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 (51/200)

“사장님,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요.”

“말해 봐요.”

“망 과부하로 전화망이 죽었는데 메신저 앱은 어떻게 되는 거죠?”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박창후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이세윤의 등을 다독였다.

“하하. 우 사장님이 무슨 IT 전문가도 아니고 무슨 그런 질문을 해. 궁금하면 그냥 인터넷에 쳐 봐. 그나저나 세윤 씨 진짜 궁금한 거 못 참는 성격이네. 천생 기자야. 하하.”

박창후가 이세윤을 다시 자리로 데려가려는 순간.

“아닙니다. 전화망과 인터넷망은 데이터 전송 방식이 서로 다릅니다.”

“네?”

“전화망은 발신지와 수신지를 직접 연결하지만, 인터넷망은 지역 간 그물 구조로 얽혀 있어 어떤 경로가 과부하로 막히더라도 다른 곳으로 쉽게 우회할 수 있죠. 즉 전화에 비해 인터넷은 쉽게 끊기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우와! 우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호기심이 단번에 해결되었어요!”

이세윤을 비롯해 모두가 놀랍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신기하긴 하네.’

나 스스로도 자신이 신기했다.

분명 회귀 전 우라까이를 하면서 관련 기사를 쓴 기억은 나지만, 어떻게 이렇게 문장 하나하나가 자세히 기억이 나는 건지.

* * *

일본에 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호텔에 사람이 빠지면서 각자 방을 하나씩 배정받을 수 있어 한결 여유로움이 생겼다.

그러나 정전과 단수의 불편함은 여전했다.

제한 송전에 따라 3시간씩 전기 공급이 중단되었고 때때로 수도가 끊겼다.

“한국에서 올 때 예비 배터리를 많이 챙겨 오길 잘했네. 전기가 없다는 게 이렇게 불편한 줄이야.”

정전으로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비상계단을 통해 7층까지 올라온 박창후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안재영도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저는 제 방보다 여기 비상계단이 더 익숙하네요. 지진만 나면 여기를 통해 대피해야 하고.”

“그렇지? 아주 정들겠어, 요기.”

“오늘 찍은 건 언제 편집하실 계획이에요?”

“한 이틀 정도 더 찍고 편집하려고. 생각한 장면이 있는데 아직 못 찍었네.”

“그게 뭔데요?”

내가 박창후에게 묻자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다큐멘터리 주제가 ‘함께’니까 뭔가 좀 감동적인 장면이 있었으면 해서요. 인트로 화면에 넣으면 좋을 것 같거든요.”

“감동적인 인트로라.”

나는 잠시 고민하다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일본 사람들이 공중전화기 앞에 길게 줄을 서 있잖아요?”

“그렇죠.”

“거기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 뭔지 기억나요?”

“응? 그게 뭐였죠?”

박창후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내가 대답을 하려는 사이.

이세윤이 빠르게 답했다.

“잘 지내? 아니었나요?”

그렇다.

길고 긴 줄을 지나 자신의 차례가 오면 그들은 여지없이 이 말부터 꺼냈다.

잘 지내냐고.

평소에는 참 진부하고 별다른 의미가 없는 말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 말보다 더 값지고 따뜻한 말은 없었다.

“공중전화기 앞에 길게 늘어선 줄. 힘들게 자신의 차례가 오면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든 수화기. 그리고 꺼내는 말.”

“잘 지내?”

“그렇죠. 그리고 한 명 한 명 다른 얼굴의 사람들이 공통으로 잘 지내냐고 물어보는 모습이 엇갈리면서 타이틀이 등장하면 괜찮을 것 같아요.”

“오! 그거 좋은데요. 얼굴은 다르지만, 모두가 공통으로 하는 말! 생각지도 못했는데, 정말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이번에도 작품 한번 만들어 보셔야죠? 박 부장님.”

“하하. 작품은 뭘요. 그래도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네요.”

박창후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두 눈을 반짝였다.

박창후가 과거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만들었던 다큐멘터리는 HBS와 오프라인 홈페이지 그리고 오프라인 유튜브 계정에 동시 방영되며 70.9%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또한 세계 최대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인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초청을 받는 등 해외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이번 일본 취재에서 그가 다큐멘터리 제작에 공을 들이는 이유였다.

“그런데 이번에 제 다큐보다는 개발 팀이 만든 메신저가 대박 아닙니까?”

“잇쇼니요?”

“네. 메신저 인기 순위 3위인가 그렇던데요? 출시 삼 일밖에 안 됐는데 말이죠.”

“앗! 박 부장님! 이거 보세요. 지금은 인기 순위 2위예요!”

“응? 나도 조금 전에 봤는데? 아! 이 기자 핸드폰은 애플이구나? 나는 안드로이드야.”

“우와 그럼 앱스토어는 2위고,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는 3위인 거네요? 대박이네.”

“일본은 애플이 인기라서 앱 스토어 매출이 더 높다고 하던데. 대단하군, 정말.”

잇쇼니는 출시 사흘 만에 일본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심플한 디자인은 물론 귀여운 캐릭터 스티커가 인기의 비결이었다.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지만, 동일본 대지진 특집 페이지 최상단과 각 기사 페이지 하단에 메신저 출시 배너를 걸자 그로 인해 많은 다운로드가 일어났다.

“동일본 대지진 특집 페이지에 있는 배너를 통해서도 접속을 많이 하던데요?”

“그러게. 최 부장님이 수고해 주신 덕분에 특집 페이지가 한국어뿐 아니라 일본어로도 번역이 되어서 일본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더라고. 트래픽이 한국보다 더 높던데?”

“아무래도 지진을 당한 당사자는 일본이니까요. 한국인들이 전하는 응원과 위로 메시지가 일본에서도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모양이에요.”

“응원 메시지뿐 아니라 우리가 쓴 기사도 반응이 좋아.”

“맞아요! 사실을 냉철하게 분석하면서도 그 속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고 칭찬이 자자해요!”

또한 현재 자신의 위치를 알릴 수 있는 위치 전송 기능에 대해 많은 이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잇쇼니 위치 전송 기능 대박! 내가 어디 있는지 상대한테 전달할 수 있어! 한번 써 봐.>

<에? 내 위치를 사람들한테 알릴 수 있다고?>

<가족들이랑 친구들한테 내 위치를 알릴 수 있고 반대로 그들의 위치도 받을 수 있으니 안심이 되네요. 잇쇼니 대단해!>

모두의 얼굴에서 우리가 출시한 잇쇼니의 흥행에 대한 만족감이 가득했다.

특히 일본어가 가능해 댓글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이세윤의 표정에서는 오프라인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였다.

“어제 앱 스토어에 달린 댓글들을 살펴보는데 일반 폰에서도 이거 나오면 좋겠다는 말들이 많던데요.”

“응? 그건 무슨 말이야?”

박창후가 이세윤에게 묻자 그가 신이 나서 답했다.

“아직 스마트폰이 모두에게 보급된 건 아니잖아요? 일본은 노인들이 많고 또 어린 자녀들한테는 스마트폰 대신 일반 폰을 주는 경우가 많나 봐요. 그래서 일반 폰에서도 쓸 수 있게 해 달라는 거 같아요.”

“오! 그럼 일반 휴대폰에서도 쓸 수 있으면 좋겠네! 그런데 일반 폰에도 앱을 심을 수 있나?”

모두의 시선이 어째 내게로 쏠렸다.

“하하. 그건 잘 모르겠네요. 이 이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

나는 이덕오에게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일반 폰에서도 메신저를 출시하면 좋겠다는 메일을 남겼다.

얼마 후.

<이덕오 님으로부터 메일이 왔습니다.>

그에게 온 이메일은 본문이 무척이나 특이했다.

거대한 고양이가 울상을 짓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아스키코드 문자로 한 자 한 자 손수 그린 그림이었다.

‘누가 개발자 아니랄까 봐.’

* * *

일본에 온 지 어느덧 보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계속되는 여진과 정전, 그리고 방사능 유출이라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특별 취재 팀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어로 번역된 특집 페이지의 한국인 응원 메시지가 일본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면서, 트래픽이 연이어 경신되는 것은 물론 일본 매체에서도 오프라인을 주목하며 인터뷰에 나섰던 것이다.

“오프라인은 일본에 특파원이 없는 거로 아는데, 이렇게 사장님을 비롯하여 다섯 분이나 오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일본의 5대 전국 일간지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요미우리 신문에서 나온 인터뷰였다.

인터뷰를 나온 기자는 꽤나 나이가 많아 보이는 고참 기자였다.

“네. 잘 아시다시피, 동일본 대지진은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재난이었습니다. 이웃 나라인 한국의 언론인으로서 이 일이 무척이나 유감스러웠고, 또한 제대로 취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국인들의 응원과 위로 메시지에 많은 일본인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후원 금액도 정말 대단했고요.”

“한국과 일본은 이웃 나라일 뿐 아니라 함께 미래를 나아갈 동반자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한국분들이 같은 마음으로 후원을 하셨다고 생각하고요.”

“그래도 1,000억이라는 금액은 한 언론사에서 진행한 후원 프로젝트의 금액치고는 무척 큽니다.”

“이번 피해 규모에 비하면 그리 큰 금액이 아닐지는 모릅니다. 그래도 한국의 많은 분들이 일본이 하루빨리 이 사태를 극복하길 응원하고 있다는 의미겠지요.”

“오늘 복귀하신다고 정신이 없으실 텐데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오후 비행기로 떠나신다고요?”

요미우리 신문의 기자가 인터뷰를 끝내고는 사적인 질문이라며 물었다.

“네. 특별 취재 팀 모두가 더 취재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만 사장으로서 너무 오래 한국을 떠나 있기는 부담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저희는 요미우리 신문처럼 규모가 큰 언론사가 아니라서요. 기자 한 분 한 분의 존재가 무척 큽니다.”

“겸손이십니다. 한국에서는 오프라인이 제1 언론사라고 그러던데요?”

“그럴 리가요. 다만 소셜 언론에 한정해서 본다면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하. 아무튼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일본인들이 오프라인의 냉철하고도 따뜻한 기사에 감동을 하고 또 위로를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응원합니다.”

그는 내게 자신의 명함을 한 장 건넸다.

이세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

“요미우리 신문 편집국장 스즈키?!”

나 역시 놀랍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 저희 사장님이 꼭 저보고 인터뷰하라고 해서요. 상대가 한국 최고 언론사의 사장인데 일반 기자가 인터뷰를 하러 가는 건 실례라고 말이죠.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하네다 공항은 일본을 떠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대다수는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이었지만 가족 단위의 일본인들도 꽤 있었다.

재미있는 건 그들의 모습이 피난민이라기보다는 여행객에 더 가까웠다는 것이다.

“선배, 저기 저 가족들 보이세요?”

“응? 엄마 아빠 손 잡고 있는 쌍둥이네?”

“네. 넷 모두 노란색 커플티 입고 있는 가족이요.”

이세윤이 안재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안재영은 부장이고 이세윤은 신입 기자였지만, 언론사에서는 직위 대신 서로를 선후배로 불렀다.

자연스레 상호 간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친밀감도 높아졌다.

“단란해 보이고 좋네. 그런데 왜?”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데, 걱정도 안 되나 싶어서요.”

“여행 가면 설레고 좋은 거지 걱정을 왜 해?”

“아니 그렇잖아요? 계속 여진이 일고 있고, 집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저렇게 속 편한 모습이 잘 이해가 안 돼서요.”

“그건 그렇네. 야. 궁금하면 네가 직접 인터뷰 따! 선배들한테 그만 좀 물어보고. 너 일본어도 되잖아?”

안재영이 이세윤의 등을 떠밀었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일본인 가족들 앞으로 간 이세윤.

쭈뼛거리며 질문을 던졌다.

“실례합니다. 한국의 언론사인 오프라인 기자 이세윤이라고 합니다. 혹시 잠깐 시간 괜찮으실까요?”

“한국의 오프라인이요? 물론이죠! 잇쇼니를 만든 곳도 오프라인이죠?”

의외의 반응에 이세윤이 이쪽을 돌아보며 으쓱거렸다.

남성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이세윤에게 보여 주었다.

그는 화면에서 잇쇼니 앱을 가리키더니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거 정말 좋습니다. 특히 위치 전송 기능은 너무나 획기적이에요. 제 아내랑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 정말 안심이 되었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그런데 혹시 간단한 인터뷰가 가능할까요?”

“인터뷰요? 그럼 저희 이야기가 기사에 나오나요?”

여성의 물음에 이세윤이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부담스러우시면 익명으로도 가능합니다.”

“아뇨! 저희 가족 이름 모두 내보내 주세요! 오프라인에 이름이 실리다니 완전 좋아요! 혹시 사진은 안 나가나요?”

“사진이요? 박 선배, 여기 잠시만요.”

이세윤은 박창후를 불러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왜? 사진 필요해?”

“가족분들이 사진을 찍어 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네요.”

“그래? 완전 적극적이시네. 당연히 찍어 드려야지.”

일본인 가족들은 공항을 배경으로 여유롭게 사진을 찍었다.

“촬영 감사합니다. 혹시 지금 어디로 가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네. 저희는 지금 파리로 갈 계획입니다.”

“파리요? 어떤 목적의 여행일까요?”

“목적? 휴가입니다. 아내랑 저랑 둘 다 휴가를 냈고, 아이들도 학교에 이야기해서 시간을 냈고요.”

“저기 실례되는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불안하지 않으신가요? 지금도 계속 여진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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