한 일이니까 잘 부탁합니다. 이번 특별 취재 팀은 취재 위주로 편성할 테니 너무 아쉬워하진 말고요.”

나는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덕오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이수빈 부장이 디자인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이모티콘을 비롯한 다양한 굿즈를 출시하고, 오프라인 매장까지 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컸다.

그런 연유로 나는 이덕오에게 지시하여 새로운 메신저를 개발하라고 시킨 것이었다.

괜찮은 메신저를 직접 개발한다면 사내 업무용 메신저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각종 기사와 상품 등의 서비스와도 접목시킬 수 있으니 잘만 키운다면 효자 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 참. 안 부장님은 이세윤 기자도 이번에 같이 갈 의향이 있는지 좀 확인해 주세요.”

“세윤이요?”

“그 친구 의욕도 넘치고 똘망똘망한 게 이번 취재에 함께 데려가고 싶네요.”

“네.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1시간 정도 추가 지원자를 확인한 후 나는 다음과 같은 특별 취재 팀 운영을 오프라인 게시판을 통해 알렸다.

<오프라인은 일본 대지진 현장을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우세진 공동 사장, 박창후 기자, 홍지혜 기자, 안재영 기자, 이세윤 기자 이상 5명으로 하여 특별 취재 팀을 운영합니다.>

* * *

“아직 못 구했습니까?”

“네. 지금 하네다와 나리타 공항 모두 폐쇄된 상태라 언제 운항을 재개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안재영이 어두운 얼굴로 답했다.

이어서 박창후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우 사장님. 저희도 무작정 공항에서 비행기가 나오는 거 기다리는 것보다는 사무실로 돌아가서 일본 TV나 신문 등 참고하면서 기사를 쓰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다른 3명의 얼굴 모두 그의 의견에 동조한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분명 이날 늦게 일부 노선이 정상화된다. 하루라도 빨리 도착해서 현장을 봐야 할 텐데.’

단발성이었던 연평도 포격 사건과 다르게 동일본 대지진은 현재 진행형이었고, 그 규모와 피해에 있어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또한 다른 언론사들은 일본에 특파원이 있었지만 오프라인은 특파원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현장에서 직접 취재하면서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쓰는 것이 한국에서 소식을 알리는 것보다 훨씬 더 파급력이 클 터이다.

무엇보다도.

‘글로벌에서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내 기사만으로는 어렵다.’

그것이 내 생각이었다.

국내에서는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였지만 해외에서는 여전히 듣보잡 신세였다.

해외 유명 언론사에서 우리를 취재하고,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내주기도 하였지만 언론계 이외에 일반 대중에게까지 퍼져 나갈 만큼 영향력이 크진 않았으니.

그때 체크인 카운터에 다시 다녀온 안재영이 헐레벌떡 이쪽으로 뛰어왔다.

“우 사장님! 간사이 공항은 열렸다고 합니다! 거기 표 끊을까요?”

“간사이 공항이요? 거긴 오사카 쪽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도쿄랑은 400㎞ 떨어졌는데, 빨리 일본에 가는 게 중요한 거라면…….”

“아뇨. 거긴 너무 멉니다. 조금 더 기다려 보죠.”

이후에도 안재영과 박창후가 10분 간격으로 체크인 카운터를 왔다 갔다 하며 표가 있는지 알아보았고, 홍지혜와 이세윤은 인터넷을 통해 운항 여부와 티켓팅을 체크하였다.

나는 나대로 원화성과 안태익에게 부탁하여 지금 당장 도쿄에 갈 수 있는 항공편을 찾아 달라고 수소문하였다.

그렇게 1시간 반가량을 기약 없이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앞에서 한 스튜어디스가 우리를 찾았다.

“계속 도쿄행 비행기를 알아보시던 분들 맞으시죠?”

“맞습니다. 혹시 운항이 재개되었나요?”

“네! 나리타 공항이 부분 정상화되긴 했는데, 저희 항공편은 모두 취소되었고요, 다행히 하네다 공항이 오후 9시 10분부터 입항이 재개되어 자리가 좀 있습니다. 해당 비행기 표를 끊어 드릴까요?”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 6장 일본

2시간 20분.

인천에서 하네다 공항까지 걸리는 시간이었다.

날이 바뀌기 30분 전에 일본에 도착한 우리는 서둘러 입국 심사를 진행했다.

엄청난 재난이 터진 이후였지만 입국 심사관들은 차분하게 여행 목적과 일정 등에 관해 물었다.

그들은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근심과 걱정 대신 상냥함과 친절함으로 우리를 대했다.

오히려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던 것은 한국에서 온 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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