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지진 터진 당일에 일본에 들어오네요.”
“안 부장님을 비롯해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뭘요. 그나저나 기사를 살피니, 피해가 심각하던데요. 괜찮을까요?”
안재영의 괜찮냐는 말은 중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했다.
일본이 이번 지진으로 인해 피해가 더 없겠느냐는 의미가 하나.
그리고 우리가 그런 위험한 곳에 가서도 괜찮을 거 같냐는 의미가 둘.
아무래도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공항 복도에 설치된 TV 화면을 통해 쓰나미 영상을 본 영향이 컸다.
거대한 쓰나미가 마을을 집어삼키면서 가옥과 자동차들이 순식간에 바닷속으로 사라졌고, 지붕 위로 대피한 사람들이 애타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재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을 보고 아무렇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총알이 오가는 아덴만에 다녀온 박창후와 안재영조차 얼굴이 어두웠다.
“여진은 있겠지만 지금 당장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또 발생할 가능성은 작습니다. 방사성 물질이 도쿄까지 급격히 도달하지도 않을 테고요.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취재에 임해 주세요.”
나의 말에 특별 취재 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하네다 공항을 나온 이후였다.
“택시도 없고, 무엇보다 밤이 깊었는데 호텔에 빈방이 없네요?”
박창후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갑자기 일어난 지진으로 지하철과 버스, 기차 등 대중교통이 끊겼고, 이에 집에 돌아가지 못한 많은 이들이 도쿄 시내의 호텔을 잡은 것이다.
“도쿄 인근 모든 호텔이 만실입니다. 공항에서 노숙해야 될까요?”
한참 동안 스마트폰으로 숙박 시설을 살펴본 홍지혜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택시 승강장에서 발을 구르던 우리가 공항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백철웅이었다.
“네. 백 사장님. 일본엔 잘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방이 없네요.”
“그렇죠? 안 그래도 내가 알아봤는데 지금 도쿄를 비롯해서 도쿄 인근 대다수 호텔이 방을 구할 수 없다고 그러더군요.”
“네. 힘들겠지만 오늘 하루는 공항에서 노숙을 할까 합니다.”
“아니요. 안 그러셔도 됩니다.”
“네?”
“제가 이광우 의원한테 부탁해서 도쿄 시내에 한 호텔을 예약했습니다. 호텔에서 지금 공항으로 차도 보내 준다고 합니다.”
“정말인가요? 고맙습니다, 백 사장님! 덕분에 한시름 덜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요?”
* * *
일본의 호텔은 다른 나라에 비해 객실의 크기가 꽤 작다.
특히 욕실의 경우에는 좌변기에 제대로 앉기 곤란할 정도로 크기가 작았다.
그런데도 없는 것 없이 아기자기하게 공간이 꾸며져 있고, 욕탕은 제대로 갖춰져 있는 게 신기했다.
“일본의 주택이 지금처럼 작아진 건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라고 합니다. 과거의 삶과는 다른 근대적 삶을 지향하면서 작고 단순한 것으로 이상적인 결과를 끌어내는 미니멀리즘에 집착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화장실을 둘러보는 나를 보며 한쪽 침대에 걸터앉은 박창후가 말했다.
“그러다 90년대에 들어와 생태주의와 공동체주의의 흐름이 맞물려 미니멀리즘에도 상생과 조화라는 특별한 의미가 더해지게 되었다더군요…….”
“그렇군요. 박 부장님은 그런 건 또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이전에 일본 출장 왔을 때 건축학 박사님에게 들었습니다.”
“다 좋은데, 이렇게 좁아서야 남자 넷은 좀 어렵지 않나요?”
안재영이 편한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투덜거렸다.
“하하. 왜? 따닥따닥 붙어 있으니까 정겹고 좋구먼. 역시 안 부장은 부잣집 출신이라 불편하려나?”
“흥. 누구는 군대 안 갔다 왔답니까? 그래도 너무 작잖아요? 두 사람은 싱글 침대 2개에 각각 잔다고 해도 나머지 두 사람은 땅바닥에서 자야 하는데, 이거 무슨 관짝도 아니고.”
안재영이 침대 사이의 좁은 공간을 가리키며 울분을 토했다.
내가 봐도 안재영처럼 덩치가 큰 사람이 눕기에는 좁아 보였다.
“그렇다고 홍 부장과 같은 방을 쓸 수는 없잖습니까? 공항에서 노숙하지 않고 따뜻한 방에서 자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죠. 아니면 안 부장이 홍 부장하고 같은 방에서 잘래요?”
“네? 홍 부장하고요?”
안재영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더니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아뇨. 박 부장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쇼.”
박창후와 안재영의 넉살에 쥐 죽은 듯 조용했던 일본의 호텔은 한국 남자 넷의 웃음으로 가득 찼다.
백철웅은 이광우 의원의 도움을 받아 도쿄 시내에 한 비즈니스 호텔 방을 2개 예약해 주었다.
더 많은 방을 구하고 싶었지만 이광우 의원의 힘으로도 2개가 한계였던 모양이다.
결국 우리는 여자인 홍지혜에게 방 하나를 넘겨주고 남자 넷은 한방에서 자게 된 것이다.
남자 넷이서 수다를 떠는 가운데.
덜덜덜덜.
“아이고야. 또 흔들리네. 우 사장님. 여기 괜찮을까요? 무슨 툭하면 진동이 이리…….”
왼쪽 침대에 누운 박창후가 탁자 위에 놓인 물컵을 잡으며 불안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아래에 누운 이세윤이 가방을 꼭 껴안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좌우로 흔들리다가 점점 앞뒤로 움직이더니 이제는 동그랗게 흔들거리네요. 아 어지러워.”
“여기 층이 높아서 더 그런 것 같아. 진짜 건물 무너지고 그런 건 아니겠지? 우 사장님. 저 괜찮으니까 위에서 주무실래요? 저 자다가 떨어지면 다치실 텐데.”
오른쪽 침대에 누운 안재영이 나를 향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안재영이 누운 침대와 창가 벽 사이의 좁은 공간에 누운 나는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괜찮아요. 키 큰 안 부장님은 위에서 주무시고, 한밤중에 저 안 덮치게 조심해 주세요.”
나는 키가 큰 안재영에게 침대를 양보했다.
처음에는 좋다며 침대에 누운 안재영은 계속된 진동에 걱정이 되었는지 이후 몇 번이나 자리를 바꾸자고 그랬다.
“다들 불안하시겠지만, 내일 취재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 두세요. 저는 이제 잡니다. 말 걸지 말아 주세요.”
* * *
<패닉에 빠진 일본……. 침몰의 전조인가?>
<일본 침몰 사실? 충격적 시나리오>
<유례없는 대재앙……. 쓰나미에 집어삼켜진 일본 현장>
다음 날 한국 언론에서 나온 기사의 헤드라인들.
그야말로 원시적 본능을 자극하는, 흥미 위주의 선정적인 옐로 저널리즘의 극치였다.
“어처구니가 없네요. 여기 사람들은 이렇게도 침착하고 조용한데.”
홍지혜가 온라인 기사를 살피며 눈살을 찌푸렸다.
“일본은 과거 한국을 침략하였으니 좋게 보지 않는 심리를 이용하는 거죠. 실제로 반일 감정을 건드린 기사 트래픽은 유독 높기도 하고요.”
박창후가 카메라로 거리를 찍으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저는 여기 사람들이 더 신기한데요? 아니 지금도 이렇게 계속 여진이 울리고 수시로 전기가 나가는데 어떻게 저렇게 침착하죠?”
이세윤이 질서정연하게 도로 위를 걷고 있는 일본인들을 가리키며 혀를 내둘렀다.
그의 말대로 일본인들은 마치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회사로 출근하는 등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유일하게 지금이 재난 상황이란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길게 줄을 선 택시 승강장과 공중전화기뿐이었다.
대중교통망이 마비되고 때때로 휴대폰이 먹통이 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일본은 지진이고 화산이고 해일이고 자연재해가 수시로 터지는 나라니까. 얘네들한테 이런 건 그냥 일상 중 하나라고.”
“엄청나네요. 한국이었다면 난리가 났을 텐데.”
“일본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얘네들이 만물을 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게 괜히 그러는 게 아냐. 자연을 무서워하는 거지. 그리고 너 천황이 왜 있는 줄 알아?”
“천황이요? 일본의 황제 아닙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통치자하고는 거리가 멀어. 일본인들에게 천황은 일종의 제사장이야. 하늘과 바다의 분노를 잠재우도록 제사를 지내는.”
박창후의 말처럼 일본의 천황에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업무는 고대부터 이어진 제사장의 역할이었다.
“자자, 잡담은 그만하고요. 지금부터 우리는 도쿄 사람들의 모습과 반응을 사실 그대로 보도하는 데 집중합시다. 이 기자, 일본어 가능하댔지?”
“아 네, 사장님.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합니다.”
“오케이. 그럼 인터뷰는 홍 부장님이 해 주시고, 통역은 이 기자가 좀 부탁해요.”
우리는 출근 중인 사람 중 아무나 붙잡고 인터뷰를 시도했다.
“실례합니다. 한국에서 온 기자입니다. 이웃 나라인 일본에서 이런 재난이 일어나 가슴이 편치가 않습니다. 혹시 잠깐 인터뷰가 가능할까요?”
홍지혜는 검은색 정장을 단정히 입은 젊은 남성을 붙잡고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이세윤의 통역에 상대 남성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성함이?”
“료스케입니다.”
“네. 료스케 상. 인터뷰 감사합니다. 어제의 대지진으로 크게 놀라셨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무척이나 침착한 모습이시네요. 지금 심정이 어떠신가요?”
료스케는 자신의 심정에 대해 짧고 명료하게 밝히더니 끝에 약간 주저하면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 주세요.”
“이번에 지진이 난 센다이시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데 어제부터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제발 두 분 무사하셨으면 좋겠네요.”
료스케의 말을 이세윤이 통역하자 특별 취재 팀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홍지혜가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는 조심히 물었다.
“두 분이 꼭 살아 계시기를, 저와 여기 있는 모든 분이 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료스케의 모습은 너무나 의연했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듯 이세윤이 그에게 곧바로 말을 걸었다.
“아니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침착한 거죠?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세윤이 말을 끝내지 못하자 료스케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일본인들은 재난을 당하면 나보다 더 큰 피해를 본 사람도 있으니 참아야 한다고 어릴 적부터 배웠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모두 크게 울고 있습니다. 정말로요.”
료스케를 시작으로 그날 아침 총 7명의 일본인을 인터뷰하였다.
박창후가 찍고 홍지혜가 인터뷰한 영상은 유튜브와 오프라인 홈페이지를 비롯하여 여러 SNS에서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공유되었다.
<로스케가 인터뷰하는 거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오더라. 어찌나 의연하고 침착하던지.>
<나도, 나도! 와 진짜 일본 사람들이 패닉에 빠졌다는 기사는 현장에 가지도 않고 만든 악의적 기사 아니냐?>
<일본은 싫지만…… 이번 지진으로 피해받은 모든 분이 제발 무사하고 하루빨리 복구되기를 소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재난을 겪은 일본에 안타까움을 표하고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 주었다.
나는 이덕오에게 즉시 동일본 대지진 특집 페이지를 만들라고 지시한 다음 거기에 후원 기능을 붙이라고 말했다.
“후원 기능이요?”
“그래. 그리고 위로와 응원 메시지가 특집 페이지 프런트 화면에 바로 보일 수 있게 작업 좀 해 줘. 마치 메신저 말풍선처럼 뜨게 말이지.”
“어려운 건 아니에요. 그런데 옆 나라, 그것도 일본에서 일어난 일인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덕오의 말투에서 그가 일본을 그리 좋아하지 않음이 느껴졌다.
“바보야! 일본인들은 사람 아니냐? 그리고 일본이니까 이렇게 하는 거야. 그들에게 한국에서도 이번 일본 대지진을 진심으로 안타깝게 여기고 이렇게 많은 위로와 응원을 하고 있다는 걸 시각적으로 잘 보여 줄 필요가 있어.”
“네네. 여부가 있겠습니다. 형님이 하시는 거니까 맞겠죠. 지금 바로 작업 들어갈게요.”
“그래. 수고 좀 하고. 그리고 덕오야.”
“네?”
“혹시 저번에 부탁했던 메신저 지금 바로 출시할 수 있어? 일본 버전으로?”
“네? 일본 버전으로 지금 당장이요?”
“응. 지금 바로!”
최루리를 비롯한 국제부의 도움으로 이덕오는 이틀 만에 자체 개발한 메신저의 일본 버전인 ‘잇쇼니’(一緒に)를 일본에 론칭하였다.
하루 종일 취재에 나갔다가 호텔로 돌아와 기사를 쓰고 있던 이세윤이 메신저를 깔고는 놀랍다는 듯 한마디 뱉었다.
“잇쇼니면 한국어로는 ‘함께’라는 뜻이네요.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의 물음에 답을 주었다.
“말 그대로 다 함께할 수 있다는 의미지. 혼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 다 함께 이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말. 지금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 아닐까 싶어서.”
“아! 정말 그러네요.”
일본은 동경 대지진을 계기로 소비 문화가 크게 달라졌다.
화려하거나 고가의 제품 대신 모든 제품을 333엔에 파는 생활용품 숍이 인기를 끌었고, 타인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다.
자기중심적이었던 모습에서 타인과의 관계나 사회성을 지향하는 공동체가 부각된 것이다.
‘Never의 메신저가 일본에서 대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대지진 이후 일본인의 소비 행태가 달라진 것은 물론 마음속에 크게 구멍이 뚫린 일본인들의 아픔을 잘 보듬어 주었기 때문이지.’
나는 이덕오가 만든 메신저의 UI/UX를 한참 동안 살펴보았다.
메신저의 기본에 충실하도록 쓸데없는 기능은 모두 없애고 최대한 심플하게 가꾼 디자인이 돋보였다.
이수빈이 그린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캐릭터 스티커 또한 무척이나 귀여웠다.
“디자인도 깔끔하고, 캐릭터도 귀엽네요. 이거 정말 우리가 만든 건가요?”
박창후가 메신저를 살펴보며 감탄했다.
“그런데 일본은 메신저 앱보다는 문자 메시지를 더 많이 쓴다고 하던데 성공 가능성이 있을까요?”
홍지혜가 메신저를 살피다 나를 보며 물었다.
“홍 부장님도 일본에 와서 인터뷰하면서 느꼈겠지만, 현재 망 과부하로 통화가 안 되면서 커피톡이나 왓츠 앱, 페이스북 메신저 등의 수요가 일본에서 급증하고 있어요. 어떻게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싶으니까요.”
“네. 한국 교민이나 유학생들은 커피톡이 이번 대지진 때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많이들 그러시더군요.”
“어제 인터뷰한 친구도 그런 이야기를 했잖아요? 원래 일본 사람들은 메신저 안 쓰고 다 문자만 했는데 이제는 너도나도 메신저 앱을 깔고 있다고.”
모두가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세윤이 기사를 쓰다 말고 내게로 다가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