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윤의 질문에 남성과 여성은 번갈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성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정확히 어떤 게 걱정된다는 건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집 안의 물건이 떨어져 깨진다거나, 외관이 부서질 수도 있고요. 부재하시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요?”
“아. 그거라면 깨지기 쉽거나 고가의 물건들은 모두 잘 정리하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일본에서 지진은 수시로 일어나니까요. 걱정이 전혀 안 된다는 건 아니지만 괜찮을 겁니다. 오히려 요즘은 출퇴근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회사에 다니는 것보다는 잠시 외국으로 바람을 쐬고 오는 게 더 좋고요.”
“출퇴근 시간이 얼마나 느셨는데요?”
“보통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요즘은 3시간이 넘게 걸리네요.”
“저도 비슷해요. 대중교통 시스템이 절반 정도밖에 가동을 안 하니까요.”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주변에 비슷하게 휴가를 가시는 케이스가 많나요?”
“네. 저희 부서에서도 저 포함해서 세 명이 해외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인터뷰는 10여 분간 진행되었다.
인터뷰가 끝나자 일본인 가족들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들의 얼굴에서 파리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이세윤이 중얼거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인들은 참 의연하네요…….”
* * *
출국장에 들어가려고 게이트에 줄을 서고 있을 무렵이었다.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부부가 공항 직원으로 보이는 이를 붙잡더니 애타게 외쳤다.
안재영이 그들을 가리키며 이세윤에게 물었다.
“세윤아. 저기 뭐라고 그러는 거야?”
“아. 이틀째 대기 중인데 도대체 언제 표가 나오는 거냐고 그러시네요.”
“한국 사람 같지?”
“네. 한국인 신혼부부 같네요.”
“잘됐네. 이 기자. 가기 전까지 일해야지?”
“네? 저 줄 서고 있는데 또 인터뷰하라고요?”
“우리가 너 자리는 맡아 줄 테니까 빨랑 다녀와. 어차피 게이트 통과하는 데 한참 걸릴 것 같으니.”
“알겠습니다. 부장이 시키는데 사원 나부랭이가 안 갈 수가 있나요.”
“크크. 빨랑 다녀와.”
이세윤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벨트 차단봉의 벨트를 슬쩍 들어 올려 젊은 부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5분 정도 짧게 인터뷰를 하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뭐래?”
“유학생 커플인데, 표가 없어서 이틀째 대기 중에 있대요. 아기가 있어서 너무 힘들다고 그러네요.”
“그러게. 아기는 몇 살이래?”
“이제 20개월이래요.”
“완전 갓난쟁이네.”
“이런. 부모도 힘들겠지만, 아기가 너무 고생인데요.”
홍지혜가 걱정스럽다는 듯 아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시계탑을 바라보았다.
시간은 오후 4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지금 비행기 보내면 그래도 오늘 중에는 표를 구할 수 있겠죠?”
나의 물음에 모두가 깜짝 놀라며 대꾸했다.
“네? 시간 바꾸시려고요? 다음 비행기 표 없습니다, 사장님! 이것도 백 사장님이 한국에서 힘써 준 덕분에 겨우 구한 거잖아요!”
“맞습니다, 우 사장님. 잘못하다가는 저희도 며칠씩 대기자 명단에 올리고 기다려야 해요.”
박창후와 안재영이 시간을 바꾸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며 펄쩍 뛰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도 공항에는 여진이 일고 있었고, 일본을 떠나려는 이들이 더 많이 공항으로 밀려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저 갓난아이를 두고 가는 게 마음에 걸리네요. 못 봤으면 모를까 우리가 인터뷰까지 했는데.”
“아휴. 우 사장님. 가서 할 거 많다고 그러셨잖아요. 할 일도 많으신 분이 그런 거 하나하나 어떻게 다 신경을 씁니까. 저희가 보도하면 한국 항공사에서도 편 수를 늘리든지 하겠죠.”
박창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저는 제 표를 저분들에게 양보하겠습니다. 혹시 한 분 더 양보하실 분은 안 계실까요?”
나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홍지혜가 번쩍 손을 들었다.
“저요! 제가 양보하겠습니다.”
* * *
공항 2층에 위치한 우동집.
오랜 기다림 끝에 테이블에 앉은 우리는 각자가 시킨 우동을 먹기 시작했다.
후루룩.
뜨끈한 국물이 넘어가며 배 속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이 집 우동. 맛있네요.”
“그러게요. 한참 줄을 선 보람이 있네요.”
우리 뒤로는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이 길게 서 있었다.
“그런데 항공권을 양도 못 한다는 규정은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그러게요. 저도 몰랐어요. 하마터면 비행기 티켓만 날릴 뻔했어요.”
“홍 부장님 덕이 컸죠.”
우리가 젊은 부부와 함께 체크인 카운터에 가서 항공권을 양도하고 싶다고 말하자 항공사 직원은 단칼에 거절했다.
“죄송하지만 손님. 항공권은 양도가 불가능합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죠?”
“항공권에는 예약자 성함과 여권 번호 등의 개인 정보가 입력되고, 여러 보안 문제로 인해 법적으로 양도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런. 여기 이 갓난아이가 이틀 넘게 대기실에서 무작정 대기하고 있는데 방법이 없을까요?”
우리가 갓난아이를 들이밀며 사정을 말하자 직원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난감해하고 있던 차에 카운터 직원의 상사로 보이는 자가 나타나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이신가요?”
“네. 제 티켓을 이분들에게 양도하고 싶은데 뭔가 방법이 없나 싶어서요.”
부하 직원에게 사정을 들은 상사는 한참 고민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5분여간의 통화가 끝나고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싱긋 웃었다.
“손님께서 이렇게 타인을 배려하시는데, 항공사인 저희라고 가만히 있을 순 없군요.”
“그렇다면?”
“네. 손님의 항공권을 취소하고 즉시 저분들에게 새로운 항공권을 발행하려고 합니다. 원래는 대기자 명단에 따라 우선순위가 정해집니다만 이번만 특별히 예외로 두려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에 오프라인에서 좋은 기사를 많이 써 주신 것도 참작이 되었고요.”
“응? 저희 오프라인을 아시나요?”
“그럼요. 저는 일본인이지만 오프라인의 기사와 한국분들의 응원 메시지를 보고 많은 힘을 받았습니다. 저쪽에 계신 리포터분? 영상에 많이 나오시지 않았습니까?”
그는 홍지혜를 가리키며 물었다.
“맞습니다. 저희 홍지혜 기자입니다.”
“네. 유튜브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이렇게 실물로 보니 훨씬 더 미인이시군요.”
“과찬이십니다.”
홍지혜가 엷은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그렇게 젊은 부부의 끊이지 않는 감사 인사를 뒤로한 채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한 것이 조금 전이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제 얼굴을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게 여전히 잘 적응이 되진 않네요.”
“왜요. 홍 부장님 이번에도 좋은 기사 많이 써 주셨고, 카메라에도 얼굴 많이 비췄으니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 다음 비행기 표는 언제쯤 구할 수 있을까요?”
“백 사장님이 지금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있다고 하니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헤헤. 신기하네요.”
“뭐가요?”
“저희가 언제 이렇게 어딘가에 말만 하면 뭐든 이루어지는 곳이 되었나 싶어서요.”
“그러게요. 홍 부장님을 비롯한 모두가 열심히 해 주신 덕분입니다. 저도 가끔은 잘 믿기지 않아요.”
“우 사장님이 저희를 잘 이끌어 주시기 때문이죠. 항상 감사합니다.”
홍지혜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우동 그릇의 바닥이 보였다.
* * *
대기석에 앉아 뉴스를 보니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 액수와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불안감과 후유증은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분명 탈원전이 필요하긴 한데,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어야 할까.’
나는 고개를 들어 천정을 바라보고는 가만히 생각했다.
회귀 전 한국 정부는 탈원전을 천명했지만, 논란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원전이 위험하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했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전만큼 에너지 수급 안정성이 높은 기술은 없으니 말이지. 태양광이나 풍력은 기술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가 컸고.’
내가 멍하고 천정을 바라보고 있자 홍지혜가 궁금했는지 물었다.
“뭘 그리 생각하세요?”
“아. 탈원전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잠시 생각해 봤어요.”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보면 탈원전은 당장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게 지금 당장 원전이 없어지면 전기가 부족해지니까요. 관련해서 진행 중인 사업도 많고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죠.”
“음.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습니다만, 너무 위험한 기술인 거 같습니다. 지진 선진국이라 불리며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일본조차 쓰나미에 이렇게 무너졌잖아요.”
“네. 특히 이번 동일본 대지진 이후 탈원전에 대한 목소리는 한국 사회에서도 훨씬 커지겠죠. 다만 대안이 너무 추상적이라서 문제겠지만요.”
“대안? 추상적? 아직 나오지도 않은 문제를 벌써 걱정하시는 거예요?”
“하하. 제가 좀 걱정이 많잖아요.”
홍지혜와 탈원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
백철웅으로부터 밤 11시 15분 비행기 티켓을 구했다는 연락이 왔다.
“홍 부장님.”
“네?”
“일등석이랍니다.”
밤 비행기를 타고 일요일 새벽에 한국에 들어온 나와 홍지혜는 인천 공항에서 각자 택시를 타고 헤어졌다.
집에 도착해 온종일 고시원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울렸다.
이덕오였다.
“덕오야. 일요일에 무슨 일이냐?”
“형님, 한국 돌아오셨죠?”
“응. 오늘 새벽에 들어왔다.”
“피곤하실 텐데 죄송해요. 급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래. 말해 봐.”
“괜찮으시면 제가 형님 집 쪽으로 가도 될까요?”
“응? 그래.”
오래 지나지 않아 이덕오가 내가 사는 고시원에 도착했다.
덩치 큰 녀석이 내 방에 들어오자 여유 공간이 전혀 없었다.
녀석은 방 안 곳곳을 살피더니 인상을 쓰고는 말했다.
“어휴. 이렇게 숨 막히는 공간에서 사시는 거예요?”
“응. 근데 무슨 일이야? 일요일에 집까지 다 찾아오고.”
“형님. 돈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저랑 같이 삽시다. 저 방 세 개예요!”
“방이 세 개나 돼? 이야. 우리 덕오 부자네. 근데 됐어. 내가 편해서 있는 거야.”
“어휴. 이런 돼지우리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요! 저랑 같이 살아요.”
“됐고, 여기는 너 말대로 좀 좁은 거 같으니 근처 카페라도 나가자.”
우리는 방을 나와 인근에 있는 한 카페에 들렀다.
김희철이 오프라인으로 옮기면서 카페 적혈마가 없어진 게 이럴 땐 아쉬웠다.
“그래 무슨 일이야?”
“이번에 일본에서 메신저가 대박이 났잖아요?”
“잇쇼니? 장난 아니지. 들어올 때 보니까 메신저 인기 순위 1위던데? 요즘 화제의 앱에도 최상단에 보이고.”
“그래서 말인데, 이거 한국 버전을 포함해서 글로벌 버전도 지금 당장 출시하면 어떨까요?”
“한국이랑 글로벌?”
“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도 있잖아요! 지금 당장 론칭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한국이랑 글로벌이라…….”
이덕오는 내가 주저하는 게 의외였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니, 저는 형님한테 이거 이야기하면 ‘좋아! 지금 당장 해!’ 이럴 줄 알았는데 어째 반응이 시큰둥한데요?”
“하하. 그랬다면 미안. 한국 버전은 괜찮은데 글로벌 버전은 다음에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