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왜요. 일본에서도 통했으니 다른 국가도 좋을 것 같은데요.”
“일본은 특수 상황이었잖아. 메신저 앱보다는 문자 서비스가 대세였다가 이번 대지진 때문에 전화망이 불안정해진 영향이 컸지.”
“그렇긴 하지만, 호평뿐이잖아요? 커피톡이나 왓츠 앱, 페북 메신저도 하지 못한 걸 저희가 해냈다고요!”
“그래그래. 잘했어. 그런데 그거 누가 기획했지?”
“아……. 혀…… 형님이요.”
나는 이덕오에게 잇쇼니의 대략적인 기획안을 던지고 만들라 지시했었다.
심플한 UI/UX를 기반으로 캐릭터 스티커와 위치 전송 기능 모두 나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Never의 메신저 아이템이었지만.’
회귀 전 Never의 메신저는 일본에서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의 상황을 잘 분석해서 파고들어 간 덕분이었다.
덕분에 한국 회사가 만든 제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명함이나 이메일 대신 Never 메신저의 아이디를 교환하는 게 일상이 될 정도로 일본 시장에 제대로 녹아들어 갔다.
자국 선호주의가 강한 일본에서 외국의, 특히 한국의 제품이 성공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는 일본의 메신저 앱 상황이 달라질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그렇게 기획을 했던 거였어. 하지만 다른 곳들은 모두 기존의 메신저 앱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데다 기존 앱들이 확고히 자리를 잡고 있지. 일본처럼 아직 아무도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가 아니잖아. 재난 상황도 아니고.”
나의 설득에 이덕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형님 말씀이 맞네요. 일본에서 론칭 첫날부터 너무 반응이 좋아서 제가 잠깐 눈이 뒤집혔나 봐요.”
“아냐. 나도 설마 했는데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지 몰랐어. 덕오 니가 고생 많았다.”
정말이었다.
Never 메신저가 성공한 것이 떠올라 이덕오에게 넌지시 주문을 했던 건데 이 정도로 파급력이 클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중박만 쳤어도 대성공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아무래도 Never의 메신저는 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고 2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론칭되었고, 잇쇼니는 대지진 상황에서 론칭한 게 차이의 비결로 보였다.
‘게다가 Never 메신저의 히트 이유를 나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내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이덕오도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에 새로 합류한 친구들도 모두 실력이 장난 아니에요. 애사심과 열정도 높고요.”
“다행이네. 한국판은 잘 다듬어서 4월에 론칭하도록 하자. 마케팅도 좀 신경 써서 해야 할 텐데, 사람도 추가로 뽑을까?”
“네? 그럼 저희야 대환영이죠!”
이덕오의 말처럼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
물 빠지고 나서 노를 저어 봤자 배는 움직이지 않으니.
원화성으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받기도 하였으니 우선 인원부터 충원하기로 했다.
우리는 마케팅부를 신설하고 다섯 명을 추가로 모집하기로 한 것이다.
“마케팅부가 신설되면 굿즈 판매도 훨씬 효과적일 거 같아요.”
부장급 회의에 참석한 이수빈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이 부장님이 메신저에 만든 캐릭터들이 정말 인기가 많았어요. 다들 너무 귀엽고 앙증맞다는 반응이에요.”
홍지혜도 웃으며 답했다.
“메신저 앱 스티커는 처음이라서 걱정이 많았는데,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에요.”
“만화 왕국이자 캐릭터 산업의 최종 보스라고 불리는 일본에서도 이렇게 인기가 좋으니 한국에서도 분명 성공할 거예요.”
“그러면 좋겠네요. 이 이사님. 한국 메신저는 론칭이 언제라고요?”
“아마 다음 주 초에 론칭하지 않을까 싶어요.”
“안 부장님은 관련해서 기사도 몇 개 만들어 주세요. 일본에서 대박 난 메신저가 한국에도 론칭한다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안 그래도 세윤이가 벌써 몇 개 써 놨습니다.”
“그리고 오늘 회의 안건이 하나 더 있는데…….”
내가 말끝을 줄이자 모두 궁금하다는 듯 호기심을 보였다.
나는 백철웅과 시선을 교환하고는 입을 열었다.
“마케팅부 신설과 별개로 사옥을 하나 지으려고 합니다.”
“네?! 사옥이요? 빌딩 말입니까?”
부엉이처럼 눈이 휘둥그레진 박창후가 큰소리로 외쳤다.
백철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 문제로 우 사장과 원 회장과 한참 동안 논의했습니다.”
“생각도 못 했습니다. 물론 엄청난 금액을 투자받았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걸로 건물을 살 거라고는.”
나는 테이블에 놓인 차를 마시며 가볍게 말했다.
“일부는 저희 사무실로 쓰고 일부는 임대를 줘서 임대료를 받으면 수익도 높아질 테니까요.”
“우리가 건물주가 된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네요.”
“오프라인이 건물주지 어떻게 박 부장님이 건물주예요?”
최루리가 웃으며 핀잔을 주자 박창후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최 부장님 정말 저의 오프라인에 대한 충성심을 모르시는 겁니까? 오프라인이 저고 제가 오프라인이죠. 뭐. 그나저나 도대체 몇 층짜리 건물인데요?”
박창후의 물음에 백철웅이 역으로 물었다.
“박 부장님은 몇 층 정도면 적당할 것 같습니까?”
“그게…… 한 7층?”
“아뇨.”
“그럼 10층?”
“아뇨.”
“그, 그럼 20층?!”
“아뇨.”
“아니, 도대체 몇 층짜리인데요?”
백철웅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내게 손짓했다.
“지상 35층, 지하 7층. 강남역 인근에 지을 생각입니다.”
“네?!”
“강남역에요?”
“3…… 35층?!”
모두가 경악스럽다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참 동안 멍하니 말이 없던 안재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저희 투자금으로 그런 빌딩을 지을 수 있습니까?”
“불가능하죠.”
내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럼요?”
“원화성 회장의 엔젤 머니랑 안 부장님의 아버님이 계시는 진양 그룹에서 함께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네? 두 곳은 이미 저희 회사에 투자를 했잖아요?”
“그거랑 별개로 건물을 함께 만들기로 했어요. 부동산 사업은 수익성이 높으니까요.”
“그럼 우리가 단독 주인이 아니라?”
“그렇죠. 오프라인와 엔젤 머니, 진양 그룹의 공동 소유입니다.”
최루리가 마시던 컵을 내려놓고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아니 그래도 어찌 되었건 저희 사옥은 맞잖아요?”
“그렇죠.”
“아무튼 대박이네요. 강남역에 그런 초고층 빌딩으로 사옥을 짓는다니. 정말 로켓에 올라탄 기분입니다.”
* * *
시공사 선정을 위해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검토하고 있던 가운데.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네. 우 사장님. 안재영입니다.”
“무슨 일이죠, 안 부장님? 제가 지금 정신이 없어서 급한 거 아니면 이따가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
안재영은 내 책상에 쌓인 서류 뭉치를 보더니 혀를 내둘렀다.
“그게 다 시공사 관련 서류인가요.”
“네.”
“정말 죄송하지만, 거기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 꼭 말씀을 드리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나는 잠시 서류를 책상에 내려놓고 그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인가요?”
“다음 주 수요일에 창원을 연고로 하는 아홉 번째 프로 야구 구단이 창단되거든요.”
“아? DC 소프트에서 하는?”
“알고 계셨군요? 맞아요. 프로 야구 쪽에서는 꽤 큰 건입니다. 지금까지의 8구단 체제를 깨고 새로 9구단 체제를 열게 된 장본인이니까요. 창단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우여곡절이 있었고요.”
“그렇군요.”
“게다가 DC 소프트 대표도 직접 온다니까 우 사장님도 함께 가면 어떨까 싶어서요. 그리고.”
“그리고?”
안재영이 그답지 않게 말을 질질 끌더니 부끄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앞으로 스포츠나 문화 쪽도 출입하려면 아무래도 저희 취재부에 기자가 더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뭐야. 결국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겁니까?”
“하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안재영이 사무실을 나간 뒤 달력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다음 주에는 별다른 약속이 없었다.
‘요즘엔 만나자고 하는 사람들이 원체 많으니.’
나는 천천히 의자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종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들은 앞만 보고 가거나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곧 그들은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걷기 시작할 것이다.
‘아직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이라 스마트폰을 꺼내 보는 이들이 많지 않지만 이제 곧이다.’
나는 다시 의자를 돌려 컴퓨터에 DC 소프트라는 키워드를 입력하였다.
DC 소프트의 대표게임인 카오스 오브 헬에 대한 공략 글이 가득했다.
카오스 오브 헬(ChaosOfHell).
DC 소프트에서 만든 대한민국의 1세대 온라인 게임이자 세계적인 MMORPG.
회귀 전에는 나도 한때 이 게임에 미쳐 있을 만큼 우리 세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게임이었다.
게다가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이후 카오스 오브 헬의 IP를 이용해 모바일 버전으로 낸 카오스 오브 헬 M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No.1 게임 회사로 거듭난다.
‘DC 소프트 대표 정선호가 직접 온다는 말이지.’
나는 안재영에게 창원에 내려갈 테니 정선호와 만날 자리를 한번 만들어 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to be continued
# 1장 정선호
창원시.
공업 기반의 계획 도시인 창원은 경상남도청 소재지로 경남 최대의 도시이다.
자동차, 조선, 기계 산업의 보유는 창원이 100만이 넘는 인구를 보유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제9 구단’ DC 소프트 구단 창단 승인 기자 회견>
창원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이 날 기자 회견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참석해 뜨거운 취재 열기를 증명하였다.
“DC 소프트와 같은 중견 기업의 등장은 한국 프로 야구가 변화를 시작되는 원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창원 시장의 말을 들은 안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 사장님. DC 소프트의 제9 구단 창단이 어떤 의미인지 아시나요?”
“안 부장이 알기 쉽게 설명 좀 해 봐요.”
“한국 프로 야구는 이제 600만 관중을 볼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적자 사업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요? 수익이 없는데 왜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거죠?”
“그러니까 일종의 사회 공헌 사업에 가까웠죠.”
“신기한 사업이네요.”
“측정하기는 애매하지만, 모기업의 홍보 효과도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중견 기업이 이런 시장에 들어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제 수익 실현이 가능하다?”
“맞습니다. 한국 프로 야구의 체질이 개선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결과적으로 DC 소프트에도 프로 야구계에도 좋은 일이다?”
“네. 게다가 현재 프로 야구 객석 점유율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입장료를 올리기도 쉽지 않고요. 구단의 수가 더 늘어야 새로운 지역의 야구팬이 유입되고, 시장 규모가 커질 수 있죠.”
안재영이 9구단 창단의 의미에 관해 이야기하는 동안 창원 시장의 연설이 끝났다.
이어서 DC 소프트 정선호 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정선호 대표는 42살의 젊은 나이에 연 매출 8천 억대의 탄탄한 게임 회사를 일궈 낸 성공한 중견 사업가였다.
‘지금은 중견 기업이라고 불릴지 모르지만.’
10년 내로 DC 소프트는 기업 시총 순위 10위 안에 들 정도로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반갑습니다. DC 소프트 대표 정선호입니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 170㎝ 정도의 아담한 체구.